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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 나를 가장 매료시킨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감자밭이다. 감자밭이 개발한 ‘감자빵’을 처음 먹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이 귀여운 감자가 그려진, 감자처럼 생긴 빵은 뭐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가 진심으로 놀랐다. 충격적인 맛이었다. 그렇게 감자빵 사랑이 시작되었고, 감자밭 이미소 대표의 인터뷰를 읽고, 그가 쓴 책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를 정독했다.
감자밭은 아버지의 감자 농사를 돕기 위해 이미소 대표가 춘천으로 내려오며 시작된 브랜드다.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감자 수십톤을 없어서 못파는 감자빵으로 만들어내기까지, 그 과정은 훌륭한 창업 스토리이자 브랜딩 가이드다. 누군가는 불평하고 원망했을 수도 있는 막막한 상황을 밝고 씩씩하게 해결해나가는 미소님의 발자취는 통쾌하고 존경스럽다.
감자밭의 두 부부 대표와 만나 일과 자연,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깊은 사유 끝에 탄생했을 두 사람의 문장들에 속으로 몇 번을 감탄했는지 모른다. 감자밭의 이야기에는 삶의 정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일 이야기를 하지만 모든 비유가 자연에서 나온다. 자연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인지 두 사람을 보는 내내 실감했다. 내 마음의 토양 또한 비옥해진 오후였다.
융: 감자빵 처음 먹었을 때 신세계인 거예요. 너무 맛있어서 주변에 선물하게 되더라고요. 캐릭터도 귀엽고요. 빵 자체에 매료돼서 이게 어떻게 시작된 건지 디깅을 시작했어요. 미소님 인터뷰와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 책을 사서 읽고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미소: 저도 융님을 알고 있었거든요. 늘 누군가를 디깅하는 입장이었는데 누군가 저를 디깅하다니요.
융: 아이고 영광입니다. 미소님은 전공이 완전히 달랐잖아요. 패션 전공에서 어떻게 감자밭까지 가게 된 거예요?
미소: 패션을 너무 사랑해서 세종대학교 패션 디자인과에 진학했는데 제게는 감각이 없다는 걸 발견한 불우한 학생이었죠.(웃음) 패션과 들어가면 내가 다 씹어 먹을 거야! 이런 열정이 있었는데요, 가자마자 능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기대치도 높았는데 생각만큼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아서 1학년 때 바로 패션 꿈을 접어버렸어요.
융: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랑 겹치지는 않았나 봐요. 그런데 1학년 때면, 결정이 엄청 빨랐네요?
미소: 제 강점 테스트 1위가 행동이에요.(웃음) 그리고 아버지가 워낙 기업가 정신이 있으셔서 기회비용에 대한 교육을 강하게 해 주셨어요.
감자를 닮은 '감자빵'
융: 책 속에서 제가 공감했던 문구가 떠올라요. “고민하는데도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지는 않았어요?
미소: 아까운 마음 들죠. 그런데 그게 상대적이잖아요.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시간을 더 쓰면 사실 더 아까워지는 거거든요. 우리는 ‘포기'에 대해 극단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중도하차한다. 낙오자다. 실패자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안 되는 걸 끝까지 하느라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방향을 틀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융: 그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릴 때 미소님이 판단하는 기준이 있어요? 직감으로 움직이신 걸까요?
미소: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건너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늘 돌다리가 3~4번째까지 보이는 게 아니라 1개를 건너가야 그다음이 보였어요. 일단 움직여야 새로운 길이 보이더라고요.
융: 저도 그런 편이라 공감이 가요. 수풀을 헤쳐서 길을 만드는 느낌도 들고요. 그에 반해 동녘님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이룬 케이스잖아요. 두 분의 행보가 겹치기까지 굉장히 다른 길을 걸어오신 것 같아요.
