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기와 지붕 사이로 보이는 나무는 유난히 더 아름다워보였고, 걸어가는 길에 남산 타워와 드넓은 하늘이 보였다. 디귿집으로 향하는 길은 시간에 쫓겨 분주하던 마음에게 그렇게 빠르게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연히 달래주는 듯 했다.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조금은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운데의 마당에 서면 하늘과 소나무가 보였고, 명상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백을 담은 공간 안에서 느리게 흐르는 시간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연 사람이 있다. 'ㄷ'자 한옥 모양에서 이름을 따온 한옥 게스트하우스 '디귿집'을 운영하는 상현님은 진행하는 모든 일에 ‘한국’을 녹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디귿집을 방문했을 때 내준 차도, 도자기도, 약과도 전부 한국의 재료로 만든 것이었다. 최근에는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담은 한옥 향수까지 만들었다. 일터도 한옥이지만, 사운드 테라피를 하는 아내와 함께 한옥에서 살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한국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도전과 시행착오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게 되었고, 자신의 일과 삶에 이를 자연스레 녹이고 있다. 학생 때 부터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길을 찾고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상현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융 : 안녕하세요 상현님. 사이더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상현 : 안녕하세요! 북촌 한옥 마을에서 한옥 게스트하우스 디귿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현입니다. 디귿집은 마당을 중심으로 'ㄷ'구조로 한옥이 지어져 있어 지은 이름이에요. 한옥은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여백속에서 머릿속의 수많은 잡념을 잠시 접어두고, 조금 더 깊이 있는 생각에 집중하기 좋아요. 디귿집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명상 음악도 틀어두고, 공간을 정성스레 가꾸고 있어요.
꼽힌 : 공간이 너무 아름다워요, 디귿집 운영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융: 디귿집 운영하기 전에는 디자이너로 일했잖아요. 그 전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셨고요. 전공을 디자인을 하셨던 거죠?
(* 참고로 상현과 융은 예전에 같은 회사의 같은 브랜딩 경험 팀에서 동료로 일한 사이다. 융은 마케터, 상현은 디자이너로 일했다.)
상현 : 아, 그럼 그때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학부 때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가장 처음으로는 요리 자격증을 땄어요. 1년 넘게 아프리카를 여행하기도 했고요.
여행자 시절의 사진
융 : 요리 자격증은 또 몰랐네요. 그건 어떻게 따신 거예요?
상현 : 뭐든 하려면 끝장을 보는 성향이에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는데요. ‘나 요리 잘한다’ 말만 하기는 싫은 거에요. 자격증이 있으면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잖아요.(웃음) 여행도 마찬가지로, 주변에도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았어요. 그런데 끝판왕이 어디지? 생각하다가 아프리카까지 간 거예요.
꼽힌 : 하하, 음악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바이닐 수집하면 더 말 할 필요 없듯이 비슷한 건가 봐요.
상현 : 그때는 또 20대 초반이니까 어릴 때잖아요. 조금 웃기지만, 솔직하게 얘기해서 표면적으로는 그런 이유였어요. 개인적인 이유로는,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요.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삶이 뭔지, 행복이 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졸업 후에 바로 취업하는 대신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갑자기 잃으니까, 미안함이 크게 들었어요. 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알게 된 거지만, 고마운 사람들에게 더 많이 표현하고 살자는 의미를 담아서 졸업 작품으로 '미안해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부모님에게 나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 친구에게 못챙겨줘서 미안하다. 이런 애틋한 마음에서 나오는 미안함이 있잖아요. 그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서 사람들에게 이런 캠페인 어떨 것 같은지 나눠주고, 설문조사하고 그랬어요. 그게 슬픔을 저의 방식으로 해소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졸업 작품이었던 미안해 캠페인
융 : 불확실한 시기에 갑작스런 사고까지. 괴로운 시기였겠어요. 이름은 '미안해 캠페인'이지만 사실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캠페인 같아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미안해, 고마워. 이런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져서 말을 쉽사리 안 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상현님이 겪었던 아픔을 디자이너로서 승화시킨 것 같아 멋져요. 아프리카는 그때 다녀오신 거예요? 아프리카 가서는 어땠어요?
상현 : 네. 학교를 졸업하고 아프리카로 갔어요. 저는 졸업하고 취업해서 첫 월급을 받으면 가족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걸 할 수 없으니 상실감이 컸죠. 요리 자격증 따고, 아프리카를 갔던 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억지스러운 움직임이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꼽힌: 아프리카에는 얼마나 계셨어요?
