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X 손하빈 |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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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장시키는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밑미 대표 손하빈

사이드 뉴스레터를 시작하는데 큰 용기를 준 사람이 있다. 작년 말부터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같은 책을 읽고, 서로 영감을 주고 받았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나와 각자의 모습으로 새로운 챕터를 시작했다.


나에게는 직장 밖에서 만난 동료와 같은 존재. 지난 6년 동안 에어비앤비의 마케터로 일했던 손하빈.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마케팅을 하게 된 건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경험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도 넓었다. 


생명과학 전공 -IBM(재무-마케팅-컨설팅) - 에어비앤비 마케팅 - 밑미 창업


안 그래도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커리어 패스 사이사이에 건축, 의상, 광고 동아리, 투자 분석회, 바둑, 여행, 소모임 운영 등 다양한 딴짓의 역사가 흩뿌려져 있었다. 하빈님은 지난 경험을 통해 이 점들이 어떻게든 모일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밑미라는 의미 있고 커다란 점을 찍고 있다. 에어비앤비를 떠나 지난 8월,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를 창업한 손하빈 대표와 ‘시작’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양한 시점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에 지금까지 선택을 해온 맥락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느껴졌다. 

나를 성장시키는 환경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딴짓의 역사 (건축과 - 생명과학과 - 각종 동아리/학원/강연 - IBM 재무/마케팅/컨설팅 - 소모임)

융: 이전부터 하빈님이 생명과학을 전공했지만 IBM에서 일하고, 에어비앤비에서 마케팅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이런 변화를 겪게 된 거예요?


하빈: 제 선택의 배경을 이야기하려면 어렸을 적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릴 때 경쟁이 치열하고 치맛바람이 심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예를 들면 반장 선거를 하면 학교에서 엄마들이 떡이나 도시락을 돌리는 문화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은 그런 게 없는 거예요. 학교에서의 환경은 경쟁이 있는데, 집안에서는 그렇지가 않으니까 그 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 제가 바람을 일으켜야 했어요.  제 타고난 기질이 관계 지향적이다 보니, 그 환경에서 인싸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같은 환경에서 자란 오빠는 자기 세상을 구축하며 그 환경을 이겨냈다면, 저는 적극적으로 관계 속으로 들어가 나서는 타입의 사람이었던 거죠. 반장이 하고 싶은데 우리 집은 떡을 돌리진 않으니까, 제 나름대로 담임 선생님이 글씨 잘 쓰는 걸 좋아하니까 경필을 열심히 하고, 친구들을 선동하기도 하고 그때 저에게 유리한 조건을 찾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바람을 일으켜왔던 것 같아요.


융: 바람을 일으킨다는 말이 좋네요. 지금의 하빈님에게도 있는 모습 같은데, 사람의 성향이란 게 있나 봐요.


하빈: 그때는 타인을 관찰하고, 타인의 만족을 얻는 삶을 살다 보니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자기주장이 센 아이였지만, 반대로 자존감이 낮았어요. 개성이 뚜렷하고 활발했지만, 내면에는 경쟁심과 남을 앞서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게 무너진 시기가 고등학교 때예요. 초중학교 사람들이 겹치는 작은 동네에 있다가 비평준화로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울산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치맛바람이 심한 환경을 벗어나서 세상이 더 큰 곳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경쟁심이 사라지니까 공부를 덜 했지만, 대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기였어요. ‘환경이 나를 만드는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일단, 울산을 벗어나자는 생각을 했죠. 


사실 생명과학을 전공하기 전에 건축과를 1년 다녔어요. 제가 러브하우스 마니아였거든요(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건축과를 꿈꿨고, 대학에 합격했는데 성격이 적극적이다 보니 교수님, 석사, 박사과정 밟는 분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녔어요. 그런데 좋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박봉이다. 여자 직업으로 최악이다. 후회하고 있다.” 제가 듣고 싶었던 보다 큰 철학이나 뷰를 보여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하고 싶은 마음'에  집중해봐도 좋았을 텐데, 1학년 때는 지금만큼 단단하진 못해서 자퇴하고 재수해서 다시 학교에 들어간 거예요. 


