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다니다가 프랑스로 떠나 요리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돌아온 사람이 있다. 현재는 다시 의사가 될 준비를 하며, 자취 요리를 프랑스식으로 플레이팅까지 신경 써서 차려 먹는다. 2015년에는 <한 입이어도 제대로 먹는 유럽 여행>을, 최근에는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썼다.
이재호. 내 초등학교 동창이자 의사, 요리사, 작가인 친구.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의 작가가 되어 책 때문에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내가 재호의 인스타 라이브 북토크에 게스트로 초대되며,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전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궁금했다. 의사와 요리사. 어쩌다가 이 달라 보이는 두 영역을 깊숙하게 탐험하게 된 걸까? 여러 가지를 묻던 나는 대화를 하다 말고 양해를 구하고 녹음기를 켰다. 그의 이야기는 나만 듣기에는 아까운 것이었으니까.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세계를 파고들게 되었던 배경을 들으며, 가끔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했다.
의사이자 요리사이자 작가
융: 요리 학교에서는 “의대 다니다가 온 아이"로, 의대에서는 “요리하다가 온 아이"로 불린 게 재밌었어요. 언제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재호: 좀 황당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저는 원래 공대에 다녔어요. 실험을 많이 하니까 가운을 입고 다니는데 동기들이 “앗. 너는 의사하면 잘 어울리겠다" 이러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그런가? 하고 넘겼는데요. 실은 원래 가고 싶었던 대학을 못 가고 성적에 맞춰서 공대에 들어간 거였어요. 그래서 마음속에 불만이 있었죠, 오고 싶었던 곳이 아니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한 채로 보내던 어느 날. 오전 수업에 늦어서 병원을 관통하는 지름길로 뛰어가고 있는데, 의사 세 명이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근데 그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면서 그날로 학교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융: 와. 그날로요? 신중해 보이는데 즉흥적인 면이 있나 봐요.
재호: 네, 제가 그래서 대학을 22살에 갔어요.
융: 그럼 프랑스는 언제 간 거예요? 의대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도전이었을 텐데, 의대에서 프랑스 요리 학교는 또 완전 다른 이야기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흘러갔어요?
재호: 그러게요.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정말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삶이 말로 정리하는 게 어렵긴 한데요, 의대를 꿈꾸며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공부하는 도중에 영장이 날아오더라고요. ‘아, 내가 수능 못 보면 군대에 끌려가겠다' 싶어서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게 21살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시험이 끝나니까 공부가 하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막상 의대에 들어가서는 공부를 별로 안 했어요. 계속 성적이 안 좋다가 유급을 당했죠.
융: 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요. 그래서 휴학하고 요리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
재호: 휴학이 아니라 유급이 나오면 학교를 쉬어야 해요. 제가 쉬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웃음) 학기가 12월에 끝나고, 그다음 학기가 9월에 시작했거든요. 거의 1년을 쉬어야 했어요.
인생에 할 일 없는 공백이 처음이었어요. 사람들을 마주치기 싫어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에서 열두 시간 넘도록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파리로 도망쳤어요. 제 소식이 닿지 않을 곳으로.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으로.
그때는 사 먹는 건 관심 많았는데 요리는 안 했어요. 우연히 프랑스 요리와 사랑에 빠져서 돈을 모아서 힘겹게 사 먹곤 했는데, 파리에서는 널린 게 프랑스 음식이라 좋았죠.
<퇴사는 여행> 읽으면서 공감했던 것 중에 융이 스쿠터 타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저도 24살에 갑자기 스쿠터에 대한 로망이 생겼어요. 그래서 유럽을 스쿠터로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알아보니 국제 면허증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 면허를 따야 했어요. 따야지 하고 갔더니 스쿠터도 한 번 안 타봤다는 말에 면허 학원에서 “그럼 이거 못 따요. 합격률 10% 예요.” 이러면서 포기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도전해서 땄죠.
즐겨 타던 재호의 스쿠터
융: 와, 이건 또 새로운 얘기네요. 파리로 도망쳤을 때는 목표를 가지고 간 게 아니었어요?
재호: 네 아니에요. 그냥 진짜 놀았어요. 책에는 생략이 되어있는데요. 요리학교는 파리에서 놀고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알아보고 준비해서 나간 거예요.
원래는 스쿠터를 타고 프랑스를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스쿠터를 빌려서 파리에서 시골에 가니까 영어가 안 통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불어를 못 해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밤에 다시 파리로 돌아갔어요. 하루에 200km 넘게 스쿠터를 탄 날이었죠. 대신 두 달 정도 파리에서 살면서 곳곳을 스쿠터 타고 돌아다녔어요.
융: 그때의 경험이 첫 책인 <한 입이어도 제대로 먹는 유럽 여행>으로 나온 거죠?
