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휘는 솔로 전자 음악가 HWI로 활동하며, 음악 콜렉티브 박쥐단지의 리더이자 아티스트 콜렉티브 업체eobchae의 일원이다.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연출하고, 미술관에 작품을 거는 사람.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창작자.
다능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HWI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른 건 '현상이 유지되는 것'이라는 그의 표현이었다. 음악이 지겨워지면 미술로 도망가고, 미술이 지겨워지면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는 것. 힘을 주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 억지스럽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 한 해를 마무리하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HWI를 만났다.
모연: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HWI: 안녕하세요. 황휘입니다. HWI라는 이름으로 전자음악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때로는 영상도 만들고 미술 작업도 하는 사람입니다.
모연: 되게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렇게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HWI: 이유나 계기는 딱히 없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일찍부터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속으로는 음악가로서의 꿈이 있었어요. '죽기 전에 안 하면 안 돼' 이런 생각이 들어서, 결국에는 양쪽 다 하게 돼버린 거예요.
모연: '죽기 전에 안 하면 안 돼'라는 생각이 언제 드셨어요?
HWI: 미술을 전공하게 되면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속마음은 오랫동안 꽁꽁 숨겨왔었어요. 예체능 교육에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니까 엄마에게 더 이상 충격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웃음)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갔어요. 두 번째로 한 일이 조금 더 도전적이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압구정에 가서 SM 공개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한국 K-pop 시장이 정말 어린아이들부터 연습생으로 키우잖아요. 보통 초등학생 때 시작하는데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어요. '더 이상 더 늙고 나서 여기 오면 안 된다'라는, 18살밖에 안 됐는데 나이에 대한 압박을 가지고 들어갔죠. 사실 원했던 만큼 연습도 많이 못하고 갔어요. 될 대로 돼라, 일단 가보자, 이런 생각으로 갔어요.
모연: 그런 압박을 늘 실행으로 승화시키셨네요.
HWI: 그런 편인 것 같아요.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 첫 EP를 낼 때도 28살 때였어요. 그때도 마찬가지로 '20대 때 앨범 하나 없으면 안 된다' 이런 생각으로 냈어요.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원동력 삼아요.
HWI의 시작은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절박함. 연습을 많이 못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용기였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일단 가보는 것.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일단 움직이는 것. 그렇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시작해 왔다.
모연: 음악과 미술, 영상까지 여러 장르를 오가시는데, 이 장르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요?
HWI: 음악 하다가 현타가 오면 미술로 도피를 하고, 미술이 지겨워지면 다시 음악으로 도망을 오고. 이러면서 약간 박쥐 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이 양쪽의 생활을 병행하는 게 저랑 잘 맞아요. 서로가 서로의 도피처가 되어 주고 있어요. 꼭 연결이 된다기보다는 제가 그냥 편한 대로 오가는 것 같아요.
모연: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서 오히려 경계도 없고 자유로운 것 같네요. HWI님이 소속된 콜렉티브 ‘박쥐단지’도 생각나고요. 부담감이 적어서 그런 건가요?
HWI: 맞아요. '반드시 이걸 가지고 멋진 걸 만들어야 돼,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어'라는 마음이 저에게는 딱히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하고자 하는 걸 더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환경이에요.
미술관에서 좀 더 대중음악적인 작업을 할 때, 혹은 반대로 공연장에서 현대미술적인 퍼포먼스를 할 때, 서로가 간섭할 때 조금 더 재미있는 게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시도를 억지스럽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모연: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시나요?
HWI: 어떤 특정한 대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지는 않아요.
삶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작업을 통해서 해소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게 어떤 인권과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고, 환경 문제일 수도 있고, 정치 문제일 수도 있고. 그래서 영감의 대상은 그냥 일상이라고 하겠습니다.

황휘 HWI - La-ga-da-di-do
"박쥐 같은 삶." HWI가 속한 전자음악 콜렉티브의 이름도 박쥐단지다. 박쥐는 낮과 밤 사이를 오가고, 포유류이면서 날 수 있고, 동굴에 살면서 밤하늘을 날아다닌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여러 세계를 넘나든다.