옷을 너무 좋아해서 ‘의상 디자인’과와 당시 유망해 보였던 ‘생명과학’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의상 디자인은 제 기존 점수에서 낮춰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또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생명과학과에 들어갔어요. 그땐 진짜 하고 싶은 마음보단, 유망한 것에 마음을 뺏긴 시기인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가 돼요. 그게 뭐가 아깝다고. 




융: 아까울 수 있죠. 사실 전공마다 필요한 것도 다른 건데 모두 같은 점수로만 보고 판단하다 보니, 내가 내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요. 그렇게 뭔가를 그만두고 새로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어요?


하빈: 두려움이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극단의 선택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건축과랑 의상 디자인과가 저에게 잘 맞았을 것 같거든요. 당시에 그만둘 때는 재미가 없고 이런 것보다는 당장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만뒀어요. 재미 보단, 전망을 봤던 것 같아요. 


시작은 생각하면 즉흥적으로 바로 행동하는 편이에요. 대학교 때 “너는 뭘 그렇게 많이 하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생명과학 전공하면서 경영학 복수에, 광고 동아리와 투자 분석회를 하고 바둑을 두러 다녔거든요. 광고, 투자, 바둑. 전혀 공통점이 없잖아요.(웃음) 20대 때는 학원도 많이 다녔어요. 재밌을 것 같으면 비싸도 일단 결제하고. 지금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내면의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에버노트에 빠져서 에버노트 모임을 열심히 나간 시기도 있어요. 기록광들이 많아서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그때도 뭔가에 푹 빠져있고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리스펙트했던 것 같아요.


융: 에버노트 서비스 자체보다 모이는 사람들이 재밌고 좋아서 나간 거예요?


하빈: 에버노트의 철학을 너무 좋아했어요. 에버노트 창업자가 진짜 덕후거든요. 그의 창업 스토리에 빠진 거죠. 에어비앤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에버노트 로고가 코끼리잖아요. 그게 코끼리 중에서도 가장 기억력 좋은 아프리카 코끼리의 모양을 딴 거예요. 그게 너무 재밌었어요. 에버노트 스토리에 반해서 서비스를 쓰다가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독특한 사람들이 모여서 계속 모임을 나간 거죠. 사용자 주도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커뮤니티가 신기했어요. 


에버노트 유저 커뮤니티


융: 생명과학 - 재무 - 마케팅으로 가기 이전에 제가 몰랐던 스토리도 많네요. 정말 이것저것 많이 해보신 것 같아요(웃음).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하빈님에게는 맥락이 있었을 것 같아요. 선택하는 기준이 있었어요? 


하빈: 내가 원하는 환경을 찾기 위해 전략적으로 나의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생명과학과를 다니면서 친구들은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데, 저랑 안 맞을 것 같은 거예요. 뒤늦게 4학년이 돼서야, 저는 사람들이랑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니 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근데 회사에 먹힐 수 있는 저의 능력이 없더라고요. 회사에서 일을 해본 적도 없고요. 


일단 제가 이과 출신이니 기업의 재무 부서가 전략적으로 확률이 높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이력서를 쓸 때도 외국계만 썼어요. 저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 저에게 좋은 환경을 제가 찾아가야 하는데, 한국계 회사에 들어가면 제가 배우고 싶지 않은 문화도 다 답습할 것 같은 거예요. 좀 더 자유분방한 환경을 답습해야 제가 안정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 토익 점수가 890점이었어요. 당시에 외국계 회사를 갈 수 없는 점수였는데, 그렇다고 토익 점수만을 위해서 토익 공부를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토익을 잘 본다고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최소 920점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싫고, 토익 점수로 영어를 판단하는 것도 공감이 안 가는 거예요. 오히려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쓰자고 생각했죠. 


