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X 이혜민 |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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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0km가 900km가 될 때까지
지도에 없는 길을 발견하길 좋아하는 소심한 모험가, 에디터 혜민

에디터이자 기획자인 혜민은 퇴사 후 결혼식 행진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왔다. 콘텐츠 스튜디오 900KM를 창업해 지금까지 총 4권의 책을 냈고,‘요즘 것들의 사생활(요즘사)’ 유튜브에 다양한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요즘사에는 한 발짝 정도 앞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요즘 것들’의 레퍼런스가 모여있다. 영광스럽게도 작년 말에 나도 ‘밀레니얼 뉴 노멀 라이프' 시리즈로 요즘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나는 역으로 이런 콘텐츠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는 혜민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나를 인터뷰한 사람을 인터뷰한 것이 처음이었다. 벚꽃이 피며 봄의 ‘시작’을 알리던 4월의 첫 날. 혜민이 여러 가지를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물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 자체로 누구든지 서로가 서로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는 증거 같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백구부부의 산티아고 순례길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로 떠나다

융: 백구 부부가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로 떠났던 이유를 사이더들이 가장 궁금해할 것 같아요. 어떻게 가게 된 거예요?

*남편 현우의 애칭이 ‘백구’이고 혜민이 '구백킬로미터'를 운영하면서 백구와 구백을 합쳐 ‘백구 부부’로 불린다. 


혜민: 둘 다 취준생일 때 어렵게 준비해서 좋아하는 일로 회사에 들어갔지만, ‘프로 야근러’로 일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여름 휴가를 같이 가기로 했다가, 일 때문에 가을로 미뤘는데 또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비행기표를 취소하게 된 거예요. 그때 펑펑 울었어요. 그 시기 즈음에 결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요, ‘결혼’ 이야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아빠도 아는 분이 예식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예단, 예물과 같은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나오고, 돈도 많이 들고... ‘이게 다 뭐지?’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현우가 던진 “산티아고 순례길 같이 걸을까?”라는 한마디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어요. 드넓은 들판에 둘이 손잡고 걸어가는 게 상상되면서 결혼 대신에 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혼이 가진 상징성과도 잘 들어맞는 것 같았고요. 그 길의 거리가 900km 정도 된다고 해서 여행의 제목도 “이건 900km 웨딩마치다"라고 정했어요.




융: 역시 기획자인데요.


혜민: 결혼은 둘이 주인공이고 같이 걸어가는 상상을 했는데, 일반적인 결혼은 제가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같이 걷는 건 우리 둘이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완전히 판을 깰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바로 갈 수가 없어서 얘기가 나오고 2년 후에 둘다 각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 됐어요.


융: 가족들이 반대하진 않았어요?


혜민: 우려가 많았죠. 작전을 짜서 각자 부모님들에게 조금씩 이야기했어요. 독특하게 결혼하는 분들 링크 보내면서 요즘에는 이런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요.


융: 퇴사하고 가는 것도 그렇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얼마나 다녀왔어요?


혜민: 3개월을 다녀왔어요. 42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머지는 스페인 주변을 여행했어요. 걸어가는 게 결혼식이고, 끝난 이후엔 신혼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리의 하객이고요. 나비넥타이와 면사포를 챙겨 들고, 곳곳마다 사진을 찍었어요. 즐거울 줄 알았는데, 우리가 걸었던 날의 절반 이상이 비가 왔어요. 매일 진흙밭을 걸어야 했죠. 



저는 진짜 체력이 약하거든요. 한국에서 여름휴가도 제주 올레길로 떠나서 전지훈련도 하고, 잘 준비하고 갔는데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제가 생각한 ‘평지’가 아니더라고요. 매일 관악산 하나쯤은 건너야 해요. 


중간까지는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었어요. 나중에는 걷는 요령도 파악하고, 이 생활에도 익숙해졌지만요. 첫날이 제일 힘들었어요. 가파르고 악명 높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데, 3월 중순에 눈이 쌓여 있어서 우회길로 갔어요. 거기서 10시간을 헤맸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신나서 한발 걷고 사진 찍고 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먹을 것도 다 떨어지고… 우리의 목적지였던 수도원 표지판 보자마자 엄청 울었어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죠.


융: 0km에서 숫자가 점점 올라갈 때는 어땠어요? 혜민이 지금 만들어나가는 ‘길’과도 겹쳐 보여요.


