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저 일을 다하지?'
오롤리데이 대표이자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박신후(이하 롤리)님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디자인하고, 기획하고, 공간과 회사를 운영하고, 유튜브에 콘텐츠를 만들고. 오롤리데이에서 느꼈던 밝은 에너지는 롤리님이 하는 모든 일이 드러났다. 최근에 가장 놀랐던 것은 5월에 중국에서 오롤리데이를 무단 도용한 것이 알려졌던 시기다. 중국에서 오롤리데이 캐릭터와 상표권을 등록하고, 대형 백화점에 오롤리데이의 매장까지 열었던 사건.
공중파 뉴스에도 등장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이 사건과 동시에 오롤리데이라는 브랜드가 시작한 것은 '비해피어' 캠페인이었다. 한국의 작은 브랜드를 몽땅 카피해 중국의 자본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며 고객으로서 분노하고 있던 와중에, 당연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국제 소송까지 가야 하는 위기 상황에 그럼에도 '더 행복하자'고 말하는 브랜드. 오롤리데이가 행운보다 행복을 선택하자는 메시지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과정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고 지칠만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오롤리데이와 롤리님의 현재가 더욱 소중하게 와닿았다.
융: 다능인하면 떠오르는 사람들 중에 롤리님이 있었어요. 인터뷰를 하게 돼서 영광이에요. 사이더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롤리: 좋아하는 게 많고, 추진력이 뛰어나서 항상 새로운 일을 벌이고, 그 일에 치여서 사는 롤리입니다. (웃음)
융: 하하. 진짜 어떻게 이 일을 다 하지? 생각한 적이 많거든요. 오롤리데이 대표이자 밑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상계동에 공간도 하셨고. 언제부터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했어요?
롤리: 그냥 태어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산만한 거죠. 하나에 진득하게 집중하기보단 국어 공부하면서 수학 생각하고, 수학 공부하면서 영어 생각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닌 대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순간 에너지가 세게 나와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심적으로 힘들어지면 에너지가 방전이 돼서 좋아하는 일까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균형을 찾는 여정에 있어요.
융: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건 빠르게 찾은 편이세요?
롤리: 네. 10대 때 방황한 게 출발점이었죠. 제주도 시골에서 자랐는데, 고등학교 때 제주시로 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시골에서 늘 1,2등 하던 학생이었는데 제주시에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한 학년에 450명 정도가 되는 꽤 큰 학교에 50등 안으로 입학을 했는데, 첫 시험에서 150등 밖으로 떨어졌어요. 그리고 그게 1학년 내내 가장 좋은 성적이었죠(ㅎㅎ)
아주 강한 패배감 같은 걸 느꼈고, 어렸을 때 부터 늘 무언갈 주도적으로 해왔던 아이라 곤두박질치는 성적에 모든 의욕을 다 잃어버렸죠. 그때 사춘기가 온 것 같아요. 설상가상으로 집안 형편도 엄청 어려워지면서 큰 방황이 시작됐어요. 어느 날 친구가 “너는 대학교 어디 갈거야? 무슨과 가고 싶어?” 라고 묻는 질문에 머리가 띵해졌어요. 그 전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거든요. 그래서 떠올린게 중학교 때 정말 흠뻑 빠졌었던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예요. 그걸 보며 인테리어디자이너의 꿈을 꿨었던 시절을 떠올렸죠.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그럼 본인이랑 같이 미술학원을 다니자고 하더라고요. 입시 미술을 해야한다고요. 그래서 친구 손에 이끌려서 미술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시간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부터 목표가 명확해졌어요. 홍대를 가야겠다고 결심하니까 손을 놓았던 공부도 다시 재밌더라고요.
융: 도달하고 싶은 지점을 찍으면 거길 향해서 달려가는 타입인가 봐요.
롤리: 목표치, 해야 하는 이유, 재미가 생기니까 갑자기 공부가 잘되더라고요.
융: 10대 때도 주체적인 사람이었나봐요. 롤리님은 자기 자신을 잘 믿어주는 편인 것 같아요.
