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놀라움을 안겨준 사람이 있다. 임하영. 그가 스무 살 때, 내가 서른 살 때 우리는 만났다. 그는 존재만으로 우리가 가진 다양한 편견을 깨버리는 사람이다.
하영은 하루도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2020년 전까지는.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받은 교육은 유치원 때까지가 전부였다. 유치원도 잠깐 다니고 말았다. 6살 때부터 그는 집에서 여동생과 함께 홈스쿨링을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스쿨링'을 했다. 홈스쿨링은 교과 과정과 유사하게 어느 정도 정해진 스케줄 내에서 집에서 교육받는 것이라면, 언스쿨링은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걸 가장 잘 아는 게 본인이란 생각에서 출발한 교육 방법이다. 아이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어 원하는 공부를 찾아가고, 부모는 지시하기보단 옆에서 아이의 관심사와 호기심에 귀를 기울여주며 아이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돕는 역할을 한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음악을 통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자연과 벗하며 생명의 고귀함을 깨달았습니다. 돈에 관심이 생길 무렵부터는 세계의 화폐를 수집하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했습니다.
...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함께 눈물 흘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옳지 못한 일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 머리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법, 그리하여 사람들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임하영 -
하영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신 주변 모든 것들로부터 배움을 얻었다.
독서와 토론을 통해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를 배웠다.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곤충학자를 꿈꾸기도, 장수풍뎅이 분양 사업을 벌이기도, 주식투자를 해보기도 했다. 88일간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현지인들의 소파를 빌려 숙박을 하는 여행)과 거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홀로 유럽 여행을 했고,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나 고민이 생겼을 때는 인생의 멘토들을 찾아 나섰다. 15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뉴스를 접하기 위해 홍세화 선생님과 함께 불어로 르몽드를 읽는다. 이 모든 과정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이 학교"인 언스쿨링 덕분인지 하영님은 일찌감치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호기심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실행해보고 부딪혀본다. (홍세화 선생님과의 인연도 책을 읽고 용기를 내서 직접 보낸 메일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20년. 처음으로 그가 '미네르바 스쿨'이란 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 학교조차도 범상치가 않다. 최근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이제 막 새로운 시작점에 있는 그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 하영님의 '언스쿨링' 이야기와 어떻게 다양한 경험이 생겼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하영님의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과 <소년여행자: 바이올린 메고 떠난 88일의 유럽방랑기>를 읽어주세요! 본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의 '과정'보다 새로운 '시작'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책 속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
하영의 언스쿨링
융: 이제 막 학기 시작했겠네요! 국적이 얼마나 다양해요?
하영: 이번 학년은 총 45개국에서 왔어요.
융: 와. 진짜 재밌을 것 같아요. 저도 베를린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에 다닐 때 전 직원의 국적을 합치면 48개국이었거든요. 그래서 너무 재밌었어요. 1년에 2번 정도 워크숍 겸 베를린에서 모였는데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하영: 심지어 "트리니다드 토바고"라는 나라에서 온 친구도 있어요.
융: 트리니다드 토바고? 그게 나라 이름이에요? 신기하다. 제가 하영을 START 첫 인터뷰이로 섭외하고 싶었던 건, 저는 종종 그런 소리 듣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관해서 "마케팅 전공했으니까 할 수 있었겠네. 뉴욕에 있었으니까 글로벌 스타트업에 들어갈 수 있었겠네." 그런 말을 들으면 제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해온 과정은 배제하고 단정 지어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편견을 깰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하고 싶었어요. 꼭 졸업장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여러 편견을 깨는 데는 하영만 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워요.(웃음) 요즘에는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해요?
하영: 현재로써는 학생이라고 소개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아요. 한 달 전부터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도권 교육 시스템에 들어왔는데 그마저도 굉장히 특이한 "미네르바 스쿨"이란 곳에 들어왔어요.(웃음)
융: 미네르바 스쿨은 어떤 곳이에요?
하영: 정말 독특한 학교인데 만들어진지 6년밖에 안됐어요. 작년에 첫 학부 졸업생이 나왔고요. 기존 학교와 가장 다른 점은 캠퍼스가 없다는 거예요. 학생들은 4년간 7개의 도시를 옮겨가며 생활해요. 1학년 때는 샌프란시스코, 2학년 때는 서울과 인도의 하이데라바드, 3학년 때는 베를린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4학년 때는 런던과 타이베이.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요, 기업이나 정부, NGO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건 오프라인에서 이뤄져요. 코로나 시대 전부터 100% 온라인 수업으로 디자인되었고요. 교수들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어요.