상현: 케냐에 한 1년 정도 있고, 육로로 남아공으로 내려왔어요. 아프리카를 다녀온 덕분에 제 삶에 쉼표를 찍고 재정비를 할 수 있었어요. 아프리카에서 느낀 점이 정말 많아요.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순수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저도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 전시라는 형태를 통해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전시를 해본 사람이 아니잖아요. 너무 막연해서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전시를 열고 싶다는 목표로 일을 시작하며 돈을 모았고,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소정의 대관료 내고 전시를 열었어요.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소개하고, 저와 친구들이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요. 재밌었던 게 오프닝에 제가 오카리나 연주를 했어요. 남아공에서 만나 마술학교를 갔던 친구가 마술 공연도 하고, 음악하는 친구들이 노래를 하기도, 우쿨렐레를 연주하기도 했어요. 전시를 열었던 경험이 저에게 정말 좋은 자양분이 됐어요.
융 : 제가 상현님 면접을 봤잖아요.(웃음) 포트폴리오에서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과 전시를 했다는 내용을 보고 상현님이라는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겼었거든요. 그때는 제 주변에 이렇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어요. 참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상현 : 맞아요.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그러다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로 지원을 해서 들어간 곳이 융님과 만난 회사였고요. 그 이후에는 '르 캐시미어'라는 회사의 초기 멤버이자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그곳에서 검토하던 사업 중 하나가 게스트하우스였고, 그게 ‘디귿집'의 전신이었어요. 그때 한옥 게스트 하우스를 체험하고, 청소 알바도 했어요. 그러다가 좋은 매물을 소개 받게 되었고, 회사에 제가 해보겠다고 제안을 한 거예요.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제가 비용까지 부담해서 무리해서 계약을 했어요. 운영도 하고요.
융 :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새로운 사업인데, 금전적인 것까지 스스로 부담해서 처음부터 만든 게 대단하기도 하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상현 : 그쵸. 그땐 잘 모르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전부 제 비용을 넣었는데 회사 이름으로 운영하다보니 소유권, 수익 구조가 명확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생겼어요. 나중에는 회사와 이야기를 잘 해서 제가 투자한 금액만 회수하고, 회사를 나와 디귿집은 제가 계속 운영하게 된 거예요. 공사비도 생각보다 많이 나오고 게스트하우스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수익이 들어오는 것도 늦어졌었죠.
북촌 디귿집에서
꼽힌 : 그렇게 흘러가듯이 와서 지금의 디귿집에 이르게 된 것도 인상적이에요! 그런 과정의 결과물에 저희가 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참 먼 길이었지만 상현님 커리어에 일관성이 있다고 느껴져요. 계속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었고 거기서 얻은 역량과 경험이 ‘디귿집’에 온전히 녹아져 있듯이요.
상현 : 맞아요. 정말 지금까지 제가 찍어온 점들이 전부 다 디귿집을 통해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디귿집에서도 공연을 자주 열었어요. ‘ㄷ’ 모양의 공간에 사람들이 쭉 둘러앉으면, 가운데 마당이 무대가 되는 구조거든요. 기획 공연과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주변에 이웃들의 인터뷰를 담은 블로그도 운영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디귿집 좀 재밌는 곳이네?' 하는 입소문이 나게 된 거죠.
재미있는 제안에는 열려 있는 편이에요. 한 달 30일 중 29일 운영 하나 30일을 하나 큰 차이는 없어요. 하루를 우리 비전에 투자를 할 것인가 현상 유지를 위해 투자를 할 것인가 선택해야 할 때 저는 무조건 비전에 투자를 해요.
지금 함께 일하는 많은 분들이 디귿집에 손님으로 왔거나 이웃이었던 분들이에요. 동네에 멋진 분들이 많거든요. 한옥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왔다는 공통점도 있고, 자영업을 운영하고 있다보니 할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저희는 게스트하우스다보니까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소개하기도 하고 하면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깊어졌어요.
꼽힌 : 그런 의사 결정이 있었기에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된 셈이네요.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고, 늘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
융 : 상현님과 대화하는 내내 북촌, 서촌 동네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동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통하는 가치관이 있으니까. 그걸 베이스로 서로를 존중하는 이웃이자 동료가 되고, 느슨한 연대를 통해서 다양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 같아요. 디귿집에서 제일 특이했던 혹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뭐였어요?
