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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고 몰입하면 어떻게든 세상이 도와준다고 믿어요.

내가 나를 위해 꺼내놓는 시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탐험' 카테고리의 첫 주자로 꼭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한바탕 수다를 떨며 깔깔대다가도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멋진 말을 던져서 불시에 영감을 주는 사람. 우리의 대화는 다양한 장르와 세계를 오간다. 


국제학부를 전공하다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되었고, 돌연 요트를 타고 5개월간 태평양 항해를 하고 돌아왔다. ‘내 배를 갖고 싶다'는 꿈을 꾸더니 항해하며 배를 사는 과정을 그린 다큐 영화를 직접 기획, 편집했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썼다. 최근에는 자신과 꼭 닮은 집에 독립해 꼭 닮은 강아지 수리를 입양했다. 21세기 집시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사진 - 항해 - 책 - 유튜브 - 강연 - 그림 - 음악 - 패션 - 프리랜서에서 직장인 - 집(비치하우스) - 반려견.


‘임수민’ 하면 단숨에 생각나는 키워드만 해도 여러 가지다. 이만큼 용기를 내서 하나의 세계를 이렇게 깊이 탐험해볼 수도 있구나.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늘 좋은 자극을 받는다.




SIDE X 임수민 | EXPLORE
SIDE X 임수민 | EXPLORE

나를 믿고 몰입하면 어떻게든 
세상이 도와준다고 믿어요

융: 실은 인터뷰 하기 전에 ‘꿈’과 ‘탐험’ 카테고리 중 고민했어요. 둘 다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수민은 구체적으로 꿈을 꾸는 편이잖아요. 우리가 나눈 대화만 해도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다”고 했는데 현실이 됐고. “앞으로 읽으면 에세이, 뒤집어서 읽으면 사진집”인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는데 역시 현실이 됐어요. 

 

수민: 바로 앞에 이룰 수 있는 꿈만 꾸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배를 사는 건 사실 당장 하긴 힘든 일이었거든요. 원하는 게 있으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생각하기 전에 당장 해보는 편이에요. 생각보다 배를 사는 게 오래 걸렸는데요. 그냥 될 때까지 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건 물불 안 가리는 편이고, 흠뻑 빠져들어요. 그 생각밖에 안 하고, 얘기를 계속해요. 수리 데려올 때도 그랬어요. 데려오기 전부터 이걸 좋아할까. 이런 걸 사면 될까. 동료가 벌써 견주 됐다고 하더라고요.

 

융: 저한테도 그때 강아지 얘기밖에 안 했어요.(웃음) 뭔가에 흠뻑 빠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내가 마음을 주는 만큼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수민은 그걸 알아도 더 하는 느낌이에요.

 

수민: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게 안 될까 봐 두려워서 더 열심히 해요. 제가 상처받는 건 생각도 안 해요. 못하게 됐을 때가 너무 괴로워요. 나를 믿고, 내가 원하는 것에 몰두하면 어떻게든 세상이 도와준다고 믿어요. 조금만 생각 안 해도 안 이루어질까 봐 두려워서 더 부지런해져요.


 

자기만의 힘으로 배를 사는 꿈을 이룬 CHAE & SOO 커플




“수민. 너는 완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야!”

융: 국제학부를 전공하다가 사진에 빠진 계기도 비슷한가요?


수민: 처음 사진에 빠질 때는 그게 아니었어요. 대학교 때 교환학생을 가게 됐는데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냥 놀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때 제가 생각한 “쓸모없는 수업"이 암실 수업이었거든요. 필름을 현상하는 수업이었는데 제 첫 필름 롤이 완전 하얗게 나왔어요. 제가 케미컬을 잘못 섞은 거예요. 그때 친구들이 다 위로했거든요. “항상 일어나는 일이야. 괜찮아.” 근데 저는 그 실패가 너무 좋았어요. 처음으로 제 존재감이 느껴졌거든요. 


버튼만 누르면 무엇이든 되는 세상이잖아요. 제가 별로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없다가 이 과정은 제가 없으면 제 사진이 태어나질 않는 거예요. 그게 좋아서 깊게 빠져들었어요. 그래서 현상을 매일 나갔어요. 본 캠퍼스에 있는 친구들은 관심도 없는데 저는 매일 아침 9시에 갔다가 저녁 9시에 마지막 셔틀 타고 돌아왔어요. 너무 재밌었거든요. 같은 현상 작업을 하러 오는 또 다른 너드 친구들도 너무 좋았고요. 


