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은 꿈을 이뤘나요?”
꿈에 대한 물음을 들으면 이상하게 머리가 새하얘진다.
‘꿈을 이뤘나? 난 아직 못 이룬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루고 싶은 게 없는 것도 아닌데...’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꿈을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이루고도 확신을 못하는건지 알 수가 없어서 괜시리 혼자 라임을 맞춰보곤 웃는다.
잃은 건가, 이룬 건가.
꿈.
- 꿈은 잠자는 동안 깨어 있을 때처럼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현상
- 앞으로 이루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어릴 적 장래희망 설문지를 받으면 칸이 부족하도록 적었던 게 기억이 난다.
화가, 디자이너, 가수, 심지어는 대통령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종이를 받는다면 아마 한참 동안 펜만 굴릴 것 같다.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꿈에도 현실적인 조건이 붙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꿈을 이루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지금 가진 능력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내 곁의 친구들은 이미 저만큼 앞서 있고,
작은 화면 안에서는 매일 새로운 누군가의 성공이 업데이트된다.
그러다 보면 꿈은 어느새
희망이라기보다 목표에 가까워졌다.
창피하지 않게 이룰 수 있어야 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더욱 큰 꿈으로 보답하듯 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꿈을 꾸는 일에도 문턱이 생겨버렸다.
너무 큰 꿈을 말하면 책임감 없는 허황된 사람 같고,
너무 작은 꿈을 말하면 초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꿈 많던 어린 시절과 달리 꿈을 꾸는 것조차 어려운 어른이 된 느낌. 가슴 한쪽이 시렸다.
미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꿈이고,
그 때문에 현재의 내가 가슴 시려 한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과거의 내 입장도 들어봐야겠다.
“배부른 소리 하네!”
그때의 내가 씩씩대며 등짝을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자주 꿈꿨으니까.
창가 회사 자리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던 날에는,
햇빛을 직접 쬐며 일하는 삶을 꿈꿨다.
야근이 잦아 친구들과의 여행을 취소했던 때에는,
어디든 좋으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꿈꿨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내가 꾸던 꿈은
대단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햇빛을 보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사소해서 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지 모르지만, 소중한 바람들.
그리고 바람의 상당수는 이미 내 생활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밴드 음악을 듣는 것만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2~3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밴드를 하고 있다.
마흔 살이 넘어서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지프차, (비록 중고지만) 데니도 생겨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훌쩍 떠날 수도 있게 되었다.
너무 재밌어서 다음엔 참가자로 오고 싶다 생각했던 북페스티벌은
올해 정말 인연이 되어 참가자로 함께하게 됐다.
꿈같은 날들이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꿈의 문턱을 높이며,
꿈이 다가와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걸까.
이루어진 것은 현실이 되고, 현실이 된 것은 더 이상 꿈처럼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못 알아채고 말이다.
그저 다음 꿈을 찾아 헤매며 계속 달려가기만 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인가.
지금과 같은 마음이라면, 언젠가 다음 꿈에 가까워져도 똑같이 괴로울거야.
과거의 나를 잊지 않고, 현재의 나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미래의 나에게는 계속 설렐 만한 것을 남겨둔다면
꿈을 계속 꾸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꿈의 문턱을 조금 낮춰봐야겠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만 달리지 말고
이미 이뤄진 꿈을 발견하면서도 살아야지.
그리고 다시 꿈을 많이 꿔야지.
엉뚱해도, 사소해도, 작아도 좋아.
때론 어색하고 민망할 만큼 큰 꿈이라 할지라도
계속 꾼다면 어느 순간 슬쩍 내 옆에 와 있을 테니
꿈꾸는 걸 멈추지만 말자.
오늘도 하나쯤은 꿈을 꿔봐야겠다.
언젠가 또 과거의 내가 “배부른 소리 하네!” 라고 말할 만큼 이뤄지게 될지도 모르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은 꿈을 이뤘나요?”
꿈에 대한 물음을 들으면 이상하게 머리가 새하얘진다.
‘꿈을 이뤘나? 난 아직 못 이룬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루고 싶은 게 없는 것도 아닌데...’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꿈을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이루고도 확신을 못하는건지 알 수가 없어서 괜시리 혼자 라임을 맞춰보곤 웃는다.
잃은 건가, 이룬 건가.
꿈.
어릴 적 장래희망 설문지를 받으면 칸이 부족하도록 적었던 게 기억이 난다.
화가, 디자이너, 가수, 심지어는 대통령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종이를 받는다면 아마 한참 동안 펜만 굴릴 것 같다.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꿈에도 현실적인 조건이 붙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꿈을 이루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지금 가진 능력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내 곁의 친구들은 이미 저만큼 앞서 있고,
작은 화면 안에서는 매일 새로운 누군가의 성공이 업데이트된다.
그러다 보면 꿈은 어느새
희망이라기보다 목표에 가까워졌다.
창피하지 않게 이룰 수 있어야 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더욱 큰 꿈으로 보답하듯 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꿈을 꾸는 일에도 문턱이 생겨버렸다.
너무 큰 꿈을 말하면 책임감 없는 허황된 사람 같고,
너무 작은 꿈을 말하면 초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꿈 많던 어린 시절과 달리 꿈을 꾸는 것조차 어려운 어른이 된 느낌. 가슴 한쪽이 시렸다.
미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꿈이고,
그 때문에 현재의 내가 가슴 시려 한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과거의 내 입장도 들어봐야겠다.
“배부른 소리 하네!”
그때의 내가 씩씩대며 등짝을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자주 꿈꿨으니까.
창가 회사 자리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던 날에는,
햇빛을 직접 쬐며 일하는 삶을 꿈꿨다.
야근이 잦아 친구들과의 여행을 취소했던 때에는,
어디든 좋으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꿈꿨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내가 꾸던 꿈은
대단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햇빛을 보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사소해서 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지 모르지만, 소중한 바람들.
그리고 바람의 상당수는 이미 내 생활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밴드 음악을 듣는 것만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2~3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밴드를 하고 있다.
마흔 살이 넘어서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지프차, (비록 중고지만) 데니도 생겨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훌쩍 떠날 수도 있게 되었다.
너무 재밌어서 다음엔 참가자로 오고 싶다 생각했던 북페스티벌은
올해 정말 인연이 되어 참가자로 함께하게 됐다.
꿈같은 날들이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꿈의 문턱을 높이며,
꿈이 다가와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걸까.
이루어진 것은 현실이 되고, 현실이 된 것은 더 이상 꿈처럼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못 알아채고 말이다.
그저 다음 꿈을 찾아 헤매며 계속 달려가기만 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인가.
지금과 같은 마음이라면, 언젠가 다음 꿈에 가까워져도 똑같이 괴로울거야.
과거의 나를 잊지 않고, 현재의 나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미래의 나에게는 계속 설렐 만한 것을 남겨둔다면
꿈을 계속 꾸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꿈의 문턱을 조금 낮춰봐야겠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만 달리지 말고
이미 이뤄진 꿈을 발견하면서도 살아야지.
그리고 다시 꿈을 많이 꿔야지.
엉뚱해도, 사소해도, 작아도 좋아.
때론 어색하고 민망할 만큼 큰 꿈이라 할지라도
계속 꾼다면 어느 순간 슬쩍 내 옆에 와 있을 테니
꿈꾸는 걸 멈추지만 말자.
오늘도 하나쯤은 꿈을 꿔봐야겠다.
언젠가 또 과거의 내가 “배부른 소리 하네!” 라고 말할 만큼 이뤄지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