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읽고 또 읽게 되는 이름이었다. 무과수. 무화과도 아니고 무과수?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며 작가 소개를 읽고 더 호기심이 갔다.
“어루만질 '무', 열매 맺는 나무인 '과수'를 더해 만든 이름은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과수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나는 예전부터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었고, 독립 출판 <무과수의 기록>을 사본 뒤였다. 독립 출판의 글 뿐만 아니라 사진, 디자인, 편집을 모두 직접 진행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일상 사진과 글만 봐도 무과수의 다양한 취향과 시선이 느껴졌다.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그가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의 콘텐츠, 커뮤니티 매니저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조금 더 뒤에 알았다.
겹치는 친구가 많아서인지 첫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다.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우리의 대화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주를 이뤘다. 2차로 간 을지로의 어느 꼬치집에서 무과수는 언젠가 ‘무과수의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그 집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사이드를 시작할 때부터 ‘꿈’ 카테고리에는 무과수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무과수 撫果樹
“어루만질 '무', 열매 맺는 나무인 '과수'를 더해 만든 이름은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융: <무과수의 기록> 잘 읽었어요. 스스로를 쓰는 사람으로 생각한 건 언제부터예요?
무과수: 기록이 습관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거든요. <무과수의 기록>은 2016년에 여행을 다니며 썼던 글을 묶어서 낸 거예요. 2016년의 이야기인데 2019년에 첫 책을 냈어요.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2017년에 에어비앤비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통영에서 특이한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융: 에어비앤비 공식 블로그를 운영했던 건 잘 몰랐어요.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무과수: 2016년에 한참 여행 다닐 때 에어비앤비의 #여행은살아보는거야 캠페인에 참여했는데 그때 스토리북 작가로 선정되었어요. 같이 책도 만들고, 전시도 열면서 에어비앤비 직원분들과도 인연이 생긴 거죠. 서로 알고 지내다가 그때는 에어비앤비 마케터였고 지금은 밑미를 창업한 하빈님이 공식 블로그를 담당하는 곳으로 저를 이어주신 거예요. 저도 신기했어요. 커리어 없는 대학생에게 맡긴 거잖아요.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1년이 좀 안 되게 운영했어요.
융: 원하는 나라에서 한 달씩 살면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 결을 알아본 거 아닐까요? 애초에 ‘살아보는 여행'을 갔던 이유는 뭐예요?
무과수: 그때가 대학 졸업 직전이었어요. 어떤 회사를 갈지 고민하기 이전에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에 대해 먼저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휴학하고 1년간 제 자신에게 시간을 준 거죠. 한 곳에서 1년 살기에는 좀 아쉬울 것 같아서, 한 달에 하나씩 좋아하는 나라에서 살아보기로 한 거예요. 관광지보다 현지의 진짜 이면을 보고 싶었어요. 나와 다른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정말 우리와 다를까.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어요.
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 2016년, 다섯 개의 나라에 한 달씩 살았던 경험을
<무과수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해서 시리즈로 풀어내고 있다.
현재까지 베를린과 프라하 두 권이 나왔다.
융: 그때도 하고 싶은 게 명확했나봐요. 여행을 가기 전의 무과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요.
무과수: 대학 다닐 때 다짐이 ‘스펙을 위한 스펙을 쌓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았어요. 토익시험도 안 보고, 대외활동도 하고 싶은 것만 했어요. ‘해야 하니까 한다'는 맥락이 싫었던 거죠. 그래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딴짓을 많이 헸죠.
좀 웃기지만 휴학할 때 교수님 앞에서 피티를 했거든요. 휴학하고 여행 다녀와서 사진전 하고 싶다고 했어요.(웃음) 교수님이 이해를 못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첫 사진전을 열었어요.
융: 어떻게요? 재밌게 살았다.
스무 살 때부터 홍대에 있는 카페 히비의 단골이었어요. 카페 히비에서 하는 전시를 보려고 부산에서 서울을 매년 왔다 갔다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장님이랑도 알게 되고, 사진전을 열고 싶다고 했을때 흔쾌히 기회를 주셨어요. 태국을 다녀와서 유럽으로 떠나기 전에 사진전을 열었어요.
융: 해보고 싶은 일을 마음속으로 계속 그리면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다시 그 통영 호스트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특별한 인연이라고 했죠?
