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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자란 나무가 더 단단한 나이테를 품는다
나무의사 우종영


인터뷰이: 우종영 | 인터뷰어: 최예시 | 사진: 정찬웅 | 영상: 이수현

내겐 기나긴 불안의 시기가 있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던 시절이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당시 나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우종영 작가가 집필한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이었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무 의사로 살아가며 나무의 곁에서 나무를 공부하고 돌보아오며 깨닫게 된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이었다. 우듬지의 끝은 늘 햇빛을 향해 방향을 바꾸어 자란다는 대목을 읽으며 언제든 필요할 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었다.


그로부터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요즘 나는 ‘어떻게 하면 느리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찾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우종영 작가님이라면 절대 변하지 않을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실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던 4월의 어느 날, 용산 가족 공원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오랜만에 꼭 닮고 싶은 어른을 만난 기분을 느꼈다. 삶의 나이테를 조밀하게 그려나가는 사람이자, 세월의 주름만큼 짙고 울창한 숲속에 크고 넓은 호수를 품고 있는 분이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우리가 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삶의 지혜는 무엇일까. 정말 의도적으로 느리게 가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우종영 작가와 나눈 대화를 함께 살펴보자.

포레스트 위스퍼러

예시: 우리나라 최초의 1세대 나무의사라고 들었어요.

 

우종영: 최초는 아니고요. ‘나무의사’라고 떠들고 다닌 게 최초예요.(웃음)
수목 치료 기술사라는 직업으로 나무를 치료했던 사람들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저는 처음부터 책에다가 나무를 치료하는 의사가 될 거라면서 ‘나무의사 우종영’이라고 글을 썼어요. 80년대부터 이 일을 했으니 1세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시: 나무의사라면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우종영: 나무를 치료하는 일을 합니다. 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 그러니까 한 500년 이상부터 1,000년 가까이 된 나무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을 해요.


예시: ‘포레스트 위스퍼러’라는 직함도 직접 만드셨다고요. 어떻게 이런 이름을 짓게 되셨어요?

 

우종영: ‘위스퍼러’는 속삭이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치유사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어요. 포레스트 위스퍼러라고 하면 숲 치유사죠. 산림청에서 나오는 숲 치유사 자격증과는 좀 결이 달라요. 저는 나무 하나하나가 건강한 숲을 만들기 위해 숲을 치유해 주는 일을 하죠. 그런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어요.


숲은 일종의 성소 같은 곳이에요. 마음대로 들어가서 돌아다녀도 되는 곳이 아니죠. 사람들이 좋은 에너지를 받으려면 건강한 숲에 들어가야 하는데 대부분의 숲이 사람 때문에 아파요. 그래서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일을 하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위스퍼러’는 사실 이미 존재하는 직업군이에요.


예시: 이미 존재하는 직업군이라니요?


우종영: 미국에서 1995년도에 ‘호스 위스퍼러’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어요. 숲에서 말과 사람을 동시에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그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았죠. 


앞으로 미래 직업군 중 가장 뜨는 직업이 케어를 하는 직업이에요. 인공지능이 발달해 피지컬 로봇이 나오면 이제 사람이 기계한테 케어를 받거든요. 거기서 가장 그리워하는 게 사람의 손길이라는 거죠. 진정한 위스퍼러가 필요하게 된 거예요.

 

우종영 작가는 ‘위스퍼러’라는 직업군을 소개하며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할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무로 목공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목수라고 하지 말고 ‘우드 위스퍼러’라고 이름 붙여보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에 ‘위스퍼러’를 붙이면 그게 바로 직업이 되는 거라고. 앞으로 젊은 친구들이 이 직업군에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위스퍼러들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덧붙이며 엷은 웃음을 보였다.

단단한 뿌리를 내린 방황의 시간 

예시: 중학생 때 천문학자를 꿈꾸다가 색약 판정받으셨었다고요. 인생에서 최초로 맞닥뜨린 방황의 시기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셨나요?융: 최근에 OME이라는 음원도 내셨잖아요. 음악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요? 


우종영: 열다섯 살 때 집안 형편 때문에 매일 신문을 100부씩 돌렸어요. 마지막 배달 지점이 산 너머에 있는 박경리 선생님댁이었는데, 캄캄한 밤길에 산을 넘다 벌렁 넘어졌죠. 그때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초롱초롱한 오리온 별자리가 해골바가지처럼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별을 알아야 무서운 밤길을 지날 수 있겠다 싶어 천체 망원경까지 만들며 별에 푹 빠졌는데, 덜컥 색약 판정을 받은 거예요.