혜민: 몸소 겪은 일이라 몸에 체득된 게 있어요. 아무리 같이 걸어주는 사람이 있고, 누가 내 짐을 덜어주고 도와줘도 결국엔 내 걸음은 내가 걸어야 해요. 내가 걷지 않으면 목적지에 갈 수가 없어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20~30km씩 매일 걸어야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0km가 어떻게 900km가 되지? 우리가 겨우 20km를 걸었다고?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냐는 질문을 받아요. 걸으면서는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웃음) 그냥 하루하루 사느라 바빠요. 오늘은 어디 마을까지 몇 시쯤 도착할 거고, 어디서 밥을 먹고, 숙소를 잡아서 자야 한다. 빨래는 여기서 못했으니 거기서 해야 한다. 내일은 이런 옷을 입어야 한다. 이것만 생각하기에도 바빠요. 기본으로 돌아가서 하루하루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게 돼요. 먹고, 자고, 입을 것. 삶이 단순해지니까 잡념이 사라지더라고요. 머리가 정화됐어요. 


하루하루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방향을 잘 설정해서 가니까 막막했지만 900km에 다다랐잖아요. 그 경험을 제 몸과 마음이 기억해요. 이 일을 하고 난 후의 저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겉으로 볼 때는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진짜 많이 달라졌어요. 



융: 산티아고에서의 경험이 여러 일을 시작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혜민: 진짜 그래요. 막막할 때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있어요. 그럼 언젠가 원하는 곳에 닿을 거란 믿음도 생겼고요.


이전의 저는 제 자신에게 믿음이 부족했어요. 회사에서도 주눅 들고, 여기서 포기하면 실패라고 잘못 생각했어요. 자존감도 낮았고요. 회사를 나가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나오는 순간 ‘이게 다가 아니구나’를 느꼈어요. 길을 걸으면서 ‘내 힘으로 이만큼이나 갈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채워졌어요.


융: 어떤 일이든 ‘처음’은 ‘산티아고에서의 첫날’처럼 신나기도 하지만 힘들 때가 많잖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요령이 생겼다는 말도 인상적이에요.


혜민: 무엇이든 ‘처음’ 해보면 아이가 걸음을 걷듯이 실수도 하고 그러잖아요. 시행착오를 겪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처음의 순간’도 하면 할수록 숙련돼요. 

900KM에서 - 기획, 에디팅을 담당하는 혜민 & 영상, 디자인을 담당하는 현우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내가 만든 나의 일, 900km의 시작

융: 숙련된다는 표현이 너무 좋아요. 산티아고를 가기 전부터 책 만들 생각이 있었어요?


혜민: 아니요. 자연스레 모인 기록으로 만들었어요. 그곳에서는 글을 쓰게 돼요. 안 쓸 수가 없어요. 제가 써둔 글이 있었고, 현우가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에는 전시를 하고 싶었거든요. 결혼식을 안 올리고 간 거니까, 다녀와서 길을 펼쳐두고 전시하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할 생각을 했어요. 막상 다녀오고 나니까 전시로 갈무리 하기에는 아쉬웠어요.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데, 제가 당장 만들 수 있는 게 책이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 행진>은 처음에는 ISBN(국제 표준 도서 번호)도 없는 독립출판물로 만들었어요. 한 달만에 책이 다 팔리니까 주변에서 출판사를 차리라고 권유했어요. 그렇게 900KM(구백킬로미터)가 시작된 거예요. 



융: 책도 백구 부부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거잖아요. 종이 넘기면서 감탄했거든요. 퀄리티가 너무 좋아요.


혜민: 그때 책을 직접 만든 게 처음이었어요. 책으로 글 쓰는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전에 에디터로서 회사에서 편집 안을 짜고, 기획하고, 취재하는 글쓰기는 많이 했죠. 그런데 출판까지 해보는 과정은 처음이었어요.


텀블벅에 올린 이후에 압박감이 들어서 울었어요.(웃음)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에디터로서의 글이 아니라 저의 삶이 담긴 에세이를 누가 본다고 생각하니까 잘 못 쓰겠는 거예요. 그런데 교정을 봐주는 언니가 글을 다 읽고 감동받았다고 장문으로 메일을 써줬어요. 그때도 엉엉 울고, 자신감을 다시 회복하고 책을 만들었어요.


에디터로서의 일 - 다양한 매거진 작업에 참여하고, 기업과 협업하기도 했다 


융: 에디터는 항상 꿈꿔왔던 일이었어요?