무과수: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국내를 돌아다닐 때였어요. 통영에 있는 호스트 중 한분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하셨어요. 자신의 집이 보잘 것 없다면서요. 근데 이상하게 꼭 그 집을 인터뷰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설득해서 결국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통영에 도착해서 문을 여는 순간 서로 엄청 놀라했어요.
융: 왜요?
무과수: 그분은 제가 생각보다 어려서 놀라고. 저는 호스트님이 생각보다 나이가 있어서 놀라고. 호스트님이 제가 쓴 글을 다 읽었는데 30대 중반인 줄 알았대요.(웃음) 그날 마주 앉아서 얘기하는데 인터뷰 진행 하다가 운 건 처음이었어요. 돈 많이 벌고 잘 나가는 사람도 이곳에 오면 문을 닫고 나오질 않는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도 잘 벌고 남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마음이 허해서 이 먼곳, 작은 집으로 위로를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슬프더라고요. 부족할 게 없는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통영까지 와서 마음을 달래야 할까.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삶이 뭘까.
융: 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중요한 질문을 품었네요.
무과수: 대화를 하면서 제 말과 생각을 들으시더니 자꾸 글을 써보라 하셨어요. “제가 무슨 글을 써요"라고 하면, 제 글에 특별함이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셨어요. 그 분에게 저의 집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저한테 인테리어 관련된 일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전혀 생각도 안해봤던 분야여서 마냥 생소했죠. 그때는 '여행'이라는 분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거든요. 그 후에 우연히 오늘의집 공고를 보게 됐고, 순간 호스트분의 말씀이 딱 떠올랐죠. 그분이 아니었다면 또 제 인생이 어디로 흘렀을지 모를일이죠. 여러모로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예요.
무과수는 오랫동안 꾸준히 기록해왔다 @muguasu
융: 대화를 나누면서 현재 모습뿐만 아니라 이전의 무과수도 단단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인상적이에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기가 있었어요?
무과수: 고향이 부산인데요. IMF를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지나와서 그런지 철이 좀 일찍 들었어요. 제가 첫째인데 부모님에게 기대기보다 오히려 제가 더 안아주고 이해해야했던 순간들도 많았었죠. 어릴 때 KBS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을 했거든요. 방송생활하면서 사회생활을 일찍 배웠던 것 같아요. 사춘기도 별로 없었고. 나를 단단하게 해 준 시기… 어디서부터 그렇게 됐다고 말하긴 어려운데, 그 중심에는 기록이 있다고 봐요.
융: 10대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고 했죠. 기록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요.
무과수: 중학교 때 다이어리를 아직 다 간직하고 있어요. 종종 읽어보는데 지금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거예요. 일기를 매일 썼는데, 그때도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냥 ‘힘들다’고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왜 힘든지를 세부적으로 썼더라고요. 감정을 깊게 들여다본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이렇게 했는데 나를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융: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진짜 많았구나.
무과수: 일기로 나 자신과 대화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엄청 도움이 많이 됐어요. 취향이 빠르게 확고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융: 자기 소개할 때는 어떻게 해요?
무과수: 무과수 이름의 뜻을 설명하면서 그 얘기를 덧붙여요. 일과 딴짓의 경계를 허물고 버무려지는 삶을 추구한다고요.
무과수는 이런 사람이야. 무과수는 뭘 잘해. 이렇게 하나의 키워드로 프레임의 씌워지는 것이 두려워요. 계속 깨고 싶어요. 무과수는 단단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야. 이런 말도 제 내면에 찌질한 면도, 감정적인 면도 있거든요. 때로는 흔들릴 때도 있고요. ‘무과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지으면 제가 그 단어에 갇히는 느낌이에요. 그 간극이 생기는 게 싫어서 인스타그램 기록도 다 드러내는 편인 것 같아요. 힘들고 감정적인 모습도요.
좋은 브랜딩은 ‘밖에서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에 간극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 좋아 보이거나 잘나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 그냥 딱 무과수던데.’ 이 말이 생각보다 더 멋있다는 말보다 좋아요.
융: <무과수의 기록> 프라하 편에 편지를 주고받는 프로젝트가 나오잖아요. 생각에 그칠 수도 있는 일을 이뤄낸 모습이 낭만적이고 멋졌어요. 프로젝트 이름이 뭐였죠?
