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글을 쓴다. 요즘은 이메일을 보낼 때조차 이 글에 이상이 없는지 AI에게 물어본다. 때로는 검증 욕구를 담아 완성한 티 없는 원고보다 적당히 엉성한 어순과 문법, 틀린 맞춤법이 난무하는 글이 더 나답다. 끝내 이 원고를 AI에게 확인받지 않고 낼지는 모르지만, 진짜의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꿈꾸던 모습은 나의 모습은 어땠는지, 뭐 그런 고민에 빠져있어 괜히 서두를 이렇게 써본다.
오랜만에 '꿈’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매번 세우는 목표는 내게 너무 익숙한 단어인데, '꿈은 이제 거창한 단어가 된 건가?'생각했다. 그러다 '그렇다면 내 꿈은 이뤄졌나?' 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살아가기를 꿈꿨고, 비전공자로 시작해서 꽤 돌아왔지만 결국은 내가 꿈꿨던 삶을 살고 있다. 17살의 내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뿌듯해할 테다. 네가 꿈꿨던 디자이너가 됐다니! 뿌듯하지?
내가 바랐던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은 뭐였을까? 한동안은 그저 디자이너로 불리기만 해도 좋겠다고 꿈꿨다. 더 큰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는 것? 수많은 사람이 아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 디자이너로 불리기 시작한 뒤로 내 꿈도 조금씩 커져갔다. 꿈꿨던 것들이 이뤄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꿈을 이루고나면 당연하게도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됐다. 이미 이룬 것들을 계속 꿈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 하나의 꿈을 이루고, 다시 꿈을 꾸고, 또 이루고 다시 꾸기를 반복하며, 꿈의 유한함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큰 페어의 디자인 디렉팅을 맡는 것. 그것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내 꿈 중 하나였다. 성공한 디자이너들이 맡아서 만든 유수의 디자인 페어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그들에게 주어진 자격과 인정이 부러웠던 것 같다. 내게도 언젠가 저런 순간이 올까? 하고 생각했다. 작년 회고를 할 즈음 다시금 이 꿈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약간의 자신과 오만이 적절하게 섞인 생각이 스멀하고 올라왔다. 이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자격이 되지 않을까? 하며.
언젠가부터 꿈이 내게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더 이상 현실과 아주 떨어진 꿈을 꾸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책처럼, 내가 꿈을 끌어당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꿈은 찰나이고, 그 이후의 다시 꿈꾸는 일상이 있다. 꿈을 이루는 속도가 빨라지며, 꿈은 멈춰진 한 사진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상임을 알았다. 모든 꿈은 완성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이 됐다. 꿈은 유한했지만, 그 꿈을 향해가는 과정, 그 꿈을 이루고 있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의 일상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짜 나의 시간들이었다.
사이드콜렉티브에서 주관한 <하우스 아카이브>는 내게 그렇게 '빠르게 찾아온 꿈'이었다. 페어의 아이덴티티부터 인쇄매체, 공간에 들어가는 그래픽까지 비주얼과 관련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설치를 하고, 현장에 머물고, 마지막으로 철거를 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이 시간들이 다 내가 꿈꾸던 것을 이룬 순간이라며 그 모든 것들을 감각하려고 했다. 이제 나는 하나의 완성된 포트폴리오로서가 아니라 꿈을 이룬 순간순간을 마치 꿈이 실현되고 있는 영상처럼 감각하려고 한다.
페어가 끝나고 일주일이 넘는 여행을 다녀왔다. 생각해보니 언젠가는 이렇게 긴 휴양을 갖는 삶 역시 꿈꿨던 적이 있었다. 꿈의 시간을 감각 하듯, 여행에서도 그 시간을 온전히 감각하려 했다. 꿈과 여행은 닮아 있다. 오랫동안 기다리지만 막상 그 순간은 빨리 지나가는. 그래서 그 시간이 유한했다는 사실을 지나고서 더 선명하게 느낀다. 꿈과 여행은 유한하고 그 유한함이 우리를 다음으로 이끈다. 돌아온 일상을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로 채우며, 또 다음 꿈을 향해 가보려 한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요즘은 이메일을 보낼 때조차 이 글에 이상이 없는지 AI에게 물어본다. 때로는 검증 욕구를 담아 완성한 티 없는 원고보다 적당히 엉성한 어순과 문법, 틀린 맞춤법이 난무하는 글이 더 나답다. 끝내 이 원고를 AI에게 확인받지 않고 낼지는 모르지만, 진짜의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꿈꾸던 모습은 나의 모습은 어땠는지, 뭐 그런 고민에 빠져있어 괜히 서두를 이렇게 써본다.
