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혹시 이 중에서 메인으로 생각하는 정체성도 있으세요? 있다면 메인으로 꼽는 이유가 궁금해요.
메리: 평소에 소개할 때는 그냥 “작가 겸 번역가”라고 소개하고, 하나를 딱 꼽아달라고 할 때는 “번역가"라고 소개해요. 퇴사하고 프리랜서계에 입문한 첫 번째 직업이니까요. 저는 번역가라는 직업을 뿌리로 삼아서 다른 것들을 확장해온 케이스예요.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융: 번역가가 되기로 하고 실제로 이뤄내는 과정을 첫 책인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에 담았잖아요. ‘체질'이라고 표현한 게 공감 갔어요. 읽으면서 느낀 건, 회사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권위적인 문화나 비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 절차를 본인과 안 맞는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만약에 회사가 좀 더 자유롭고 수평적인 곳이었으면 좀 달랐을까요?
메리: 제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라는 책까지 내다보니, “죽어도 다시는 회사에 안 갈 건가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데요,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이나 요즘 생기고 있는 업종은 저도 체험을 안 해봤어요.
다만 직원 3~4명인 회사부터 3,000명인 곳까지 다녀보면서 느낀 건, 좋은 조직이어도 조직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어요. 그게 잘 안 되면 답답해해요. 일이 잘 안되면 그냥 제가 해버려야 해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게 예의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안 될 때도 많잖아요. 뭐가 우월하고, 열등한 게 아니라 제 속도대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융: “내 속도로 간다”는 말이 좋아요. 지금 프리랜서 한 지 몇 년 되셨어요?
메리: 퇴사한 직후부터 치면 6년 차인데요. 초반에는 백수였기 때문에 지금은 4~5년 차라고 볼 수 있죠. 1년~1년 반은 백수였어요.
융: 그래도 그때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 않아요? 번역 아카데미도 다니고, 영어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알아요.
메리: 백수의 기준을 수입으로 잡았어요. 퇴사하는 순간부터 계속 뭔가 했지만, 저는 용돈 벌려고 프리랜서 한 게 아니라 진짜 생계를 유지해야 했으니까요. 집세도 나가고, 식비도 나가고.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가 있잖아요. 제가 백수 기간을 1년~1년 반으로 잡은 건, 그 기간에는 수입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공부하고, 도전한 기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 돈을 썼죠. 번 게 없었어요. 벌어봤자 일주일 내내 일하고 10만 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어요. 수입이 0원이었던 게 1년. 아주 조금 있었던 게 6개월. 그리고 그 뒤부터는 최저 생계비라도, 어쨌든 제가 저축해둔 돈에 손 안 대고 생활할 수 있었어요.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저는 스스로 프리랜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융: 진짜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메리님과 공동 강연하면서 되게 재밌었던 게, 똑같은 질문이 들어와도 답변이 정말 달랐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고 다녀라”라고 하고, 메리님은 “준비될 때까지 말하지 않는다”고 하고요.(웃음)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 방식을 택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어요. 저는 좀 즉흥적인 반면에 메리님은 도전도 잘하지만 그만큼 계획도 잘 세우시는 것 같아 부러웠고요. 뭔가 시작하기 앞서서 계획을 잘 세우고 움직이는 편이세요?
메리: 디테일한 계획까지는 안 세워요. 너무 디테일하게 세우면 시작이 어려워지더라고요.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세울 수도 없고요. 세상에 완벽이란 건 없잖아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어떻게 배우고 시도할까. 큰 틀에 대한 계획과 이게 망했을 때 어떻게 하자는 계획을 세워요. 플랜 B, 플랜 C가 세워지면 그냥 시작합니다.
융: 망했을 때의 플랜 B, C를 생각하는 게 인상적이에요. 강연 때도 말씀하셨잖아요. 이게 만약에 안 되면 이 망한 이야기를 스토리로 만들어 팔아야겠다. 메리님은 원했던 대로 일이 안 풀려도, 계속 방법을 찾아가는 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