혜민: 어렸을 때부터 계속 글을 썼어요. 대학도 ‘시'를 써서 문창과에 들어갔고요. 실기 비중이 높았거든요. 근데 사실 저는 문학 보다는 광고처럼 상업적 글쓰기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광고 동아리도 만들어서 운영하다가 ‘에디터’를 알게 됐는데 저랑 잘 맞을 것 같았어요. 문학은 독자로서 남고 싶었고, 에디터로서 좋아하는 콘텐츠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융: 실제로 에디터가 됐을 때 기뻤겠네요.


혜민: 일이 많고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아니지만 너무 재밌었어요. 900KM를 창업하기 전까지 6년 정도 회사를 다녔는데 계속 기획하고 쓰는 에디터 역할을 했어요. 디자인 회사의 기획 편집자로 일할 때는 여러 역할을 해야 했어요. 콘텐츠 기획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는 PM 역할을 맡으면서 예산 짜고, 견적 받고, 운영하고, 클라이언트들에게 PT를 하고, 세금계산서를 끊고. 그때 했던 일들이 지금 일에도 많이 도움이 돼요.


융: 정말 공감하는 게 회사에서 서류 작업만 할 때는 이 일을 통해서 내가 얻는 것이 뭘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나와보니까 그런 프로세스를 알게 된 것 자체가 제가 배운 거더라고요.


혜민: 맞아요. 계약서를 보는 방법도 회사 다닐 때 배웠어요. 프로세스를 알고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어요.


융: 혜민에게 제일 궁금했던 게 있어요. 원래부터 대안적인 삶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혜민: 저도 제가 왜 이런 길을 가게 됐나 생각을 해봤어요.(웃음) 저는 제가 성실하게 세상이 시키는 대로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마음에는 어떤 반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겉으로 막 표현하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이건 왜 이래야 하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 친구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너는 원래 마이웨이였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옳다고 믿는 것을 해야 하는 성향은 있었던 것 같아요.


융: 광고 동아리가 없다고 만드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혜민: 하하. 생각하면 해야 해요.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로 수긍하지 않고 고집이 있는 편이고요. 


융: 그런 태도에서 좋은 질문이 나오나 봐요. 요즘사의 인터뷰들은 질문이 주옥같아요.

요즘 것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요즘사의 시작

융: 그럼 산티아고에 다녀와서 900KM를 창업해 책을 내고, 요즘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혜민: 결혼식 대신에 산티아고를 다녀왔잖아요. 세상에 돌을 던지면서 판을 깨고 결혼했는데 돌아오니까 기성의 결혼 문화가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거예요. 우리 가족들이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고 잘 대해 주시는 데 이전의 제 생활과는 그래도 너무 다른 거예요. 듣는 말도 달라지고.  제가 혼자 살 때는 부모님 뵈러 1년에 두 번 정도 내려갔는데, 갑자기 한 달에 한 번 내려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는 조신한 며느리가 되어야 할 것만 같고, 제가 사는 세계가 급격히 변했어요. 거의 21세기에서 조선 시대로 간 것처럼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제가 느끼는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을 들여다보고, 그 질문에 관한 답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요즘사’ 예요.



융: ‘요즘 것들’이란 단어에서 혜민이 아까 말한 반감이 떠오르네요.


혜민: 기성세대가 “요즘 것들은 이래서 안 돼"라고 하는 말의 반어법처럼 만들었어요. “그래도 요즘 것들은 이런 생각을 해"라는 말이 하고 싶었어요. 첫 프로젝트로 당시의 제가 느끼고 있던 게 ‘결혼 문화’니까 ‘우리처럼 되바라진 생각을 하는 부부’를 인터뷰해보기로 한 거예요.


처음 요즘사를 시작할 때 ‘결혼’ 얘기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큰 그림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이 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남들만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교육을 받잖아요. 정답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는데, 그 사례를 저도 직접 보면서 확신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융: 글쓰기, 출판, 유튜브, 인터뷰, 강연... 그야말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다능인’ 같아요. 자기소개는 보통 어떻게 해요?


혜민: 간단히 소개할 때는 콘텐츠 스튜디오 900km를 운영하고 있고, ‘요즘 것들의 사생활’ 유튜브를 하고 있는 기획자이자 에디터 혜민이라고 해요.


융: 책에서 보니까 “그래서 본업이 뭐냐"라는 질문을 받았었다면서요. 자주 받는 질문이에요?


혜민: 은근히 있었어요. 그 질문 때문에 요즘사의 ‘먹고사니즘' 시리즈를 기획했어요. 지금은 그래도 콘텐츠를 쌓아가다 보니 예전보다는 봐주시는 분들도 많고, 책도 4권을 만들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자기 소개할 때 이런 방향으로 일하고 싶다고 구구절절 얘기했어요. 처음에는 게스트 에디터로 외주 일도 많이 했고요.