롤리: 나를 믿을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부유한 집이 아니었고, 두 분 다 자영업 하시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복잡한 일이 많았지만 항상 저에 대해서는 믿음을 주셨어요. 제가 17살 때부터 독립을 했거든요.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융: 17살 때부터 독립한 거면 진짜 일찍 했네요.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롤리: 많았죠. 집안 형편이 계속 안 좋아져서 1년마다 자취방을 옮겼는데 돈이 없으니까 점점 안 좋은 방으로 갔어요. 해 안 드는 방. 벽에 곰팡이가 있는 방. 샤워실이 없는 집.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취방에 강도가 든 적이 있었어요. (자세하게 말하면 다들 너무 무서워 할 것 같아 생략할게요.)
결론은 용기있던 여고생이 그 강도와 싸워서 이겼고, 몇 달동안은 충격에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건이 저의 삶을 하나도 건드리진 못했어요. 생각해보면 이런 무섭고 끔찍한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은게 참 다행히라는 생각이 들어요.
융: 아… 별일 없었던 게 다행이에요. 그 자체로 충격받고 그 안에 매몰될 수도 있는 상황 같은데요.
롤리: 직접 겪은 일이고, 정말 무서운 일이었는데, 제가 아무렇지 않은게 신기해서 저도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나는 왜 이런 일에 초연할까. 생각해보면 이 일 말고도 저에게는 큰일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제가 피하지 않고 그 일들과 맞서 싸웠기 때문에 에피소드로 그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비가 올 때마다 나를 책임질 사람이 나니까, 이걸 어떻게든 헤쳐나가야지 하고 극복했어요. 상담 프로그램을 받아도 제가 ‘회복 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융: 17살 때부터 독립하면서 혼자서 계속 부딪혀야 했던 시간들이 내면에 근육을 키웠을 것 같아요. 얼마나 고단한 과정이 있었을까 싶어서 짠하기도 하고 정말 멋져요.
롤리: 극복하는 힘을 타고난 걸 수도 있겠지만,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길러진 것 같아요.
융: 원남동에서 오롤리데이 카페 하고, 상계동에서 건물을 사서 운영하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일을 많이 할 것 같거든요. 일을 벌일 때 두려움은 없어요?
롤리: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두려움이라고 안 느끼는 것 같아요.
융: 롤리님에게 두려움은 뭐예요?
롤리: 누군가에게 이유없는 미움을 받거나, 제가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실망시키는 게 가장 두려워요. 사업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오롤리데이는 이슈가 많았어요. 최근에 중국에서 오롤리데이를 크게 카피한 사건도 있었고. 인스타그램 해킹당한 적도 있고. 이런 일들은 어렵고 힘든 일이어도 해결점이 분명해요. 해결점이 있으면 별로 두려움을 안 느끼는 것 같아요. 반면에 관계는 한 번 실패하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누군가와 미묘한 마찰이 생겼을 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융: 중국에서 너무 크게 카피를 해서 저도 화가 나더라고요. 불안하고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중심을 단단히 만드는 롤리님만의 비법이 있어요?
롤리: 당연히 스트레스는 받아요. 하지만 그 스트레스를 불행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불안과 불행은 결국에는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릿속에서 작은 생각에서 출발해서 생각을 키우다 보면 멘탈이 흔들리고, 그럼 이성을 챙길 수 없는 상황까지 오고요.
그런데 이런 일일수록 이성을 챙겨야 하잖아요. 이성을 챙기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건 나와 우리 팀이고요.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해요. 제가 중심을 잡아야 함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침착하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니 보기만큼 큰일이 아닌 거예요.
융: 여러 가지 일을 지금 하고 계시잖아요. 그 일들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고 계세요?
롤리: 솔직히 지금은 균형을 잘 못 잡고 있는 것 같아요. 2020년부터 오롤리데이를 개인 브랜드가 아니라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성장하고 있는 회사에서 여러 일들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할 일은 많거든요. 마음이 커도 에너지와 체력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으니, 1년 동안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몇 주 전 토요일에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하루를 보냈어요. TV 보고, 밥 먹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오랜만이니까 행복했어요.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 되니까 초조하고 압박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자책하게 되더라고요. 전날에 방탕하게 논 것도 아니고, 집에서 하루 쉰 거 가지고요. 쳐내야 하는 일이 많은데 하루를 낭비했다는 생각에 내가 싫어지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현재 내 상태가 건강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점검할 때란 생각이 들어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늘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방향을 수정하고를 반복해요. 밸런스를 어떻게 찾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매번 실패하는 것 같아요.