오랜만에 '꿈’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매번 세우는 목표는 내게 너무 익숙한 단어인데, '꿈은 이제 거창한 단어가 된 건가?'생각했다. 그러다 '그렇다면 내 꿈은 이뤄졌나?' 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살아가기를 꿈꿨고, 비전공자로 시작해서 꽤 돌아왔지만 결국은 내가 꿈꿨던 삶을 살고 있다. 17살의 내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뿌듯해할 테다. 네가 꿈꿨던 디자이너가 됐다니! 뿌듯하지?
내가 바랐던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은 뭐였을까? 한동안은 그저 디자이너로 불리기만 해도 좋겠다고 꿈꿨다. 더 큰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는 것? 수많은 사람이 아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 디자이너로 불리기 시작한 뒤로 내 꿈도 조금씩 커져갔다. 꿈꿨던 것들이 이뤄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꿈을 이루고나면 당연하게도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됐다. 이미 이룬 것들을 계속 꿈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 하나의 꿈을 이루고, 다시 꿈을 꾸고, 또 이루고 다시 꾸기를 반복하며, 꿈의 유한함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큰 페어의 디자인 디렉팅을 맡는 것. 그것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내 꿈 중 하나였다. 성공한 디자이너들이 맡아서 만든 유수의 디자인 페어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그들에게 주어진 자격과 인정이 부러웠던 것 같다. 내게도 언젠가 저런 순간이 올까? 하고 생각했다. 작년 회고를 할 즈음 다시금 이 꿈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약간의 자신과 오만이 적절하게 섞인 생각이 스멀하고 올라왔다. 이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자격이 되지 않을까? 하며.
언젠가부터 꿈이 내게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더 이상 현실과 아주 떨어진 꿈을 꾸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책처럼, 내가 꿈을 끌어당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꿈은 찰나이고, 그 이후의 다시 꿈꾸는 일상이 있다. 꿈을 이루는 속도가 빨라지며, 꿈은 멈춰진 한 사진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상임을 알았다. 모든 꿈은 완성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이 됐다. 꿈은 유한했지만, 그 꿈을 향해가는 과정, 그 꿈을 이루고 있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의 일상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짜 나의 시간들이었다.
사이드콜렉티브에서 주관한 <하우스 아카이브>는 내게 그렇게 '빠르게 찾아온 꿈'이었다. 페어의 아이덴티티부터 인쇄매체, 공간에 들어가는 그래픽까지 비주얼과 관련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설치를 하고, 현장에 머물고, 마지막으로 철거를 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이 시간들이 다 내가 꿈꾸던 것을 이룬 순간이라며 그 모든 것들을 감각하려고 했다. 이제 나는 하나의 완성된 포트폴리오로서가 아니라 꿈을 이룬 순간순간을 마치 꿈이 실현되고 있는 영상처럼 감각하려고 한다.
페어가 끝나고 일주일이 넘는 여행을 다녀왔다. 생각해보니 언젠가는 이렇게 긴 휴양을 갖는 삶 역시 꿈꿨던 적이 있었다. 꿈의 시간을 감각 하듯, 여행에서도 그 시간을 온전히 감각하려 했다. 꿈과 여행은 닮아 있다. 오랫동안 기다리지만 막상 그 순간은 빨리 지나가는. 그래서 그 시간이 유한했다는 사실을 지나고서 더 선명하게 느낀다. 꿈과 여행은 유한하고 그 유한함이 우리를 다음으로 이끈다. 돌아온 일상을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로 채우며, 또 다음 꿈을 향해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