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회사를 나온 뒤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홀린듯이 집어든 책이 있었다.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브런치에서 여러 글을 재미있게 봤던 서메리 작가의 책이었다. 일반 사무직으로 회사를 다니다가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프리랜서로 서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프리랜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를 주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 가득한 책이다.
몇 달 전, 서메리 작가와 "내일을 디자인하다, 내 일을 디자인하다"라는 주제로 공동 강연을 했다.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로 지금 있는 자리에 오기까지 서로의 과정이 달라서 더 재밌었다. 아마 이 자리에 있던 분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레퍼런스가 생기지 않았을까.
회사로부터 독립을 꿈꾼 마음은 비슷했으나, 나는 지금까지 해온 일의 연장선 상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반면 서메리 작가는 일반 사무직에서 번역가로 완전한 커리어 전환을 이뤘다. 6개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누군가 일을 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 분야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강연하는 내내 메리 작가는 자신이 소심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와 걸어온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단단함을 느꼈다.
융: 사이더들에게 메리님의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는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는데,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메리: 안녕하세요. 서메리입니다. 저는 책을 쓰기도 하고, 번역도 하고, 소개도 하고, 책에 들어가는 그림도 그려요. 기본적으로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융: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일".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유튜브도 책 소개로 많이 하시잖아요.
메리: 네, 북튜브로 운영 중이고 지금은 바빠서 못하고 있지만, 독립출판도 했었거든요. 당시에 생각했던 건 아닌데 지나고 보니까 직업을 많이 가지는 것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책”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귀결되더라고요.
융: 6잡러로 알고 있어요. 뭐가 있었죠?
메리: 작가, 번역가, 출판사 대표, 유튜버, 강사, 일러스트레이터요.
융: 혹시 이 중에서 메인으로 생각하는 정체성도 있으세요? 있다면 메인으로 꼽는 이유가 궁금해요.
메리: 평소에 소개할 때는 그냥 “작가 겸 번역가”라고 소개하고, 하나를 딱 꼽아달라고 할 때는 “번역가"라고 소개해요. 퇴사하고 프리랜서계에 입문한 첫 번째 직업이니까요. 저는 번역가라는 직업을 뿌리로 삼아서 다른 것들을 확장해온 케이스예요.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융: 번역가가 되기로 하고 실제로 이뤄내는 과정을 첫 책인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에 담았잖아요. ‘체질'이라고 표현한 게 공감 갔어요. 읽으면서 느낀 건, 회사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권위적인 문화나 비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 절차를 본인과 안 맞는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만약에 회사가 좀 더 자유롭고 수평적인 곳이었으면 좀 달랐을까요?
메리: 제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라는 책까지 내다보니, “죽어도 다시는 회사에 안 갈 건가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데요,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이나 요즘 생기고 있는 업종은 저도 체험을 안 해봤어요.
다만 직원 3~4명인 회사부터 3,000명인 곳까지 다녀보면서 느낀 건, 좋은 조직이어도 조직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어요. 그게 잘 안 되면 답답해해요. 일이 잘 안되면 그냥 제가 해버려야 해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게 예의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안 될 때도 많잖아요. 뭐가 우월하고, 열등한 게 아니라 제 속도대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융: “내 속도로 간다”는 말이 좋아요. 지금 프리랜서 한 지 몇 년 되셨어요?
메리: 퇴사한 직후부터 치면 6년 차인데요. 초반에는 백수였기 때문에 지금은 4~5년 차라고 볼 수 있죠. 1년~1년 반은 백수였어요.
융: 그래도 그때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 않아요? 번역 아카데미도 다니고, 영어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알아요.