IBM 재무부에 지원할 때, 저 자신을 SWOT 분석해봤는데, 강점이 데이터 분석 능력이 있는 이과생이었다는 거고. 약점이 회사 경험 없고 토익 점수가 890점인 것. 약점이 제일 의문일 테니, 아예 제 약점을 드러내서 스토리텔링을 했어요. 그럼 볼 것 같았거든요. 이력서 제목이 “책을 살 때 겉표지만 보나요?”, 소제목이 “890점이 외국계에 지원을?” 이런 식이었어요.(웃음) 궁금해할 만한 걸 제목 안에 다 넣었어요. 토익 점수 890점으로 IBM 입사 지원 서류에 합격하고 들어갔으니 이 이력서가 먹혔다고 봐도 되겠죠?




융: 스토리텔링을 타고 났었네요! 여러 가지 변화의 바람을 스스로 일으켜 왔는데, 내가 내 목소리를 잘 들어주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하빈: 가장 큰 계기는 여행이었어요. 대학교 때 유럽으로 50일간 배낭여행을 갔는데 사람들이 아침에 광장에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신문 읽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모습에 너무 놀란 거예요. 울산에서 서울로 세상이 넓어졌을 때처럼, 제가 봐왔던 라이프스타일이랑 다르니까 ‘내가 너무 좁게 살아왔구나’를 다시 느꼈어요. 그때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외국인이랑 소통하고 싶었고, 유럽 여행하면서 제가 말을 못 해서 또 충격받았고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했어요. 2년 동안 영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친구들이 놀릴 정도였어요. 입이 근질근질할 때까지 공부하고, 못 견딜 때쯤 미국에 연수 대신 여행을 가자 생각했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6개월간 미국 여행을 하면서 입이 트였죠. 영어로 대화할 사람이 널려있잖아요. 영어 회화 공부를 좀 늦게 한 편인데, 그래서 토익 공부가 더 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건 점수보다 소통이 가능한 회화였으니까요.


외국계 생각만 하고 가고 싶었던 회사의 재무 부서로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또 고민이 시작된 거죠.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서 마케팅 부서로 옮기고.  마케팅 부서의 문화가 또 안 맞는 것 같아서 컨설팅 부서로 옮기고. 컨설팅 부서에서 고객을 만나는 게 너무 재밌고 잘 맞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 고객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B2C로 가야겠다 결심하고, 이직 준비를 해서 에어비앤비로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전 환경이 변화를 결정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지금 환경보다 더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다 보니, 에어비앤비란 회사가 저에게 온 것 같아요. 에어비앤비에서 나에 대해서 완전히 알게 됐어요.


에어비앤비 - 흩어진 점들이 연결된 경험

융: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IBM에 있을 때도 딴짓을 많이 하셨다면서요.


하빈: 처음에 재무로 들어갔는데 하고 싶은 일이 충족되지 않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밖에서 딴짓을 많이 했어요. 동대문에서 액세서리를 도매로 사서 블로그에서 팔기도 했고, 취향을 기반으로 모이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책 읽고, 맥주 마시고, 영화 보고. 에어비앤비에 들어오기 전까지 2년 동안 거의 주말에는 그 커뮤니티 활동을 운영했어요. 진짜 열심히 했어요. 모임 기획하고, 초대장 만들고, 사람 모으고, 구글독스 링크 보내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모임의 본질이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래서 그만두게 됐죠. 


융: 에어비앤비에 들어간 이후에는 딴짓을 안 했어요?


하빈: 아예 안 했어요. 저는 그냥 제가 딴짓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에어비앤비에 오니까 자연스럽게 멈추더라고요. 제가 관심 있고 하고 싶은 다양한 일이 회사 안에서 충족이 되는 거예요. 그때는 모든 세상이 에어비앤비로 연결되는 세상으로 보였어요. 일에 도움 되는 책을 읽고, 누군가를 만나면 호스트 경험을 추천하고, 재밌는 사람을 만나면 마케팅이랑 엮어서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일상이 일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에어비앤비라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거대한 세계 안에서 한 목적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경험이 생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됐어요. 


