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CLUB은?
27CLUB(@27club.kr)은 스물일곱 무렵 만난 친구들이 ‘낡은 집’을 개조하며 시작된 건축 크루인데요. 설계하기 전 예술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으며 영화를 만들 듯 시나리오를 쓰고, 한 땀 한 땀 공예하듯 공간을 짓고, 해외에서 어렵게 공수한 빈티지 아이템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요. 그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섬세하게 담아내고 그 세계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죠. 프로젝트 단위로 다양한 밀도로 유연하게 일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부산의 한 골목길에 위치한 ‘웻에버’와 전주의 ‘로텐바움’에 들어서는 순간 6-70년대로 온 타임머신을 탄 것 같기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해요.
포토그래퍼이자 독립건축 크루 27CLUB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찬웅은 최근 창간한 BGM 매거진 인터뷰를 통해 융과 인연이 생겼고, 융과 꼽힌은 27CLUB의 두번째 프로젝트인 전주 ‘로텐바움’에서 말 그대로 영화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짐했다. 서울에 돌아가면 이 공간의 페르소나 조르그를 만든 찬웅님과 꼭 이야기 나누자고.
찬웅은 지역의 흥미로운 공간을 만드는 독립건축크루 27CLUB의 멤버로 부산의 웻에버와 전주 로텐바움을 함께 만들고 그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국내 패션 브랜드와 매거진의 포토그래퍼로도 활동하며, 개인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의 회사 근처 작은 카페에서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1월을 맞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이더들에게 영감과 용기가 되길 바라며 소개한다.
꼽힌 : 로텐바움 디테일들과 스토리텔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드디어 만났네요. 사이더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려요.
찬웅 : 저는 비주얼디렉터이고, 사진을 찍고 있는 정찬웅이라고 합니다.
융 : 포토그래퍼가 아니라 비주얼디렉터로 설명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찬웅 : 사진기는 하나의 툴이잖아요. 제가 만드는 것들이 사진을 매개로 한 영상이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예를 들면 로텐바움은 ‘조르그의 공간’이었던 거고 웻에버의 경우에는 영화 ‘Shape of Water’를 모티프로 삼았어요. 사진을 베이스로 확장하는 비주얼 디렉터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텐바움 Work in Progress
꼽힌 : 요즘은 어디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세요?
찬웅 : 얼마 전부터 패션 브랜드의 인하우스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어요. 입사 전에는 27CLUB을 메인 업무로 하다가 로텐바움 프로젝트가 끝난 뒤 이곳에 합류했어요. 굳이 나누면 이제는 27CLUB가 사이드인 셈이에요. 27CLUB은 건축팀이다 보니 앞으로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종종 매거진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융 : 크루처럼 일하는 거네요, 27CLUB은 언제 어떻게 합류하게 됐어요? 로텐바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었어요. 기분 좋게 놀라기도 했고요.
찬웅 : 27CLUB으로 일한지는 2년 정도 됐어요. 부산에 만든 첫 번째 공간 웻에버 중후반부에 합류해서 최근 오픈한 전주 로텐바움까지, 현장에 붙어서 촬영이랑 콘텐츠들을 맡아서 진행 했어요. 프로젝트가 끝나고 요즘 저는 정기 미팅에만 참여하고, 메인 잡에 집중하고 있어요.
융 : 그럼 평일엔 대부분 패션 브랜드에서 일을 하시는 군요.
찬웅 : 맞아요, 9 to 6로 하고 있는데 조만간 대표님과 주 4일 정도로 근무일을 조정하려구요.
융 : 지금 정규직인데 계약직으로 먼저 제안 하신다는 거죠? 보통 정규직을 선호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저도 지금은 계약직을 선호하거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여러 파트너들과 함께 일할 수 있으니까요. 원하는 형태로 일의 방식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아요.
찬웅 : 저는 굳이 정규직일 필요가 없어요. 회사 입장에서도 계약직으로 일이 있을 때만 저를 쓸 수 있다면 서로의 니즈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융 : 개인 작업과 회사 작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주 3, 4회 같은근무 형태가 더 활성화 되는 것 같아요. 요즘 해외 아티클에도 많이 나오는 키워드에요. 생산성은 꼭 시간과 완벽히 비례하지 않는다고요. 도리어 쉬는 시간을 늘렸더니 효율이 올랐다는 결과도 있고요.
