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대오님은 모베러웍스에 합류해달라는 제안을 바로 수락하셨잖아요.
소호: 삼고초려가 아니라 3초고려였죠.(웃음)
대오: 저는 즉흥적인 타입이에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크게 고민 안 했어요. 장기적인 꿈을 가지고 접근했다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금 일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당장 할 행사 재밌겠다! 짧은 생각으로 접근하는 편이에요.
융: 모베러웍스 이전의 세분의 모습도 궁금해요. 처음부터 디자이너나 기획자를 꿈꿨어요? 첫 번째 가졌던 강력한 꿈은 어떤 거예요?
대오: 저는 꿈이 명료했어요. 어릴 때는 만화가나 ‘카투니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카투니스트로 유명한 강일구 작가님을 찾아가서 배우고 그랬는데요, 생각보다 힘든 일이더라고요. 그때 잠깐 꿈을 잃고 있다가 디자인을 알게 됐어요. 디자인학과에 들어가서 첫 회사부터 지금까지 브랜딩을 접하며 쭉 오게 된 케이스예요. 디자인을 시작한 변곡점부터는 ‘이게 하고 싶다’는 단기적인 꿈을 따라 왔어요.
소호: 큰 꿈이 있었던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제가 고향이 부산이거든요. 어제 엄마랑 이야기하는데 제가 처음 서울로 올라올 때, 책을 만들겠다고 했대요. 저도 잊고 있었는데, “우리 딸 10년 만에 책을 냈구나” 말씀하시더라고요.
융: 지금 책이 나온 기분이 어떠세요?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브랜드 기획자로 흘러가게 된 거예요?
소호: 꿈꾸는 것 같아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작가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책을 좋아하는 만큼 디자인 관련된 일이 하고 싶었어요. 브랜딩에 관심이 생기고, 대학원을 디자인 경영으로 진학하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브랜딩 일을 하게 됐는데 재밌고 잘 맞았어요. 브랜드 기획자로서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모베러웍스를 만들고 책을 만들면서 옛날 꿈을 되새기게 됐어요.
모춘: 저는 꿈이 많았어요. 펑크 음악을 좋아해서 펑크 밴드를 하고 싶었어요. 그 문화를 좋아했거든요. 밴드 멤버들이 직접 공연 만들고, 포스터 그리고 하잖아요. 좋아해서 흉내를 내보니까 음악보다 그림에 더 재주가 있었어요. 그렇게 흘러오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어요.
융: 음악을 엄청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모베러웍스는 ‘그룹사운드'를 지향하고, 모티비(MoTV)도, 누브랜딩의 누(Nu)도 다 음악 관련된 거고. <프리워커스> 읽어보면 음악에 비유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브랜딩에도 다 녹아 있고요. 지금 말씀 주신 꿈에도 음악이 연관되어 있네요.
모춘: 뮤지션들 너무 멋있지 않아요? 저희는 시각 쪽으로 창작을 하지만, 뮤지션은 또 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하잖아요. 피카소의 청색지대처럼, 뮤지션들은 1집, 2집 기간을 두고 성장의 기록을 보여주는 게 멋진 형식이에요. 개인의 어떤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도 좋고요. 모베러웍스가 ‘시즌’ 개념을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멤버들을 모집할 때도 ‘저 사람은 징을 잘 치겠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융: 세분 다 꿈을 꽤 빠르게 생각하고 이룬 편인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계세요?
모춘: 전 오히려 길었던 것 같은데요? 지금도 이뤘다고 할 수는 없고요. 지금은 건물주가 되고 싶어요.(웃음)
대오: 지금은 구체적인 꿈이 있지는 않아요. ‘To be’가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만 있어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나의 작업물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501 워크-숍 행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런 꿈들이 있어요.
모춘: 나는 되게 부자 되고 싶은데.(웃음) 그런데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부자가 되어보고 싶어요. 그래야 이런 실험이 성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융: 그래서 더 응원하게 돼요. “이렇게 해도 성공할 수 있다!”를 보고 싶어요.
모춘: 맞아요. ‘이래도 먹고살 수 있어!’를 보여주고 싶어요. 쉽지는 않네요.
융: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들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궁금해요.
모춘: 저희는 일이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일이 더 재밌을지 집중해서 생각해요.