메리: 백수의 기준을 수입으로 잡았어요. 퇴사하는 순간부터 계속 뭔가 했지만, 저는 용돈 벌려고 프리랜서 한 게 아니라 진짜 생계를 유지해야 했으니까요. 집세도 나가고, 식비도 나가고.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가 있잖아요. 제가 백수 기간을 1년~1년 반으로 잡은 건, 그 기간에는 수입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공부하고, 도전한 기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 돈을 썼죠. 번 게 없었어요. 벌어봤자 일주일 내내 일하고 10만 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어요. 수입이 0원이었던 게 1년. 아주 조금 있었던 게 6개월. 그리고 그 뒤부터는 최저 생계비라도, 어쨌든 제가 저축해둔 돈에 손 안 대고 생활할 수 있었어요.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저는 스스로 프리랜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융: 진짜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메리님과 공동 강연하면서 되게 재밌었던 게, 똑같은 질문이 들어와도 답변이 정말 달랐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고 다녀라”라고 하고, 메리님은 “준비될 때까지 말하지 않는다”고 하고요.(웃음)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 방식을 택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어요. 저는 좀 즉흥적인 반면에 메리님은 도전도 잘하지만 그만큼 계획도 잘 세우시는 것 같아 부러웠고요. 뭔가 시작하기 앞서서 계획을 잘 세우고 움직이는 편이세요?
메리: 디테일한 계획까지는 안 세워요. 너무 디테일하게 세우면 시작이 어려워지더라고요.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세울 수도 없고요. 세상에 완벽이란 건 없잖아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어떻게 배우고 시도할까. 큰 틀에 대한 계획과 이게 망했을 때 어떻게 하자는 계획을 세워요. 플랜 B, 플랜 C가 세워지면 그냥 시작합니다.
융: 망했을 때의 플랜 B, C를 생각하는 게 인상적이에요. 강연 때도 말씀하셨잖아요. 이게 만약에 안 되면 이 망한 이야기를 스토리로 만들어 팔아야겠다. 메리님은 원했던 대로 일이 안 풀려도, 계속 방법을 찾아가는 분 같아요.
서메리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가면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융: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않은 적도 많지 않아요?
메리: 당연하죠.(웃음) 안된 게 더 많죠. 하하.
융: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좋았던 점이 있을까요?
메리: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프리랜서 계에는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일 잘난 사람이 아니라 무조건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요. 그런데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요즘 느껴요. 여기저기 찔러보고, 안 되는 일이 진짜 많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뭔가 하나가 자리 잡히고 나니까 그 이후에는 제가 실패했던 일들이 오히려 제 특장점이 되는 거예요. 그냥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출판사를 직접 운영해본 번역가. 유튜브를 해본 번역가. 이런 게 다른 경력이 되더라고요. 실패한 일들도 시너지로 끌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경험도 많이 쌓이고요.
융: 1인 출판사 대표는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메리: 당시에는 기회로 연결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일이 있었어요. 지나고 나니 여러 점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더라고요. 번역가가 되기로 하고, 번역 일감을 받을 수 있는 온갖 루트를 다 찾아봤어요. 그중에 하나가 1인 출판 카페예요. 제가 1인 출판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여기 있는 출판사 사장님들한테서 일을 따보려고 가입을 했어요.
그거랑 완전 별개로 저축해둔 돈이 떨어져서, 작은 회사에서 계약직 사무직으로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이제 막 창업하려는 회사라 그때 본의 아니게 사업자 등록 과정을 경험하게 된 거예요. 남의 회사를 세우면서. 사업자 등록, 법인 카드 만들기 등의 절차를 진행해봤어요.
번역 공부는 계속하고 있었고요. 그 뒤로 한참 시간이 지나서 저는 의욕은 넘치는데, 아무도 저한테 일을 안 맡겨 주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는데, 창업 도우면서 배웠던 사업자 등록 과정, 가입해두었던 카페, 번역. 이런 것들이 딱 하나로 연결되면서 ‘그럼 내가 출판사를 세워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 거죠.
융: 메리님이 강연에서도 그랬잖아요. “남들이 나를 정의하게 하지 않고, 내가 나를 정의한다"라고요. 이 점들이 연결된 과정이 딱 그 전환점 같아요. 저작권이 아예 풀려 있는 원서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메리님 강연 들으면서 알았어요.
메리: 그럴 수 있죠. 당연히.
융: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번역하고, 전자책으로 만들어 팔았다고 하셨잖아요. 많이 팔리는 건 아니어도 한 달에 짜장면값 번다고 표현하셨고요. 몰라서 그렇지, 정보가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 루트는 예전에 비해서 많은 것 같아요.
메리: 맞아요. 무료 저작권 책이란 게 존재하는 거고, 저는 그걸로 전자책과 독립출판을 선택했지만, 아마 다른 기술을 가진 다른 분은 그 소스를 가지고 제가 생각하지 못하는 또 다른 수입 루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죠. 저작권이 없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도 원래부터 알고 있지는 않았어요. 번역가 지망하면서 열심히 정보를 찾아다니고, 관련된 일을 받아서 하며 여기저기서 조금 조금씩 듣게 된 거예요. 전자책에 대해서도 듣고요.
