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느질 클럽, 복태와 한군 




글: 이슬기

정답 없는 길을 엮어가는 삶

실수를 나다움으로 바꾸는 바느질 공동체, 죽바클



바느질에 관심 조금 있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죽음의 바느질 클럽 (일명 죽바클)’. 서울 망원동을 중심으로 시작된 죽바클은 치앙마이식 바느질 기법 전수를 넘어 여유롭고 느긋한 치앙마이 문화를 함께 나누는 커뮤니티로 성장해왔다. 


사실 죽바클을 이끄는 복태와 한군은 ‘선과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어쿠스틱 혼성 듀오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성실히 음악을 만들어오던 두 사람의 세계가 지금에 이른 건, 우연한 계기로 떠난 치앙마이 가족 여행이 시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그들의 바느질 스승이자 친구, ‘액 Eak’이 있다.

About          죽음의 바느질 클럽 

Started       2018년 말, 첫 워크숍 시작 (복태 개인 작업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Base                 서울 마포구 성산동

Category        바느질 공예, 커뮤니티

Concept       치앙마이 바느질을 매개로 자기만의 취향과 속도를 찾아가는 공동체




About          죽음의 바느질 클럽

Started       2018년 말, 첫 워크숍 시작 

                      (복태 개인 작업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Base            서울 마포구 성산동

Category   바느질 공예, 커뮤니티

Concept    치앙마이 바느질을 매개로 

                      자기만의 취향과 속도를 찾아가는 공동체.





Scene 01. The First Spark 

처음 불이 켜진 순간

복태와 한군은 2010년부터 팀으로 함께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홍대를 비롯한 전국적으로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해오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오면서. 공연과 수업을 반복하던 청춘들에게 어느 날, 깜짝 선물처럼 첫째 아이가 찾아왔고 둘은 동료이자 연인에서 부부가 되었다. 이후로 두 아이가 더 찾아오며 복태와 한군은 세 존재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우주가 됐다.


뜨거운 서울살이를 이어가던 어느 날, 한 지인이 복태에게 ‘치앙마이에 가면 참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사계절 내내 초록으로 가득한 도시, 두툼한 외투를 입지 않고 홀홀 나부끼는 옷차림을 한 도시. 복태는 단번에 치앙마이에 매료됐다. 평소 움직임이 둔해지는 겨울을 싫어하던 그였다. 2016년 겨울, 복태와 한군은 세 아이와 함께 2주간 치앙마이 가족 여행을 떠난다. 마침 그들에게 겨울은 공연 일이 거의 없는 농한기였다.


그렇게 우연히 떠난 치앙마이에서, 운명적으로 ‘액’을 만난 것이다. 생후 50일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둘러 메고 앉아 바느질을 하던, 영화 <모아나> 속 ‘마우이’를 닮은 거구의 남자. 한 카페의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두툼한 손으로 섬세하게 바늘 땀을 만드는 액의 모습을, 복태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러곤 홀린듯 말했다. “나도 그거 배우고 싶어.” 마우이를 닮은 남자는 단칼에 거절했다. “가르쳐 본 적 없어.” 그러나 여행 내내 복태의 머릿속에선 액의 바느질이 떠나지 않았다. 복태는 매일 우연을 가장해 그 카페를 찾아갔다. 그러면 어김없이 액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둘은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세 단어 소통을 이어갔다. ‘이거 왜 하는 것이냐’, '그냥 한다’와 같은…. 액과 복태의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지던 차, 한쪽에선 액의 첫째 아이와 복태의 아이들이 이미 친구가 되어 소꿉놀이 한 상이 벌어졌다. 그때 액이 말했다. “바느질 알려줄까? 가르치는 건 못하지만, 친구에게 알려줄 수는 있어.”







“사람마다 다른 속도를 맞추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음악은 어느 정도 같은 페이지로 갈 수 있는데, 

바느질 속도는 다 다르니까요."