재호: 아, 그건 아니에요. 그때의 경험을 원래는 책으로 내려고 했어요. 파리 스쿠터 여행기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원고를 절반 정도 썼는데, 제가 연애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어렸을 때라 일과 사랑의 균형을 잘 못 맞췄던 것 같아요. 연애하느라 원고 마감일을 계속 넘기다가 결국 흐지부지돼버렸어요.
융: 현실적인 이야기네요. 그럼 <한입이어도 제대로 먹는 유럽 여행>은 어떻게 내게 된 거예요?
재호: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긴한데. 20대에는 20대가 끝난다는 게 많이 불안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은데 내 20대가 왜 벌써 끝나가지. '나는 20대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20대가 끝나기 전에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29살에 낸 책이 <한입이어도 제대로 먹는 유럽 여행>이에요. 20대에는 맛집 찾아다니는 걸 정말 좋아했으니까, 뭐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요. 그때는 완전히 몰입해있었고 그게 제 전부 같았어요. 단순히 좋아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내가 이 분야에서는 정점을 찍었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달까요. 28살부터 1년여간 준비하고 여행한 것을 기록한 거예요. 운이 좋게도 원고를 처음 들고 간 출판사와 연결이 되었어요.
융: 생각보다 요리를 시작하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네요. 두 번째 책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먹기'가 아니라 ‘요리'가 주제잖아요. 프랑스 요리를 먹는 걸 좋아하는 거랑 “내가 직접 해볼까?”는 큰 점프 같아요.
재호: 한국에 돌아와서 제일 생각한 건 공부를 해야겠다는 거였어요. 불어를 못 해서 답답했거든요. 다음에 프랑스에 다시 가면 말이 통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프랑스 식당을 더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프랑스 요리를 좋아한 지는 10년이 넘은 것 같아요.
제가 서울에 계속 있었으면 요리할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 부산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많지 않았어요. ‘없으니까 만들자’였던 것 같아요. 그냥 흘러온 거라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요.
르꼬르동블루에서 출판한 책으로 집에서 처음부터 따라 해서 만들어봤어요. 그때 요리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요리사를 꿈꿨죠.
융: 그때는 또 의사보다 요리사가 더 되고 싶었어요?
재호: 네. 사람 인생이 그래요.
프랑스에 다시 가서 요리를 배울 생각을 하니까 군 문제를 해결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20대 후반에 군대에 가게 됐어요. 군대 가기 전 부모님하고 떠난 여행에서 “학교 그만두고 요리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군대를 갔어요. 그런데 의대를 다녔다보니 의무병으로 배치가 된 거예요. 군병원에서 2년 동안 환자를 봤는데, 생각보다 이것도 적성에 안 맞는 게 아니더라고요.
융: 진짜 이야기가 계속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네요. 병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시작이 요리하기 위해서였잖아요. 그런데 또 막상 의사로서의 일이 적성에 맞았던 거죠?
재호: 네. 웃기지만 생각보다 손기술이 없지 않고, 공부가 힘들지만 의미 있는 직업이구나. 군대에서 깨달은 거죠. 그리고 환자들이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융: 잘 어울려요. 세심하고 다정한 면이 있으니까요.
재호: 제가 잘해주고 친절하다고 저 근무하는 날에만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래서 ‘잘 맞는구나' 알게 되고.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기는 아까운데 요리하고 싶은 열정은 남아있고. 만약 안 하면 30~40대가 돼서 요리하러 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왕 마음먹은 거 계획대로 요리학교도 다녀오고, 의대로 복학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군대에 있으면 국가에서 지원하는 온라인 강좌를 무료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2년 동안 근무 시간이 끝나면 불어 공부를 했어요.
융: 와. 되게 알차게 발전의 시간으로 썼네요?
재호: 네. 핸드폰 이런 게 없으니까 단절이 돼서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쉬는 시간에 불어 공부하고, 자기 전에 책을 읽었어요. 그래서 저는 군 생활이 제 인생 터닝 포인트 중 하나였어요. 물론 안 좋은 기억도 누구나처럼 가지고 있죠. 하지만 저도 감성적인 면이 큰 사람이라서요. 일단 군부대가 다 시골에 있잖아요. 포천에서 밤에 근무 서다가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쏟아지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터닝 포인트였던 이유는 사회에 있을 때는 책을 읽어도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았어요. 자기 계발서나 베스트 셀러. 그런데 군대에 있으니까 어차피 이 시간엔 뭘 해도 나에겐 보너스다 싶더라고요.
융: 오히려 이미 잡혀있는 시간이니까요. 재밌는 개념이네요.