융: 에어비앤비 안에서 내 자아와 정체성이 발현된 거네요. 에어비앤비는 하빈님에게 그냥 회사라기보다 더 큰 가치를 상징했을 것 같아요. 


하빈: 어렸을 때부터 자기 것을 하는 사람을 보면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멋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보다는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과 행동이 변하는 게 반갑고 좋았어요. 행동을 변화하게 해주는 건 진정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에어비앤비가 좋았던 건 여행을 통해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브랜드인데, 그 가치가 전달되는 방식이 모든 방향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직원으로서도 매일 호흡하듯 느꼈고요. 


숙소가 좋고 그런 게 아니라 소속감이라는 더 큰 가치. 누구에게나 소속감을 준다는 가치 안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도 포함되어 있어요. 각자 자기 방식을 존중하는 게 멋있는데 직원으로서도, 호스트와 게스트에게도 그 태도를 지키며 대하는 거예요. 회사의 가치관이 멋있고, 직원으로서 느끼기에도 그 철학과 창업자에게 진정성이 있으니까, 내가 다니는 회사가 멋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더 일을 잘 해내고 싶고요. 창업자의 가치관과 믿음을 저도 너무 응원하고 싶고 같이하고 싶었어요. 내가 더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브랜드를 위해 일한다는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융: 에어비앤비 슬로건 Belong Anywhere(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너무 좋아해요. 문장만 있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나 고객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게 공감 가고 와닿아요. 부럽기도 하고요.


하빈: 진짜는 그냥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도 포장에 현혹되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진짜를 경험해보면 알게 되거든요. 에어비앤비가 주는 가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이 되는 거예요. 회사나 호스트가 진짜일 때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인지 귀로 들려요. 진짜는 ‘저는 진짜예요’라고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거죠. 소설에서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사랑한다’고 느껴지는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묘사할 때잖아요. 에어비앤비에서 진짜라고 표현되는 것들은 그냥 느껴졌어요. 호스트의 스토리. 파운더의 스토리. 유저의 스토리. 그걸 경험하고 나니까 진짜가 아닌 게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도 나의 진짜를 찾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융: 에어비앤비가 하빈님 자신을 더 잘 알게 해준 경험이 되었나봐요?


하빈: 에어비앤비 이전까지는 안정성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대학 전공도 그렇고, 첫 직장도 그렇고요. 오히려 그걸 해보니까 이제 바랄 게 없는 거예요. 저는 안정성이 안 맞다기 보다는 재미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재미와 안정성이 둘 다 보장되면 최고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재미를 택하겠죠. 재미가 없으니까 다른 곳에 에너지와 시간을 썼던 것 같아요. 삶이 유랑자처럼 떠도는 느낌이 들었어요. 에어비앤비에 들어와서 그 떠돌던 시간이 정리가 됐어요. 한 달도 안 돼서 ‘나는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거구나’ 깨달았어요. 


에어비앤비 들어가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만에 1년 다닌 사람처럼 신나게 일했어요. 나에게 온 기회이니 후회 없이 일을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미친 듯이 일했던 것 같아요. 저희 오빠가 밥 먹을 때 에어비앤비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되냐고 말한 적도 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정리해보고, 오빠가 좀 아닌 것 같다고 하면 울고 그랬어요. 제 몸이 에어비앤비로 가득 차 있던 시절 같아요.(웃음) 


융: 저도 그 시절의 하빈님을 보면서 에어비앤비의 진정성을 느꼈던 사람 중 하나에요. 에어비앤비에서 흩어져있던 점들이 연결된 것 같은데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하빈: 그거였어요. 쓸모없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지나고 보니 소용없는 일이 없었어요. 예를 들면 이전에 초대장 보내고 모임을 만들었던 자잘한 일들. 그 모임을 2년 운영하고 떠났을 때 저에게 남은 게 없는 것 같아서 조금 후회했거든요. 근데 그때 한 게 에어비앤비에서 한 모든 마케팅의 근본이었어요. 저는 소모임 모집하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은 상태로 에어비앤비에서 일을 시작했거든요. 


