
Hausbesichtigung / House viewing
: 꿈에 그리던 집에 대해서.
스스로가 이렇게 초라했던 적이 있던가.
한국에서는 계약하겠습니다, 한마디와 보증금만 있으면 끝나던 집 구하기. 이방인으로서 집을 구하는 일은,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선택받는 일이더라고요.
사람 좋아 보이게 웃고 있는 사진 한 장. 이름과 나이, 국적, 직업.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잔고 증명까지. ****이 집에 살고 싶다는 구구절절한 구애를 담아 50여 곳에 연락하면 대여섯 곳에서 답장이 옵니다. 짧은 화상 인터뷰를 본 뒤에야 초대를 받죠. 집을 본 다음 날이면, 다른 세입자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문자를 받습니다.
‘꿈에 그리는 집’에 가겠다는 허망한 마음 하나로 벌린 일. 안 그래도 우울하고 추운 겨울. 그 계절을 집만 보러 다니며 보내고 나서야, 그 집을 만나게 됐습니다.
4미터쯤 되는 높은 천장. 천장을 따라 이어진 석고 장식.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작은 테라스.
아, 꿈에 그리던 집이다.

Berlinale
: 어쩌다 베를린에서 다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운이 좋게도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베를린 영화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반 관객에게도 티켓이 열려 있어 영화제 기간 내내 극장을 드나들었죠. 영어 자막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문득 예전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영화연출을 복수전공하며 부천, 전주, 부산의 영화제를 쫓아다니던 시절. 그리고 스물 아홉 한예종 입시에 떨어진 뒤, 곧장 베를린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던 날들.
어쩌면 베를린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건 영화로부터만은 아니었지만요.
어느 날, 바빌론 영화관에서 열린 한국 단편 영화제에서 입시 선생님의 영화를 다시 만났습니다. 우연히 연락이 닿아 함께 영화를 보고, 늦은 밤까지 와인을 마시며 사람 사는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도, 멀게만 느껴져 등을 돌리고 말았던 영화. 같은 꿈을 계속 직시하며 살아가는 사람 앞에서 제가 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언젠간 저도 어릴 적 꿈을 다시 마주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Flohmarkt / Flea market
: 김치팔이 소녀
타지 생활에서 꿈을 찾게 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1,800원을 돌파하며 치솟은 환율 앞에 저는 무너졌습니다. 한화를 벌어 유로를 쓰는 생활. 생각보다 금방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집을 살지 고민할 때, 저는 식당에서 제로 콜라를 시킬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요.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저는 돈욕심이 많은 편이기에 결국 유로 벌이를 시작합니다. 제가 시작한 일은 로컬마켓에서 김치를 파는 일이었는데요.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일은 저의 만족감이나 성취감보다는 돈을 버는 행위로만 존재했기 때문에 마켓에서 하는 일에 크게 애정을 갖지 못했죠.
평일에는 원격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마켓에 나갔습니다. 겨울에는 난로 가까이 갔다가 패딩을 태워 먹기도 했고요. 3월을 지나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시간이 어느새 좋아졌습니다.
매일 독일어를 하나씩 알려주던 할아버지, 1유로 팁을 꼭 놓고 가던 단골 손님, 간식을 나눠주던 옆 가게 상인, 가게 안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닥스훈트. 밖으로 나와 사람을 만나고, 계절을 느끼며 일했던 시간. 베를린에서 제가 얻은 또 하나의 생활이었습니다.
Aufguss
: 나체의 꿈
어릴 적 저는 사진 찍는 것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보니 저를 드러내는 크리에이터로서 살고 있지만 잘 가꿔서 보여줘야만 증명되는 삶에 다소 진절머리를 느끼고 있었죠.
베를린에서 혼성 누드 사우나에 갔는데요. 제겐 꽤나 큰 도전이었습니다. 지금도 조금은 낮에 꾼 꿈처럼 느껴지는데요.
드넓은 초원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사람들.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아우프구스 마이스터가 흩뿌리는 증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들. 나체로 차가운 물을 가르며 수영하던 나.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우나를 나오면서 나지막이 내뱉었어요. 아, 천국이다. 저를 피곤하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던 시간이었죠. 핸드폰 알람도, 좋은 걸 남기고 싶어서 여기저기 찍어대던 카메라도,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짐도 없이.
나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나로 존재할 수 있어서요.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하고 스스로를 가로막는 두려움을 깨기 위한 방법으로 ‘Write in the nude(나체로 글쓰기)’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중요한 것은 벗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Writer. 송지나 (@nazzsong)
크리에이터 겸 프리랜서 콘텐츠 에디터.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브랜드가 표현하고 싶은 가치까지. 글, 사진, 영상의 시청각적인 연출을 통해 콘텐츠로 풀어내고 있다. 현재는 패션과 여행,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콘텐츠를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다양한 기업들과 브랜드들과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함수를 배우기도 전에 수학과 과학 공부를 포기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나 가설, 과학에 대해 흥미가 많다. 다시 태어나면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Hausbesichtigung / House viewing
: 꿈에 그리던 집에 대해서.