그때부터 목표를 잃고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한 채 인쇄소, 문방구 등을 전전하며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했던 곳이 바로 온실이었죠. 쫙 펼쳐진 꽃들의 향기에 이끌려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신기하게도 제 손에 닿는 식물들은 다 잘 자라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와 꽃이 되었구나’ 쳐다보는 곳을 하늘에서 땅으로 바꿨을 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예시: 힘든 일을 겪으면 아예 좌절할 수도 있을 텐데,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길을 찾으신 게 인상 깊어요. 


우종영: 좌절의 원인은 다양할 거예요. 사람에 대한 배신도 있을 거고, 돈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뭐냐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몰라요. 죽을 때까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부모들이 아이가 어렸을 때 찾아줘야 해요. 처음에는 아이도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몰라 뭐든지 다 해보고 주는 대로 갖고 노는데 어느 사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게 돼요. 부모는 그 눈빛을 볼 수 있어야 해요. 저는 그걸 다행히도 일찍 찾았어요.


예시: 적성에 맞는, 좋아하는 일을 일찍이 찾으셨다니 엄청난 행운이에요.융: AI를 잘 활용하는 것도 요즘 창작자의 능력이죠. 얘기 듣다 보니 더 궁금해져요. “이거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면 제일 먼저 어떻게 움직여요?


우종영: 부모들은 아이한테 결핍을 좀 줄 필요가 있어요. 뭐든지 너무 풍족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모르고, 또 안 찾으려고 해요. 그래서 결핍이 중요해요. 결핍이 없는 삶에서는 성공할 수가 없어요.


예시: 지금의 나무 의사라는 직업은 어떻게 갖게 되셨어요?


우종영: 군대 제대하고 중동에서 벌어온 돈으로 땅을 얻어 꽃 농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너무 잘 키워서 망했어요. 못해서 망한 게 아니라 너무 잘 키워서.(웃음) 1980년 봄에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잖아요. 세상이 너무 소란스러우니까 아무도 안 사 가는 거야. 안 팔려갖고 그냥 한 해 쫄딱 망했어요.


사업이 망하고 도대체 무얼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길에 있는 나무를 다듬는 일이라면 내가 할 줄 아니까 조경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1985년 무렵이었는데, 그때는 전화번호부가 이렇게 두꺼웠어요. 조경 편이 이삼십 장 정도 됐는데 나는 ‘조경 관리’라는 업종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삼성 그룹에서 상까지 받은 귀한 나무들이 죽어간다며 연락이 왔어요. 2년 동안 매일같이 출근해 나무를 다 살려냈더니, 나중에는 서울 시내 50여 개 빌딩 조경을 한꺼번에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죠.



예시: 참고할 데이터도 전혀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 나무들을 다 살려내셨는지 놀랍습니다.  


우종영: 지식보다는 나무와 이심전심으로 교감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여름철 빌딩의 나무들은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에 늘 새벽 3시에 출근해 물을 줬어요. 물을 주면 제 눈에는 목말랐던 나무가 수분을 쭉 빨아들여 가지 끝까지 퍼져나가는 게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독일어로 ‘움벨트’라는 말이 있어요.


움벨트요?


우종영: 생명체가 각자 경험하고 있는 고유한 세계를 일컫는 말이죠. 내가 경험하는 세계와 나무가 경험하는 세계, 그리고 나무 꼭대기의 새가 바라보는 세계는 모두 다릅니다. 그걸 이해해야 돼요. 그게 위스퍼러의 기본이에요. 그렇게 나무를 이해하게 되면 남들이 못 살리는 죽어가는 나무도 거뜬히 살려낼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살리지 못하는 나무를 다 살려내니 사업이 번창하는 거죠.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게 아니라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데 나는 학위가 없잖아요. 그래서 <바림>이라는 책을 썼어요.


예시: 학위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며 그 책을 쓰시게 된 건가요?


우종영: 나무에 대해 깊이 들어가기 위해 제 몸을 탐구하듯 나무를 연구했습니다. 제게는 학교 졸업장 대신 제가 쓴 책이 학위입니다. 서양의 소크라테스, 동양의 공자 등 철학이 태동하던 기원전 500년 무렵의 신화와 역사서, 철학서를 참 많이 읽었어요. 당시 조상들이 자연과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 원형의 시각을 아는 것이 지금 문명사회의 접근 방식보다 훨씬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그 깨달음을 담아 나무를 이해하는 철학 서적인 <바림>이라는 책을 쓰게 된 거죠.



어린 나이였다. 그가 인생 최초의 좌절을 맞이한 건 고작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하지만 그는 그 시기에 좌절을 하기 보다 닥치며 무슨 일이든 해보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다녔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찾아낸 그 탐험의 시기는 분명 오래오래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는 튼튼한 나무의 뿌리를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 더 많은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되어준다.