상현 : 완전 하이엔드(High-end)의 럭셔리한 여행 기획을 하는 업체가 있는 거 아세요? 두바이 왕자가 헬기를 타고 와서 서울을 도는 코스 중 하나로 디귿집에서 무형문화재 분들이 공연을 한적이 있었어요. 리허설 하는데 정말 장난 아니게 멋있었어요.
꼽힌 : 그런 세계도 있군요.(웃음)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놀란 게,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가 왔었네요? 이건 도대체 뭐에요?
상현 : 아 그 사진을 보셨군요! 톰 홀랜드, 제이크 질렌할이 왔었어요. 꿈꾸는 것 같더라고요. 이 외에도 좋은 분들이 워낙 발걸음을 많이 해 주셨어요. 말씀해주신대로 제가 수익만을 위해 운영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융 : 디귿집이 가진 진정성과 분위기를 사람들이 알아보는 걸까요? 외국인들도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그건 어떻게 연결된 기회였어요?
상현 : 톰 홀랜드 촬영은 누가 온다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어디 방송국인데 촬영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아서 고민했었어요. 대관료도 상품권으로 지불 한다기에 도대체 뭐지? 하다가 그냥 하셔라 했는데 알고보니..
꼽힌 : 상현님의 열린 마음이 만들어준 기회네요, 저였으면 대관정책 정해져 있어요. 얼마 이상 언제까지 입금 안하시면 못해요. 했을 거에요. 그럼 스파이더맨은 못 만나는거죠. 하하.
상현 : 맞아요 저도 정책적으로 했으면 이거 못 했어요. 게다가 상업적인 촬영은 숙박비의 두 배거든요. 때로는 정해진 룰대로 하지 않을 때 어떤 행운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날은 정말 기억에 남는 하루였어요. 저희는 한옥 주인이니까 배우들이 사진도 같이 찍어주더라고요. 사진 촬영은 어렵다고 들었었는데 두 배우가 공간을 좋아하니까 기꺼이 찍어줄 때 기분이 좋았어요.
서촌에 있던 디귿집은 2년 정도를 운영했어요. 계약 연장을 하고 싶었는데 집주인분이 매매 의사를 밝히시고 거의 일주일도 안 돼서 거래가 됐어요. 그래서 빠지게됐죠.
융 : 아, 지금 저희가 있는 북촌 디귿집은 그 이후에 구하신 거죠? 첫 디귿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거고요. 슬펐을 것 같아요. 한땀한땀 고민해서 만든 공간이 내 의지와 다르게 종료된 거니까요.
상현 : 제가 미숙했던 부분이에요. 임대차 보호법 등 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꼼꼼히 챙겨봤어야 되는데 놓친거죠. 그 때 내 공간이 있어야 되는구나 생각도 했어요.
융 : 그럼 서촌 디귿집을 정리하고 상현님은 거주할 한옥을 구매하고, 게스트하우스로 현재 위치의 디귿집을 구하게 된 거예요?
상현 : 네 맞아요. 서촌 디귿집과 이 북촌 디귿집 사이에 약간의 시간이 있긴 했어요.
디귿집에서 열린 다도 행사
꼽힌 : 상현님은 줄곧 한옥을 운영해오고 계신데 스타트업에서 인연이 된 게스트하우스 사업이 계기 였던 거에요, 원래 관심 분야가 한국적인 문화 컨텐츠 였던 거에요?
상현 : 관심분야가 한국적인 문화 콘텐츠는 아니었어요. 제 마음을 끌었던 점은 한국에 이런 주거 방식이 있다는 걸 접하고 난 이후예요. 우리는 대체로 빌라, 원룸, 아파트 경험밖에 못 해보잖아요. 그런데 한옥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제가 본 한옥에 살던 가족이 엄마, 아빠, 아기 둘 이렇게 네 가족이었는데요. 벽에 낙서도 돼 있고 마당에 골프채도 있고 장독대도 있고 마냥 깔끔한 곳은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아예 달랐어요. 좋은 의미에서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그 때가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한옥에서의 삶을 저도 살고 있고, 사람들에게도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네요.
융 : 한국적인 걸 떠나서 그 정감있는 삶의 형태가 매력을 끌었던 거구나, 실제로 한옥에서 사니까 제일 좋은 게 뭐예요?