융: 일직선이 아니어도 이렇게 저렇게 곡선을 그려가면서 잘 찾아가고 계신 것 같아요.
롤리: 많이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내가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점점 선명해지는 결론은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일을 벌일 거란 말이에요. 성격상 한 가지 일만 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 여러 일의 갈래를 하나의 더 큰 줄기로 만들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융: 와. 저에게도 엄청 필요한 조언이자 인사이트네요.
롤리: 오롤리데이는 확장성이 있는, 범주가 없는 브랜드로 키워나가고 싶어요. 범주가 없는 브랜드로 키우려면 내 에너지를 집중해서 써야 하는데 카페를 하거나 빵집을 하거나. 본질에서 살짝 떨어진 일을 벌이니까 제가 제 풀에 지치더라고요. “이 일을 왜 하지?” 질문을 계속 던져요. 왜라는 질문을 자꾸 던져도 처음에는 재밌어서 잘 몰라요. 재밌으니까!라고 답하다가 재미가 꺾이는 순간 답을 못해요. 우리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재밌는 일은 잘하지만 꾸준히를 잘 못하잖아요.
융: 네 너무 공감해요.
롤리: 그런데 저는 오롤리데이가 단 한 번도 재미없었던 적이 없어요. 8년째 하고 있어요. 제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반문을 해봤어요. 이 일이 얼마나 재미 있으면 이렇게 질리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오롤리데이라는 브랜드는 가치적으로 저의 인생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계속 재밌는 것 같아요. ‘행복’을 중심에 두는 캠페인 이야기를 좀 많이 하고 싶어요.
융: 그래서 “범주가 없는 브랜드"라는 게 더 와닿아요. 롤리님도 그래서 계속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고요. 안 그래도 “비해피어” 캠페인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중국 카피 이슈가 뉴스에 나올 정도로 위기 상황이 컸는데 그때 오롤리데이가 메시지를 던진 게 행복을 선택하자는 “비해피어” 캠페인이었어요. 그 대비가 인상적이었어요. 진정성도 느껴졌고요. 롤리님이 행운보다 행복을 더 중요시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롤리: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제 인생에 불행할 이유가 많았거든요. 한 번도 인생이 안정적으로 굴러갔던 적이 없어요. 아기 때부터 이사도 많이 다녔고. 부모님이 자영업 하다가 실패하면서 빚쟁이들도 쫓아오고. 부모님이 힘든 걸 많이 보고 컸고, 저에게는 자꾸 이상한 사건 사고가 터져요. 그런데 놀랍게도 저는 제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왜일까 생각해보면, 불행한 일들 속에서도 저는 작은 행복을 많이 발견하고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융: 또 뭔가 뭉클해져요.
롤리: 타고난 낙천성도 있겠지만 많이 노력했어요. 20대 초반에는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는데 그때도 스스로 극복했어요. ‘내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라는 생각이 경험을 통해 많이 쌓인 것 같아요. 너무 힘들면 상담을 받을 수 있지만, 그걸 찾아가는 것도 나, 상담 후에 삶에 적용하는 것도 나잖아요.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어요. 행복을 내 삶에서 찾는 건 주도적인 거예요. 남이 찾아주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비해피어" 캠페인은 오롤리데이가 말하는 행복을 어떻게 더 확장시키고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만든 캠페인이에요. 힘든 상황일지라도 꽃 하나 보고 잠시라도 웃을 수 있게끔 행복에 대한 인식 변화를 시켜보고 싶었어요.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비해피어 캠페인을 수십 년 장기간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최근에 팀 회의하다가 우리의 문제점을 찾아냈죠.
융: 앗. 뭐예요?
롤리: 우리가 너무 행복한 이야기만 계속하는 거예요. 인생이 힘들어 죽겠는 사람에게 ‘해피어가 될 수 있어. 행복은 주변에 있어’ 이렇게 얘기하면 잘 안 들리는 거죠.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누구예요?
융: 슬픔이요.
롤리: 그런데 왜 우리는 슬픔에 대해선 얘기를 안 했을까. 분노와 슬픔을 왜 무시했을까. 머리를 땅 맞은 것 같았어요. 슬픔이가 슬퍼서 울고 있는데 조이가 와서 행복하라고 하면 꿀밤 때리고 싶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같은 거예요. 저의 이런저런 힘들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 제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메시지가 완전히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행한 얘기를 굳이 막 끄집어낼 필요는 없지만,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를 먼저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계속 우리의 문제점을 찾고 보완해가는 과정이에요.