동녘: 저는 좀 빌드업이 잘 된 케이스죠. 아버지가 원래는 셰프고, 어머니는 지점토 공예사였어요. 사업을 잘하다가 안타깝게도 IMF가 터지고 산골로 들어온 거예요. 그때 38,000원을 들고 오셨대요. 농사를 짓기로 하고 집부터 직접 지어서 살았어요. 그때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요, 우리 집이 불우한 건지 못 사는 건지 잘 모르니까 아버지가 뭘 만들고 고치고, 뚝딱뚝딱 만드시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농업이 항상 꿈이었어요. 농사를 지을 줄 알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더라고요. 한국 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창업을 해서 사과 농사를 짓다가 피봇팅을 시도할 때 미소를 만났죠.
융: 두 분의 만남이 감자밭 전설의 시작이었다… 미소님은 서울에서 계시다가 아버지가 도와달라고 부르셨잖아요. 판로를 찾지 못해 버려질 뻔한 감자 몇 톤이 쌓여있는 채로요. 저라면 진짜 막막했을 것 같은데, 그때 서울에서 무슨 일 하고 계셨어요?
미소: 서울에 한 스타트업에서 6개월 정도 신사업 PM 역할을 했어요. 재밌게 일했지만 결정적인 건,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 갚으려고 하니까 희망이 없는 거예요. 월급 200만 원 받아서 월세 내고 생활비 쓰니까 남는 게 없었어요. 부모님 집에 들어가면 월세를 아낄 수 있다 정도의 생각이었죠. 그런데 막상 집에 가니까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한 상황이었어요. 아버지가 농사지은 감자가 제 키의 3배 높이로 쌓여 있고…
창고에 쌓여있던 감자빵
처음 가자마자 3일 동안 밤새서 액셀 시트를 정리했어요. 비용과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 대비 수익률)를 계산해봤는데 말이 안 되는 사업인 거예요. 어떻게 해도 돈이 남기가 힘들어요. 아빠에게 원망 섞인 말도 했어요. 왜 이렇게 온 가족을 힘들게 하냐고요. 그때 아빠 대답이 기가 막혔어요. “미소야 이거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씀하셔서 처음엔 화가 났는데요. 알고 보니 아빠는 다양한 품종의 감자를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융: 감자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책을 읽고 처음 알았어요. 저처럼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텐데, 농산물에서도 다양성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한편으로는 고마웠어요. 뭔가, 농산물 세상에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거예요. 하나만 정답처럼 여겨지고 나머지는 오답처럼 여겨지고 희생되는…
동녘: 생태적으로 봤을 때도 다양성이 지켜지는 게 더 건강해요.
융: 그래서 여러모로 책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제가 가장 반했던 부분은 이거예요.
“나는 농촌의 삶은 고되고 빈곤하며 절대로 멋지지 않다는 선입견을 부수고 싶었다. 언젠간 농부도 벤틀리를 타는 것이 익숙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슈퍼카 타는 농부 부분에서 반해버렸어요. 두 분은 분명 어떤 선입견을 깨고 있어요. 그래서 그 과정을 보는 게 희열이 있습니다.
미소: 예전에 딱 한 번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이주를 많이 한 적이 있었대요. 배춧값이 폭등했던 시기예요. 농촌에 부자가 많이 생겼을 때 청년들이 기회가 있다는 걸 안 거예요. 농촌은 여러 정책이 도와줘야 할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는 기회가 있으면 사람들이 이주하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우리가 감자밭을 일구는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면, 그게 기회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융: 저는 감자밭이 로켓이라고 생각해요. 1,500평짜리 정원도 만드셨잖아요.
동녘: 시골에서 돈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친환경으로 백화점과 거래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게 점점 한두 품목으로 매몰되는 거예요. 유통하기 쉽고, 깔끔하게 생산되는 품목만 백화점에 들어가고. 고객도, 농사꾼도 선택한 게 아니라 중간 상인에 의해서 구조가 정해지고 어쩔 수 없이 바뀌어가는 상황이 아쉬웠어요. 저는 시골에 살면서 산딸기도 따 먹고, 당근도 파란색, 초록색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걸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친구들도 있는 거예요.