재호: 네, 어차피 뭘 못하니까요. 군대 안에 있는 도서관 책만 읽을 수 있으니 장르 불문하고 언젠가 시간이 나면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었어요. 군주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휴가 나오면 책 사서 들어가고, 밤 10시에 소등하면 저는 독서 등을 켜고 책을 읽었어요. 군대가 640일 근무인데 그때 매일 일기를 썼어요.
융: 원래도 매일 일기를 썼어요?
재호: 아니요. 지금은 인스타그램을 하죠. 그땐 핸드폰이 없으니까 쓰게 되더라고요. 수첩으로 여러권을 가지고 있어요.
융: 계속 이야기 들으면서 재밌는 게 부족한 상황에서 얻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군대를 다녀와서 ‘나'에 대해 더 알게 된 게 있어요?
재호: 사회에 있으면 핸드폰을 정말 많이 만져요.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신경 쓰게 되고요. 그런데 핸드폰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도 괜찮다고 느꼈고요. 그때는 경쟁할 게 없으니 진짜 하고 싶은 걸 했던 것 같아요.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제가 글 쓰는 걸 되게 좋아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죠.
융: 그럼 군대를 다녀와서 요리학교에 들어간 거죠?
재호: 맞아요. 정작 요리학교에 갈 때는 또 요리사할 생각이 없었지만요. 군대에 있는 동안 열심히 준비했으니 전역하고 바로 갈 수 있는 요리학교를 찾았어요. 전역하고 일주일 뒤 바로 시작하는 곳이었어요. 저는 중간에 쉬고 싶지가 않아서 바로 갔어요.
원래 1년 과정인데 ‘인텐시브'라고 해서 외국인들은 반년 만에 끝내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현지 학생들보다 수업이 두 배로 많아서 바빴지만, 빨리해야 체류비도 줄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으니 이 프로그램을 들었어요. 잘 다녀온 것 같아요.
융: 불안한 적은 없었어요?
재호: 매일 불안했죠. 처음에 유급 당하고 공부 같이 시작한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게 불안했어요. 후배들하고 공부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고요. 당연히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죠. 그 불안함을 극복하진 않았어요. 그냥 ‘어쩔 수 없다' 였죠. 모든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융: 오히려 자기만의 길을 찾았네요.
재호: 그렇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융: 만약 유급 안 당하고 순탄하게 흘러갔으면 어땠을까요?
재호: 그럼 재미없지 않았을까요? 근데 언젠가 뭔가 사고를 쳤을 거예요. 사람의 성향이란 게 있으니까요.
융: 유급이 제동을 걸어준 거네요.
재호: 그렇죠. 인생의 태클이죠. 너무 괴로웠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길로 가게 된 게 재밌어요. 20대 때는 많이 불안하니까 “너는 안돼"라고 저를 가로막는 벽이 생기고, 저에게 어떤 시간이 주어졌을 때, ‘이 시간을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엄청나게 했어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흘러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커피 배우고, 요리하고, 와인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의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거 아무리 해도 나중에 열심히 공부하면 돌아갈 곳이 있고, 안정적인 직업이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겐 인생의 보험 같은 거였어요.
융: 의사는 계속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재호: 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남궁인 작가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돌아올 곳이 있어서 열심히 방황했다고요. 저도 비슷해요. 하고 싶은 거하고 나중에 꾹 참고 공부해서 버티면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 놓고 방황했어요. 어떻게 보면 좀 안전하고 비겁하게 방황한 것 같아요.
융: 아니에요. 그래도 모험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뭐였을까… 고민해보게 되네요. 그래도 그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못 먹여 살리지는 않겠지.’ 저는 오히려 방황하면서 찾은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를 전하는 능력이 있고 그 일을 좋아한다는 걸 방황하면서 깨달았어요. 누군가 혹은 어떤 것의 반짝거림을 발견하고 알려주는 일. 그게 저에게 있었다는 걸 처음엔 몰랐던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뭐가 될지 몰랐어요.
재호: 생각보다 방법은 찾으면 생기죠. 흘러가게 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저에게 “딴짓을 하고 싶으면 면허 따고 하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하길 잘했다 싶은 건, 사람이 어느 하나의 직업을 갖고 안정적으로 되면 마음이 바뀔 수 있잖아요. 특히 의사란 직업은 존경받는 직업이라서 제가 만약 면허를 땄으면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했던 일들은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몸을 낮춰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19살, 20살에 레스토랑 서빙부터 시작했거든요. 서빙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커피도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하루 12시간씩 서서 커피를 내리는 게 쉽진 않아요. 요리할 때는 설거지부터 했고요.
제가 만약 의사였다면 그걸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설거지하면서 괜한 자괴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요. 그때는 가진 게 없으니까 잃을 게 없어서 올인할 수 있었어요.
융: 아까 나눈 얘기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결핍이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재호: 공감해요. 인생에 힘든 일이 닥쳐도 그리 좌절할 것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시절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요. 이렇게 산 걸 후회하지 않아요.