융: 와... 그야말로 세계의 메가 시티들이잖아요. 같은 학년 친구들끼리 그 도시를 살면서 경험할 수 있다니! 엄청나요.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갖게될까 부럽기도 하고요. 수업을 온라인으로 해서 불편한 건 없어요?
하영: 원래 온라인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미네르바의 수업은 비대면이긴 한데 대면보다 더 대면 같아요. '포럼'이라고 미네르바 스쿨이 자체 개발한 강의 플랫폼이 있어요. 수업이 주로 토론으로 이루어지는데요, 학생 참여도에 따라 빨강, 노랑, 초록 색깔이 떠요.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에게 발언권을 주며 안내하기 위한 퍼실리테이터의 느낌이에요. 포럼 플랫폼 안에서 구글 독과 프로그래밍도 가능하고요.
미네르바 스쿨의 강의 플랫폼 '포럼' 캡쳐 화면 | 출처: minervaproject.com
학생 참여도에 따라 빨,노,초로 구분 되어 발언을 적게한 학생에게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 출처: minervaproject.com
융: 코로나 시대 전부터 100% 온라인 강연이었다니 흥미로워요. 저는 미네르바 스쿨의 존재도 하영님 덕분에 알았거든요. 미네르바 스쿨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뭐였어요?
하영: 원래 정치, 경제, 사회에 관심이 많았어요. 예전에 유럽에 다녀온 이후로 "난 프랑스로 가야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작년 2월까지 불어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3월에 우연치 않은 기회로 실리콘 밸리를 열흘 동안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열흘간 세 가지를 생각했어요.
첫째,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하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제도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하고 싶었던 거고요. 20대가 되어서 몇 년간 세상을 관찰해 보니 법과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한 후에야 가장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끄는 건 기술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선두에 서서 이끌진 못해도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과학이 진보하는지를 알아야겠다. 최소한 디지털 세계를 이해하는 문해력을 갖추자' 싶었어요.
둘째, 다양성이 있는 곳에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창의성일 수도 있지만, 노벨 수상자 정도 되는 두뇌를 갖고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 같아요. 대신 저는 이질적인 것을 결합하면 혁신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혁신이 가능하려면,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서 이질적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를 체험하고 싶었어요.
셋째, 나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시스템을 찾고 싶다.
물론 교육자 개개인도 중요하긴 하지만, 시스템 자체가 잘 설계된 곳을 찾고 싶었어요. 교수가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게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지만, 배우는 입장에서 효과적인 지식 습득 방법인지 의문이 있었어요. 배우는 사람에게도 지적 자극을 주는 정교한 시스템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위 세 가지 기준을 놓고 봤을 때 1) 디지털 리터러시 - 학교 자체가 IT 기반의 스타트업 같은 학교라 디지털 리터러시를 잘 가르쳐줄 것 같았어요. 본사도 샌프란시스코에 있고요. 2) 다양성 - 국적도 그렇지만 독특한 친구가 많아서 다양성은 최고인 것 같아요. 3) 시스템 - 수업 최대 정원이 18명이에요. 미네르바 스쿨의 커리큘럼은 교수뿐만 아니라 뇌 과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어떻게 학생에게 최선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들어졌어요. 시스템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워요.
융: 처음 다니는 학교인데, 그 마저도 진짜 신기하고 실험적이네요.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불안했던 때는 없었어요?
하영: 많았죠. 나 자신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불안하고 성가실 때가 많았어요. 학교를 다니면, "어디 재학 중인 누구"라고 하면 한 줄로 끝나잖아요. 그런데 저는 주절주절 설명해야 했어요. 나의 과거는 어떻고, 부모님은 이렇고. 저를 의구심 어린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많았어요. 10대 후반부터는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열심히 산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지금 다니는 학교도 주절주절 설명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예요.(웃음)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제 인생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더라고요. 나만의 이야기, 서사가 있다는 거니까요.
융: 결국엔 다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궁금해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하영님이 걸어온 길은 각본 밖에 있어서 더 궁금하고 흥미롭더라고요. 하영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원하는 게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법은 찾으면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설계해나가는 느낌이고요. 그 원동력이 있나요?