꼽힌 : 이번 대통령 공약에도 있어요.
찬웅 : 오 주 4일 상용화되면 좋겠다.
꼽힌 : 서로 윈윈이죠.
융 : 매거진, 공간, 인하우스 포토그래퍼 등 사진을 중심으로 3~4가지 일을 하고 계신데 일의 균형을 어떻게 잡고 계세요?
찬웅 : 솔직히 균형을 못 지키고 있어요. 재밌겠다 싶은 일이면 그냥 하는 것 같아요. 제 성격 자체가 쉬면서 충전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더 하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아요. 저는 일로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사람 같아요. 원래 사진 전공자가 아니기도 해서 제 포지션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죠.
융 : 워라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찬웅 : 박탈감이 들어서요.
꼽힌 : 지키고 싶은데 못해서?
찬웅 :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부순다.(웃음) 농담이고요. 일과 삶은 완벽하게 분리할 수가 없는데,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니까 약간의 거부감이 든 것 같아요.
융 :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고 어떤 게 일이고 어떤 게 일이 아닌지가 경계가 불분명한 게 많더라고요.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돈을 받으면 일일까? 사이드로는 돈을 버는 건 없었는데 그럼 일이 아닌가? 저도 헷갈릴 때가 많아서 워라밸이란 단어의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꼽힌 : 회사에 다니면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온 말 같아요.
대표 작업
융 : 사진 전공이 아니였으면, 전공이 뭐였어요? 어떻게 사진을 찍게되신 거에요?
찬웅 : 컴퓨터 공학이요(웃음)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잘 안 하거든요. 대학교 다니다가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것 같아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으로 갔어요.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도 사진은 계속 찍고 있었거든요. 취미로 지원한 네이버 그라폴리오 사진 크리에이터에 선정된 게 계기가 됐어요. 그 때 받은 상금과 용돈을 모아 일본으로 간 거예요. 일본에서 살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 형이 있는데요, 그 형이 ‘찬웅아, 네 사진들 모아서 전시를 한번 해보지 않을래?’ 제안했어요.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가 한국에 돌아오게 될 때 쯤에 모아둔 돈을 다 털어 전시를 하고 돌아왔죠. 그렇게 한 번 해보고 나니까 좀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사진 제대로 해봐야겠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 원래 직감을 따르며 사는 타입은 아닌데 그 때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융 : 도피성으로 떠난 타지에서 전시라니. 진짜 좋은 경험 하셨는데요? 저는 이렇게 때론 즉흥적인 결정이 우연히 어떤 길의 물꼬를 터준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어요. 꼭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래서 더 멋진 일들도 생기는 것 같아요.
찬웅 : 한국에 돌아오니까 통장에 10만원 밖에 안 남아 있더라고요. (웃음) 그 쯤 또 그 형이 부산에 재밌는 거 하는 애들 있는데 술 사줄테니까 오라고 해서 따라간 게 27CLUB 웻에버 공간 이었어요. 그때는 빈 집이었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벽지 정도 칠했을 때 쯤, 27CLUB 형들이 같이 하자고 해서 합류를 하게 됐어요.
꼽힌 : 청춘 영화의 한 장면인데요? 이런 비하인드가! 어떤 역할로 같이 한 거예요?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같이 하신 거에요?
찬웅 : 네, 만들어지는 과정을 남기는 거였어요. 공간 컨셉은 있었고요. 이야기를 콘텐츠로 풀어내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시작으로 이런 저런 시도를 했어요. 지역 주민 인터뷰나 모델분들을 시즌별로 공간에 섭외해서 디렉팅해서 촬영도 하고요.
융 : 크루에 포토그래퍼로 합류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일을 만들어 낸거고, 그게 포트폴리오가 된 거네요.
찬웅 : 보통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피곤해하는 스타일이죠(웃음) 여담이지만 공간이 두 개가 생겼으니 이거를 쇼룸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전시공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두 공간에서 제 작업물을 팔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가능하다면 빈티지 가구들도 판매 연계할 수 있고요. 자아실현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꼽힌 : 숙소에 자연스럽게 디스플레이 되는 거네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매 전에 만져보고 경험해볼 수도 있고요.
집에 있는 빈티지 조명들
찬웅 : 요즘 스페이스 에이지 조명에 관심이 생겨서 보는데 정말 예쁜 게 많고 그걸로 작업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졌어요.
