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앞서 말씀 주신 경험들은 누가 봐도 화려한 삶이잖아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표본처럼 보이는 삶이요. 정말 그 모든 걸 다 겪어본 이후에 나온 생각이라서 더 의미 있어요. 책 속에서 ‘패턴’이란 표현도 자주 쓰시더라고요. 어떤 ‘패턴'으로 내가 나를 보는 이야기도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애린: 어떤 상황마다 똑같이 하고 있는 행동들 있지 않아요? 자기가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좋더라고요. 패턴 자체가 좋다, 나쁘다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행복을 키워주는 패턴인지, 나를 더 괴롭게 만드는 패턴인지를 구분할 수 있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르게 접근해볼까.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패턴이란 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패턴을 인지하면 그때 자유 의식을 가질 수 있거든요. 패턴에 대해 더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이유는 더 잘 살기 위해서예요. 저는 저를 불행하게 만드는 패턴을 인식하고, 그 패턴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융: 그럼 패턴을 바꾸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애린: 우리는 태어날 때 맑고 순수한 아가의 상태에서 여러 패턴을 배우게 되는 거잖아요.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패턴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 배웠을까를 인지하는 게 중요해요. 패턴은 어떤 행동인 거고, 그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 몸 안에 행동에 관한 감정 에너지가 있거든요. 내 안에 있는 감정이 체화가 되어 나오는 것이고, 그 안에 어떤 에너지가 있는 것인데, 패턴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 에너지를 해소시켜줘야 해요.
감정이라는 게 이모션(emotion)이잖아요. 그게 에너지 인 모션(energy in motion)이거든요. 그래서 에너지를 몸에서 릴리스하기 위해서는 목소리, 사운드로 할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 몸을 움직여서 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거예요. ‘나는 이 패턴 대신에 더 나다운 길을 찾을 거야!’이런 의도를 가지고 에너지를 해소시키는 거예요. 무의식을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단계예요.
처음에 패턴을 인지하고, 그 패턴에 관한 에너지를 릴리스하고, 그 후에는 그 패턴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행동할 방법을 못 배워서 그런 것이다. 그 후에 마지막 단계는 나에게 더 이로운 패턴을 구상하기 위해 좀 더 의식적이고 나다운 행동은 무엇일까 고민해보는 거죠.
융: 그 ‘나다운 행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애린: 그래서 이런 작업을 코치들과 함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자신을 미러링 해주면 자신을 훨씬 명확하게 보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자기 계발이란 게 타이밍이 있단 생각도 들어요. 노력을 했는데도 모르겠으면, 그때는 그냥 몰라도 되는 거예요. 알 때가 되면 다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융: 저에게도 질문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제가 하는 이야기들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린: 보통 제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의 느낌은요. 그분은 뭔가 플로우가 안 되고 있는 거잖아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나의 어떤 믿음이 머릿속의 그 목소리를 몸 안까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 같아요. 영어로는 이걸 self-limiting belief라고 불러요. 나를 제한시키는 믿음.
그 믿음이 어떤 것인지 인지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금 10만 원 밖에 없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전기세 내야 하는데 어쩌지. 근데 어쨌든 지금 잘 살고 있잖아요. 제한적인 믿음은 한 달 안에 나는 이보다 돈이 없을 것이고, 전기세를 못 낼 거라는 믿음 때문인데, 그 믿음을 인지하면 정반대 되는 믿음을 생각해보는 거예요.
한 달 안에 난 당연히 전기세를 낼 수 있고, 이것보다는 당연히 더 돈이 많을 거야. 반대되는 믿음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많은 경우 그 또한 진실이거든요. 두 가지가 동시에 진실일 수도 있고요.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융: 너무나 실질적인 팁들이네요.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고, 코칭을 하면 창업자나 리더를 만날 기회가 많을 것 같아요. 훌륭한 리더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애린: 훌륭한 리더는 항상 피플 퍼스트(people-first)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가 정말 뛰어난 리더죠.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라는 힘이에요. 이게 막 전략적으로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저는 진심과 진심이 통한다고 생각해요.