"모두가 결과물을 완성해서 갔으면 좋겠는데, 

죽바클의 모토는 느긋하게 즐기는 ‘치앙마이 정신’이니까 

절충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늘 조급하고 날 서 있던 복태에게 바느질은 쉴 틈 없던 책임 사이에 공백을 만들어줬다. 온전한 집중을 요구하는 음악 작업과 달리 아이들과 놀면서도 할 수 있는 일. 완벽한 도안이 있는 것도, 예쁨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복태는 바느질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완성’이라고 정의하는 법에 익숙해져갔다.


복태의 입문으로 한군도 바느질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그저 둘이 좋아서 하던 일이었다. 바느질을 ‘공예’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주변에서 먼저 알아봤다. 공예 작가들을 매니지먼트 하던 지인이 워크숍을 제안한 게 시작이었다. 그가 복태와 한군에게 사람들을 모아 옷 만드는 법을 가르쳐보자고 제안했다. 2018년 겨울, 공예 작가로서 첫 데뷔 무대가 열렸다. 종로에서 권혜경 선생님과 함께한 첫 워크숍. 하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옷 한 벌을 완성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 첫 수업에서 깨달았다.


2019년 초여름에는 그들에게 첫 작업실이 생겼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본격적이라고 해봤자 일주일에 한 번 클래스를 여는 정도였지만. 인스타그램에 간단히 모집 글을 올리면, 알음알음 6명이 모였다.


복태와 한군은 단순히 바느질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치앙마이의 정신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간식을 나눠 먹는 살롱처럼 클래스를 운영했다. 물론 바느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가르치는 일이 워낙 능숙한 둘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사람들이 ‘완성’을 원할수록 둘은 같은 설명을 백 번씩 반복해야 했다. 그래서 ‘비법서’를 만들었다. 한정된 수업 시간 안에 다 못한 건 비법서를 보고 숙제로 이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


음악 활동과 함께 소수 정예로 주 1회 죽바클 모임을 이어나가던 때, 얼마 후 코로나가 닥쳤다. 잡혔던 음악 공연은 모두 취소되거나 무기한 중단됐다. 막막한 현실 앞에 문득 빛을 내준 건 바느질이었다. 그들은 이제 정말로 죽바클을 본업으로 삼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할 수 있는 공연이 다 없어졌어요. 그런데 죽바클 모임은 저희가 열면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주도권이 저희에게 주어진 거죠.”


뮤지션으로서 늘 선택 받는 입장에 서 있었는데, 이들에게 바느질은 선택하는 주체로 서는 용기가 되어줬다. 때마침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인 ‘클래스101’에서 강연 개설 제안이 들어왔다. 영상을 찍고, 녹음하고, 편집하는 모든 과정을 복태와 한군 둘이 직접 했다. 두서없이 떠다니던 노하우와 콘텐츠들은 하나의 완결된 패키지가 됐다. 온라인 클래스 덕에 죽바클은 성산동을 넘어 전국 단위로 퍼져나갔다.


데뷔는 2018년, 워크숍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 바느질을 본업으로 삼은 건 2020년. 어떤 일을 제대로 시작하는 데 3년이 흘렀다는 게 누군가에겐 더디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이들에게 지난 삼 년은 바늘 땀이 촘촘한 직물처럼 견고한 얼개가 됐다.




Scene 02. Building a Universe

세계관을 설계하는 일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라는 이름은 워크숍 초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수업 시간 내 완성에 집착하던 그때엔 하루에 10시간씩 바느질을 이어가기도 했는데, 한 멤버가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이거 완전 죽음의 바느질이잖아!” 


그 가벼운 농담이 복태와 한군이 바느질을 향해 품고 있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바느질이라는 단어에 붙어 연상되던 ‘어머니’, ‘할머니’의 이미지를 깨고 싶다는 마음. 또 이들을 바느질로 이끈 치앙마이 스승 액의 모습과도 잘 어울렸다. 산적처럼 큰 남자로부터 전수된 치앙마이 소수민족 바느질.