HWI의 박쥐 같은 삶은 도피다. 음악이 힘들면 미술로, 미술이 지겨우면 다시 음악으로. 그런데 이 도피는 나약함보다는 생존 전략이다. 한 곳에만 있으면 금방 지치니까. 서로가 서로의 도피처가 되어주면 오래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 예상치 못한 것들이 일어난다. 미술관에서 대중음악을, 공연장에서 현대미술을. 어떤 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섞을 수 있다. 그 교차 지점에서 HWI만의 색깔이 만들어진다.

힘을 들이지 않는 지속
모연: 솔로 아티스트, 박쥐단지 리더, 업체eobchae 일원까지. 이 모든 활동을 유지하시는 원동력이 궁금해요.
HWI: 원동력이라고 하기에는 힘이 들어가고 있진 않아요. 그냥 현상이 유지가 되는 것 아닐까요.
박쥐단지도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단체 활동을 할 때는 구성원들의 에너지가 딱 모이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순간이 일부러 만든다고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어떤 흐름 같은 게 있는데, 그 흐름에 우연히 잘 타서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힘을 들여요. 그 외의 시간들에는 그냥 정말 느슨하게, 가끔 카톡방에 "오늘까지 플러그인 세일이랍니다" 이런 거 올리면서 생존 확인을 해요. (웃음)
모연: 너무 억지스럽게 하지 않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한 사람만 욕심이 앞서서 뭔가 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요. HWI님의 여러 정체성은 서로 구분되어 있나요?
HWI: 분리를 하려고 하진 않아요. 박쥐단지는 각자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고, 업체eobchae도 마찬가지예요. 한 사람이 배드민턴 동호회도 들고 축구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충분히 공존이 가능한 정체성들이에요.
지속 가능한 창작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했다. 힘을 들이지 않는 것. 억지로 만들지 않는 것. 흐름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HWI는 '원동력'이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대신 '현상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능동적으로 힘을 가해 무언가를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는 것. 그게 오래 지속하는 비결이다.
모연: 최근에 일을 시작하실 때 "어쩌다 이렇게 시작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그 '어쩌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어요.
HWI: 뭔가를 계획해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제안이나 기회가 왔을 때, 당장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지만 '일단 가보자' 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식으로요.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가 돼 있을 거고. 제가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진 기준에 미달하지 않게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모연: 그럼 시작할 때 어떤 조건들을 보시나요?
HWI: 재미있어 보이면 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어디서 하는 공연인지를 봐요. 최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던 싱크 넥스트(Sync Next) 시리즈가 있었는데, 벌트(Vurt.)라는 테크노 클럽이랑 콜라보레이션 제안이 왔어요. 그때 저희가 그 클럽을 잘 알진 못했는데, 안 하던 걸 해볼 수 있는 자유도가 보장될 것 같았고, 새로운 협업자들을 만나게 될 기회라고 생각이 되어서 '그럼 한번 해보자' 했었어요.
모연: 재미가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네요.
HWI: 맞아요. 자유도는 사실 하다 보면 스스로도 제한하게 되더라고요. 여러 가지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조건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재미가 중요해요.
모연: 그런 새로운 걸 시도하실 때 재미를 많이 느끼시나요?
HWI: 하던 것만 하면 지루하니까요. 업체eobchae의 다른 두 멤버들도 금방 지루해해요.
보통의 미술가들은 한 가지 주제를 갖고 거의 평생에 걸쳐서 연구하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희는 항상 달라져요. 그래서 어떤 평론가님께서 "너희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빠른 은퇴를 하지 않을까" 걱정 어린 마음으로 말씀해 주신 적도 있어요. (웃음) 아무튼 재밌는 게 최고예요.
창작의 리듬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HWI는 기회 앞에서 완성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태도로 일단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결정하는 건 '재미'다. 재미있는 사람들, 재미있는 장소, 재미있는 조건. 계획보다 흐름을, 완벽함보다 재미를 택하는 삶. 그래서 그의 작업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일관된 어떤 태도를 품고 있다.
모연: 업체eobchae에서 최근에 문예지를 만드신다고 들었어요. 영상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왜 갑자기 문예지인가요?
HWI: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영상을 만드는 프로세스도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 있어요. 기획안 짜고 시놉시스 짜고 스토리보드 그리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이런 과정들이 어느 순간 불필요하게 느껴졌어요.