융: 초록색 당근이 있어요?
동녘: 네 그런 품종이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뛰어든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희는 좀 다른 방식으로 알리고 싶었어요. 피땀 흘려 만든 농산물이에요. 유기농이에요. 이런 품종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와서 재밌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저에겐 정원이었어요. 일할 때 제일 희열을 많이 느꼈던 건 정원 전체가 다 꽃 피웠을 때예요. 그때 뿜어내는 활력이 엄청나요. 이건 콘텐츠가 되겠다는 생각에 해바라기를 먼저 심었어요.
미소: 저희는 사실 사귀고 3일 만에 사업을 같이 했거든요. 이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융: 와 사귀고 이틀. 두 분 어떻게 처음 만나신 거죠?
동녘: 저는 유기농 사과를 하고, 미소는 강원도에서 감자를 하고. 강원도에서 대표 청년 농부 두 명을 뽑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어떤 행사장에서 만난 거예요.
융: 너무 재밌다.
미소: 그때 당시에 제가 유기농 교육을 받고 와서 물어볼 데가 없는데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화를 시작했는데 고민도 비슷하고 대화가 깊이 있게 잘 통했어요. 농업 이외에도 비즈니스를 하는 거에 비해 저희 목표가 되게 서정적이에요. 감자밭 이후에는 고아원을 한다거나, 사랑을 더 전하고 싶다는 인류애적인 꿈이 있어요. 그런 비전까지 비슷하다 보니까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됐어요.
동녘: 그때 제가 유기농 사과를 하려고 했던 것도 기존 농업에서 길이 너무 안 보여서였거든요. 미소도 아버지께서 일반 감자로는 살아남기 힘드니까 특별한 감자에 투자하셨던 거고요.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결 방안에 있어 서로 고민하는 본질이 같았어요.
융: 기사로 봤는데 사과 12알을 18만 원에 파셨다고요. 동녘님은 사과 품평회에서 1등까지 하고요.
동녘: 저는 1등 하면 제 인생이 바뀔 줄 알았어요.(웃음) 최연소 1등이었고, 매스컴, 뉴스에도 뜨고 그랬는데 결국에는 수익이 안 되더라고요.
미소: 전국 1등을 해도 지속 가능하지가 못한 거죠. 그 상태에서 둘이 만나니까 농업에서 새로운 걸 해보자. 다른 길로 가보자.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융: 각자 해온 고민의 총량이 엄청났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몇 년 동안 두 분 다 실패를 많이 해본 거예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기업가 정신이 키워진 상태로 본질적인 가치관이 맞는 상태에서 만나서 두 사람이 만남으로써 감자밭이 시작된 게 재밌고 신기해요.
아까 동녘님이 “꽃 필 때 활력이 엄청나다"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모든 게 다 에너지라고 생각하는 데 두 분은 자연을 곁에 두고 살아서 이걸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느낄 것 같아요. 사람들은 머리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교, 회사, 이런 빌딩 안에서 배우고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제가 과학자, 자연학자들의 책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제일 좋아하는 인물도 칼 세이건, 천문학자예요. 그 이유는 어떤 본질을 파고 들어서 자연에서 배운 내용을 말하는데 저는 그게 다 삶에 빗대어 보였어요.
브랜딩도 결국 자기다움이고,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진심이어야 지속성이 생기는데 두 분은 그 여러 가지 정신을 자연에서 습득하신 것 같아요. 너무 인상적이라 말이 좀 많아졌습니다. 정원에 꽃도 희귀종을 심으셨잖아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동녘: 제가 고흐를 되게 좋아해요.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면 해바라기가 아닌 것처럼 생긴 둥근 해바라기가 있거든요. 그게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 품종을 찾아보니까 이름도 테디 베어인 거예요. 이름조차 귀여운 그 품종을 찾기 위해 미국 사이트부터 다 뒤졌어요.
