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올리는 걸 목표로 몇 달간 달려왔던 합주가 끝났다.
나는 밴드를 좋아하고 합주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한 번도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마 초등학생 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 성당에서 초등부 미사 피아노 반주를 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그렇듯 손가락 하나만 잘못 짚어도 틀린 음이 꽤 선명하게 난다. 혼자 연습할 때라면 다시 치면 그만이지만, 미사 중에 낸 실수는 온 성당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몇 번의 실수가 쌓이면서 나는 남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일을 꽤 무서워하게 됐다.
누군가 지켜보는 앞에서 피아노를 칠 때면 손이 축축해질 만큼 땀이 났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축축한 손가락이 건반에서 미끄러져 원하지 않는 소리를 낼까 봐 또 걱정했다. 긴장해서 실수할까 봐 걱정하고, 걱정해서 더 긴장하는 꽤 완벽한 악순환이었다.
내가 남들 앞에서 피아노 치는 걸 생각보다 많이 무서워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음악 시간에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한 학기 동안 자유롭게 5분짜리 공연을 만드는 수행평가가 있었다. 우연히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친구와 짝이 되어 둘이 피아노 연탄곡을 준비했다. 동화 『피터팬』의 장면에 맞춰 곡을 고르고, 이어 붙이고, 둘이 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했다.
그때도 반 친구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떨었고, 막판에는 박자를 무시한 채 거의 질주하듯 피아노를 쳤다. 끝나고 걸어 나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친구와 함께 곡을 고르고, 연습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무대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고 어느 날 문득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밴드에 들어가고 싶다’가 아니라 ‘밴드를 만들고 싶다’였다. 하고 싶었던 건 J-POP 밴드였는데, 당시 내가 찾아본 밴드들은 왠지 모두 너무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공연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하는 곳도 많았다.
나는 그렇게까지 잘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공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사람들과 같이 연주해서 끝까지 완성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게시판에 ‘아마추어 오타쿠 밴드 할 사람’을 구한다는, 반쯤 장난 같은 글을 올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모든 포지션이 모였다.
그렇게 얼렁뚱땅 만들어진 밴드에서 6개월 동안 여덟 곡 정도를 합주했다. 공연도 없었고 거창한 목표도 없었다. 매주 만나서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가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이 꽤 좋았다. 남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건 여전히 무서웠지만, 합주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그때의 인연이 돌고 돌아 이번 밴드까지 이어졌다. 같이 밴드를 했던 기타로부터 키보드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고 새 밴드에 합류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였다. 밴드와 공연을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언제까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정면 돌파. 그렇게 준비하기 시작한 공연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요구했다. 각자 바쁜 일정 때문에 연습은 늘 부족했고, 막판에는 일주일에 세네 번씩 만나 합주했다. 주변에서 “본업이 밴드맨이냐”고 물을 정도로 거의 매일 만났다. 곡을 연습하는 것뿐 아니라 세트리스트를 짜고, 공연 콘셉트를 정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당일에 입을 옷까지 골랐다.
신기했던 건 그렇게 몇 달을 준비하면서도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자꾸 긴장되냐고, 설레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별로 긴장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설레지도 않았다. 공연장에 도착해서 악기를 세팅할 때까지도 어딘가 남의 일 같았다.
이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도 되는 건가. 내가 정말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친다고?
그리고 어쨌든 무대에 올랐다. 실수도 했다. 생각했던 만큼 잘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관객석이 코앞이라 시야를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즐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든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아, 그래도 해냈다.
공연을 끝낸 뒤 세 가지 정도의 감상이 남았다.
먼저 아주 오랫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해온 벽 하나를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남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게 전혀 무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음 공연에서도 아마 틀릴까 봐 걱정할 거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무대에 못 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하나 줄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하나의 날짜를 향해 다 같이 달려가고, 음악뿐 아니라 공연을 둘러싼 작은 것들을 하나씩 같이 결정하는 일이 좋았다. 혼자 만드는 콘텐츠와는 또 다른 종류의 생동감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 나는 주변 사람들이 공연하거나 무대에 설 때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공연한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도 소식을 듣고 공연장까지 찾아와준 친구들이 있었고, 꽃과 편지와 작은 선물을 건네줬다. 내가 그동안 다른 사람의 무대를 충분히 축하해주지 못했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동시에 누군가의 무대를 보러 가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큰 마음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공연이 끝났으니 당분간은 피아노도 조금 쉬고, 매주 하던 합주도 없다. 다음 무대가 나에게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언제까지 밴드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다시 무대에 서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이번보다 조금 더 현실감을 가지고, 조금 더 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는 잘 쉬고, 또 음악을 사랑해야지.