융: 해피어 캠페인은 기부도 하잖아요. 그것도 수익의 일부가 아니라 매출의 일부를요. 파타고니아 같은 멋짐이었어요. 기부를 결심한 이유가 있어요?
롤리: 국가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아이들은 18세까지밖에 지원을 못 받아요. 스무 살 되면 복지센터를 나와야 하거든요. 성인이 될 준비도 안 돼 있고, 모아둔 돈은 당연히 없는데도요.
융: 롤리님은 이걸 어떻게 이렇게 잘 아세요?
롤리: 저는 부모님이 있었지만 고등학생때 집안이 쫄딱 망했어요. 용돈이란 개념도 없었고, 보일러 한 번도 못 튼 야외보다 더 추운 자취방에서 보내야 했던 겨울도 있어요. 저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였던 거예요. 복지혜택을 받을 루트가 없으니 추운 방에서 덜덜 떨면서 차가운 물로 머리 감는 게 당연했어요. 저 같은 아이를 찾아서 도와주고 싶다는 게 첫 번째예요. 기부할 때 기부처나 목적성이 명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익금을 기부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그럼 금액도 적어지고 투명성도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깔끔하게 매출액의 2%를 기부하기로 정했어요. (좀 많이 부담이 되긴 합니다..하하)
융: 기부 내용 보고 놀랐거든요. 이 좋은 이야기가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서 끌어내고 싶었어요.
롤리: 중국에서 카피당한 이슈는 크게 퍼졌는데, 기부는 알리기가 힘들더라고요. 알리기 위해서 한 일도 아니고요.
융: 선한 영향력의 사례로 더 넓게 퍼지면 좋겠어요. <행복 사전>도 만들려고 하시잖아요. 여러 사람을 참여시켜서 만들려는 이유가 있어요?
롤리: 오롤리데이는 작은 행복이 소중하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도 정의도 다르잖아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이야기를 듣고 담고 싶었어요. 행복이 워낙 추상적인 개념이다보니 어려워서 조금 더 가시적인 요소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행복이 아카이빙 되는 작은 사전인 개념인거죠! 저희 정말 행복에 진심이지 않나요? ㅎㅎ
융: 슬픔이를 발견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가 기대돼요. 저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롤리: 혜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서 그래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서.
융: 맞아요. 저도 실은 여러 가지 일이 있었거든요. 극한의 슬픔을 겪어봤다고 생각해요. 롤리님고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가 하는 말만 들으면 가벼워 보일 수 있잖아요. 제가 “초록색만 보면 행복해진다”라고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 말을 하기까지의 히스토리를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나는 내 역사를,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과정을 다 알고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아까 슬픔이 이야기에서 소름이 끼쳤어요. 해피어 캠페인은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어요?
롤리: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르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삶에 침투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오롤리데이는 모르더라도 대체로 작은 행복함을 찾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에요. 행복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전도하는 개념이면 좋겠어요.
융: 저는 행운보다 행복에 집중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행운은 단편적이고 한 번의 결과에 집중하는 느낌인데 행복은 과정인 것 같거든요. 우리 인생이 멈춰있는 게 아니라 계속 흐르잖아요. 저는 해피어 캠페인 이후에 의식적으로 네 잎 클로버보다 세 잎 클로버 이모티콘을 쓰게 되더라고요.(웃음) 럭키 < 해피 이게 너무 좋아서요.
롤리: 생각해보면 불행할 일이 많았어도 행복을 선택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융: 롤리님의 몰랐던 이야기가 많아요. 10대 때부터 독립해서 계속 부딪히고 다시 도전하고를 반복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얼핏 보고 “저 사람 운이 좋네” 이렇게 퉁쳐버리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저는 ‘운이 좋다’라는 한마디로 과정을 평가 절하하는 것에 반감이 있어요. 당연히 운이 좋은 것도 있었겠지만, 본인이 쌓아 놓은 게 있으니까 그 운빨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롤리: 노력하지 않으면 행운은 오지 않죠. 그런데 이런 질문도 자주 들어요. “롤리님은 맨날 그렇게 행복해요?”라는 질문이요. 저는 지치지도 않고, 에너지가 항상 넘치고, 매일 행복한 줄 아는 데,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저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신기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오롤리데이와 내가 너무 단면적인 모습만 보여왔나, 란 생각도 들었어요.