하영: 반대로 저는 제가 원하는 게 뚜렷한 지 잘 모르겠어요. 제 인생을 사람들은 멀리서 보고, 저는 가까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의 진폭도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것 같고요. 한 가지 행운으로 생각하는 건, 뭔가 고민이 있거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인생의 이정표로 삼을만한 선생님들이 옆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인생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생각할 때 그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홍세화 선생님, 작년에 미국으로 데려가 준 최병천 보좌관님. 이런 선생님들을 찾으면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결정적인 때에 결정적인 사람들이 옆에 있었던 것 같아요.
눈 앞의 결정을 할 때는 한두 발짝 앞서간 선배들의 조언이 더 현실적인 경우도 많았어요.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선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최근에는 인생이 예측 불가능해서 계획하는 게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어요. 막연한 큰 그림은 그려놓되, 작은 선택은 유연하게 하자. 하루하루는 성실히 살면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기회를 붙잡고 인생 전체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자. 이게 요즘 저의 멘탈리티예요. 나 자신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니까요.
하영은 온 세상을 학교로 삼았다
융: 하영님 말대로 제가 멀리서 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원하는 방향을 스스로 설정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생각만으로 그칠 수도 있는데 하영님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어떻게든 또 방법을 찾아낸 거니까요. 그 '시작'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하영: 제가 시작해보는 걸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이것도 20대 초반에 바뀌었어요. 10대 후반까지는 생각을 너무 오래 했어요. 누굴 만날 때도 어떤 대화를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정도였으니까요.
20대가 되면서 일단 해보고, 아님 말고란 생각이 생겼어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빠르게 시도해보고 틀어지면 고치면서 성장을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작년에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기로 바꿀 때도 어떻게 보면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인데 생각보다 빠르게 결정했어요. 실리콘밸리에 다녀와서 일주일 동안 생각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 난 미국에 가야겠어." 5년 동안 프랑스에 가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미국 간다고 한 건데 엄마가 그냥 이러더라고요. "그래 열심히 해봐."
미네르바 스쿨에 지원하고, 안 되면 군대에 가서 좀 더 공부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빨리 시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융: "일단 해보고, 아님 말고"란 말이 너무 공감 가요. 그런 태도가 빨리 시도하는 걸 돕는 것 같거든요. 시작도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말도 떠오르고요.
새로운 시작점에 있는 현재의 마음은 어때요? 4년 후 졸업할 때의 자신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나요?
하영: 일단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학점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걸 잘 받을 수 있을지 두렵고요.(웃음) 다른 한 편으로는 일정한 기간에 최선의 노력을 쏟으면서 성장하는 걸 좋아해서 설레기도 해요.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질문의 취지와는 다른 답변일 수 있는데요. 20대 초중반은 가족이란 공동체를 떠나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 시점이잖아요. 그래서 인생의 전체적인 판이 흔들리는 시점 같아요. 내가 정답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요.
오랫동안 세상이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20살 이후로 본 세상은 대체로 회색이더라고요. 나도 점점 회색분자가 되어가는 것 같고. 그동안 발을 디뎌왔던 가치관도 흔들리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살짝 두렵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 시기를 기회로 삼아서 나의 삶의 경계를 확장시켜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놀기도 하고. 여러 색깔을 경험하고 4년 후에는 나의 색깔이 다시금 뚜렷해지면 좋겠어요.
융: 질문의 취지와 관계없이 정석처럼 느껴지는 답변들이 아니라서 더 좋아요. 그곳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글로벌 스타트업에 있을 때 다른 나라로 출장을 가면 배경은 자꾸 바뀌는데 보는 동료들은 같아서 제 세계가 작으면서도 커진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영님은 더 어릴 때 카우치 서핑과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유럽 여행을 한 경험도 있잖아요. 생각을 현실로 이뤄내는 힘이 있는 것 같은데, 하영님도 무기력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해요?
하영: 많이 있죠. 이태리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곡을 들으면서 야밤에 한강을 빠른 걸음으로 산책했어요.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못해서 좀 슬퍼요. 밤에 나가면 위험하기도 하고요.