융 : 아까 공간을 쇼룸이라고 표현하신 게 재밌어요. 포토그래퍼이자 지금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시선 같거든요. 똑같은 장소를 봐도 쇼룸으로 인식하면 디스플레이부터 다르게 접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는 로텐바움에서 데이비드 보위, 김환기처럼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책이 곳곳에 놓여있고, 중간 중간 제가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섞여 있으니까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더라고요. 이 페르소나는 나와 취향이 좀 통하는 사람 같은데. 이 작품은 내가 모르는 건데 누구거지? 호기심이 가면서 더 꼼꼼히 보게 되는 거예요.
로텐바움 공간 속 찬웅의 사진 작품
찬웅 : 그것도 하나의 장치였어요. 공간을 만들 때보다 만든 후에 비주얼 디렉터로서의 시선이 더 필요해지는 것 같아요. 공간이 늘어날 때마다 가상 인물을 설정하고 스토리를 풀고, 그 인물의 공간이고 그가 찍은 사진이 공간에 놓여진다. 이렇게 상상해보게 됐어요.
융: 27CLUB 크루원들의 취향이 합쳐져서 매력있는 페르소나와 공간이 자연스럽게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꼽힌 : 찬웅님의 학창시절은 어땠어요?
찬웅 : 책상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는데 다른 생각하는 애들 있잖아요. 그게 딱 저였어요. 대학가서 공부를 열심히는 했는데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코딩을 하는 미래의 내 모습이 잘 안 그려지는 거예요. 직감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일본에 가게 된 거죠.
융 : 두렵진 않았어요?
찬웅 : 두려웠죠. 영국도 고민했는데 당시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게 일본어인 것 같더라고요. 1년만 쉬면서 생각해보자 이 마음이었어요.
저는 궁극적으로 안전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요. ‘안전’하다는 게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무언가 도전해도 괜찮은 걸 말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새로운 것을 할 때의 기회 비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요. 전공을 포기하고 일본을 가고 새로운 일 한다고 하면 끝장 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잖아요. 사실은 그 결정이 제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거든요. 시도하기 안전한 세상이었다면 조금 더 자신있게 도전하지 않았을까요?
융 :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전한 망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런 세상이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찬웅 : 이런 얘기를 27CLUB 형들에게 했더니 규철이 형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있으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그렇게 살면 세상이 그렇게 될 거다’란 이야기를 했어요. 그 말이 되게 와닿았어요.
로텐바움 착수 전
꼽힌 : 내가 믿는 가치에 따라 선택을 하면서 살고, 그걸 보여주는 거네요.
융: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말 같아요.
찬웅 : 그렇죠, 그러면 동의하는 사람들이 연대가 되지 않을까요?
융 : 용기내서 휴학하고 일본에 갔던 게 완전 진로를 만든 계기가 된거네요?
찬웅 :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러네요.
융 : 이런 게 재밌어요. 타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일을 하게 되고, 새로운 관계가 생기고.
꼽힌 : 열심히 모은 돈을 10만원 남기고 전시를 여는데 쏟아붓고.
찬웅 : 조심스러운게, ‘제가 이런 식으로 해서 됐으니까 여러분도 무작정 도피하고 도전해 보세요’라는 건 아니에요. 운도 많이 따라준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렇게 됐구나 레퍼런스 정도로만 참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융 : 그렇죠. 그래도 저는 어떤 상황이든 방법은 찾으면 있다는 말을 믿어요. 만약 지금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해 괴로워하고 있다면, ‘이런 케이스도 있구나’를 아는 거랑 모르는 건 다르잖아요. 선례가 있다는 건 막막한 두려움을 깰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찬웅 : 막상 해보면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해보고 싶으면, 보고 배울 수 있는 소스들이 정말 많잖아요.
융: 맞아요. 검색하면 무엇이든 나오는 세상. 사진은 취미로 계속 찍으셨다고 했죠?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좋아서 계속 해보는 그 마음.
찬웅: 네, 2015년에 동생이 옛날에 쓰다 방치해 둔 필카로 시작을 했어요. 필카로 시작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필름 카메라가 제일 재밌고 제일 자신 있어요. 계속 사진을 찍던 게 있으니까 일본에 다녀와서 한 1년 정도 독립잡지 포토팀으로도 일했었어요.