공연을 올리는 걸 목표로 몇 달간 달려왔던 합주가 끝났다.
나는 밴드를 좋아하고 합주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한 번도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마 초등학생 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 성당에서 초등부 미사 피아노 반주를 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그렇듯 손가락 하나만 잘못 짚어도 틀린 음이 꽤 선명하게 난다. 혼자 연습할 때라면 다시 치면 그만이지만, 미사 중에 낸 실수는 온 성당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몇 번의 실수가 쌓이면서 나는 남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일을 꽤 무서워하게 됐다.
누군가 지켜보는 앞에서 피아노를 칠 때면 손이 축축해질 만큼 땀이 났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축축한 손가락이 건반에서 미끄러져 원하지 않는 소리를 낼까 봐 또 걱정했다. 긴장해서 실수할까 봐 걱정하고, 걱정해서 더 긴장하는 꽤 완벽한 악순환이었다.
내가 남들 앞에서 피아노 치는 걸 생각보다 많이 무서워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음악 시간에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한 학기 동안 자유롭게 5분짜리 공연을 만드는 수행평가가 있었다. 우연히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친구와 짝이 되어 둘이 피아노 연탄곡을 준비했다. 동화 『피터팬』의 장면에 맞춰 곡을 고르고, 이어 붙이고, 둘이 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했다.
그때도 반 친구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떨었고, 막판에는 박자를 무시한 채 거의 질주하듯 피아노를 쳤다. 끝나고 걸어 나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친구와 함께 곡을 고르고, 연습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무대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고 어느 날 문득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밴드에 들어가고 싶다’가 아니라 ‘밴드를 만들고 싶다’였다. 하고 싶었던 건 J-POP 밴드였는데, 당시 내가 찾아본 밴드들은 왠지 모두 너무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공연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하는 곳도 많았다.
나는 그렇게까지 잘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공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사람들과 같이 연주해서 끝까지 완성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게시판에 ‘아마추어 오타쿠 밴드 할 사람’을 구한다는, 반쯤 장난 같은 글을 올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모든 포지션이 모였다.
그렇게 얼렁뚱땅 만들어진 밴드에서 6개월 동안 여덟 곡 정도를 합주했다. 공연도 없었고 거창한 목표도 없었다. 매주 만나서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가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이 꽤 좋았다. 남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건 여전히 무서웠지만, 합주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그때의 인연이 돌고 돌아 이번 밴드까지 이어졌다. 같이 밴드를 했던 기타로부터 키보드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고 새 밴드에 합류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였다. 밴드와 공연을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언제까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정면 돌파. 그렇게 준비하기 시작한 공연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요구했다. 각자 바쁜 일정 때문에 연습은 늘 부족했고, 막판에는 일주일에 세네 번씩 만나 합주했다. 주변에서 “본업이 밴드맨이냐”고 물을 정도로 거의 매일 만났다. 곡을 연습하는 것뿐 아니라 세트리스트를 짜고, 공연 콘셉트를 정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당일에 입을 옷까지 골랐다.
신기했던 건 그렇게 몇 달을 준비하면서도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자꾸 긴장되냐고, 설레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별로 긴장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설레지도 않았다. 공연장에 도착해서 악기를 세팅할 때까지도 어딘가 남의 일 같았다.
이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도 되는 건가. 내가 정말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친다고?
그리고 어쨌든 무대에 올랐다. 실수도 했다. 생각했던 만큼 잘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관객석이 코앞이라 시야를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즐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든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아, 그래도 해냈다.
공연을 끝낸 뒤 세 가지 정도의 감상이 남았다.
먼저 아주 오랫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해온 벽 하나를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남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게 전혀 무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음 공연에서도 아마 틀릴까 봐 걱정할 거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무대에 못 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하나 줄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하나의 날짜를 향해 다 같이 달려가고, 음악뿐 아니라 공연을 둘러싼 작은 것들을 하나씩 같이 결정하는 일이 좋았다. 혼자 만드는 콘텐츠와는 또 다른 종류의 생동감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 나는 주변 사람들이 공연하거나 무대에 설 때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공연한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도 소식을 듣고 공연장까지 찾아와준 친구들이 있었고, 꽃과 편지와 작은 선물을 건네줬다. 내가 그동안 다른 사람의 무대를 충분히 축하해주지 못했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동시에 누군가의 무대를 보러 가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큰 마음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공연이 끝났으니 당분간은 피아노도 조금 쉬고, 매주 하던 합주도 없다. 다음 무대가 나에게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언제까지 밴드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다시 무대에 서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이번보다 조금 더 현실감을 가지고, 조금 더 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는 잘 쉬고, 또 음악을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