무과수: <주고받는, 사이>요. 유럽에서 3개월을 지내고 오는 일정을 짰어요. 돈이 모자랄 것 같아서 아는 지인을 통해서 알바를 구했는데, 대관령의 한 브런치 카페 주방에서 일하는 거였죠. 저는 숲 속 오두막 같은 곳에서 살면서 샌드위치를 만들 줄 알고 간 거였거든요. 그런데 주방에서 철판으로 수제 버거를 만들고, 갖가지 브런치 요리를 해야되는 줄은 꿈에도 몰랐죠.(웃음)
카페 앞 빨간 우체통에서 편지를 기다리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 <주고받는, 사이>
보통의 방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칼질도 능숙하게 못하는 사람을 누가 주방에 들여요. 일주일 동안 요리 레시피를 다 외우고, 커피 내리는 것까지 마스터 했죠. 암기력도 좋지 않은 제가 그 모든 걸 해낸걸 보면,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든 기지를 발휘하게 되나봐요. 그러던 어느날, 가게 앞 빨간 우체통이 눈에 들어왔어요. '여기로 편지를 받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이랑 블로그에 올려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예요. 뭐든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재밌을 것 같으면 그냥 하는 편이예요.
융: 실행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걸 해서 내가 얻는 게 뭘까를 고민할 수도 있고.
무과수: 개인의 일을 할때에는 생각보다 목적, 목표 없이 할때가 많아요. 이 편지를 묶어서 책을 낼 거야 라던가. 끝을 미리 정해두고 뭔가를 바라지 않았어요. 저는 과정에서 만족하는 사람이에요. 결과가 잘 되면 좋지만, 안 돼도 상관없어요. 그냥 그 빨간 우체통에 편지가 온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거예요.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지만, 단 한 명이 저에게 편지를 보내줘도 좋았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쉽게 행복해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세상은 쉽게 만족하면 발전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제 원동력이었어요. 작은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나 스스로 의미있다고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했죠. 예전에는 나만의 의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재밌어서 한 것들이 쌓여서 프로젝트라 여겨질 정도로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해보세요”라고 말하면, 지금의 저만 보고 “무과수니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팔로워도 많잖아”라는 답변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저에게도 묵묵히 쌓아올린 시간들이 있거든요. 꾸준히 정직하게 했던 기록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었죠.
융: 요새 꿈이 없어도 된다는 말도 많이 하잖아요. 그것도 무슨 말인지 알지만, 저는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체통만 예로 들어도, 편지 왔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이뤄낸 거잖아요. 뭔가를 할 때 미래를 그리고 하는 편이에요?
무과수: 사실 안 그리는 편이에요. 즉흥적이고 직관적이에요.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의 선택이 저를 가르키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순간순간 재밌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서 무수한 점을 찍었는데, 나중에 와서보니 그 점들이 하나로 이어지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결국엔 그 순간의 선택도 스스로를 잘 알았기에 너무 빗겨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거겠죠.
연희동 '감나무 집'으로 이사가며 #무과수의집 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융: 남이 아니라 계속 나를 위한 선택을 해온 거니까 빗겨나가지 않았다는 말이죠?
무과수: 조언을 구할 수 있지만 어쨌든 선택은 내가 하는 거잖아요. 때마다 제가 내린 선택이 나중에 다시 한 맥락으로 설명이 되는 게 신기했어요. 쓸모없는 경험이 없다는 말을 좋아해요. 2016년에 여행을 다닐 때 현지 사람들의 집에 머물면서 집에 대한 영감을 받았어요. 진짜 로컬스럽고 개성 있고 취향이 확고한 집을 경험한 거예요. ‘나도 돌아가면 이런데 살고 싶다' 생각을 가지게 됐고, 에어비앤비 블로그를 운영하고 호스트를 인터뷰하면서 집에 대한 가치관까지 알게 된 거예요.
집에 사람의 삶이 묻어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집에 대한 시각과 의미가 점점 확장되기 시작했어요. 그때쯤 연희동 '감나무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본격적으로 집을 가꾸기 시작했고, #무과수의집 해시태그를 사용해서 집에 관한 기록을 본격적으로 했죠. 그러다 2018년쯤 부터 집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외부로도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오늘의집에도 일을 하게 되고... 제가 해온 선택이 계속해서 제가 좋아할만한 또 다른 기회를 물어다 주었어요.
융: 그래서인지 ‘무과수의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그냥 정말 자연스러웠어요.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고 해야 하나. 계속 연결되는 것 같아요.
무과수: 오늘의 집에서도 처음에 했던 작업은 집들이 발행이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와 의견을 내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게 됐어요. 집과 관련된 모임을 개인적으로도 진행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도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오하우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고요. 번아웃이 왔을 때 운동을 시작하고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어요. 그걸 기록하다 보니 밑미에서 연락이 와서 리추얼을 진행하고 있고요. 연결되는 게 끝이 없어요.