“진지하지만 동시에 경쾌하고, 유쾌하면서도 터프한 느낌. 저희가 고수하고 싶은 이미지예요. 죽바클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어요. 바느질이 재밌어서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







둘의 역할은 각자가 잘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한군이 디자인과 마케팅을 맡고, 복태는 행정과 큰 결정을 맡는 ‘대장’ 역할. 죽바클의 브랜딩도 따로 회의를 거쳐 구축한 게 아니다.


“저희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컨셉 회의, 이런 게 없어요. 그냥 일상에서 둘이 주고받는 순간적인 영감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다 보니 브랜딩이 되어 있더라고요.”




죽바클의 모임 참여 신청은 꽤 불편하다. 딱 정해진 기한에만 구글 신청폼이 열리고, 별도의 웹사이트도 없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만 신청서를 찾을 수 있다. DM 소통 창도 따로 운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이런 번거로움이,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 오게끔 하는 일종의 필터 기능으로 작용했다.


“귀찮으면 사람들이 잘 안 와요. 하지만 그걸 감내하고 오는 사람들은 이미 배울 준비가 돼 있어요.”







모임에서는 서로 나이나 하는 일도 묻지 않는다. 통성명을 하지 않아야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저 바느질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임. 다 같이 모여 각자의 목적과 최선으로 재밌게 놀다 가면 그만이다. 서로의 배경은 떼두고 취향 기반으로 모이니 오히려 오래 지속되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죽바클의 클래스를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픈 채팅방은 여전히 시시콜콜한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음악을 할 때에도 그랬지만, 둘은 한 분야에만 몰입하는 걸 금세 지루해 했다. 그 성향이 죽바클에서도 자유롭게 발현됐다. 바느질이라는 매개를 통해 음악, 디자인, 여행까지 다 끌어들여 해볼 수 있으니까.




“바느질을 가이드 하면서 

음악을 가르칠 때와 똑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색감을 화성으로 표현하고, 

바느질의 리듬을 안내하다 보면, 

다들 ‘이거 바느질 수업 맞나’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만약 텍스타일만 전공했으면 못 했을 접근 같아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으는 자리, 그게 똠똠 페스티벌의 시작이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분배됐다. 누군가는 기획을, 누군가는 셀러 모집을, 그리고 음악을 하던 복태와 한군은 공연 기획을. 멤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손에 손을 더하면서 똠똠 페스티벌은 첫해부터 독보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자연스레 이 페스티벌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장소 대관과 스폰서 제안도 들어왔다. 판이 커지니까 여러 분야의 수공예 작가들도 모이기 시작했고, 치앙마이 작업자들도 불러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판이 크건 작건, 죽바클이 똠똠 페스티벌을 통해 추구하는 바엔 변함이 없다.




“추구하는 방향이 확고해야

 이 마켓이 독보적으로 보이겠더라고요. 


잘 팔릴 것 같다고 해서 모두 합류시키면 

다른 마켓이랑 차별성이 없으니까요. 


저희는 지원자들의 작업물을 일일이 직접 보며 

진짜 손으로 만든 건지 아닌지 구분해요.”




똠똠 페스티벌이 많은 장르를 포괄하는 자유롭고 유연한 장이 된 배경에는 ‘수공예’라는 확고한 기획의 뼈대가 있었다.



Scene 02. Building a Universe
세계관을 설계하는 일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라는 이름은 워크숍 초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수업 시간 내 완성에 집착하던 그때엔 하루에 10시간씩 바느질을 이어가기도 했는데, 한 멤버가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이거 완전 죽음의 바느질이잖아!” 


그 가벼운 농담이 복태와 한군이 바느질을 향해 품고 있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바느질이라는 단어에 붙어 연상되던 ‘어머니’, ‘할머니’의 이미지를 깨고 싶다는 마음. 또 이들을 바느질로 이끈 치앙마이 스승 액의 모습과도 잘 어울렸다. 산적처럼 큰 남자로부터 전수된 치앙마이 소수민족 바느질.