융: 말 그대로 탐험이네요.


수민: 새로운 세계였어요. 모이는 친구들이 사진작가는 아닌데. 화학 전공, 정치 전공, 국제학부 전공 학생들이 모여서 사진에 대해서 프로처럼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행복했어요. 


융: 그러면 그때부터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거예요? 아니면 그냥 사진가?


수민: 둘 다 아니에요. 그냥 암실 작업이 좋은데, 현상하려면 사진을 찍어야 하잖아요. 사람들은 자기 룸메이트나 오브제를 찍는데 저는 필름 롤이 아까워서 카메라를 들고 무턱대고 애틀랜타 시내로 나갔어요. 흑인 타운이라 동양인이 가면 위험하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막상 나가니 다들 사람이더라고요. 재밌었어요. 노숙자들과도 친해지고. 사진을 찍어 현상하고 인화해서 발표하는데 선생님이 그랬어요. 


“Soo! You are a total Street Photographer.” (수민. 너는 완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네!)


융: 그분이 수민을 정의내려준거네요!


수민: 저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그분이 저를 있는 그대로 봐준 것 같아요. 마지막 수업 시간에 이런 얘기를 했어요. 


“쑤. 한국 잘 돌아가고 2.8mm 렌즈를 사봐.”


이게 광각렌즈거든요. 멀리까지 다가갈 시간이 안 되는데 여기 있어도 저기 있는 걸 찍을 수 있어요. 그걸 힌트처럼 알려준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와 휴학하고 인턴을 했는데 적응을 못했어요. 그만두니까 휴학해서 5개월이 있잖아요. 다시 사진을 찍어볼까. 2.8mm를 왜 사라고 했을까. 스스로 질문하다가 샀는데 바로 알겠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다 담을 수 있고. 조금만 움직여도 되고. 그래서 날뛰었어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어요. 



나만의 시선(펑크텀)을 찾아 나를 위해 기록하기
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 되기

융: 그런 게 있나 봐요. 결국엔 ‘시선'인 것 같거든요. 저에게 비비안 마이어 다큐 추천해줬잖아요. 그것도 보면 비비안 마이어도 배운 적 없잖아요. 유모였고. 근데 제가 사진을 잘 몰라도 시선이 특별하다는 건 알겠더라고요.


수민: 정말 좋아하는 다큐예요. 비비안 마이어와 저는 비슷한 의미로 사진을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현상도 안 된 상태로 몇만 롤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그럴 수 있거든요.


융: 오.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뭐예요?


수민: 그냥 기록하는 행위가 좋은 거예요. 그걸 안 봐도 되는 거예요.


융: 와… 너무 좋아요 이말. 기록하는 행위가 좋다! 요즘 기록이 너무 많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어떻게 쓰일까'를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거든요. 


수민: 그럼 그걸 위한 기록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열어두고 나를 위해 기록하다 보면 그게 남을 위한 것도 되고. 어떻게든 기억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어요. 


융: 공감하는 게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들 몇 명 만나서 글쓰기를 주제로 얘기를 나눴어요. 글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공통적인 얘기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찾으세요.” 였어요. 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찾으면 그게 곧 글이 된다는 의미로요.


수민: 결국엔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누군지 알아야되고 내가 나한테 가장 좋은 사람이면 돼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세상에는 너무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푸는 방법이 있어요. 


융: 제게 소개해준 책도 생각나요. 롤랑 바트르의 <카메라 루시다>


수민: <카메라 루시다>에 나오는 펑크텀(Punctum)은 제 인생 단어예요. 펑크텀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디테일한 시선"이에요. 흑백 사진의 매력을 저에게 일깨워준 단어죠. 


5살 때 프랑스에서 살았는데 아랍 할머니가 고추를 까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막 쿡쿡쿡 시리는 거예요. 어떻게 할 줄 몰랐어요. 그 마음이… 슬픈 것도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엄마 손을 잡고 있어서 안정감을 느껴서 여유는 있는데 그리운 거예요. 할머니가 생각났던 건데 그때는 뭐가 그리운지 몰랐어요. 펑크텀을 알게 됐을 때 이 감정이 떠올랐어요. 그때 느낀 게 펑크텀이구나. 학생 때 제 펑크텀을 찾기 위해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Self Portrait
Self Portrait
내가 누군지 아는 좋은 방법은 혼자만의 시간

융: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수민: 나를 찾는 길에 진짜 중요한 게 혼자만의 시간이에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혼자 밥도 잘 못 먹었어요.