최근 출간된 <요즘 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


융: 먹고사니즘 시리즈 정말 좋아해요. 요즘사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혜민: 다 다르다는 게 공통점이에요. 정의 내릴 수 없음이 공통점이에요. 키워드는 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 N 잡러, 디지털 노마드. 그런데 그게 한 가지로 귀결되지는 않아요. 한 명의 사람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지금 그 일을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요즘 것들은 이렇다"라고 함부로 정의 내릴 수가 없어요.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생각만 하기보다는 한보에서 반보 정도 먼저 시도해본 사람들이에요. 두가 다른 가치를 갖고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기 주체적으로, 일도 삶도 살아내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죠. 그게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기준이에요. 너무 유명하거나 잘난 사람이 아니라, 나랑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우리 또래인데 이 사람은 이런 선택을 했네? 생각이 들면, 조금 더 쉽게 나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잖아요. 그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수많은 ‘처음의 순간' 앞에서
두려움을 극복한 방법

융: 최근에 처음 시작한 게 있어요?


혜민: 요즘 채널에서 '피카터뷰'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에요. 지금까지는 기획을 먼저 하고,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섭외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피카터뷰는 신청을 받아서 하거든요. 구독자들과 만나서 편안한 상태로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저는 정해져 있지 않으면 좀 불안해하는 성향이라 이런 즉흥성이 저에게는 도전인데요. 직접 얘기를 나누면서 그때 그때 주제를 뽑는 재미도 있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로 발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어서 재밌어요.


융: 안 해봤던 일도 잘 시작하는 편인 것 같아요. 


혜민: 저는 거의 걱정 인형 수준으로 걱정이 많아요. 불안함도 많고요. 그렇다고 안 하지 않아요. 만약 어떤 일을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요.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더 변했어요. 해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결혼식에서 주례사 클리셰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함께하시겠습니까?”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비도 맞고, 심지어 봄인데 눈도 맞고, 바람에, 진흙밭에... 산전수전을 같이 겪은 거예요. 그랬는데도 어쨌든 900km를 걸었잖아요. 이 경험이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돼요. 책을 낸 이후에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재밌는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융: 지금까지 콘텐츠를 보면 요즘사의 색깔도 생기고, 던지려고 했던 메시지가 와 닿거든요. 저는 일과 삶의 대안적인 레퍼런스가 필요할 때 요즘사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처음 시작할 때는 구독자가 0명이었죠?


혜민: 네. 이것도 산티아고 걸을 때와 똑같아요. 0에서 1,000명 되는 게 제일 어렵고 오래 걸렸어요. 저희 유튜브 2017년 여름에 개설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1,000명이 되는 데 거의 2년이 걸렸어요. 


융: 와… 대단해요. 처음에 반응이 없는데도 계속하게 된 원동력이 있어요?


혜민: 저는 뭔가를 뛰어나게 잘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글을 엄청 잘 쓰지도 않고요. 한 가지 잘하는 게 있다면 꾸준함이에요. 포기하지 않는 거요. 그리고 저는 되게 느린 편이에요. 요즘 같은 세상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1년씩 하고 그러잖아요. ‘먹고사니즘’ 처음 시작한 게 1년 반 전이거든요. 느려도 꿋꿋하게 제 방식대로 해요. 느려도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요. 


융: 얘기 들으면서 계속 산티아고가 떠올라요.


혜민: 네 하하. 이상하게 기승전-산티아고로 가는데요, 가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다녀와서는 제가 저에게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융: 그때를 알을 깨고 나온 시기로 볼 수 있을까요?


혜민: 네. 그 전에는 왜 그렇게 버텼는지 모르겠는데요, 꾸준히 하고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 회사에서 발현된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회사를 나와서도 지금은 ‘자발적 야근러’처럼 일하고 있어요(웃음). 저는 완벽주의에 워커홀릭 성향이 있어서 홀릭까지는 안 되게 ‘블랜딩'을 잘해보자고 하고 있어요. 애초에 일상에서 출발한 콘텐츠라 분리가 안 되더라고요. 생활 속에서 떠올리는 것들이 일이 되고, 일로서 풀어진 것이 일상으로 들어오고요. 처음에는 너무 일만 하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같이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괜찮아요. 


다만 오래 하려면 체력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을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융: 직접 내가 나에게 만들어준 일을 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이 있어요?