단단한 뿌리는 더 많은 가지를 뻗어낸다

예시: 나무의사 외에도 사진작가, 농부, 작가, 강연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있으십니다. 이 다양한 '부캐'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융: 그림, 서핑, 음악, 영상… 여러 세계 안에서 탐험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활동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게 있나요? 


우종영: 많게는 일곱 개 정도의 부캐를 갖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하나로 관통하는 건, 역시 나무예요. 나무가 늘 중심에 있고 가지치기 하듯 부캐를 만들어 나가요. 나무가 좋기 때문에 영원히 기록하고 싶어 사진작가가 됐고, 그다음엔 키워보고 싶어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됐고, 지금까지 깨달은 것들을 글로 써볼까 해서 작가가 되고, 작가가 되고 나니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서 강의를 했어요.  


한꺼번에 여러 개의 일을 하지는 않아요. 다양한 부캐 중에서 그때 필요한 정체성을 꺼내어 집중해서 하고,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또 다른 부캐를 성장시킵니다.



예시: 일곱 개의 부캐라니 놀랍습니다.


우종영: 숲이 건강하려면 다양한 나무가 있어야 해요. 키 큰 나무, 중간 키 나무, 작은 나무, 게기다 풀도 자라야 다양성이 유지되지요. 숲에 소나무만 한 종 있다고 해봐요. 지난 경북 산불로 숲이 다 타 버린 이유가 소나무가 너무 많은 단순림이라 그래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건 건강한 거예요. 자신의 뿌리가 되는 일을 기반으로 다양한 부캐를 만들어야 해요.


융: 다양한 일을 하다 보면 에너지가 분산되어 우선순위를 정해야겠더라고요. 작가님만의 가지치기를 하는 기준이 있나요?


우종영: 주변에서 가끔가다 그런 질문을 해요. 그렇게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냐고요. 저는 부캐라고 해서 얼렁뚱땅 대충 하는 게 아니고 하나를 할 때 엄청 집중을 해요. 그래서 그게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면 그다음 단계의 일을 하는 식으로 설계를 합니다. 

예를 들어 5단계의 일이 있다면 1단계를 먼저 집중해 오른 다음, 그다음 두 번째 단계의 일을 하는 식이죠.샤론: 일단 서핑하러 가요. 고민이 많거나 걱정이 많을 때는 무조건 그냥 바다에 들어가요. 그러면 그 순간에는 진짜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거든요.


예시: 집중하는 힘이 중요하겠네요.


우종영: 그렇죠. 그러려면 에너지 동력이 떨어지지 않아야 해요. 동력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본업과 부캐의 일이 전부 재밌어야 해요. 사람마다 갖고 있는 탤런트에도 맞아야 하고요.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멋을 내려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내 몸이 원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걸 부캐로 삼아야지, 남들이 하는 거 보고 멋있어 보이는데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덤벼들면 금방 에너지가 떨어지고 싫증이 나죠. 시작도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되고요.


예시: 얘기를 듣다 보니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속도를 내기보다는 천천히 밀도를 높여나가시는 듯 보여요.


우종영: 저는 무슨 일이든지 간에 빠르게 하는 것보다는 더듬으면서 가는 편이에요. 그래야지 실패도 안 하고, 그다음에 그걸 좋아서 하게 되고요. 빨리 뛰는 사람은 먼저 지치기 쉽거든요. 그래서 늘 천천히 가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옆에서 보면 속 터질 지경이죠. 이 일을 한다고 한 지 십 년이 됐는데 이만큼도 진도가 안 나갈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안 하는 게 아니고 머릿속에서는 계속 그 회로가 돌아가고는 있는 중인 거예요. 회로가 돌아가다 어느 순간 반짝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 막 속도를 내죠. 늘 속도를 내지 않는 건 아니고 이런 식으로 조절을 합니다.


융: 속도가 안 나는 그 시기에는 혹 조급한 마음이 드시지는 않나요?


저는 부캐가 많잖아요. 하나가 속도가 나지 않으면 다른 걸 또 하면 되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요. 1단계를 끝내고 2단계를 해야 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 그럴 땐 다른 일을 해요. 다른 일을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막혔던 2단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다시 2단계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식이죠. 계속 하나만 파는 게 아니고 하다가 막히면 다음 일을 하는 게 오히려 더 능률이 있다고 보죠.