“진지하지만 동시에 경쾌하고, 유쾌하면서도 터프한 느낌. 저희가 고수하고 싶은 이미지예요. 죽바클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어요. 바느질이 재밌어서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





둘의 역할은 각자가 잘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한군이 디자인과 마케팅을 맡고, 복태는 행정과 큰 결정을 맡는 ‘대장’ 역할. 죽바클의 브랜딩도 따로 회의를 거쳐 구축한 게 아니다.


“저희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컨셉 회의, 이런 게 없어요. 그냥 일상에서 둘이 주고받는 순간적인 영감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다 보니 브랜딩이 되어 있더라고요.”




죽바클의 모임 참여 신청은 꽤 불편하다. 딱 정해진 기한에만 구글 신청폼이 열리고, 별도의 웹사이트도 없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만 신청서를 찾을 수 있다. DM 소통 창도 따로 운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이런 번거로움이,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 오게끔 하는 일종의 필터 기능으로 작용했다.


“귀찮으면 사람들이 잘 안 와요. 하지만 그걸 감내하고 오는 사람들은 이미 배울 준비가 돼 있어요.”






모임에서는 서로 나이나 하는 일도 묻지 않는다. 통성명을 하지 않아야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저 바느질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임. 다 같이 모여 각자의 목적과 최선으로 재밌게 놀다 가면 그만이다. 서로의 배경은 떼두고 취향 기반으로 모이니 오히려 오래 지속되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죽바클의 클래스를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픈 채팅방은 여전히 시시콜콜한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음악을 할 때에도 그랬지만, 둘은 한 분야에만 몰입하는 걸 금세 지루해 했다. 그 성향이 죽바클에서도 자유롭게 발현됐다. 바느질이라는 매개를 통해 음악, 디자인, 여행까지 다 끌어들여 해볼 수 있으니까.




“바느질을 가이드 하면서 음악을 가르칠 때와 똑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색감을 화성으로 표현하고, 바느질의 리듬을 안내하다 보면, 

다들 ‘이거 바느질 수업 맞나’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만약 텍스타일만 전공했으면 못 했을 접근 같아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으는 자리, 그게 똠똠 페스티벌의 시작이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분배됐다. 누군가는 기획을, 누군가는 셀러 모집을, 그리고 음악을 하던 복태와 한군은 공연 기획을. 멤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손에 손을 더하면서 똠똠 페스티벌은 첫해부터 독보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자연스레 이 페스티벌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장소 대관과 스폰서 제안도 들어왔다. 판이 커지니까 여러 분야의 수공예 작가들도 모이기 시작했고, 치앙마이 작업자들도 불러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판이 크건 작건, 죽바클이 똠똠 페스티벌을 통해 추구하는 바엔 변함이 없다.




“추구하는 방향이 확고해야 이 마켓이 독보적으로 보이겠더라고요. 


잘 팔릴 것 같다고 해서 모두 합류시키면 다른 마켓이랑 차별성이 없으니까요. 


저희는 지원자들의 작업물을 일일이 직접 보며 진짜 손으로 만든 건지 아닌지 구분해요.”




똠똠 페스티벌이 많은 장르를 포괄하는 자유롭고 유연한 장이 된 배경에는 ‘수공예’라는 확고한 기획의 뼈대가 있었다.


Scene 03. Portfolio Closeup

작업물 클로즈업

                                              복태와 한군                                                                                                                             

                                             바느질 공동체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이끄는 두 사람.


  


죽바클 워크숍            

바느질 입문부터 멜빵바지 만들기, 내 옷 수선하기 등 다양한 주제로 워크숍이 열린다.          
 워크숍 일정은 매달 인스타그램 계정(@da_jojin_da)을 통해 공지된다.          

비저블 멘딩 Visible Mending





보통 수선의 핵심은 흠을 숨기거나 복원하는 데 있지만, 

치앙마이식 바느질은 대놓고 드러내는 데 있다. 

‘그래, 나 수선했어. 어쩔 건데!’ 식으로 개성을 유쾌하게 표현하는 기법. 

그래서 이들에게 구멍과 해짐은 문제가 아니라 반가운 기회다.