소호: 기간이 점점 짧아져요. ‘1년 뒤에 어떻게 하면 재밌지?’가 아니라 ‘오늘 하루 어떻게 재밌게 보내지?’가 질문이 되었어요. 하루 시작할 때 다 같이 체조하고 명상하거든요. “오늘을 행복한 하루로 만드세요” 이 말이 종일 맴돌아요. 이게 하루하루의 목표가 되는 것 같아요.
융: 안 그래도 모베러웍스의 루틴을 궁금해하는 사이더들이 있었어요. 매일 같이 명상 하시는 거예요?
모춘: 네. 다 같이 모여서 10분 정도 진행해요. 이게 어떻게 보면 저희 업무 환경이잖아요. 여기에 좀 더 내추럴한 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룸 스프레이를 만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업무가 연결돼요. 우리에게 필요한 걸 만드니까 오히려 잘 되더라고요.
Work in Peace Spray
융: 진짜 자연스럽네요. 아침에 이런 리추얼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게 일에도 도움이 되나요?
소호: 확실히 도움이 돼요.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아요.
융: 모베러웍스는 워크숍도 의식처럼 치루잖아요.
모춘: 일주일의 끝에는 함께 메일로 ‘위클리 모빌스’라고 일주일의 소회를 남겨요. 평일에 일할 때는 업무 내용만 보고, 감정적인 부분은 잘 못 보잖아요. 위클리 모빌스를 통해 일하면서 멤버들이 이런 생각도 했구나 체크할 수 있어 좋아요. 워크숍은 큰 프로젝트 하나 끝날 때마다 가는데 제일 재밌어요. 일에 관한 서로의 철학을 나누는데, 서로 계속 얘기하려고 하고.(웃음) 연말에 2박 3일 갔는데도 부족하더라고요.
대오: 제일 재밌어요 진짜. 저희가 기록을 중요시하는데, 워크숍처럼 정리하는 시간이 우리가 가진 기록을 탄탄하게 만들어줘요.
모춘: 저희가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긴 하지만, 반기별, 분기별 워크숍에 가면 놓쳤던 이야기들을 나눠요. “우리 왜 이러고 있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게 돼요.
융: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가 기록으로 남아있으니까 진짜 좋을 것 같아요. <프리워커스> 책 읽어보니까 사이드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하셨더라고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던 경험이 일할 때도 도움이 되나요?
소호: 소개해드릴 책이 하나 있어요.
모춘: 이게 어떻게 보면 모베러웍스의 전신이죠. 2018년 하반기에 소호가 회사에서 좀 무기력했어요. 회사 초기에 같이 협업하면서 아찔할 정도로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걸 경험했는데, 소호에게 번아웃이 찾아온 상황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해서 ‘소호사’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소호, 모춘 그때 만든 활동명이고요. 제가 일러스트를 그리고, 소호가 단편 소설 형태의 이야기를 썼어요.
'소호사' 단편소설 <THE POSTMAN> - 모베러웍스 세계관의 전신
융: 책 퀄리티가 왜 이렇게 좋아요? 미국 책 같아요!
모춘: 그렇죠.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이에요. 이런 형태로 도전했는데, 더 쉬워야겠다는 걸 배웠어요. 저희는 인생을 역전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건데. 준비할 때 대오가 옆에서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50만 원 투자한다고 했는데 나온 거 한 번 읽어보고 투자 안 하고 잠수 타더라고요.(웃음) 저희의 능력을 과대평가했죠. 반응은 실패였어요. 책도 안 팔리고, 사람들이 무관심했어요. 그래도 그때 소호랑 같이 재밌는 일 했을 때 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이때 이미 세계관이 세팅됐던 것 같아요.
대오: 레지스탕스처럼 큰 시스템을 작은 것들이 모여서 깨는 이야기거든요.
소호: 뒤돌아보면 연결된다고 하잖아요. 이것도 할 때는 ‘왜 이렇게 인기가 없지’ 이랬던 건데. 지금 생각하니까 또 다 연결되더라고요. 자기 방식대로 일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대하고. 모베러웍스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에 소호사 때 생각한 주제라는 걸 알았어요.
융: 이 책 속의 이야기랑 모베러웍스가 세계관이 연결되어있는 게 신기해요.