융: 아, 디깅의 힘. 이게 바로 디깅이죠.
동녘: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해바라기 색은 세 가지예요. 잎이 노란색. 줄기가 초록색. 가운데 씨가 검은색. 꽃잎이 일주일밖에 안 가요. 해바라기가 피고 일주일 뒤에는 밭에 초록색, 검은색만 남겠죠. 그럼 너무 칙칙하잖아요.
융: 정원 꾸밀 때 이렇게 색깔로 떠올리는 거 너무 재밌네요.
동녘: 미소와 제가 본질적으로 가져가고 싶은 가치가 ‘다양성'인데 이걸 사람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게 꽃이었어요. 그래서 해바라기 품종을 15가지 정도 심었어요. 도시에서는 화단에 보면 꺾지 마세요. 들어가지 마세요. 이렇게 적혀 있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어떤 감흥이 있을까 싶어서 저희는 꽃 따러오는 밭이라고 해서 ‘꽃따밭'이라고 지은 거예요.
융: 밭을 도화지라고 표현하시잖아요. 고흐처럼 페인팅을 한 건데 밭에다가 꽃으로 페인팅한 거예요. 두 분이 생각하는 스케일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직접 뭔가를 만들어보는 경험이 전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사람들이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농부는 애초에 생산자인 거예요. 그냥 농부는 다 생산자고. 생산자가 곧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정말 작은 걸 만들어봐도 두려움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난 이런 걸 만들 수 있구나' 이런 마음이 생기는데. 두 분은 1,500평의 입체적인 공간에다가 농작물이랑 꽃으로 나의 그림을 펼친 거죠.
동녘: 전 정원이 디자인의 끝판왕 같아요. 1년에 한 번 보기 위한 색감을 위해 시간을 들여서 그 공간을 계속 가꾸는 작업이 멋있어요. 그리고 솔직히… 사과 농사짓다가 꽃 농사 지으니까 너무 편한 거예요. 사과는 한 번 열리면 6개월 동안 아기 다루듯이 계속 케어해줘야 해요. 그런데 꽃은 악단의 지휘자처럼 시기를 다르게 꽃 피울 수도 있어요. 사과에 비하면 재밌고 편해요.
미소: 꽃 심는 것도 사실… 땅에 바로 심는 게 아니라 어떤 씨는 깨알보다 작아요. 그러면 1센티짜리 포트에 그 깨알보다 작은 씨를 하나씩 넣어야 해요. 저는 ADHD가 있어서 집중을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동녘이 혼자 일주일 넘게 4만 개의 씨를 다 넣고, 하우스에서 길러요. 물을 매일 줘서 한 달 동안 기르고 포트에서 묘가 자라면 그걸 땅에 옮겨 심어야 해요.
융: 으아. 진짜 부지런해야 하고, 끈기, 집요함 다 필요하네요. 스타트업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이 농사를 짓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길 것 같아요.
동녘: 농작물은 농사꾼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고, 에너지를 들인 작물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뿜어내요. 해바라기가 처음 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다 펴 있을 때 에너지가 엄청나요.
융: 안 그래도 확 피는 꽃인데, 진짜 그럴 것 같아요. 원하는 꽃을 꺾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도시인들의 로망인 것 같거든요. 게다가 다 처음 보는 꽃이고. 그 경험 자체가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동녘: 가격도 저렴하고. 남자 친구들이 포인트 따기도 좋고(웃음). 꽃다발 서비스를 한 사람은 무조건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무조건 올리니까 피드가 쭉쭉 차는 거예요.