IBM 재무 부서에서 3년간 일할 때는 엑셀을 다루는 게 일이었어요. 저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에 얼마나 많이 혼났겠어요. 최근에 재무팀에서 일할 당시의 사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제가 이런 말을 했대요. “저 진짜 이 일 안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못 하는 일을 가장 잘해야 하는 부서에 있는 것 같아요.” 사수는 “여기 익숙해져야 프로페셔널해지는 것”이라고 답했대요. 그런데 요즘 저의 행보를 보면서 너를 조금 더 빨리 보내줬어야 했던 것 같다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었는데,  못하는 걸 너무 잘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밑미 창업 축하한다면서요. 근데 마케터로서 예산을 짤 때 그때 했던 것들이 도움이 됐어요. 제가 마케터치고 엑셀을 잘 다루거든요. 3년 동안 일하면서 돈의 흐름을 본 게 있으니 창업한 지금도 비즈니스적으로도 도움이 돼요.

밑미 - 더 큰 점을 찍는 시기

융: 지금 밑미를 창업한 지 이제 4개월 됐잖아요. 또 새로운 챕터를 시작해보니 어때요? 이전 시작과 다른 점이 있어요?


하빈: 밑미를 시작할 때 창업에 대한 엄청난 포부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확실한 건 내가 나를 아는 단계에 왔고 나에 대한 그레이 영역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나를 좀 잘 아니까 두려움이 줄어들었어요. 회사를 나오는 게 두렵지 않은 것도 저에겐 신선한 일이었죠. 이제 점을 찍고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알고 이게 어떤 형태로든 나의 다음과 연결된다는 확신이 있어요. 


회사 다니면서 아쉬웠던 건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었거든요. 지금은 제가 창업자로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또 더 큰 환경이잖아요. 그렇게 됐을 때 나는 또 어떤 걸 배우고 느낄 것인가. 이건 조금 더 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찍어야 하는 점이구나. 찍어야지만 다음 챕터를 더 자신 있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해보니까 역시 창업은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점을 찍겠다고 했지만 정말 큰 점이에요.(웃음) 몸도 마음도 훨씬 강하게 단련시켜야 여기서 웃으며 일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걸 많이 배우고 있어요. 그래도 저를 성장시키고, 제가 제 것을 결정하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밑미를 창업한 4인방


융: 밑미 자체가 내가 누군지 알게 도와주는 서비스잖아요. 하빈님이 경험해서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하빈: 저는 저를 알기 전까지 시간도 돈도 많이 썼어요. 회사에서 돈을 벌면 쇼핑하는 데 안 쓰고 강연이나 학원을 등록한다든지, 지적 갈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많이 썼어요. 제가 저 자신을 더 들여다보는 데 썼으면 오히려 저를 더 빨리 알았을 것 같은데,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에어비앤비에는 자기 스타일로 사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거든요. 호스트, 게스트, 직원. 이런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면 20대는 다르게 살았을 것 같아요. 제가 무수한 변화를 겪었다 보니 밑미라는 브랜드로서 그걸 빨리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내게 없었던 존재를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좀 더 이 사람을 미리 만났더라면’이란 생각을 가지고 리추얼 메이커도 찾는 것 같아요. 


융: 하빈님도 리추얼 메이커로서 리추얼을 진행하고 있는데, 소설 읽기를 하는 이유는 뭐에요?


하빈: 경영서나 자기계발 위주의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좀 벗어나 보고 싶었어요. 어떤 언어를 표현할 때 경영, 비문학을 읽게 되면 직접적 언어를 많이 쓰잖아요. 근데 마케팅, 스토리텔링을 잘하려면 직접적 언어보다 맥락적 언어를 잘 써야 하는데 그건 감성의 영역이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의도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 누군가의 어떤 장면이 소설과 겹쳐지기도 해요. 감정이 많이 올라오니까 밤에 읽으면서 감정 일기도 쓰고요. 지금은 실제로 제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고, 위로를 많이 받는 매개체가 됐죠.