융: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롤리님의 원동력은 뭐예요?
롤리: 멈춰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해변가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으면 파도에 올라타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크든 작든 일단 올라타 보고 싶은 마음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일을 할 때 확실히 에너지가 많이 생기고, 그 에너지가 다른 일에도 부스터 역할이 되어줘요.
융: 사이더들은 다 공감할 것 같아요.
롤리: 나는 왜 이러지, 이런 생각도 많이 했는데요. 가만히 있는 나 자신을 잘 못 봐요. 파도에 올라탄 순간이 제일 재밌는데 파도가 잔잔해지면 또 흥미가 떨어지는 거예요. 어떤 일을 할 때 에너지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시작할 때 저는 80~90%를 쓰는 거죠. 그래서 이제 방법을 찾은 게 오롤리데이의 대표니까 제가 앞을 뚫으면 함께 해줄 동료들을 찾는 거죠. 시작은 약해도 끝으로 갈수록 강해지는 사람도 있고, 정말 꾸준한 사람이 있고.
융: 파도를 같이 항해할 사람을 찾는 거네요.
롤리: 우리 팀원들도 다양한 성향이 있거든요. 저는 누군가에게 불을 지펴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이들을 설득시키면 팀원들이 움직이는 거죠. 혼자서 뭘 하기보다는 팀으로 움직이고, 팀이 균형을 찾을 때 저도 제 삶에 밸런스가 찾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융: 범주가 없는 브랜드라는 것도 기대돼요.
롤리: 처음에는 문구로 시작했어요.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카테고리가 하나씩 붙고 진화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 오롤리데이 작품이 옵션까지 다 해서 700가지가 넘어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브랜드가 되니까 콘텐츠도 만들기 시작했어요. 왜 제품과 콘텐츠를 만드는지 WHY를 던지다 보니 그 끝엔 행복이란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오롤리데이 유튜브 댓글에 우리가 제품 회사인지 콘텐츠 회사인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어요. 누군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제품이든 콘텐츠든 커뮤니티든 공간이든 범주는 상관이 없어요. 수단과 방법은 상관이 없고 목표만 있는 거예요.
융: 브랜드도 진화하고, 롤리님도 그에 맞춰서 진화한 것 같아요.
롤리: 빠르게 변화하고, 실패하고, 시도하다 보니까 진화가 빠른 게 강점이에요. 경험만한 통찰이 없는 것어요. 내 몸에 부딪히는 것만 한 영감은 없어요. 모든 게 다 변할 거라면 빠르게 좋은 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좋지 않을까요.
융: 사이드 단골 질문이에요. 롤리님이 알을 깨고 나왔던 시기는 언제예요?
롤리: 17살 때부터 혼자 살면서 알 아래서 발버둥 쳤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무조건 착한 아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가면이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 가정이 붕괴되면서 너무 슬펐지만, 학교에서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집에서 울고 그랬거든요. 그게 몸 안에 상처로 쌓여 있다가 터진 시기가 21살 때예요. 그때 터진 트리거는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였어요. 내가 유일하게 가면 뒤의 모습도 보여줬던 사람이 떠나는 걸 겪으면서 처음에는 단순히 이별해서 힘든 건 줄 알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힘들었던 것들이 내 안 깊숙이 숨어있다가 한꺼번에 터진 시기 같아요.
괴로운 시기에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때 한 권의 책을 봤어요. 그게 <시크릿>이에요. 그 책을 읽고 생각 전환을 했어요. 긍정적인 걸 만들어가는 것도 나고, 내 안에서 계속 주문을 걸다 보면 좋은 일이 다가올 거라는 말을 믿기 시작했어요.
또 다른 책에서 매일 밤 자신에게 편지를 쓰라는 말이 있었어요. 제3의 인물이 돼서 나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친구가 나랑 같은 상황에 있다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상상하면서 매일매일 나에게 편지를 썼어요. 몇 주 썼을 거예요. 쓰고 자면 다음 날 에너지가 조금 올라와 있어요. 이만큼 차고, 차고 하다가. 어느 날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드는 거예요. 22살이 된 새해에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그때가 알을 깨고 나온 시기에요. 그때부터 더 본격적으로 주도적으로 살기 시작했어요. 학회장도 하고, 전액 장학금 받고. 삶에서 제일 열심히 살았던 시기예요.