음악과 자연 산책. 이 둘의 조합을 좋아해요. 그리고 실화를 기반으로 한 좋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봐요. 예를 들면 라이언 고슬링의 <퍼스트 맨>,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넷플릭스에 있는 <로버트, 우리가 사랑한 케네디> 같은 작품을 좋아해요.
이런 작품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어요.
융: 오, 에이나우디 곡은 저도 좋아해서 많이 들어요. 특히 글 쓸 때! 음악과 좋은 작품이 좋은 영감을 줄 때가 많죠. 하영님은 독서도 많이 하잖아요. 요즘에도 책 자주 읽어요? 어떤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뭐에요?
하영: 사실 작년에는 입시 준비하느라 책을 거의 못 읽었어요.(웃음) 그 전에는 일주일에 한 권은 읽었는데요. 편식을 심하게 해서 10대 중반부터는 사회 과학 책을 주로 많이 읽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문학을 읽을 것 같아요. 사회 과학은 나중에 공부해도 좋으니까요. 문학을 읽으며 감수성을 키우는 게 세상을 바라보는데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제 인생에 있어서는 재미와 의미란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재미있게, 의미 있게 살고 싶어요. 인생은 한번 뿐이니까 내 인생을 살 때, 내가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적인 일에 관심이 많아서 이 사회가 나아지는데 나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내 삶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융: 재미와 의미. 제 마음속에 나침반은 제 기준에 맞는 '재미와 멋'으로 잡았는데 비슷하네요. 사이드에는 한 가지 분야에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있어요. 이들을 "다능인"이라고 정의하고 있고요. 하영님도 영락없는 다능인인 것 같은데, 다능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영: 예전에 법안 만드는 입법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세 가지 종류의 전문가가 있어요. 1) 현장 전문가. 2) 행정, 보조, 제도 전문가. 3) 입법을 통해 연결하는 연결 전문가.
셋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배웠어요. 이게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요, 꼭 입법 분야가 아니어도 적용될 수 있어요. 필드를 잘 아는 사람. 이론과 구조를 잘 아는 사람. 그리고 다방면에 두루 관심이 많으면서 이 둘과 다른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
다능인은 어떻게 보면 연결 전문가가 되기 최적의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 시대에 '연결'은 너무나 중요한 단어예요.
융: 연결이 중요하다는 말도 많이 공감이 가요. 저는 하영님을 보면 '공부'의 의미가 좀 다르게 다가와요. 시험 보고, 배우기 싫고, 재미 없고. 그런 공부 말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면 그렇게 재밌잖아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빠져서 그의 영화를 모두 찾아보는 것도, 요가를 하고 명상 책을 찾아 읽는 것도 모두 다 공부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영님에게 있어 공부란 어떤 의미예요?
하영: 제 책인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에도 썼지만, 나만의 물음을 발견하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본인만의 관점을 갖는 것이에요.
누군가 가공한 정보나 지식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본인만의 관점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을 탐구하는 게 중요해요. 예전에는 박사 학위를 따면 같은 내용을 몇십 년 가르칠 수 있었는데, 이제는 1년 안에도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이 됐잖아요. 평생 공부하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스스로 배우고, 탐구하는 습관이 몸에 익어 있으면 공부가 남들보다 늦거나 서툴러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융: 계속해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언젠가부터 분명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공부도 나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고요. 오늘도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네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샌프란시스코에서 건강히 잘 지내기를! 사이더들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전할게요.
Drawing for SIDERS
하영의 이야기는 '진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는 획일화된 기준에 맞춰 줄 세우기 급급한 마음에 정작 진짜 중요한 것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너무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공부는 누구를 위한 공부이며,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누구를 위한 길인가.
하영이 쓴 책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읽어보면, 공부에는 딱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떤 방법이 더 좋고 나쁘고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 책은 그저 우리에게 길 밖에서 출발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알려줄 뿐이다.
나에게 맞는 길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면, 수많은 옵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다르다. 나에게 맞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공부고,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와 선택이 모여 나만의 길이 완성된다.
하영을 보고 있으면 규정된 시스템에 속해 있지 않고도 얼마나 멋지게 성장할 수 있는지가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다양한 편견을 깰 수 있고, 그래서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 소중하다. 남들과 다르게 출발했지만, 또 새로운 시작점에 서서 멋지게 자기만의 길을 개척 중인 하영이 앞으로도 순항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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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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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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