융: 하빈님 얘기 들으면서 좀 신기한 건, 나에게 필요한 환경을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즉흥적으로 실행하는 것 같아요.


하빈: 저도 얘기하면서 느낀 게 좀 구조적이고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편인 것 같네요. 내가 나를 판단했을 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억지로 시작해봐요. 제가 뭔가를 꾸준히 잘 못하니 그 환경을 만들어줘요. 소설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같이 읽고 댓글 남기는 활동에 참여한다거나, 혼자 잘 못 하니 주변의 연대를 많이 활용했어요. 밑미 온라인 리추얼도 저 같은 사람들이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건 알지만 혼자서는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주는 환경. 이게 자기 재미와 힘이 붙은 다음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요.


융: 밑미 시작하고 가족들 반응은 어땠어요? 하빈님에겐 가족도 굉장히 중요해 보여요.


하빈: 확실히 제가 한국 사회 굴레에서 벗어나서 더 자유롭게 사는 걸 엄마와 오빠가 엄청 등 떠미는 사람들이었어요. 사업한다고 했을 때도 둘 다 찬성. 내 것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엄마랑 오빠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런 선택 뒤에 엄청난 지지자가 있었던 거죠. “너는 잘할 거야.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하고 사는 거지” 이런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있으니까요.


융: 하빈님 어머님도 올해 금자씨부엌을 시작하셨잖아요. 가끔 하빈님이 ‘금자씨 매니저’라고 자처하는 게 재밌었거든요. 예약제로 원테이블에 둘러앉아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금자씨 부엌은 어머님이 먼저 하고 싶어 하신 거예요?


하빈: 사실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브랜드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혼자서 정리하다가 생각한 게 세 가지예요. 자기만의 철학. 그것 때문에 있는 이야기. 그리고 아우라. 아우라는 그 사람의 톤앤매너인데,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안에 톤앤매너가 있는 거죠. 그게 진짜 아우라인데 엄마가 생각나는 거예요. 브랜드의 기준을 써보는데 엄마와 연결됐어요. 자기 철학이 있고, 이야기와 아우라도 있고. 엄마가 브랜드구나, 내가 발견만 해주면 되는 상황이구나 알게 되면서 엄마에게 해보자고 말했어요. 엄마는 돌아다니는 브랜드라고요. 


예약된 한 팀만을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를 준비하는 금자씨부엌


융: 금자씨부엌의 시작에도 하빈님이 있었네요. 어머님은 바로 오케이 했나 봐요.


하빈: 네 엄마도 바로 시작하는 스타일이에요. 이왕 할 거면 큰 데서 좋은데서 해야하는 거 아냐?라고 했는데 저는 무조건 작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크기로 시작하자고 했어요. 해도 안 해도 되는 정도로 해야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아빠가 이걸 해야지만 스토리가 완성된다고 해서 아빠에게 목공을 시켰죠.


융: 아 이것 때문에 목공 하신 거구나. 저는 지금까지 ‘어떻게 마침 아버지가 목공을 하고 있었네’ 생각했는데, 하빈님의 큰 그림이었군요. 


하빈: 네, 아빠 목공도 제가 시작하게 만든 거예요. 제가 아빠에게 돈을 지급한 거로 더 좋은 가구를 살 수 있었는데, 그럼 아빠에게 동기부여가 없잖아요. 처음에는 목공 가루가 날려서 아빠가 싫어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아빠 성격에 목공이 맞을 것 같았어요. 바둑 좋아하고 몰입형이어서. 아빠에게 맡겨서 제 집에 있는 가구들이 아빠의 첫 작품이에요. 지금은 금자씨부엌하면서 아빠도 재미도 붙고 자신감도 붙었죠. 일거리가 있으면 더 재밌잖아요. 이전에는 엄마, 오빠랑 셋이서는 대화가 잘 되는데 아빠는 억지로 끼우려고 해도 엮이는 게 없었어요. 근데 목공을 하고 떳떳한 역할이 생긴거죠.


목공수가 된 하빈님의 아버지


융: 하빈님이 정체성 하나를 찾아 준 거네요. 