저희는 영상 매체 자체보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정체성이 강한 팀이에요. 그래서 이야기를 영상이 아닌 다른 매체로 알려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전략적인 이유도 있어요. 저희 중에 오천석이라는 멤버가 문학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해 보려는 단계여서, 자신이 데뷔할 무대를 스스로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요. 앨범을 내는 것도 제가 음악가로서 디스코그라피를 쌓으려는 의도가 있듯이요.
모연: 업체eobchae의 작업 방식이 궁금해요.
HWI: 일주일에 한 번씩 구글 밋으로 만나요. 김나희라는 멤버가 뉴욕에 살고 있어요. 서로 요즘 관심사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에 대해 '우리 이거 작업해 볼까'로 주제가 좁혀져요.
저희 작업은 항상 중심에 이야기가 있고, 그걸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풀어 나가요. 약간 방사형에 가까워요. 오천석은 오천석 나름대로, 김나희는 김나희 나름대로, 저는 저 나름대로 이 이야기들을 펼쳐서 구현을 해내는 거죠.
작업 외의 사무적인 일에서의 역할 분담도 자연스러워요. 오천석은 말을 잘하고 글도 잘 써서 글 쓰는 일을 맡고, 저는 회계 담당이고, 김나희는 뉴욕에 있고 영어를 잘해서 해외 연락을 맡아요. 언제나 깔끔하게 작동하지는 않지만, 각자가 분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어요.
매체는 수단일 뿐이다. HWI와 업체eobchae가 진짜 만들고 싶은 건 '이야기'다. 영상이든 문예지든 앨범이든, 그건 이야기를 담는 그릇의 문제일 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형태를 찾아 움직인다. 그리고 업체eobchae의 방사형 구조는 명확하다. 중심에 이야기를 두고,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펼친다. 역할이 명확하되 위계는 없다.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모연: 작업 방식이나 태도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HWI: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을 해요. 그걸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20대 후반에도 인디 씬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조금 더 일찍 했으면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살아요. 내 눈에 보이는 세계가 이곳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계속 상기하면서요.
모연: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게 있나요?
HWI: 새해 버킷리스트로 덥스텝이라는 장르를 정복해보고 싶어요. 댄스 음악의 하위 장르인데, 워블 베이스라고 해서 왕왕거리며 울렁이는 베이스 소리가 특징적인 음악이에요. 그 장르 자체를 공부해보고 싶어요.
항상 마음속에 짐처럼 있는 건, 조금 더 사회 참여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작년에 계엄 이후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하는 일을 예술에 한정 짓지 말아야겠다. 좀 더 실천적으로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모연: 지금 막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HWI: 딱히 막 응원을 해드리고 싶지는 않고요. (웃음) ‘망설이다가 말년에 가서 후회하세요’ 라는 생각을 제 자신에게 합니다.
아, 말을 바꿀게요. 죽기 전에만 하세요. 빨리 할 거 뭐 있어요?
HWI가 건네는 조언은 역설적이다. "망설이다가 후회하세요"에서 "죽기 전에만 하세요"로. 그 사이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가 담겨 있다. 학교가 전부가 아니고, 인디 씬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보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걸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서두를 필요도, 조급해할 필요도 없어진다. 다만 죽기 전에만 하면 된다. 그 가벼움이 오히려 시작을 가능하게 만든다.
2025년 말, HWI는 젤다의 전설에 빠져 있었다. "올해까지 너무 과로해가지고 내년에는 쉴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식도 HWI답다. 일할 때는 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쉰다.
"박쥐 같은 삶", "현상이 유지되는 것". HWI가 던진 문장들은 얼핏 나태하거나 수동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여러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고민한다. '진짜 나'는 뭘까. 어디에 더 집중해야 할까. 어떤 교집합을 찾아야 할까. 하지만 HWI의 답은 단순하다. "배드민턴 동호회도 들고 축구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그냥 그 정도인 것 같아요." 하나로 수렴시킬 필요가 없다. 전부 다 나니까. 억지로 만들지 않는다.
내년에는 덥스텝을 정복하고 싶다는 HWI. 동시에 활동을 예술에만 한정짓지 말아야겠다고도 말한다. "죽기 전에만 하세요. 빨리 할 거 뭐 있어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확 자유롭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마구 떠오른다. 준비가 안 됐어도 일단 가보자. 언젠가, 죽기 전에만. 서두르지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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