혜민: 세상이 나에게 쥐어주는 안정감을 포기해야 했어요. 이를테면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오늘은 열심히 일을 못했어도, 저는 그 회사 소속이고 기획자이잖아요.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간편함을 놓아야했어요.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아닐 때는 구구절절 나를 소개해야 했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어요.


제가 벌인 일을 하는 과정에서 괴로운 것도 많아요. 일주일 내내 편집해서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시큰둥하고, 댓글이 없으면 좀 시무룩해지거든요.


융: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이유가 있어요? 언제 뿌듯함을 느껴요?


혜민: 저는 아무도 안 해본 걸 하는 것을 좋아해요. 


요즘사도 이런 얘기를 하는 콘텐츠는 많지만, 영상에 책까지 만드는 사람은 아직 못 봤어요. 비효율적이니까 안 했겠죠?(웃음) 그런데 저는 하고 싶으니까 해요. 사람들이 잘 도전하지 않는 것에 ‘처음’이 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에요. 그게 누군가의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결혼 행진 책을 내고 나서, 마켓에도 나가고, 뉴스에도 나가고,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우리 책을 보고 비슷한 꿈을 꾸게 된 커플부터, 이 책을 부모님에게 보여주고 결혼 승낙을 받은 커플까지. 


그때 소름이 끼쳤어요. 처음 시작을 만든다는 게 어떻게 보면 영향력을 끼치는 거잖아요. 작든 크든 내가 시작한 어떤 일이 물꼬를 튼 덕분에 누군가가 용기를 내고, 조금 더 쉽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너무 의미 있고 기쁜 일이에요. 


요즘사 채널에도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여기서 듣는다. 나도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런 댓글이 달릴 때 벅차요. 저도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어요. 인터뷰어로서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인터뷰이가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도, 사람들의 반응도 결국 나에게 해주는 얘기이기도 해요. 그게 원동력이 돼요.


융: 저도 저를 인터뷰했던 사람을 인터뷰하는 게 처음인데, 사이더들이 보기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더 좋아요. 


혜민: 롤모델보다 레퍼런스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우리 모토랑도 연결이 되고. 




융: 마지막으로 사이더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혜민: 사이드에 레퍼런스가 많잖아요. 요즘사에도 있고요. ‘이 사람은 이런 게 있어서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이렇게 했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이걸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남 일로만 보지 말고요. 결과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이걸 인터뷰로 푸는 이유가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볼 수 있다는 거거든요. 대부분의 처음은 초라하고, 다 똑같이 0에서 시작해요. 그 0을 볼 수 있다는 게 인터뷰 콘텐츠의 장점이에요. 


0km가 900km가 되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나는 내 0km를 어떻게 900km로 만들 수 있을지 상상해보세요. 900km는 절대 한 번에 되지 않아요. 이게 중요해요. 저도 울고불고하면서 걸었잖아요.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 있는데 그렇다고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방향이 맞으면 속도가 어떻든 관계없이 언젠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거예요. 

Drawing for SIDERS


혜민과 서울숲에서 수다 떨듯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이 아직 생생하다. 내가 만든 일에 파묻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혜민과 대화를 나누며 그럼에도 모든 창작과 동반되는 괴로운 과정을 기꺼이 감수할 만한 이유를 찾았다. 인터뷰이가 하는 말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이자 나에게도 전하는 이야기란 말. 방향 설정만 잘 되어 있으면 느려도 원하는 지점에 도달한다는 말. 인터뷰는 누군가의 0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말. 혜민의 언어로 내가 하는 일을 다시 정의하며 SIDE라는 구실을 내가 내게 만들어준 것이 고맙고 뿌듯했다.


“어떻게 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좀 더 주체적으로 쓸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다. 여행을 가면 시장과 책방, 화방에 들르길 좋아하고, 정해진 길보다 지도에 없는 길을 발견하길 좋아하는 소심한 모험가.” - 혜민


혜민의 첫 책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 행진>에 적힌 소개글이다. 5년 전에 적힌 문장들만 보고도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지금은 그와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우리는 ‘지도에 없는 길’에 관심이 많아서 서로를 끌어당긴 걸까. 


혜민의 이야기가 ‘지도에 없는 길'을 걷고 싶은 누군가에게 첫 발걸음을 떼는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지치는 순간이 오면 혜민의 이야기를 떠올려야겠다. 900km는 절대 한 번에 오지는 않는다. 비 내리는 진흙밭을 지나가면 꽃길도 나오고, 발걸음을 옮기는 한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한다.


혜민 인스타그램


요즘사 인스타그램


요즘사 유튜브


책 <요즘 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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