스스로가 이렇게 초라했던 적이 있던가.
한국에서는 계약하겠습니다, 한마디와 보증금만 있으면 끝나던 집 구하기. 이방인으로서 집을 구하는 일은,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선택받는 일이더라고요.
사람 좋아 보이게 웃고 있는 사진 한 장. 이름과 나이, 국적, 직업.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잔고 증명까지. ****이 집에 살고 싶다는 구구절절한 구애를 담아 50여 곳에 연락하면 대여섯 곳에서 답장이 옵니다. 짧은 화상 인터뷰를 본 뒤에야 초대를 받죠. 집을 본 다음 날이면, 다른 세입자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문자를 받습니다.
‘꿈에 그리는 집’에 가겠다는 허망한 마음 하나로 벌린 일. 안 그래도 우울하고 추운 겨울. 그 계절을 집만 보러 다니며 보내고 나서야, 그 집을 만나게 됐습니다.
4미터쯤 되는 높은 천장. 천장을 따라 이어진 석고 장식.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작은 테라스.
아, 꿈에 그리던 집이다.
Berlinale
: 어쩌다 베를린에서 다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운이 좋게도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베를린 영화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반 관객에게도 티켓이 열려 있어 영화제 기간 내내 극장을 드나들었죠. 영어 자막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문득 예전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영화연출을 복수전공하며 부천, 전주, 부산의 영화제를 쫓아다니던 시절. 그리고 스물 아홉 한예종 입시에 떨어진 뒤, 곧장 베를린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던 날들.
어쩌면 베를린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건 영화로부터만은 아니었지만요.
어느 날, 바빌론 영화관에서 열린 한국 단편 영화제에서 입시 선생님의 영화를 다시 만났습니다. 우연히 연락이 닿아 함께 영화를 보고, 늦은 밤까지 와인을 마시며 사람 사는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도, 멀게만 느껴져 등을 돌리고 말았던 영화. 같은 꿈을 계속 직시하며 살아가는 사람 앞에서 제가 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언젠간 저도 어릴 적 꿈을 다시 마주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Flohmarkt / Flea market
: 김치팔이 소녀
타지 생활에서 꿈을 찾게 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1,800원을 돌파하며 치솟은 환율 앞에 저는 무너졌습니다. 한화를 벌어 유로를 쓰는 생활. 생각보다 금방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집을 살지 고민할 때, 저는 식당에서 제로 콜라를 시킬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요.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저는 돈욕심이 많은 편이기에 결국 유로 벌이를 시작합니다. 제가 시작한 일은 로컬마켓에서 김치를 파는 일이었는데요.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일은 저의 만족감이나 성취감보다는 돈을 버는 행위로만 존재했기 때문에 마켓에서 하는 일에 크게 애정을 갖지 못했죠.
평일에는 원격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마켓에 나갔습니다. 겨울에는 난로 가까이 갔다가 패딩을 태워 먹기도 했고요. 3월을 지나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시간이 어느새 좋아졌습니다.
매일 독일어를 하나씩 알려주던 할아버지, 1유로 팁을 꼭 놓고 가던 단골 손님, 간식을 나눠주던 옆 가게 상인, 가게 안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닥스훈트. 밖으로 나와 사람을 만나고, 계절을 느끼며 일했던 시간. 베를린에서 제가 얻은 또 하나의 생활이었습니다.
Aufguss
: 나체의 꿈
어릴 적 저는 사진 찍는 것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보니 저를 드러내는 크리에이터로서 살고 있지만 잘 가꿔서 보여줘야만 증명되는 삶에 다소 진절머리를 느끼고 있었죠.
베를린에서 혼성 누드 사우나에 갔는데요. 제겐 꽤나 큰 도전이었습니다. 지금도 조금은 낮에 꾼 꿈처럼 느껴지는데요.
드넓은 초원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사람들.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아우프구스 마이스터가 흩뿌리는 증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들. 나체로 차가운 물을 가르며 수영하던 나.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우나를 나오면서 나지막이 내뱉었어요. 아, 천국이다. 저를 피곤하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던 시간이었죠. 핸드폰 알람도, 좋은 걸 남기고 싶어서 여기저기 찍어대던 카메라도,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짐도 없이.
나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나로 존재할 수 있어서요.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하고 스스로를 가로막는 두려움을 깨기 위한 방법으로 ‘Write in the nude(나체로 글쓰기)’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중요한 것은 벗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Writer. 송지나 (@nazzsong)
크리에이터 겸 프리랜서 콘텐츠 에디터.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브랜드가 표현하고 싶은 가치까지. 글, 사진, 영상의 시청각적인 연출을 통해 콘텐츠로 풀어내고 있다. 현재는 패션과 여행,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콘텐츠를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다양한 기업들과 브랜드들과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함수를 배우기도 전에 수학과 과학 공부를 포기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나 가설, 과학에 대해 흥미가 많다. 다시 태어나면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