Scene 03. Portfolio Closeup 

작업물 클로즈업


복태와 한군

바느질 공동체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이끄는 두 사람.



죽바클 워크숍

바느질 입문부터 멜빵바지 만들기, 내 옷 수선하기 등 

다양한 주제로 워크숍이 열린다.
워크숍 일정은 매달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지된다.

(@da_jojin_da)

비저블 멘딩 Visible Mending

보통 수선의 핵심은 흠을 숨기거나 복원하는 데 있지만, 

치앙마이식 바느질은 대놓고 드러내는 데 있다. 


‘그래, 나 수선했어. 어쩔 건데!’ 식으로 

개성을 유쾌하게 표현하는 기법. 

그래서 이들에게 구멍과 해짐은 문제가 아니라 반가운 기회다.

치앙마이 바느질 여행

매년 정원을 모집해 

바느질 고향 치앙마이로 바느질 여행을 떠난다. 


복태와 한군의 스승 ‘액 Eak’과 유쾌한 바느질도 하고, 

카렌족 스승님들을 찾아 만나 

경이로운 작업 방식을 경험하는 시간. 


그들의 삶의 방식을 마주하고 존중하며, 

온몸과 마음으로 치앙마이 정신을 배운다.

똠똠 페스티벌

‘똠똠’은 태국 북부 사투리로 ‘모여 모여’라는 뜻이다. 

수공예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태국과 한국 작가들이 모여 작업물을 선보인다.

Scene 04. Ways of Working 

일의 리듬을 만드는 법


1) 가족들과의 시간 확보가 최우선


요가에서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너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더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고 멈추는 것. 그래야 다시 원래 자리를 찾아오는 데 쓸 에너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나아갈 길뿐만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알아차리는 게 핵심이다.



죽바클은 이 중용을 지키는 일을 늘 기준에 둔다. 그 중심은 다름 아닌 가족이다. 저녁과 주말 수업 요청이 많음에도, 더 많은 돈과 명예를 가질 수 있을 텐데도 그들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에 시간을 쓰는 만큼 아이들과의 시간은 줄기 때문에.


“죽바클이 주말과 저녁 수업을 많이 열면 훨씬 잘될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은 방치되겠죠? 그 돈을 벌면 그만큼 또 쓰게 되니까, 못 번만큼 안 쓰는 셈 치는 거죠.”



물론 처음부터 명확한 기준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복태는 자신이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기에 결혼 초반엔 억울했다고 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는데 성공하는 친구들을 보면 속이 상했다. 생계 때문에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할 때, 성장이 제자리인 것 같을 때는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셋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아기가 깨서 책을 못 읽게 되면, ‘나는 지금 책을 안 읽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한 생명을 키워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나의 미래만큼이나 이 아이가 잘 크는 게 궁금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복태와 한군은 지금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 수 있는 만큼 버는 지금이 더욱 감사하다.


“가족은 저희에게 최고의 중력이에요, 중력.”



2) 돈은 목표가 아닌 감사의 근거


복태와 한군은 매출을 정확히 계산해 본 적이 없다.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을 좇는다'가 아니라 '돈이 나를 쫓게' 만들어야 해요. 뭔가를 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보여줬더니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것. 그게 맞는 방향이죠. 안 사고 싶은 걸 만들어놓고 샀으면 한다면 강매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외면하는 태도를 좋게 보지도 않는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대신, 오히려 돈에 의한 자극을 즐긴다. 그 자극을 더 쟁취하기 위한 방향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감사함으로 누릴 근거로 활용한다.



“얼마 전에 집 이사를 했는데, 월세가 상당해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월세가 이만큼이니까 수업을 더 많이 열어야겠다’가 아니라, ‘이사 덕분에 아이들 공간도 다 분리해 주고, 작업 환경도 더 좋아졌네. 더 재밌게 일해야지’라고요.



돈이 나를 쫓게 하려면 타인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격려와 응원으로 동기를 부여받고, 냉정한 평가를 수용하며 성장하는 법. 그래서 한군은 계속해서 SNS에 나의 일을 발표하라고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더라도 SNS에 계속 노출해 과정을 보여주라고. 바야흐로 서사의 시대 아닌가!