융: 일이 되게 만들려고 진짜 열심히 찾아다니신 것 같아요. 백수라고 정의하셨던 그 1.5년의 기간이 너무 흥미로워요.
메리: 각각 길을 이렇게 연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당시에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서 저는 좀 많이 찔러보고 다니시라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남들이 가르쳐주지 않은 어떤 길이 보일 수도 있거든요. 번역 공부도 했지만 블로그에 일상툰도 그리고, 전자책 만들고, 출판사 운영하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때 시작해서 지금 일로 연결된 것도 많아요.
융: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로 발돋움 하기 위한 내공을 쌓는 기간이었네요.
메리: 그렇죠. 이제 와서 보면.
융: 백수였을 때 경찰서에서 사내 웹툰을 그리셨잖아요. 그때 일을 마무리하고 감사장을 받았는데 “일러스트레이터 서메리"라고 적혀 있어서 좋았다고요. 그런식으로 또 ‘내가 몰랐던 나’를 다른 누군가 정의해줬을 때가 있어요?
메리: 번역을 처음 시작할 때 당연히 소설이나 에세이를 번역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고, 평생 대부분의 독서를 소설이나 에세이로 해왔거든요. 전공도 문학이고요. 그런데 번역 공부를 하고, 여기 저기 나를 번역가로 써달라고 도전해보는 과정에서 어떤 선배 번역가가 저는 문체가 간결하고 깔끔해서 오히려 경제, 경영서로 넣어보면 더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거예요.
진짜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어요. 경영 전공도 아니고, 그런 책을 읽어본 적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결국 데뷔를 경제 서적으로 했어요. 지금까지 제일 많이 번역한 책이 경제, 경영서예요. 제가 도전을 안 해봤으면 경제, 경영서를 번역하는데 소질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을 텐데, 막상 해보니까 잘 맞더라고요.
그러니까 무엇이든 도전해보세요. 저에게 조언 구하거나 질문하는 분들이 “저는 뭐를 못 해서 할 수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해요. 출판 번역가가 되고 싶지만, 글을 못 쓴다. 유튜브 찍고 싶은데 카메라 앞에 못 선다. “못하기 때문에 못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그래도 그냥 한 번 해보세요. 직접 안 해보면, 잘하는지 못하는지조차 모르는 거니까요.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할 수도 있거든요. 한 번 해봤는데 진짜 소질이 없으면 그때 접어도 되잖아요.
융: 너무 공감 가는 말이에요. 우리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다고 미리 단정 지을 때가 많은 것 같거든요. 메리님은 그럼 최근에 ‘못하는 줄 알았는데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든 게 있었어요?
메리: 코딩? 공부를 하고 있다기보다는 관심있는 분야예요. 사실 조금은 해봤어요. 전자책을 만들었으니까. 그게 html로 만들거든요.
융: 와, 전자책이 html로 만드는 건 줄 몰랐어요.
메리: 네.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전자책 아니면 PDF로 만들 수 있어요. 다만 PDF로 만들면 글자 크기 확장도 안 되고 스크롤도 안 돼요. 저는 가로, 세로로 보느냐, 휴대폰, PC로 보느냐에 따라서 포맷이 자동으로 최적화되길 원했기 때문에 코딩해서 전자책을 만들었어요. 이거 누구나 하루 만에 할 수 있어요. (웃음)
융: 뭐하나 꽂히면 파고드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메리: 그렇죠. 그래서 회사 체질이 아니었어요. 제가 그냥 해버리고 싶은 거예요.
융: 메리님은 본인이 소심하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안 그런 것 같거든요. 휩쓸리지 않고 내가 할 일들을 잘 찾아서 여러 갈래의 길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메리님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기간이 있나요?
메리: 저는 제가 잘 휩쓸린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지나간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회사 그만두고 프리랜서 도전을 한 게 저는 체질이라고 얘기할 만큼, 저는 퇴사라는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만약 안 했어도 언젠가는 했을 거예요. 퇴사라는 선택이 필연적이었기 때문에 그 선택에 대해서 도저히 후회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회사 밖에서 힘들어도, 어차피 회사 안에서도 이 이상으로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있었어요.