하빈: 엄마는 있는 걸 제가 찾아줬으면 아빠는 만들었죠. 아빠 생일 선물로 목공 도구들 사주고, 학원도 보내주고. 딸에게 미안해서라도 하시더라고요. 아빠의 노년 생활이 조금 더 즐거워지도록 하나의 아이템을 준 것 같아요. 


융: 너무 좋네요. 하빈님이 지금 하는 일이랑도 연결되는 것 같아 신기해요. 


하빈: 제가 왜 혜윤에게 <모든 것이 되는 법>을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했냐면요, 그 책 덕분에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정리됐어요. 내가 왜 아빠에게 목공을 시키고 있고, 엄마의 브랜딩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했어요. 그냥 한 거였거든요. 가족을 위해서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책에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다 다른 걸 하는 것 같지만, 하나로 연결되는 뭔가가 있다. 그 메시지가 저에게 유레카처럼 와서 하루만에 책을 다 읽고 흰 종이에 지금까지의 일을 쭉 정리해봤어요. 공통점이 뭐지 하고 봤더니, ‘나는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걸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구나. 나도 그걸 하고 싶구나’ 알게 된 거죠. 처음에 한 얘기랑도 연결되는데요. 저는 이 사람이 좋다고 말했을 때 보면, 자기 스타일이 있고 자기다운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작년 말부터 혜윤과 자잘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잖아요. 이전에도 이 책은 알고 있었는데, 혜윤이 추천해서 더 읽어본 것도 있거든요. 이 시점에 이 사람이 저에게 추천해준 것도 저에겐 신기한 일이에요. 


융: 정말 다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제가 사이드를 하는 이유도 너는 너대로 살면 돼.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은 건데 하빈님이랑 실현하는 모습은 다른 것도 재밌어요. 하빈님의 시작을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요. 2~3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네요. 가까운 미래에 하빈님이 잊고 싶지 않은 현재의 마음이 있어요?


하빈: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요. 저는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창업하고 사업하다 보면 어쨋든 지속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이윤 창출을 해야 하잖아요. 이윤 창출 사이에서 갈등이 왔을 때, 적어도 이 마음은 항상 중심에 있으면 좋겠어요. 만약 이걸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창업을 했지만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고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거의 매일 하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 창업한 게 아니니까요. 그 마음이 지켜지지 않는 날에는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융: 그 마음이 너무 멋있어요. 마지막으로 사이더 구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하빈: 저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 하면서 ‘나는 열심히 사니까 됐어’라고 만족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나를 회피하는 것일 수 있거든요. 무조건 열심히 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성은 있으면 좋아요. 내가 원하는 걸 잘 모른다는 걸 빠르게 인정하고, 자신을 너무 채근하진 않았으면 해요. 이것저것 하는 약간의 변덕성은 나를 찾을 때 당연히 필요한 거거든요. 변덕을 즐겨봐야 내가 어느 분야에서 신이 나는 사람인지, 해봐야 아는 게 다능인 특징인 것 같아요. 많이 경험해보면서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걸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Drawing for SIDERS


하빈님이랑 대화를 하면서 놀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도 몰랐던 이야기가 많았다. 금자씨부엌은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나온 이야기였는데, 이 대화에도 인사이트가 있어 인터뷰에 추가했다. 아버님의 목공 일도 하빈님의 큰 그림이었다니. 돈을 주고 아버지에게 의뢰한 거였다니. 하빈님은 나를 성장시키는 환경을 만들어가며,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좋은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란 게 이야기하는 내내 느껴졌다. 나도 그 바람에 영향을 받아 좀 더 강한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사이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에게 가장 울림을 준 이야기는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란 말이었다. 적어도 이 마음만은 항상 중심에 있었으면 한다는 말. 그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하빈님의 말대로 진짜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이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일상에 좋은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


사이드를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다. 하빈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떠올렸다. 나는 여전히 영감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듣고 전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나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하빈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habiyam


밑미:

https://nicetomeetme.kr/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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