“피드백은 물론 두렵고 어렵지만 그게 없으면 도태돼요. 내 작업이 기능을 안 하고 멈추면 안 되잖아요. 일단 내가 재밌게 하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3) 세계의 축을 바꾸는 긍정 마인드


‘복태와 한군’식 사고방식은 단지 작업자를 위한 조언이 아니라 종말을 앞두고 사는 많은 현대인들에게도 유의미하게 들린다. ‘이제 곧 세상이 망할 테니 아무렇게나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언제 죽어도 아름다운 삶으로 오늘을 보내야겠다’는 마음가짐. 같은 환경 속에서도 어떤 시선으로 살지 결정하면, 내가 사는 세계의 축 자체가 옮겨진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죽바클 모임이니까 다 좋은 사람만 모이는 거지, 진짜 사회는 그렇지 않다고. 복태와 한군은 그 말에 반대한다.



“서로 헐뜯고 경쟁하는 사회를 사회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에요. 저희는 서로 칭찬하고 존중하는, 친구와의 우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사회라고 봐요. 모두가 자기만의 사회를 만들어가면 되죠.”



똠똠 페스티벌

‘똠똠’은 태국 북부 사투리로 ‘모여 모여’라는 뜻이다. 

수공예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태국과 한국 작가들이 모여 작업물을 선보인다.



치앙마이 바느질 여행                    

매년 정원을 모집해 바느질 고향 치앙마이로 바느질 여행을 떠난다.                

복태와 한군의 스승 ‘액 Eak’과 유쾌한 바느질도 하고,                

카렌족 스승님들을 찾아 만나 경이로운 작업 방식을 경험하는 시간.                

그들의 삶의 방식을 마주하고 존중하며, 온몸과 마음으로 치앙마이 정신을 배운다.                 



Scene 04. Ways of Working 

일의 리듬을 만드는 법


1) 가족들과의 시간 확보가 최우선


요가에서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너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더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고 멈추는 것. 그래야 다시 원래 자리를 찾아오는 데 쓸 에너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나아갈 길뿐만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알아차리는 게 핵심이다.


죽바클은 이 중용을 지키는 일을 늘 기준에 둔다. 그 중심은 다름 아닌 가족이다. 저녁과 주말 수업 요청이 많음에도, 더 많은 돈과 명예를 가질 수 있을 텐데도 그들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에 시간을 쓰는 만큼 아이들과의 시간은 줄기 때문에.


“죽바클이 주말과 저녁 수업을 많이 열면 훨씬 잘될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은 방치되겠죠? 그 돈을 벌면 그만큼 또 쓰게 되니까, 못 번만큼 안 쓰는 셈 치는 거죠.”


물론 처음부터 명확한 기준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복태는 자신이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기에 결혼 초반엔 억울했다고 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는데 성공하는 친구들을 보면 속이 상했다. 생계 때문에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할 때, 성장이 제자리인 것 같을 때는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셋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아기가 깨서 책을 못 읽게 되면, ‘나는 지금 책을 안 읽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한 생명을 키워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나의 미래만큼이나 이 아이가 잘 크는 게 궁금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복태와 한군은 지금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 수 있는 만큼 버는 지금이 더욱 감사하다.


“가족은 저희에게 최고의 중력이에요, 중력.”



2) 돈은 목표가 아닌 감사의 근거


복태와 한군은 매출을 정확히 계산해 본 적이 없다.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을 좇는다'가 아니라 '돈이 나를 쫓게' 만들어야 해요. 뭔가를 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보여줬더니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것. 그게 맞는 방향이죠. 안 사고 싶은 걸 만들어놓고 샀으면 한다면 강매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외면하는 태도를 좋게 보지도 않는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대신, 오히려 돈에 의한 자극을 즐긴다. 그 자극을 더 쟁취하기 위한 방향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감사함으로 누릴 근거로 활용한다.