오늘의 집 다니면서 건축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무과수의 집'을 짓고 싶다거나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들이 ‘도시재생’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제가 정말 좋아서 계속 얘기하고, 보고, 경험하고, 확장했던 것들이 나중에 전문가나 책을 접하게 되면 치환이 되는 거예요. 전문적으로 지식을 갖춘 상태로 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이런 거구나’ 뒤늦게라도 치환이 되니까 짜릿했어요.
융: 치환이 된다는 말이 너무 좋네요.
무과수: 처음부터 ‘나는 도시재생을 할 거야' 알고 가는 방법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빈 곳이 더 많게 느껴지잖아요. 갈길이 멀어 보이고요. 저는 반대로 하고 싶은걸 했더니 ‘도시재생을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된 거예요. 빈 곳을 많이 느끼기보다는 뭘더 채울까를 고민했어요. 걱정 대신 고민을 하면서 좀 더 나를 많이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그게 좀 재밌는 포인트 같아요.
융: 걱정을 하지 않고 고민을 했다. 두 단어에 차이가 느껴지네요.
무과수: 저는 두 단어가 좀 다른 것 같아요. 회사 뒤의 삶이 스스로 잘 상상이 안 되면 걱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꿈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의 차원 같은데, 확실히 꿈이 있으면 삶에 생동감이 생겨요. 죽기 전까지 계속 해야할 일이 주어질 거라면 꿈이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결국에는 스스로 내가 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온단 말이에요. 지금은 유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나중에는 떠오를까요? 더 짙은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바로 회사를 나와서 원하는 일을 해라, 네 꿈을 펼쳐라,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병행할 수 있다는 거죠. 지금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일해서 모은 돈을 좋아하는 것에 투자해서 확신도를 높여가는 작업을 할 수 있어요.
이걸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지 미리 고민하면 시작조차 못할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자주 그러잖아요. 그때 그냥 했으면 지금은 벌써 전문가가 됐을거라고요.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안 하잖아요. 고민만 해서 뭔가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죠. 그런데 고민만 하는 건 많이 해봤잖아요. 하면 실패든 성공이든 뭐든 남아요. 그럼 그걸 딛고 뭔가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무과수가 현재 살고 있는 집
융: 마지막 말이 너무 공감 가요. 사이드 인터뷰를 하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과수: 번아웃 왔을 때 ‘요즘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재미가 없죠.(웃음) 너무 당연한 걸 그때 느꼈어요.
뭐라도 해보고 움직이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우리는 큰 성과만이 성공의 척도라고 주입식으로 교육 받아왔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룬 게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져서 두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기대는 이만큼인데,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그런데 저는 ‘작은 성취'를 강조하고 싶어요. 제 리추얼을 하는 사람들이 오늘 챙겨 먹은 아침 하나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꿈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돼요.
무과수는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융: 사람들이 꿈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단해야 할 것 같고. 성공한 모습이어야 될 것 같고. 그래서 꿈이 없어도 된다는 말도 나온 것 같아요. 그 맥락은 좋은데, 잘못 오해할까 봐.
무과수: 꿈은 해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거지.
융: 너무 중요한 말이다! 꿈도 어느 순간 ‘해야 하는 일’처럼 된 것 같아요.
무과수: 꿈이 아닐 거예요, 잘 생각해보면. 꿈은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꿈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잘 모르겠어요. 확실히 인생이 힘들 때도 있죠. 어느 순간 ‘나는 왜 살고 있지?’ 의문이 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어쨌든 태어났고, 삶이 한번 주어지는 이 상황에서 살아낼 이유를 스스로 찾아낼 필요도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요 우리.
저는 요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한 달이 12분의 1박자 같아요. 12분의 1박자로 쓱쓱 지나가는 것 같은 거예요. 이게 뭐랄까, 다양한 생각을 들게 만들어요.
융: 오… 이렇게 생각하니까 인생이 노래 같아요. 12분의 12박자에 월이 마디를 이루고, 1년이 구절을 이루고. 악장으로 나눠질 수도 있고.
무과수: 유독 한 달이란 개념으로 끊어서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12분의 12박자인데 그 템포로 넘어가는 속도를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반도 못하고 죽겠는데’ 이 생각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안 좋은 쪽으로 애쓰는 시간이 아까워요. 저는 요즘 운동의 재미도 알아가고 있어요. 이제야 비로소 이걸 왜 하는지, 저에게 맞는 운동은 어떤 건지 이해하게 됐어요.