미국으로 혼자 교환학생 갔을 때 캐리어 끌고 처음으로 숙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방문 잠그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는데 “이제 뭐 하면 되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할 사람이 없으니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 자신을 보며 ‘나 진짜 혼자 있는 법을 모르는구나' 깨달았어요. 암실에서는 혼자 작업하게 되잖아요. 거기서 제가 누군지 깨달았던 것 같아요. 


혼자 있을 때 어색한 사람은 그게 시작인 거예요. 그렇게 깨닫는 것 같아요.


융: 너무 공감 가요. 혼자 있는 시간은 어디론가 꼭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산책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수민: 맞아요. 사실 혼자 대뜸 문 열고 산책하러 나가는 게 계획하고 여행 가는 것보다 용감한 일이에요. 저도 수리 아니었으면 이렇게 산책 자주 안 했을 것 같은데 요즘 느껴요. '내가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 안했지?’


융: 수리가 또 어떤 세상을 넓혀줬나 보네요.


수민: 엄청요. 쉽게 해준 것도, 어렵게 해준 것도 많아요. 혼자 문을 열고 아무런 목적 없이 나가는 계기를 스스로 만드는 게 멋있는 일이에요. 특히 같이 사는 사람 있으면 물어보잖아요. 어디가? 그냥. 이게 쉬운 일은 아니죠. 사람이 게으름이랑 싸우는 게 용기가 필요해요.



부지런히 직접 부딪히며 현실로 이루다

융: 수민은 돌연 항해를 떠났죠.


수민: 혼자 있고 싶어서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지쳐서 힘들어서 떠났는데 가서는 내가 힘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꼈죠. 


융: 말만 들으면 멋있잖아요. 요트 타고 5개월 동안 태평양을 항해했다. 저는 수민 작가의 전시도 가고, 책도 읽었지만 ‘모험이 실패했다’고 한 거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잘 갔다가 돌아온 게 성공일 수도 있는데 실패라고 표현한 이유가 뭐예요?


수민: 제가 만든 목적, 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거든요. 멋있는 항해가 하고 싶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멋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즐기지 못했어요. 자연도 짜증나고, 엄마도 보고싶었어요. 더 강해져서 돌아오고 싶었는데 더 힘들어서 돌아왔어요. 이 모든게 멋있지가 않아서 실패했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항해는 제 남자친구인 CHAE와 일본 다녀왔을 때였다고 생각해요. 저 혼자 항해했을 때도 진짜 항해였고요. 너무 재밌었어요.


융: 그건 정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바다에 아무도 안 보이고 나 혼자만 있으면.


수민: 진짜 무섭죠. 소리 질러도 몰라요. 제가 떠내려가면 그냥…


융: 기분이 어때요?


수민: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에요. 약간 바다 한복판에서 수영하는 느낌.


융: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라는 게 갑자기 와닿아요. 감정의 스펙트럼이 ‘와 이렇게까지도. 이런 감정도 들 수 있구나' 느끼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슬픔이든 기쁨이든. 근데 이 경우엔 복합적일 것 같아요. 두려움. 용기. 성취감. 


수민: 혼자 항해를 떠났을 때 처음 1시간은 정신이 없어요. 해야 할 게 많아서. 그 이후 1시간은 재밌어요. 근데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왔고 앞으로 길이 남아있을 때 바람이 너무 세게 불거나 안 불 때. 그때 좀 무섭죠. 


융: 와. 어떤 일을 시작하고 중간 지점에 있을 때 오히려 두려운 상황 같기도 하네요. 패닉 올 것 같아요.


수민: 패닉이 왔을 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무도 없잖아요. 혼자밖에 없잖아요. 그럼 하게 돼요. 실패한 항해도 했고, 성공한 항해도 했는데 다 누군가랑 함께했잖아요. 저는 뭐든지 혼자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고 제가 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CHAE와 항해할 때도 저를 워낙 많이 믿어주고 맡겨주지만, 그래도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게 다르거든요. 혼자 항해하고 너무 성장했어요. 혼자 항해를 다녀온 후 CHAE와 항해할 때도 너무 재밌어요. 예전엔 거의 의지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같이하는 느낌이 들어요.