빨리 뛰어 지쳐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천천히 가는 것이 설령 돌아가는 길일 수도, 멈춘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걸. 식물을 키우다 보면 각자 자신의 속도로 피어나는 새싹들을 보게 된다. 자신이 피어나야 할 때를 아는 꽃잎들처럼, 나무는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무에게 배우는 느림의 미학

예시: 나무에게도 성장을 의도적으로 늦추거나 멈추는 순간이 있나요?


우종영: 그럼요. 봄 가뭄이 들면 가장 먼저 뿌리 끝에서 위험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가지 끝을 향해 당장 성장을 멈추라는 명령을 전달해요. 한두 시간 정도 아주 빠른 속도로요. 천천히 전달되면 물은 없는데 주체할 수 없이 자라버려서 나무가 죽을 수 있거든요. 반면 다시 물을 빨아들여 생장하라는 명령은 천천히 내립니다. 위험을 감지하는 기관과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기관 사이에 이루어지는 게 속도거든요. 이런 식으로 나무들은 속도의 밸런스를 맞추며 자신의 안위를 이어나가요.


예시: 멈춤이 필요한 순간엔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는 뜻이군요.


우종영: 사람도 똑같잖아요. 운전을 할 때 위험을 감지하면 빠르게 브레이크를 밟죠. 설 때는 빨리 서야 돼요.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해야 하죠. 삶을 살아가며 어떻게 하면 빨리 서고, 어떻게 하면 천천히 가속을 해나갈지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돼요. 그래야 리스크를 줄이며 나무처럼 살 수 있어요.


융: 빨리 자란 나무보다 천천히 자란 나무가 나이테가 훨씬 단단하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우종영: ‘속성수’라고 하죠. 물도 많고 햇빛이 충분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은 이삼십 년만 되어도 쭉쭉 자랍니다. 느리게 자라는 나무들은 어딘가 늘 부족해 같은 기간이더라도 반도 못 자라죠. 그런데 시간이 좀 더 지나보면 속성수는 이미 늙어가고, 느리게 자란 나무는 한참 자라납니다.


100년이 되어 나무가 둘 다 죽었다고 칩시다. 나이테를 잘라보면 느리게 자란 나무가 훨씬 조밀한 나이테를 가지고 있어요. 나이테가 조밀하다는 건 단단하다는 의미거든요. 천천히 단단하게 자란 나무들은 쓰러지지도, 썩지도 않고 더 오래 살죠. 빨리 자란 나무들은 오히려 빨리 죽어요. 천천히 자란 나무들이 더 쓰임새가 많은 편이죠.


예시: 천천히 자란 나무일수록 단단하게 자라난다니, 어쩐지 위안이 돼요.


우종영: 인디언 속담에 그런 말이 있어요. 말을 타고 달려 가다가도 뒤를 돌아다본대요. 내 영혼이 미처 못 쫓아올까 봐 기다리려고요. 우리는 종종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다 자기 자신을 잃고 갈 때가 많죠.


예시: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뒤를 돌아보라’ 저도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의도적으로 느리게 걸어 나가려는 독자분들께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종영: 나무는 철저하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늘 한 계절 앞서 살아갑니다. 달력에 적힌 절기도 보세요. 항상 계절을 앞서 있죠. 나무는 그걸 아는 거예요. 이미 한 겨울에 봄을 예상해 명령을 하고 뿌리를 만들고 물을 올려보내죠. 느린 삶이란 건 무작정 게으르게 느리게 산다는 말이 아니에요. 느릿느릿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죠. 다가올 앞을 내다보고 단단히 준비하되 서두르지 않는 것, 그것이 나무의 삶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몸의 시계가 아닌 마음의 시계에 맞춰 살려고 해요. 느리게 산다는 건 몸의 시계에 맞춰 사는 거예요. 몸이 나는 쉬고 싶다고 말하는데 뛰어가면 안 되잖아요. 몸에 맞춰 자신의 속도를 찾아 나가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무가 살아가는 삶, 그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마치 나무는 인간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나무의 지혜를 온전히 닮아가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섭리를 이미 알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나무와 달리, 나는 그동안 무엇이 그토록 급해서 마음의 시계만 재촉하며 순리를 거스르려 했을까. 의도적으로 느리게 걷는다는 것은 그저 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계절 앞을 내다보고 묵묵히 나의 내일을 단단하게 준비하는 일. 그러니 지금 당장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필요도, 빠르게 뻗어나간 타인의 속성수에 나를 비교하며 불안해할 이유도 없었다.


조밀하고 단단한 나이테를 새기며, 내 영혼이 무사히 쫓아올 수 있는 속도로 걷기. 우종영 작가가 들려준 나무의 섭리를 이제는 내 삶의 숲에도 조용히 심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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