융: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감자 빵 이전에 꽃따밭도 엄청난 상승 곡선이 있었네요. 두 분 이야기 듣다 보니까 제가 아끼는 책 속의 구절이 떠올라요. 식물학자 호프 자런이 쓴 <랩 걸>에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는 학교와 사회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어려운 용어를 배우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데, 정작 우리 집 앞에 펴 있는 꽃이나 나무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고요. 제가 그 구절을 읽고 좀 충격을 받았거든요. 사실은 이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지구에 한 번 왔다가면서 내 앞에 피어난 꽃 이름도 모르다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에게서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배운 걸 또 나다운 방식으로 펼쳤을 때 이렇게 멋진 과정을 그릴 수도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미소: 저는 춘천이지만 도시에 살았거든요. 그… 무 위에 대가 있잖아요. 그게 말리면 시래기래요. 저는 그걸 몰랐거든요.
융: 저도 지금 알았는데요…
미소: 대학을 나와도 그걸 모르는 게 충격적인 거예요.(웃음) 감자 씨앗이 감자인 걸 모르는 사람도 많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면요. 저도 첫 해에는 제가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신기했어요. 감자가 감자 씨구나. 이게 시래기였구나. 둘째 해에는 봄이랑 가을이 너무 다른 거예요. 도시에 살 때는 봄, 가을 옷이 좀 비슷하잖아요. 크게 차이를 못 느꼈거든요. 이제 3년 차가 되니까 180도 달라요. 봄은 살아나는 계절이에요. 생명의 시작. 가을은 서서히 죽어가는 계절이에요. 기존에는 날씨만 생각하고 생명의 시작과 죽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농촌에 있으면 바람소리가 달라요. 봄비랑 가을비도 다르고요.
동녘: 이걸 모를 수도 있구나. 봄비에는 산뜻함이 있죠.
미소: 저는 평생 모르고 살았어요. 시기별로 꽃도 다 다르고, 그런 자연의 섬세한 디테일이 점점 보이는 거예요. 제가 이걸 느끼고 나서 동녘이에게 그랬어요. 이걸 미리 느꼈다면 20대 때 디자인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요. 남편이 디자인하는 거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천부적이지?’ 생각했거든요. 이 친구는 그냥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느껴서 시야가 다른 거예요.
융: 설명을 듣는데 뭔가… 아름다워요.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선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어떤 느낌이 드냐면요. 자연에서 느낀 걸 얘기하고 있는데, 시인의 언어 같아요. 시인의 시선이라는 게 작은 것에 예민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변화를 감지하잖아요. 아름답게 들려요.
미소: 농촌을 겪어 보니까 정말 아름다워요. 동녘이는 개구리라면 저는 겨우 올챙이에서 앞다리 정도 나온 사람인데요.(웃음) 앞다리 나온 사람이 올챙이 마음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자연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1년, 1년 삶이 달라요.
동녘: 소중함의 섬세함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봄이라서 잎사귀가 다 자라고 있잖아요. 매년 같은 자리에 잎사귀가 달리는데, 실은 매년 다른 잎사귀가 달린다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지? 그러면서도 매년 바뀌는 환경에 똑같이 아름다움을 뿜어낸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융: 저도 최근에 그걸 생각한 적 있어요. 많은 걸 잃었다가 다시 꽃이 눈에 들어올 때쯤에요. 그래서 자우림 ‘스물다섯스물하나' 가사를 좋아해요.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미소: 눈앞에 기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기적인지 잘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이게 되게 신기한 일인데 왜 이걸 몰랐지?
융: 너무 좋아요. 저는 지금도 엄마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경험이 있어요. 도시에서 살았지만 몇 년 동안 매 주말마다 강원도에 내려갔어요. 나비 도감을 달달 외우고, 6학년 때는 한달간 전교생이 8명인 분교를 다녔어요. 저의 감수성이나 크리에이티브가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배운 게 진짜 많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더 깨달았어요. 제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자연에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엄청난 선물이고 경험이었다는 걸요.
동녘: 감수성 학원은 없잖아요. 자연이 최고의 감수성 학교예요. 도감도 보면, 다른 점을 알아차려야 구분을 하잖아요. 그런 디테일을 보는 습관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감수성으로 연결이 되고요.