융: 체력도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의 체력.
무과수: 삶에서 체력과 먹는 것을 빼고는 논할 수 없어요. 그게 곧 나거든요. 먹는 건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데, 내가 먹는 게 곧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치환이 돼요.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이 좋은 에너지로 치환되는 않죠. 올해 서른이 되면서 음식으로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는 게 무엇인지 본질에 가깝게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나이 들면 당연히 체력이 떨어지고 아프다는 말을 하잖아요. 나이 들면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얼마든지 내 몸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데 많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죠. 그게 좋아하는 일을 하든, 싫어하는 일을 하든 말이예요. 더 중요한 건, 우리 같은 사람은 하고 싶은게 너무 많기 때문에 체력이 필수예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 많이 하기 위해서라도 체력을 가꿔야해요. 체력이 없을 때는 별로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에너지가 없으니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고요. 체력이 잘 갖춰져야 나머지도 따라오는 것 같아요.
융: 공감가는 좋은 이야기들 들려줘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이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이드 구독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요. 아직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찾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인 사람.
무과수: 일단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일 일기를 쓰라고 하고 싶어요. 자꾸 왜를 물어야해요. “기분 좋았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를 묻다보면 그 끝에 내가 있어요. 음식부터 요소 하나하나 다 해당 돼요.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생각 그만하고 뭐라도 작게 실천해보기. 첫 번째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고요.
두 번째,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고민인 분들에게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잘하는 기준이나 이정도 해야된다는 방법에 갇히는 순간 고민이 더 많아져요. 잘한다의 기준을 세워서 1등만 의미있는 세상도 아니잖아요. 다양한 기준과 시선이 있는데 애초에 1등인지 가릴수도 없고요.
예전에는 매스로 메세지를 한번 던지면 다 잡혀오는 시대였는데, 지금은 니치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어려운 세상이에요. 이런 상황의 장점은 그만큼 니치해도, 대중적이지 않아도 좋아해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거예요. 찐팬을 서두르지 말고 단단하게 확보해나가보세요.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데려와서 힘겹게 안고 있는 게 아니라, 소수라도 손을 꾹 잡고 있을 수 있는 팬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오래 전에 쓴 글을 두고 고민할 때가 있었어요. 지금의 나는 그때와 또 다르니까요. 지금 글을 수정하면 더 멋진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20대 중반이던 나'의 생각을 날것으로 두기로 했죠. 조금 별로여도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데 용기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책을 출간 한 이후, 이런 고민을 했었다는 말을 들은 팬분이 그런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때의 그 사람도 무과수님이잖아요.” 그말이 좋았어요. 나를 다 괜찮다고 해주는 거. 내가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줘야 해요.
융: 저에게도 와닿는 말이에요.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 그때의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죠.
무과수: 그게 너무 중요하죠. 애써 꺼내서 너 왜 그랬어 할 필요도 없고, 그때의 나도 나니까 이유가 있었겠죠. 다양한 모습의 나를 전부 사랑해주려고요!
Drawing for SIDERS
"일과 쉼 이외에 어른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아노를 주문했다.
생각없이 몰두할 수 있고, 성과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최근 피아노를 구매해 다시 연습하기 시작한 무과수가 쓴 말이다. 쉽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 감사하다고, 그 마음이 자신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하는 무과수와의 대화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나를 누르는 순간이 오면, 가장 소박했던 마음으로 돌아가 봐야겠다고. "성과에 상관없이 즐기며" 나를 다시 움직일 정도의 작은 성취감에 집중해봐야겠다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 생각하지 못한 기회를 열어줄 수도 있지만, 설령 어떤 '결과'로 나를 데려다주지 못해도 괜찮다. 이미 그 일에 몰두했던 그 순간순간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졌을 테니까.
자신의 마음을 향한 정직함과 꾸준한 실행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직업과 삶"을 가지고 싶다는 무과수는 앞으로 또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재미난 일들을 만들어나갈까.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모습이든 미래에는 또 미래의 무과수다운 선택을 내리고 있을 것 같다. 다양한 모습의 나를 전부 사랑해주겠다는 당차고 사랑스러운 마지막 한 마디를 늘 기억하기를. 어떤 순간이든 무과수의 무과수다운 선택을 곁에서 묵묵하게 응원하고 싶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