융: 이렇게 살지 않았다면, 이 인터뷰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저도 다능인 사이더들을 보면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위안이 되고, 자극도 받고. 너무 재밌고 좋거든요.
재호: 어릴 때부터 적성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사람마다 적성에 맞는 게 있고,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저는 그 말을 오해했던 것 같아요. 게임처럼 사람마다 어떤 직업으로 가야하고, 하나의 특별한 재능이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살아보니 이것도 적당히 잘 맞고, 저것도 적당히 잘 맞고. 이것도 꽤 재밌고, 저것도 꽤 재밌더라고요.
인생을 살면서 단 하나의 직업을 찾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행운일 수도 있어요. “애매한 재능은 형벌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것저것 다 하고 싶으면 너무 괴롭다고요. 그런데 이것도 적당히 해보고, 저것도 적당히 해보니 인생이 되게 다채로워지더라고요. 삶을 더 재밌게 꾸려갈 수 있어요.
융: 이 얘기 들으니까 이번 책에서 읽은 부분 하나가 떠올라요. 받기 어렵다던 최우수 졸업장을 받아내고 스스로 ‘세상에, 내가 이걸 해내네'하고 놀랐던 부분이요.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거든요. 내가 못할 줄 알았던 일이 할 줄 아는 일이 되고. 내 테두리를 조금씩 넓혀갈 때 뿌듯했을 것 같아요.
받기 어렵다던 "Excellent"로 프랑스 요리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재호: 맞아요. 그 성취감에 계속 도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스쿠터 면허를 땄을 때도, 요리학교 최우수 졸업장을 땄을 때도, 책이 나왔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어요.
요즘에는 책 때문에 자꾸 새로운 기회가 뭔가 생겨요. 오늘 북토크 라이브 방송도 그렇고요.
융: 책을 내고 연결되는 느낌. 한 번 느껴보면 그건 진짜 다르죠.
재호: 저도 융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이 있어요. 뭔가를 함께 하자고 했을 때 “응"이라고 대답하는 친구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큰 힘이 된다고요. 읽을 때는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제가 이 인스타 라이브 방송 같이하겠냐고 물었을 때 융의 대답이 “응"이었거든요. 저에게 뭘 묻지를 않는 거예요. 아, 그럼 여기서 보면 어때? 질문에도 응.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를 확인하거나 되묻지 않고 “그래"라고 해주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 시간이었어요.
융: 제가 뭔가를 하자고 했을 때 친구가 “그래"라고 대답할 거란 걸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거죠. 그게 평소라면 안 하던 일도 해보게 만들더라고요.
재호: 신중하게 돌다리를 두드려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응" 이것도 되게 괜찮구나.
융: 그래야 재밌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양파를 볶으면서 출판사 공식 인스타 계정에서 북토크를 하는 건 처음이네요.
재호: 저는 책하고 음식이 별개인 줄 알았거든요. 음식은 요리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 책은 글 쓰는 자아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한입이어도제대로먹자 해시태그를 달아서 제 자취 요리를 올리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제 인스타를 보고 세미콜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어떻게 집에서 이렇게 해 먹는지 궁금하다고요.
재호의 놀라운 프랑스식 자취 요리 #한입이어도제대로먹자 해시태그로 들어가면 쭉 감상 가능하다
융: 그 자아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는 말이 너무 좋네요.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니까요.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누군가가 나를 궁금해하고, 기회가 연결될 때 너무 신기하죠. 그래서 내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사이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재호: 오늘 하고 싶은 일이 내일도 하고 싶으리란 보장은 없어요. 오늘 하지 않은 일은 평생 못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무엇이든 하면 흔적으로 남지만, 하지 않으면 후회로 남아요.
Drawing for SIDERS
재호와 디저트 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세미콜론의 인스타 라이브 북토크를 진행하러 갔다. 양파를 볶으며 북토크를 진행한 뒤 양파 수프를 끓여 먹었다. 수프를 빨아들여 촉촉해진 바게트를 입안에 넣는 순간 양파 캐러멜리제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재호의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던 재호의 요리였는데! 이렇게 맛있고 행복한 한 입을 만들고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왔을까.
20년 만에 만난 재호는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처럼 여전히 다정하고 착했지만, 지금까지의 여정이 보여주듯 생각보다 대범한 사람이었다. 인생의 흐름에 몸을 맡길 줄 아는 사람.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그 벽을 넘어가거나 다른 길을 찾아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사람. 의사가 되어도 요리도 계속하고, 글도 계속 쓸 거라는 재호의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것도 저것도 적당히 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재호는 자신의 책을 통해서도 이야기한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고 버티고 나아가려는 자신이 좋다고. 적당한 하루에 만족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라고. 매 순간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h.87_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