지금은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의 대표주자가 되어 6잡을 뛰는 프리랜서가 됐지만,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건 회사 생활을 한 그 시절이에요. 내가 평생은 버티지 못할 확률이 100%인 곳에서 그래도 5~6년의 시간을 버티고 나왔잖아요. 근데 이걸 내가 1년을 못 버텨? 6개월을 못 버텨?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 거예요. 뭔가 실패하거나, 내가 한 선택이 틀렸다는 게 분명해도, 애초에 저는 회사에 들어가는 선택도 틀려봤잖아요. 한 번 강하게 틀려봤던 사람이라서, 그래도 살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요.
회사 한 번도 안 가보고, 졸업하고 바로 프리랜서 도전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도 자주 받아요. 저는 어떤 기술이나, 명확한 비전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본인이 조금이라도 헷갈리는 상태면 회사를 들어가 보라고 일관되게 조언해요. 그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생각한 건데,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었어요.
융: 어쨌든 회사에 다니면 경험과 능력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도 생기잖아요.
메리: 맞아요. 나와도 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처럼 회사 다닐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책이나 원고를 쓸 때 마감 날짜만 지켜서 드려도 출판사 분들은 되게 놀라요. 애초에 몇 달은 늦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주고요. 사실은 창작의 영역이니까 내 마음처럼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수가 있잖아요. 그래도 저는 데드라인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에요. 그게 이 바닥에서는 더 특이한 포인트고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요.
융: 회사를 나와서 제일 좋은 점은 뭐에요?
메리: 제 속도대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이요. 많은 분이 제 속도대로 일하는 걸 천천히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약간 카모메 식당 같은 이미지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웃음)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더 빨리 일할 때도 있어요. 완전 반대로 평일에 쉴 때도 있고요. 오전에 오늘 일하기 싫으니까 그냥 놀아버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럼 그 대가로 그날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되잖아요. 이걸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융: 공감해요! 저는 프리랜서 시작하니까 진짜 시간이 금이라는 말이 너무 와닿는 거예요. 일의 우선순위나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는 편이세요?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시잖아요.
메리: 저 시간 관리 잘 못 해요.(웃음) 다양한 일을 하는 게 가능한 건, 제가 ‘슈퍼 생계형 프리랜서’라서 안정적인 수입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수입이 끊기는 걸 엄청나게 불안해해요. 그런 성향이 있어서 번역이나 책 원고처럼 하루에 조금씩 장기적으로 하는 일을 하나라도 꼭 받아두는 편이에요. 안정적 수익을 뒷받침하는 일이 항상 깔려있고, 남는 시간에 다른 걸 해요.
그래서 어떤 일이 들어왔을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명확한 편이에요. 스케줄 표를 보고 남는 시간이 있고, 여러 가지가 저와 맞으면 끼워 넣는 거고. 안 되면 못하는 거고. 큰돈을 벌거나 어떤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배우분이 인터뷰한 걸 봤는데 커다란 한 방을 위해 기다리는 걸 잘해야 한다는 거예요. 시간을 비워놓고 자기 관리를 하면서 계속 기다리다가 정말 내 커리어를 확 올려줄 만한 확신이 드는 드라마나 영화가 들어왔을 때 딱 들어가기 위해서요. 강력한 한 방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있는 건데, 저는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아요.
안정적인 일을 깔고 가야 하기 때문에 정작 그런 일이 들어와도 못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제 스타일에 따라서 규칙적인 일을 넣어놓는 편이에요. 그니까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답지 않은 시간 관리일 수도 있죠.
융: 여러 일을 하려면 몸과 마음에 체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어떻게 관리하고 계세요?
메리: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5분 스트레칭을 하고 그 외 운동은 안 해요.(웃음) 근데 진짜 잘 먹어요. 밥 먹는 걸 중요시 해서 무조건 세끼를 다 챙겨 먹어요. 사 먹을 때도 있는데 대부분 차려 먹어요. 그리고 일 끝나면 뜨개질을 해요.
요리하고 뜨개질하는 게 생각 정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제가 워낙 멍 때리는 걸 못하거든요. 진짜 힘들고 번아웃이 올 때 덮어놓고 쉬어야 하는데 그걸 잘 못 하는 사람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못해서, 오히려 그런 시간에 뜨개질하고. 무용한 걸 만드는 것 같아요.