일본 전시 <Straights and Curves>
융 : 27CLUB은 왜 27CLUB이에요?
찬웅 : 규철이 형이 27살에 처음 시작했으니까 이기도 하고요. 커트 코베인,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에이미 와인하우스, 바스키아처럼 27살에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을 27CLUB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 우연 때문도 있어요. 저도 처음 들어갔을 때 27살이었어요.
꼽힌 : 입사 조건인가요?
찬웅 : 지금 계획 중인 건, 매달 27일마다 숙박권을 걸고 이벤트를 해볼까해요. 매월 27일은 무조건 이 이벤트를 위해 비워둘까 해요.
꼽힌 : 재밌다. 이런 아이디어가 주로 찬웅 님 아이디어죠?
찬웅: 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꼽힌 : 브랜딩이라는 말 싫어한다고 하셨지만, 27CLUB을 세련되게 알리는 일환인 셈이네요. 저는 27CLUB 유튜브가 진짜 재밌었거든요. 빈지노 유튜브(개인사업자 임성빈) 오마주 하신 거잖아요. 어떻게 시작한 거에요?
찬웅 : 그냥 또 일을 벌린 거예요. 사실 현장 일이라는 게 비슷한 일의 반복이 많아요. 촬영을 해도 다 비슷하거나 너무 시끄러운 장면도 많아서 날리는 부분도 꽤 있어요. 올해 어떻게든 매듭을 지을 겁니다.
꼽힌 : 27CLUB은 자체 프로젝트만 하다가 요즘은 외주도 받기 시작하신 거에요?
찬웅 : 맞아요. 대신 기존의 건축사무소처럼 하기는 싫어서 저희가 만들고 있는 색깔로 작업할 수 있다면 진행해요. 외주를 하더라도 일을 고르는 것 같아요.
융 : 27CLUB이 일하는 방식이 지금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도, 공간을 기획하는 방식도 다르거든요. 로텐바움은 ‘조르그’라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사실 만드는 사람들의 자아가 다 합쳐진 페르소나잖아요. 그래서 누군가의 취향이 짙게 느껴지는 게 좋았어요. 기존의 문법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어서 더 궁금했던 거고 앞으로 또 어떻게 펼쳐질지도 기대돼요.
찬웅 : 재미있는 거 하고 싶어서 모였는데 돈을 아끼려고 생각하다 보면 그런 형태가 나오진 않았을 거예요. 정말 많은 시행착오와 싸움이 많이 포함돼 있고 계속 맞춰가는 중인 것 같아요.
1960년대 해변가 낡은 집이 모티브인 웻에버는 보면서 이런 집에는 누가 살까, 특히 이 옥탑방에는 누가 세들어 살까 상상을 했어요. 딥한 색감 자체가 차분한 느낌이라 화가를 떠올렸고, 평소 교류가 있었던 엄주 작가님께 습작들을 전시할 수 있겠냐고 여쭤봤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작가님의 작업으로 한 켠을 꾸미게 됐어요.
융 : 60년대라는 구체적인 설정이 흥미로워요, 그런 아이디어의 원천이 궁금해요.
찬웅: 주로 영화랑 책?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거의 다 60년대에 활동했더라구요, 그 당시의 무드를 되게 좋아해요. 옛날 잡지나 사진집 모으는 걸 즐기는 데 많이 찾아보고 감상하면서 취향이 생긴 것 같아요.
융 : 좋아하는 게 확실하면 능력이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공간에 있는 책이나 가구도 급하게 산 게 아니라 평소 수집한 거잖아요. 브랜드 마케터 관점으로 보면, 27CLUB이 하는 공간 브랜딩이 자연스럽다고 느껴져요. 브랜딩을 의도하고 했다기보다 사진을 찍던 시선에서 시작해서 좋아하는 것들을 골똘히 관찰하며 나온 결과물이 녹아 있는 거예요. 27CLUB의 요한님, 타이슨님도 엄청 색깔이 뚜렷하잖아요.
찬웅 : 맞아요. 하나로 다 엮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융 : 공간이 마을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좋았어요. 지역의 문화랑 맥락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공간 설계를 하신 것 같아요. 전주에 살면서 만든거죠?