융: 지금도 열심히 살고 계시잖아요. 내가 나를 믿어줬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 있죠. 이게 되네? 하는. 지금까지 롤리님이 살아온 방식에서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 앞으로 할 일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든다면 어떤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을까요?
롤리: 그게 비해피어(be happier)일 것 같아요. 행복해지는 건 나의 의지고, 해피어를 만드는 건 본인밖에 없어요. 그래서 밑미에도 뛰어든 거예요. 궁극적인 메시지가 통하니까요.
융: 며칠을 연달아 쉬지는 못해도 중간중간 몸과 마음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어요?
롤리: 관리라기보다는, 제가 힘든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었던 건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이에요. “왜"가 정말 중요해요. 일을 할 때도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어요. 질문이 제가 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 같아요. 질문하는 삶이 건강한 삶인 것 같아요.
융: 좋은 질문은 인생의 방향을 더 좋게 만든다는데 동의해요.
롤리: 모든 게 변하는데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멈춰 있거나 도태되기 쉬워요. 멈춰있는 것도 본인이 선택한 거면 상관이 없어요. 그 선택도 질문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니까요. 결국 모든 게 내 선택이고 얼마나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사느냐가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 같아요.
융: 앞으로는 어떤 걸 해보고 싶어요?
롤리: 당분간 오롤리데이에 딥 다이빙하고 싶어요. 지금 저는 오롤리데이가 너무 재밌어요. 같이 일하는 팀원들을 많이 아껴요. 이런 사람들과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사이드 일보다는 여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융: 마지막으로 사이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롤리: 다능인이라고 해도 정확하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방황할 때 있거든요. 다 좋아서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어렵고, 그래서 한 분야를 디깅 해서 흠뻑 빠져 있는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었어요. 내게 진짜 중요한 것.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가볍게 해야 할 것. 처음에는 잘 구분을 못했는데 지금은 조금 알게 되었어요. 이것도 결국 경험에서 오는 거니 많이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모든 게 다 내 삶의 데이터베이스가 돼요. 내 안에 얼마나 데이터베이스가 견고하게 쌓이느냐가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인 것 같아요.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사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걸 수도 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 두려움을 얼마나 잘 타파하느냐가 경쟁력이에요. 시도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있어도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건 똑같아요. 머릿속에 있는 고민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일단 그냥 해보세요. 요즘엔 빨리 그만둔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세상이 아니거든요.
이미 이것저것 많이 하고 있는 분들은 저처럼 질문을 많이 해보세요. 질문을 통해서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뭔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계속 물어보는 작업이 필요해요. 저도 계속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서 이제 조금 내가 해야 될 일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백세시대에 앞으로 살 날이 많잖아요. 많이 부딪혀보고, 실패해 보고. 결국엔 많이 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Drawing for SIDERS
인터뷰를 하다가 받은 대답이 나의 개인적인 고민에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롤리님과의 인터뷰가 그랬다. 자기 사업은 물론 새로운 사업에도 발을 들이고, 위기 상황에도 브랜드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나가며 여러 일이 몰리는 상태를 겪은 후 몇 발짝 더 나아가본 사람의 이야기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 사이더들에게 좋은 레퍼런스다.
여러 개의 작은 갈래를 커다란 하나의 줄기로 만들고 싶다는 말도,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 같은 시기가 오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방향 설정을 하면 된다는 말도 도움이 되었다. 빠르게 실패하고, 시도하고를 반복하다보면 내가 가고 싶은 길에 가까워진다. 나의 현재가 헷갈리는 시점이 오면 내가 나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롤리님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고 싶다.
한 번의 행운보다 여러 개의 작은 행복을 믿는 사람. 이 말은 바꿔 말하면 한 번의 불행에도 휩쓸리지 않는 태도와 강단을 가졌다는 말이 아닐까. 오롤리데이의 브랜드 가치관을 온전하게 담고 있는 비해피어 캠페인이 앞으로 사람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지 기대가 된다. 찾기 힘든 네잎 클로버 하나보다 예쁘게 피어있는 여러 개의 세잎 클로버를 보며 미소 짓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자고 한 번 더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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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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