융: 크. 디테일을 보는 습관이 삶을 윤택하게 한다. 또 명언 나왔네요. 우리 이야기가 굉장히 철학적으로 흘러가는데 너무 좋아요.
융: 두 분이 각자 꾸던 꿈이 서로를 만나면서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잖아요. 직원들도 합류하고, 감자 빵이 터지면서 연매출이 50억에서 200억이 되고… 불과 2-3년 사이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셨는데, 점점 확장되는 걸 보니까 어때요? 무섭지는 않아요?
동녘: 엄청 높은 곳에 있을 때 밑을 보는 것보다 앞을 보면 덜 무섭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미소: 개인적으로 이것 때문에 공황장애가 왔던 것 같아요. 안갯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면 두렵잖아요. 막연하니까 무서워서 다시 공부하고 마주하고 안갯속을 휘저으면서 뭐가 있는지 몸을 던져보니까 생각보다 두렵지 않은 상황이 많았어요. 최악의 경우에도 솔루션이 없진 않더라고요.
융: 저는 혼자서 제가 뭘 하는 거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많이 없어진 편이에요. 아예 없다기보다는 혼자서 할 때의 두려움은 제가 익숙해져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알아요. 그런데, 이걸 저라는 개인 이상으로 확장한다고 생각했을 때 좀 두렵더라고요.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두 분은 다 겪어봤으니까 혼자서 일할 때와 함께 일할 때의 두려움에 차이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미소: 제가 제일 두려웠을 때가 대기업을 6년 정도 잘 다니고 있던 친구가 처음 합류하기로 했을 때예요. 그때 그 친구에게 “우리 회사가 망해도 괜찮나요?”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이게 1년 전 일이에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저도 압박이 있었고, 불안 장애까지 왔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좀 더 확신이 생겼어요.
동녘: 두려움과 팽창이 계속 같이 느껴져서 저희도 초반에는 힘들었죠.
미소: 스키를 타는데 나무를 보면 무조건 박는대요. 길을 봐야 한대요. 그래서 결정적일 때는 나무를 볼 때도 있겠지만 지금은 길을 보고 있는 거죠.
융: 두 분은 결정을 잘 내리는 편 같아요. 후회가 남지 않게 선택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미소: 생각해보면 저희 둘은 과거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심지어는 저희가 4년 동안 겪은 일이 있잖아요. 그 조차 이야기를 잘 안 해요. 계속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돼요. 현재랑 미래만 얘기하기에도 바쁜 거예요.
동녘: 저는 강점 검사 1위가 미래지향이에요.
융: 우와.
미소: 저는 미래 지향이 3위거든요. 지금 하는 일이 미래의 어떤 것에 영향을 못 미친다면 잘 안 해요. 그러니까 둘 다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거에 최적화된 사람들 같아요.
융: 역시 감자밭… 씨앗 심는 일을 계속하시는 거군요.
미소: 그리고 정말 싫은 일에서도 감사한 일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저희가 만약 어떤 규정을 잘 몰라서 실수로 벌금 3천만 원을 내게 됐어요. 그러면 1억 원이 아닌 게 다행이라 감사하고, 이번 기회로 배웠으니까 감사하고. 이렇게 무조건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동녘: 나비효과처럼 그 흔적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여기 있을까? 이런 느낌으로 살아요.
융: 지금 대화 나누면서 한편으로는 부럽습니다. 제가 책 중에서 제일 부러웠던 부분이 있거든요. “동녘이랑 함께 하면 어떤 문제든 풀 자신이 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우리 그 자체다.” 저 이 문장에도 반했어요. 이게 멋이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 마음. 능력.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는 문장이에요.
미소: 감사합니다.(웃음)
융: 두 분에게 가족이 큰 의미 같아요.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3가지가 있거든요. 공감, 다양성, 용기. 고민되는 순간에 이 세 단어를 떠올리면 방향을 잡을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미소님 책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반가웠어요. 두 분에게 있어 중요한 단어나 가치관이 있어요?