찬웅: 원래는 3개월 예상했는데 막상 내려가니까 변수가 많아서 현장에 계속 붙어있었어요. 사진이랑 영상을 찍으러 왔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시멘트를 나르고 있었어요(웃음) 지역에 대해서는 저희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웻에버(부산-WERK)도, 로텐바움(전주-평화와평화)도 그렇고 커피를 공급받기 수월한 데로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지역의 맛있는 커피를 소개하는 게 콘텐츠적으로도 재밌고 스토리 풀기도 쉬웠거든요.
융 : 카페는 일종의 커뮤니티고,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팔로우 하잖아요. 로컬 커피 브랜드와 연을 맺고 협업한다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략적으로도 좋은 접근 같아요.
꼽힌 : 기사에서 봤는데 다음 도시 강원도 생각하고 있다던데, 강원도도 커피가 맛있어서 고려하신 거겠네요?
찬웅 : 형들과 로텐바움을 만들면서 잡은 접점이자 키워드가 공생이었어요. 동네의 고양이들과도 공생하고, 식물과도 공생하고, 지역과도 공생하는 집으로요.
꼽힌 : 설계 시 의도한 대로 창가에 고양이들이 오잖아요. LP 들으며 고양이 볼 때 정말 평화로웠어요.
찬웅 : 옆집 할머니가 키우는 고양이였는데 새끼를 네 마리 낳아서 그 친구들이 자주 와요. 아기들이었는데 지금은 다 컸죠. 전주에 있을 때 하루 낙이 일 끝나고 걔네는 먹이 주는 거였어요. 이제 못 알아볼까봐 섭섭해요.
좋아하는 작가들의 사진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의 사진
(낸 골딘, 다이안아버스, 메이플 소프, 사라 문)
융 : 사이더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찬웅 : 조언은 늘 조심스럽고, 되도록 안 하려고 하거든요. 그래도 해본다면 취향을 갖고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 뚜렷하신 분들은 대부분 눈이 굉장히 높은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멀고 높은데, 할 수 있는 건 소소하니까 그 괴리가 굉장히 크잖아요.
현재 나의 바운더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나열해보고 하나씩 시도해보세요. 그렇게 순서대로 하나씩 포트폴리오처럼 쌓다보면 어떤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 함께 해보고 싶었던 곳에 제안도 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역량, 자원, 인적 자원을 발판 삼아볼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서 친구가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난 사진을 찍는다면 같이 인터뷰를 다니면서 콘텐츠를 만들어볼 수도 있잖아요. 지금 가능한 것들 안에서 하나씩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메이플 소프 사진집, 아크네 페이퍼 등
융 : 진짜 현실 조언이다. 그렇게 내 나름의 로드맵을 짜서 움직이면 분명 길이 생기는 것 같아요. 조금 돌아가게 되는 한이 있어도요.
찬웅 :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을 땐 조급해하지 말고 텀을 두고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결국은 시간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떻게든 자기가 뭔가를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돌아가더라도 결국 시도하게 돼요.
찾는다고 찬란한 미래가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우울이나 불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를 하고 가야 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일단 하면 어떻게 되겠지, 였는데 요즘에는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꼽힌 : 마지막으로, 찬웅님이 올해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찬웅 : 해보고 싶은 거는 많죠.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도 입고 일상에서도 입는 작업복 만들어보고 싶어요. 27CLUB 안에서는 저희를 멋지게 소개하는 스토리를 담은 짧은 매니페스토 같은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융 :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도 생각나요!
찬웅 :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지루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저희가 타란티노를 되게 좋아해요. B급?
융 : 타란티노라면 고급 B급?
찬웅 : 오 고급 B급, 우리를 설명하는 단어가 될 수도 있겠네요. 고급 B급 27CLUB. 퀄리티 좋은 불량.
27살이 되기 전 무엇을 할 지 막막해서 무작정 타지로 떠났던, 인터뷰와 잡지 작업을 특히 좋아한다고 눈을 빛내며 말했던 찬웅이 최근 포토그래퍼로 작업한 음악&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 1호가 발간되었다.
1967년을 살던 포토그래퍼 조르그(@zorg_rotenbaum)씨가 꾸준히 일기와 사진을 적어나가고 그 흔적을 전주에서 만날 수 있듯이, 2022년 직업으로서의 포토그래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찬웅님이 벌이는 일들을 응원하며 지켜보고 싶다. 분명히 재밌고 아름다울테니!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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