상현 : 첫 번째로는 친구 부르기도 좋고 모르는 사람들 초대하기 좋잖아요. 금방 어울릴 수 있어요. 원룸에서 살면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나가는 날도 있잖아요. 한옥은 프라이버시는 적지만 사람들과 만나기 좋아요.
융 : 의외의 답변이에요. 요즘 세상에 프라이버시가 없다는 게 되게 단점일 수도 있잖아요.
상현 : 당시 제가 젊기도 했고 그런 교류에 목말라 있었나봐요. 옆집 할머니집에도 놀러가서 밥을 얻어 먹기도 하고요. 이웃 간에 인사 하고 여름에 돗자리 같은 거 펴놓고 같이 앉아 있기도 해요. 이건 한옥의 장점일 수도 있고 동네의 장점일 수도 있겠네요.
두 번째로는 조형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거예요. 기와의 모양, 패턴, 서까래의 모양 등 심미적으로 훌륭하죠. 한옥은 화려하면서 조화롭기 때문에 취향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집 같아요. 전시, 공연을 열어도 위화감이 없는 포용력도 큰 장점이고요.
꼽힌 : 아름다움, 사람들과의 교류, 포용력있는 곳 모두 직접 와보니 정말 공감돼요. 최근 디귿집은 명상 스테이로도 주목 받고 있는데, 상현님 말씀과는 반대로 마인드 풀니스나 웰니스는 어찌보면 개인적인 영역이잖아요. 교류에서 웰니스로 넘어간 건 코로나의 영향일까요?
상현 : 그쵸. 디귿집의 슬로건은 ‘사람들이 마주 앉아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 이에요.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으로 운영을 했었는데 코로나 후 변화가 필요해졌어요. 5월쯤 날씨가 너무 좋은데 공간이 비어 있으니까 너무 아깝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제품들도 가져다 두고, 차 한 잔씩 내어주는 오픈하우스를 진행했어요.
그 때 공간에 평화롭게 앉아 차를 마시는 것도 명상의 한 종류이고, 도자기나 분재 등 전통이 가진 오브제들이 멍을 때리거나 가만히 있는 것 등이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그 이후 명상 스테이라는 컨셉을 정했죠. 그 이후 명상 도구들을 두고 명상 프로그램도 기획했어요.
융 : 환경의 변화에 따라 좀 더 안전하고, 프라이빗하게 운영 방향을 정한 거네요. 여기서 또 놀라운 점은 한옥이 '교류'와도 '웰니스'와도 정말 잘 어울린다는 거예요. 인터뷰 내내 한옥의 매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상현 : 맞아요. 코로나 시대가 되며 명상과 내면으로 좀 더 집중하게 됐어요. 제 아내가 사운드 테라피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시끌벅쩍한 게 더 좋긴해요.
융 : 디귿집 곳곳에 있는 도자기, 분재, 향수, 한지 인센스 등 둘러싼 것들 모두 한국적인 요소잖아요. 이렇게 한국적인 오브제를 수집하고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상현 : 한옥이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는 걸 직접 살면서 매일 느껴요. 살다보니 점점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게 된 거죠.
융 : 처음부터 애국심 같은 차원에서 접근한 게 아니라, 살다보니 뭐야? 완전 멋있잖아 이렇게 된 거네요. 완전 흥미롭다.
상현 : 저 이 부분 말하고 싶은 거 진짜 많아요. 제가 디자이너니까 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라피 이런 걸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한옥이 생각보다 정말 화려한 거예요. 패턴, 모양이 다 달라요.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심미성이 있어요. 창살, 문살, 지붕 모양도 구조를 보면 비례적으로 굉장히 훌륭하고요. 작은 문도 있고, 큰 문도 있고, 창문도 사이즈가 다 제각각이고요. 희한한 패턴 들어가 있는 유리도 있잖아요. 그런데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미도 이있어요. 자연과도 조화를 이뤄요. 한옥에서 보여줄 수 있는 미학적인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기둥도 끼워넣는 방식으로 다 맞물려 있고요. 골조만 놓고 봐도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너무 아름다워요.
꼽힌 : 스토리가 너무 좋은데요?
융 : 한옥에 대한 자부심이 생깁니다. 이렇게 우수한데 왜 잘 몰랐을까요? 그 연결지점을 만들어주실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돼요. 한옥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낀 걸 시작으로 한국적인 것이 디귿집에서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이랑 결합시키게 된거네요. 디귿집의 엄청난 강점 같아요. 스토리도 좋은데 이게 미학적으로도 너무 좋으니까.