미소: 저는 지속가능성이요. 제가 얼마나 여기 진심이냐면요. 결혼하고 테이블을 6개월 동안 안 샀어요. 한번 사면 죽을 때까지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6개월 동안 찾아서 산 게 허먼 밀러 짭이었더군요.(웃음) 진짜는 따로 있다는 걸 알고 놀랐어요.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에 가니까 똑같은 테이블을 500만 원에 팔고 있더라고요 하하.
어쨌든, 저에게는 소중한 가치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비즈니스였어요. 내가 죽어도 이게 이어지면 가치는 지속될 수 있으니까요. 가족은 저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근원 같은 존재고요.
동녘: 저는 아직 소화가 완벽하게 안 된 단어가 있어요. ‘데퍼런스’라는 단어인데요, 한 번 설명을 해볼게요. 데퍼런스는 존경이란 의미인데요, 존경을 넘어선 숭배에 가까운 느낌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부정적이거나 일방적인 의미일 수도 있는데요,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레퍼런스가 되면 어떤 관계성에 있어서 그 끝점에는 데퍼런스가 있는 것 같아요. 서로를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가 존재해 있음을 느끼고,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마음이에요.
융: 정말 깊고 철학적이어서 조금 어렵기도 한데요. 깊은 존경과 완전한 신뢰 관계에서 가능한 마음가짐 같아요. 감자밭의 ‘밭’이라는 게 두 분에게는 어떤 의미예요?
동녘: 저희 밭 로고가 고랑이 3개가 있는 모양이에요. 밭은 누군가에게 바탕이 되는 일이에요.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각 지역을 상징하는 농토,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회사 밭, 그리고 각자의 마음에 있는 마음의 밭이요. 마음의 밭을 파고들면 또 세 가지로 나뉘어요.
미소: 첫 번째 밭은 모든 요인이 나로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아차리는 단계예요. 이게 외부적인 요인이 많기도 한데요. 저희는 최대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미션이에요. 일하기 좋은 환경, 좋은 동료, 일정 수준 이상의 월급. 기숙사, 차량 제공 등. 최대한 서포트 하면서 자율적으로 일하게 해주고, 자신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게 첫 번째 빈 밭이라고 표현해요.
융: 감자밭 회사의 가치관이 너무 깊어서 놀라워요. 대단하고 멋져요.
동녘: 근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야 자기를 돌아보더라고요. 그때 비로소 빈 밭이 열리고, 두 번째 밭은 자신이 어떤 토양인지를 아는 단계예요. 나의 강점과 색깔을 찾아가는 단계요. 그래서 그 두 번째 밭에서는 자기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서 전 직원들이 강점 검사를 하게 해요. 내 행동의 이유를 회고해보는 거예요.
융: 감자만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계셨네요.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집중하고 계신 게 느껴져요.
동녘: 세 번째 밭은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면, 비슷한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나의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저희가 꿈꾸는 마지막 단계예요. 그 마지막 단계가 저에게는 ‘데퍼런스’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해요.
미소: 누군가를 성장시켜주는 건 첫 번째 밭, 두 번째 밭에서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세 번째 밭의 차이점은 자기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누군가를 성장시키는데 힘을 바치는 단계예요. 이 단계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 확실히 하는 건, 각 밭에서 밭으로 누군가 다음 단계로 넘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가는 거예요. 계단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밭이고, 높고 낮음을 의미하진 않아요.
동녘: 자신만이 넘길 수 있는 페이지인 거죠. 이 마지막 단계가 농사꾼들이 퇴비를 만드는 이유예요. 좋은 흙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들이거든요. 종갓집 씨간장 들어보셨어요? 간장 담글 때, 대대로 내려오는 씨간장을 넣지 않으면 간장이 맛이 없어요. 숙성이 안돼요. 그런데 씨간장 한 국자만 넣어도 폭발적으로 숙성이 되거든요. 퇴비도 마찬 가지예요. 스승님이 만드셨던 퇴비에 미생물이 굉장히 많아요. 그 퇴비를 처음 만드는 퇴비에 한 삽만 섞어도 1년 발효시킬 게 6개월로 줄어요. 그만큼 마음의 옥토가 다져진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서 더 세상을 따뜻하게 했으면 하는 게 우리 밭의 큰 비전이에요.