항해에서 뻗어나간 갈래 - 책, 전시, 다큐

융: 항해의 경험이 책, 전시, 다큐 영화로도 이어졌어요. 다 직접 만든 게 인상적이에요.특히 다큐는 영상 편집도 다 직접한 걸로 알고 있어요. 1시간 분량의 나레이션을 끌고 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각본을 준비하고 직접 편집하고. 이것도 겁이 없는 것 같거든요. 



수민: 편집도, 애니메이션도 독학했죠. 필요하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내 모험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나 같은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이게 대단한 일이라서가 아니에요. 나의 노력. 절실함. 나의 마음을 통해 이루어낸 게 난파선이라도 상관없었어요.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이뤄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돈 주고 학원에 가게 되더라도 하면 되지 싶었어요. 


융: <무심한 바다가 좋아서> 책은 어떻게 연결된 거예요? 책이 나오기 전부터 저에게 한쪽으로 읽으면 에세이, 뒤집으면 사진집을 내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평소에 저희가 이런 대화를 좀 자주 하잖아요. 이런 거 만들고 싶다. 뭐 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루어진 게 많은 것 같아요. 저희 둘 다.


수민: 맞아요. 신기해요. 책도 일단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었는데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운이 좋았죠.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하는 것 같아요. 우리 둘 다 부지런하잖아요.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고.


융: 늘어지기 좋아하고 빽빽한 거 싫어하고 게으른 면이 있는데. 내가 생각한 걸 내가 못하는 게 더 괴로워서 부지런해지는 것 같아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과 공간 찾기

융: 회사원이 되면 자유롭고 싶고 프리랜서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근데 수민은 반대로 프리랜서로 이것저것 일하고 강연하다가 회사를 들어가고 싶어 해서 신기했어요.


수민: 사람마다 때가 있나 봐요. 저는 제가 정한 속도와 과정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우리의 사랑에 제가 불안정함을 갖고 오고 싶지 않더라고요. 워낙 불안정하게 살았으니까요. 한 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친구를 통해 ‘젠틀몬스터' 회사를 알게 됐는데 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때도 달려들었죠. 다른 일은 제가 노력하면 할수록 다가가는 데 이건 그런 게 아니라 좀 힘들었어요. 하지만 다행히 조인했죠.


융: 직장 구하면서 독립도 한 거예요?


수민: 집을 구하기 위해 직장 다닌 건 아니었는데 직장 다니고 돈이 생기니까 제가 계속 구매하는 게 ‘그릇’이더라고요. 쓸 일이 없는데 예뻐서 갖고 싶었어요. 딱히 이유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 시점에 작업실 그림을 선물 받았는데 놓을 때가 없는 거예요. 알베르 키위 작가님이 그려준 제 그림이 매개체였어요. 공간이 필요한 물건이 방에 쌓여만 가는 게 힌트였어요. 그래서 독립을 결심했죠.


융: 저도 올해 초에 독립했잖아요. 독립하니까 집도 새로운 세계고, 독립 자체도 새로운 세계고. 그래서 기대됐어요. 수민의 어떤 세계가 또 확장될까.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수민: 첫날 밤에는 울었어요. 엄마 보고 싶어서. ‘내가 뭘 한 거지' 생각하고, 이루고 나면 울적해져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여기까지 왜 이렇게 달려왔는지. 혼자 항해 마치고도 울었고, 첫 전시 끝내고도 울컥했어요. 혼자서 했다는 사실이 기특하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눈 떴는데 여기 평생 산 것 같았어요. 만족해요. 공간이 되게 저 같아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내가 누군지를 알겠어요. 저의 취향과 선택으로 가득한 집이라 좋아요. 내가 포근할 수 있고, 나를 보호해주는, 내가 누군지 알려주는 곳. 계속 나에게 리마인드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직장 다니니까 잃기 쉽잖아요. 


융: 집에 암실이 있는 것도 흔하진 않죠. 재밌는 건 그건 것 같아요. 지금까지 수민이 탐험한 세계가 집에 다 모여있어요. 바다, 사진, 책, 옷, 수리. 

나의 발전을 위해 내가 꺼내놓는 시간과 
누군가를 위해 꺼내놓는 시간

융: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데 시간을 어떻게 쓰는 편이에요?


수민: 의외로 약속을 잘 안 잡아요. 막상 만나면 재밌고 좋은데 일주일에 너무 많이 잡으면 힘들더라고요. ‘내가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못 했네'란 느낌이 들면 아까워요. 나의 발전을 위해 내가 꺼내놓는 시간이 없으면 힘들어요.