“얼마 전에 집 이사를 했는데, 월세가 상당해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월세가 이만큼이니까 수업을 더 많이 열어야겠다’가 아니라, ‘이사 덕분에 아이들 공간도 다 분리해 주고, 작업 환경도 더 좋아졌네. 더 재밌게 일해야지’라고요.


돈이 나를 쫓게 하려면 타인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격려와 응원으로 동기를 부여받고, 냉정한 평가를 수용하며 성장하는 법. 그래서 한군은 계속해서 SNS에 나의 일을 발표하라고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더라도 SNS에 계속 노출해 과정을 보여주라고. 바야흐로 서사의 시대 아닌가!


“피드백은 물론 두렵고 어렵지만 그게 없으면 도태돼요. 내 작업이 기능을 안 하고 멈추면 안 되잖아요. 일단 내가 재밌게 하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3) 세계의 축을 바꾸는 긍정 마인드


‘복태와 한군’식 사고방식은 단지 작업자를 위한 조언이 아니라 종말을 앞두고 사는 많은 현대인들에게도 유의미하게 들린다. ‘이제 곧 세상이 망할 테니 아무렇게나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언제 죽어도 아름다운 삶으로 오늘을 보내야겠다’는 마음가짐. 같은 환경 속에서도 어떤 시선으로 살지 결정하면, 내가 사는 세계의 축 자체가 옮겨진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죽바클 모임이니까 다 좋은 사람만 모이는 거지, 진짜 사회는 그렇지 않다고. 복태와 한군은 그 말에 반대한다.


“서로 헐뜯고 경쟁하는 사회를 사회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에요. 저희는 서로 칭찬하고 존중하는, 친구와의 우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사회라고 봐요. 모두가 자기만의 사회를 만들어가면 되죠.”







복태의 바느질을 시작으로 죽바클의 나선형 여정이 항해를 이어온 지도 10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들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음악 일에만 몰두했을 적에도, 그리고 바느질 라이프를 시작한 이후로도 ‘왜 이렇게 바쁘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그럼에도 이들에게 조급함 대신 여유가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향한 수용적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복태는 몇 년 전 우연히 뽑은 타로 카드 한 장으로부터 자신의 많은 것을 이해했다고 했다.


“제가 갖고 태어난 성격 카드가 ‘운명의 수레바퀴’예요. 그래서 늘 선택지에 놓이죠. ‘

전차 카드’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한 길을 파는데, 운명의 수레바퀴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는 사람이거든요. 


뭘 해도 잘 하니까 쉽게 흔들려요. 이것도 잘하는 것 같고, 저것도 잘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제일 잘하는 것 같지는 않고. 

옛 어른들이 한 우물만 파라고 했는데, 저는 그러질 못해서 내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쉽게 불안해하던 그는 이제 운명의 최전선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택하든, 고민의 깊이가 어떠하든, 어떤 과정과 결과가 펼쳐지든 그것을 최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이 지나친 길에 대해선 더 이상 후회와 미련을 남겨두지 않는다. 


천에 바늘을 찌른 위치가 못마땅하더라도 그 지점에서 실을 꿰어가며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듯이, 

한 번의 선택을 가장 충만하게 살아갈 방법을 고민한다.


“언제나 다음 길을 생각해야지,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선이라는 건 결국 그 시간을 충만하게 보냈느냐 아니냐인 것 같아요.”




바늘땀 간격이 불규칙해도, 남들과 다르게 실의 라인이 삐뚤어도 

바느질을 하는 그 시간 스스로에게 충실했다면 그로 인한 결과도 만족할 수 있다. 


죽바클에서 말하는 치앙마이 정신은 단지 느긋하고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는 삶이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를 품는 넓은 수용력에 있는 것이다.


“나는 땀이 원래 이렇게 큰 사람이구나, 나는 바느질이 빠른 사람이구나 하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모든 과정 자체가 성장이에요. 

한평생 그렇게 살면서 우리는 진화된 인간으로 삶을 마감할 거예요. 

이 세상에 누구도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죽바클 인스타그램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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