상현 : 저는 한옥에 일본식으로 뭔가를 하는 거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제가 감동을 받은 아름다움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이왕이면 최대한 한국적인 느낌들을 많이 살리고 싶어요.
꼽힌 : 요즘에는 어떤 고민을 하고 계세요?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이 안 오는 걸 오픈 하우스로도 한 번 틀어보셨고, 명상 스테이로 방향을 잡았고, 최근에는 향도 만드셨잖아요.
상현 : 운영적인 고민이라기 보다는 기록과 공유에 관한 고민이 많아요. 이번에 융님 만나면서도 느꼈는데요. 그래도 이정도면 디귿집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내가 가진 것들이 표현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책이든, 무엇이든. 디귿집의 시간들을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요. 모든 건 다 없어지기 마련이잖아요. 내가 힘들어서 그만둘 수도 있고요. 어떤 상황이 생겨서 없어질 수도 있는 건데 제가 기록을 남겨두면 그 안에 노하우와 스토리는 있는 거잖아요. 그럼 제가 좀 덜 상처받을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 하다가 꺾어지는 분들 많을 거예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노하우와 자신만의 이야기가 분명 조금이라도 쌓였을 거거든요. 그런데 그냥 끝나버리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현재의 SIDE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다가 꺾이더라도 내가 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사람들이랑 공유하고, 내 이야기를 해보게 되잖아요? 그럼 그 자체만으로도 헛된 일을 한 게 아니에요. 없어져도 이게 있었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잖아요. 그 공유의 과정에서 또 다른 걸 해볼 힘이 생기거든요.
또 하나는 디귿집을 통해서 한옥이 주는 여백의 미가 조금 더 대중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디귿집의 물건이나 공간을 통해 여백 있는 삶에 관한 메시지를 조금 더 전달하고 싶어요.
융 : 저는 오늘 느낀 건데요. 한옥에는 이 마당 위 만큼의 하늘이 포함되어 있어서 좋아요. 하늘이 포함되어 있는 집은 한옥밖에 없지 않아요? 이만큼의 하늘이 내 거라니.
꼽힌 : 그러네요. 너무 좋다. 상현님 마지막으로 사이더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상현 : 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아요. 실행이 훨씬 중요해요. 표현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게 훨씬 나아요. 같은 생각을 해도 표현 방식은 무궁무진하거든요. 사이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융님은 본인이 좋아하는 방식, 잘할 수 있는 방식, 편하게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찾아 푸는 거잖아요. 그 표현 방식이 핵심이에요.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실행하고 노출 시키면 거기서 더 발전해요. 제가 향수를 만들고 또 느낀 점이에요. 세상에 향은 많잖아요. 그런에 한옥 향수는 디귿집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이었던 거예요. 그 방식을 찾아보세요. 조그맣게라도 목소리를 내야지 어떤 사람들이 듣고 '이거 나도 좋아하는 거야!'라고 찾아와요.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표현해보세요.
사이드 프로젝트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를 절대 가두지 말아요. 표현하면서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공유하고 발전시켜보세요. 앞으로 사이더들의 일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한옥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만큼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창틀, 서까래, 지붕, 지의 골조를 이루는 나무 기둥.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전부 다 제각각 개성있게 생겼는데 조화롭다. 완벽한 직사각형이라기 보다는 둥근 부분들이 자연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여백의 미'를 일과 삶에도 적용하며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일을 조율하는 상현님의 이야기에 마음 한 켠이 풍요로워졌다.
녹음기를 끄고 우리는 서로의 미래와 꿈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더 나눴다. 힘든 상황에 부딪혔을 때도, 본업이 있을 때도 움직이고 싶은 그 열망 안에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 관한 힌트가 들어있을지 모른다. 그 아이디어를 가두지 말라고, 아주 작게라도 목소리를 내보자고 상현님은 말한다. 누군가 그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아줄지도 모른다고. 그 작은 과정이 어떤 일을 계속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일을 꽃피우는 씨앗이 되어줄 수도 있다. 디귿집이 전하는 '여백의 미'에 따라 이 아름다운 한옥에서 앞으로 또 어떤 시간과 이야기가 쌓여갈지 진심으로 기대된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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