미소: 우리 회사에서 3년을 다닌 사람이 세계로 나가면 미생물이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것처럼 그 사람도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융: 진짜 깊고, 본질적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내가 누구인지, 지구에 와서 무슨 일을 하고 가야 하는지 오랫동안 고민해와서 더욱 공감이 갑니다. 내가 온전히 채워져야 기쁜 마음으로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같거든요. 저의 질문에 이렇게까지 깊은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동녘: 자신이 빈 밭이 돼보기 위해 결국 시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만. 마지막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우리의 목표 같아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빌딩을 사고해도 데퍼런스와 같은 존재가 없으면 거기가 천국일까요? 지금 환경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온전하게 믿어주고 지탱해주는 사람이 옆에 한두 사람만 있으면, 그게 천국 아닐까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고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융: 저 오늘 대화가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마지막으로 사이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미소: 모든 꽃이 동시간에 다 피지 않잖아요. 저마다 피어나는 계절과 시간이 있듯이 누군가는 빠르게 피워내는 사람이면, 누군가는 늦게 오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동백꽃이 봄에 피면 얼마나 이상해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자기만의 템포를 찾아가면 좋겠어요.
동녘: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그 이유를 한 번 떠올려보세요. 왜 좋아하는지, 왜 하고 싶은지 체크를 해보고 정말 원하는 일인지를 확인하고 행동으로 옮겨봐도 좋다고 생각해요.
미소: 이건 저랑 생각이 좀 다른데요. 저는 왜 하는지 고민을 안 하고 그냥 해본 적이 많아요.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공통점이 나중에 발견될 수도 있거든요.
융: 둘 다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더 맞는 방향으로 선택하면 되니까요. 오늘 나눈 대화는 저도 두고두고 꺼내볼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 동녘: 저희도 즐거웠어요. 사이더들을 응원합니다. 감사해요!
획일화된 곳은 겉모습은 유토피아처럼 보이고 효율적일지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스토피아적인, 강요된 규율과 폭력성이 느껴진다. 개성이 묵살되는 건 비단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농산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종자의 다양성을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종자가 있다는 것도 감자밭 덕분에 처음 알았다.
어딘가에선 이렇게 일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사랑할 수도 있어요,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고 외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딘가에선 이런 꽃도 있어요, 이런 생물도 있어요, 이런 감자 종자도 있어요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문제를 이렇게 재밌고 멋지게 풀어내다니. 사람들이 무관심할 영역에서 맛이라는 본질부터 잡고 대박을 터뜨렸다.
감자밭의 감자빵이 성공한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빵에 머무르지 않고 감자밭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은 파고들수록 나오는 감자밭의 가치관과 스토리 때문이다. 진정성. 일관성. 지속성. 브랜딩의 중요한 요소를 모두 붙잡고 국산 농산물로 농업 문제를 해결하며 사람을 성장시키고 사랑을 전파하고 싶다는 커다란 비전을 가진 브랜드. 자연에서 배운 것들을 일과 삶으로 치환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부러움, 존경, 감탄, 감동 다양한 긍정적인 감정이 피어올랐다. 배울 점이 많아 설렜던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모든 자리가 끝난 후, 미소와 동녘 부부는 오픈카를 타고 춘천으로 돌아갔다. 그 마지막 모습마저 얼마나 멋있고 시원했는지 모른다. 춘천에서 탄생한 감자밭에 이 두사람은 앞으로 또 어떤 꿈들을 심고 훌륭하게 키워낼까? 친구이자 팬이자 동료로 이들의 행보를 응원하는 마음을 보태고 싶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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