융: 맞아요. 그래서 저는 리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애린: 리더가 솔선수범 하는 것이 중요하죠. 요가를 배우러 갔는데 요가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나 있고 유연하지 않으면 어떻게 배울까?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사회의 리더도 비슷한 것 같아요.
융: 사실 요가 이런 건 사람들이 기대하니까 그게 당연한데, 이상하게 회사에서는 존경하기 힘든 행동을 보여주는 리더도 있고, 그게 조금 더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아요. ‘돈 버는 일은 힘들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인지.
애린: 저도 그런 생각을 해서 사회가 되게 재밌는 것 같아요. 진리는 어딜 가나 진리인데, 정치나 회사를 봐도 어떻게 이런 당연한 것들을 저 사람들은 솔선수범하지 못할까, 생각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융: 저는 브랜드 마케팅을 계속했는데, 브랜딩도 똑같아요. 자기다움이랑 연결돼서 브랜드가 브랜드 다울 때 사람들이 진정성을 느끼고 팬이 된다고 생각해서 결국 어떤 존재가 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오래가기 위해서는요.
제가 책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어요. 대비되는 장면인데요. 요가 지도자 교육 과정 받으실 때, 내 목적을 선언하는 부분에서 애린님이 ‘선생님 저는 모르겠어요.’라고 솔직하게 얘기하잖아요. 보기 좋은 문장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목적을 발표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모르겠다고 인정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반면에 책의 뒷부분에서 엠브레이스(embrace) 코칭 회사를 직접 설립할 때 회사의 목적을 선언할 때는 너무 수월하고 자신 있게 나오는 것 같은 거예요. 그 차이가 느껴지면서 신기했어요. 후반에서는 거침없는 느낌이 있었어요.
호프먼 리트리트 센터
파나마 시티
애린: 작년에 파나마 처음 갔을 때 진짜 힘들었어요. 항상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맞춰서 살아가던 사람인데, 아무 계획도 없는 환경에 저를 두었으니까요. 제가 코칭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어른의 발달 과정(adult development cycle)이에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대학 졸업해서, 직장 들어가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집 사고, 승진하고 퇴직한다. 인생을 일직선으로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20대는 그 안의 사이클이 있고, 30대는 그 안의 사이클이 있어요.
저는 돈도 많이 벌고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으니까. 인베스트먼트 뱅킹을 했다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실리콘 밸리에 갔다가, 벤처에도 갔다가. 이렇게 반 바퀴를 돌다가 모두 던지고 파나마 정글에 갔다가 요가와 코칭을 하는 삶으로 한 바퀴를 다 돌게 된 게 2년 정도 된 것 같거든요. 이 한 바퀴를 돌면서 제게 있던 정체성의 변화를 겪었어요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이런 일을 왜 했는지. 과거에는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누에고치의 시간을 거쳤어요. 누에고치의 시간은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고, 내가 나의 컵을 채우는 시간이에요.
제가 이 기간에 요가 선생 자격증을 교육받을 때였어요. 아직은 나를 채워야 하는 시기인데 사회에 기여를 하라고 하니까,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의 생각에 죄책감도 느꼈어요.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융: 오. 너무 공감 가고 필요한 이야기예요. 내 컵을 먼저 채워야 나눠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걸 인정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용기 같고요.
애린: 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멋있는 문장 하나 쓸 수 있죠. 그런데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땐 그래서 나의 선언문을 작성하는 게 힘들었는데, 멕시코 파나마에서 나의 컵을 채우는 시간을 갖고,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플로우'라는 게 최대한 나를 여는 과정이거든요. 그 플로우를 막고 있는 게 아까 말한 자기 제한적 믿음이에요. 내가 어떤 채널이 된다면 하늘과 땅의 에너지가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자기 선언문 같은 메시지를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후반에는 거침없이 나올 수 있었어요.
융: 있어 보이는 문장은 누구나 쓸 수 있는데, 못 쓰겠다고 인정한 것도 사실 그때의 애린님이 자기 자신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행동 같아요. 이 이야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지금 단계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 나는 내 컵을 채우면 되는구나. 이게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는구나.
애린: 융님 이야기 듣기 전까지는 제가 모른다고 인정한 게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걸 몰라도 충분히 당당한 사람이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융: 너무 좋아요. 저는 오히려 모른다고 인정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