대오: 저희가 다들 반항아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소호: 언더독(underdog)처럼요.
모춘: 그러면서도 잘되고 싶어 하죠(웃음).
융: 저도 그런 편이라서 공감해요. 누군가 ‘이건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하면 저는 반박하고 싶거든요.
소호: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모춘: 비주류의 방식으로 주류가 되자. 이 말을 자주 해왔어요.
융: ‘소호사’ 말고도 인생에서 이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돌이켜보니까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게 있나요?
모춘: 또 하나가 있죠.
대오: 언어 공부하는 걸 좋아해요. 회사 일이 바쁘지만 회사 끝나고 재밌는 걸 하고 싶은 거예요. 외국인들에게 콘텐츠로 한국어를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회사에서 일하면서 ‘Brain Booster Korean’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글로벌 유저를 대상으로 유튜브 채널에서 시작했는데요, 구독자 100여 명 중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어요.(웃음)
모춘: 그런데 거기서 했던 유튜브의 운영 방식이나 편집이 모베러웍스에서 일할 때 녹아들었죠.
대오: 그때 인스타그램에 자주 질문을 올리고 답변을 받았어요. 인스타그램에서도 팔로워는 500명이 안 되는데, 답변이 엄청 활발하게 달리는 거예요. 구독자들과 주고받는 게 재밌다는 걸 알았어요.
모춘: 실제로 대오가 만드는 모티비 <누브랜딩> 시리즈의 플로우 자체가 모쨍이들과 주고받으면서 만들어지거든요. 쓸모없는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써먹게 돼요.
융: 세 분은 ‘알을 깨고 나왔다!’고 느껴졌던 순간이 있어요?
소호: 저는 모베러웍스하면서요. 뭔가 탁 분출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작년에 두낫띵클럽이랑 시즌 진행하면서 특히요. 책에도 썼지만 규림님이 “소호님 야망에 놀랐다”라고 하는데, 저도 놀랐어요. 제가 그런 야망이 있는 줄 몰랐어요.(웃음) 그때 제 안에 있는 뭔가가 깨졌던 것 같아요.
두낫띵클럽과 협업하며 1,000명을 줄 세웠던 모베러웍스의 첫 번째 501 노동절 잔치
대오: 저는 최근이요. 모베러웍스한지 1년 되니까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살면 되겠다는 걸 약간 깨달았어요. 아주 깬 건 아니고 금이 살짝 간 정도?(웃음) 말로 설명하긴 힘든데 어떤 게 필요하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어요. 디자인을 오래 하면서 디자인 사용에 대해서는 많이 익혔지만, 실제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못 느끼면서 살아왔거든요. 모베러웍스는 사람들 반응이 즉각적으로 와요. 모쨍이들과의 관계가 구축되는 과정을 느끼고 나니까 ‘내 능력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구체화되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어요.
모춘: 저는 전 직장에서 회사 다닌 지 3~4년 됐을 때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변곡점이었어요.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으로 바닥에서 살고 있다가 라인 프렌즈라는 큰 회사를 들어가서 무의식적으로 주눅 들어 있었어요. 퍼포먼스가 안 나니까 좋은 일이 잘 안 들어왔어요. 그때 팀원들도 다 하기 싫어하는 프로젝트가 온 적이 있어요. 근데 그러니까 부담이 없더라고요. 그때 완전히 하고 싶은 대로 해보게 됐어요. 제 역량에 비해서 하고 싶은 건 강해서 대오를 영입했어요. 그게 변곡점이 됐어요.
대오: 그때 완전히 몰입해서 일했어요.
모춘: 전문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 프로젝트예요. 외국 프로젝트였고, 일정이 촉박했고,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어요. ‘잘해야지’ 마음먹고 인터넷 검색하면 취합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아요. ‘어디까지 도달할 것인가’가 선택의 문제라는 걸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대오: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딥다이빙해서 몰입했는데요. 저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소호: 신기한 게 그때 이후로 회사에서의 입지도 달라졌어요. 윗선에서의 인정이라던가.
융: 저는 지금 얘기 들으면서도 좀 인상적인 게, 알을 깨고 나온 순간도 세 분 다 일 관련된 거네요.
소호: 일 밖에 모르는 바보…
대오: 일하는 시간을 좋아하니까 알을 깨고 나온 순간도 그중에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