출처: 서메리 작가 인스타그램
융: 여러 가지 도전을 하게 만드는 작가님만의 장점이나 원동력이 있어요?
메리: 혼자 하는 거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어떤 일이든 혼자 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확장을 안 하고 있어요. 규모가 커지면 무거워지잖아요. 방향을 전환하고 이런 것도 휙휙 안 되고.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도 멈추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나와 그 사람이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합의를 봐야 하고요.
지금은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하잖아요. 지금은 정답인 것도 한 3년 뒤에는 오답이 될 수도 있고요.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그건 것 같아요. 그 각각의 직업의 규모는 되게 작지만 그래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요. 뭐를 하자고 결심했을 때 나만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으니까.
융: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메리: 우연인지 필연인지 잘 모르겠는데, 저는 완전 기계치고 카메라도 되게 무서워해서 원래 사진도 잘 안 찍어요. 그런데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까 어느 순간 요즘에는 영상이 대세인데 내가 너무 시대에 뒤처진 매체로만 보여주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떤 내용은 글로 전달하는 게 가장 정확히 전달될 수 있겠지만, 예를 들면 “작업 어떻게 하세요? 어떻게 만드세요?” 이런 거는 그냥 내가 만드는 걸 한번 찍어서 보여주면 끝나는 일이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융: 유튜브도 책을 주제로 하는 이유가 있어요?
메리: 제가 책을 좋아하니까요.
융: 메리님에게는 책이 어떤 의미에요? 최근 내신 <오늘을 버텨내는데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도 책에 관한 책이죠?
메리: 일반적인 회사원 루트와는 다른 길을 걸어오면서 흔들린 적도 있고, 생각보다 잘 안 풀린 적도 많아요. 그때마다 저에게 힘을 주거나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있었어요. 그 문장들과 제가 당시에 겪었던 에피소드를 엮어서 쓴 책이 최근에 나온 <오늘을 버텨내는데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예요.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는 입사부터 퇴사, 그 이후에 프리랜서 도전하는 기간의 이야기예요. 첫 번역서를 내고, 이제 나는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여기서 끝나요. 이번에 나온 책은 그다음 이야기라고 볼 수 있어요.
융: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도 있으세요?
메리: 되게 많아요. 제가 경찰서랑 웹툰 일을 시작할 때는 사내 웹툰 거라 대중에게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의 연장선상에서 웹툰을 그려보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무형의 콘텐츠만 만들었거든요. 동영상. 글. 이런 무형의 콘텐츠만 만들었는데 유형의 뭔가를 제작해보고 판매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코딩도 전자책으로 잠깐 맛을 봤는데 좀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융: 너무 멋있어요. 작가님 이야기 들으니까 저도 하고 싶은 일들 계속 도전해보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다능인 사이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메리: “다능인”이라는 말에 능이 능력이잖아요.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능력이라는 말이 주는 압박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꽤 남들보다 잘하고, 눈에 띄게 대단한 면이 있어야 그걸 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압박감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가 다능인이라고 생각을 못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 능력이 엄청 사소한 데부터 올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예를 들면 제 능력의 출발점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취미였어요. 책을 써본 적도 없고, 그거에 대해 대단한 공부를 한 적도 없고요. 틈이 나면 책 읽는 게 좋아서 그냥 읽었거든요. 근데 거기서 모든 길이 시작됐어요.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요리, 달리기, 요가.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그 능력이거나 능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거를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Drawing for SIDERS
메리님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여러 가지 분야에서 길을 만들고, 또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고 나도 새롭게 하고싶은 일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봤다. 지금 당장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자신을 먼저 제한짓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이더들이 구독할 때 열심히 써주는 메시지는 크게 둘로 나뉜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과 관심 있는 것은 많으나 스스로를 "다능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 메리님의 이야기를 듣고 후자인 사이더들이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곧 일종의 능력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 힌트는 결국 좋아하는 마음이다.
앞으로도 메리님이 또 어떤 길을 만들어나갈지 기대된다. 동료의 마음으로 응원하며 미래에도 좋은 자극을 주고 받고 싶다.
서메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eo_merry
서메리 유튜브: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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