융: 저도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고. 이것도 맞는데 나와의 시간이 꼭 필요해요. 이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나랑 하는 약속이거든요. 요즘에는 뭐에 집중하고 있어요?


수민: 수리요. 수리 말고는 곧 전시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제가 찍어온 사진을 돌아보면서 직접 인화해서 하는 첫 사진전이에요. 집에서 인화할 거예요. 그리고 다음 책은 사진에 관해 쓰고 싶은데 깊게 쓰고 싶어요. 그래서 시간이 필요해요. 손에 잘 잡히는 글은 항해에 대한 글이더라고요.


융: 수리를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쓰잖아요. 어떻게 데려오게 된 거예요? 지금 수리 보면 그냥 여기 계속 살았던 애 같아요.(웃음)


수민: 혼자 있으면서 무심결에 유기견들을 찾아봤는데 그게 위험하더라고요. 눈에 밟혔어요. 너무 새로운 경험이에요. 엄마가 이해돼요. 왜 그렇게 제 고삐를 당겼는지 알겠어요. 


수리를 혼낼 일이 생겨요. 근데 소리 지르고 나면 너무 안 된 거예요. 트라우마 생길까 걱정되고. 길거리 음식을 먹어서 당기는데도 컨트롤이 안 돼서 길거리에서 울뻔한 적이 있어요. 그때 0.1초 괜히 데려왔다 생각을 하고 무서웠어요. 그렇게 생각 많이 하고 결심해놓고 스스로가 너무 싫었어요. 그때 엄마도 이런 생각을 했겠지? 싶더라고요. 누군가를 키운다는 건 책임감이 엄청난 일이에요. 정말 다른 경험이에요. 


융: 저는 과학 소설을 좋아하니까. 최근 읽은 책에서 로봇, 인간의 차이에 있어 ‘사랑’과 묶여서 나오는 게 ‘책임감’이더라고요. 이게… 효율적이지가 않잖아요 사랑은. 로봇, 인공지능은 효율적인 결과를 내게 만들어졌는데. ‘책임감을 위해 그게 깨질 때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수민: 신기하고 재밌는 얘기에요. 뭐가 진짜 중요한지 생각하면 많은 걸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수리 건강이 중요하니까 예절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도 조금 자제하게 되더라고요. 


융: 이제 이야기 막바지인데요. 얘기를 들으면서 용감하지만, 한편으로 외로움도 많이 탄다고 느꼈어요. 그래도 계속하는 원동력이 있어요?


수민: 결국엔 나누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수리 이야기도 계속 느끼는 걸 나누잖아요. 나로 인해서 누가 데려오면 좋은 일이고. 수리가 귀여운 것도 좋은 일이죠. 


융: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사이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수민: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너무 행복한 일이에요. 반대는 많이 들어봤거든요.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그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대답해요. 반면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면,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걸 당장 하면 돼요! 진짜 하고 싶으면 행동이 먼저 나갈 거예요. 고민하는 자체가 아직은 하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어요. 관심이 가는 단계인 거죠.


제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도 하고, 항해도 하고, 지금은 다시 평범해졌잖아요. 제가 느끼기에 지금의 전 안정적이거든요. 전 이것도 즐기고 있어요. 또 다른 굴레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다릴 줄 알게 됐어요. 다른 분들도 자기가 다음 시점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궁리하느라 바쁘기보단 하루하루 즐기다 보면 그게 매일이 되고, 인생이 된다고 생각해요. 내 속도를 지키며 현재에 집중해보세요!


융: 마지막 질문이에요. 보통은 첫 질문으로 던지는데 지금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요?


수민: 지금은. 그래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에요. 그게 제일 좋아요.




인터뷰는 수민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수민의 손으로 칠하고 가득 메운 그를 닮은 공간 안에서 수민이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고, 수리를 쓰다듬고 재우며 우리의 대화가 흘러갔다. 이야기를 읽으며 느낄 수 있겠지만 임수민이란 사람 안에는 수많은 세계가 내재되어 있다. 이 세계는 또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될까. 앞으로 또 얼마나 재밌고, 멋지고, 신기한 세계를 탐험해나갈까. 


문득 그의 시선을 그의 사진과 글, 그림, 영상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임수민 <무심한 바다가 좋아서>


임수민 유튜브


임수민 인스타그램


수리 인스타그램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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