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잘 받는 사람이 되어 보기로 written by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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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지지 않을 것. 아무도 내게 가르치지 않았지만 눈으로 피부로 새겼던 김씨 가문의 신조였다. 누군가의 덕을 보거나 도움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거는 것은 염치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일관되게 믿었다. 


  내 욕망이 폐를 끼치지 않게, 내 슬픔이 전염되지 않게, 내 부족함이 탄로 날 일 없게 하자. 이 세 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지금의 너냐고 묻는다면 울적한 마음이 남는다. 구실을 대자면, 나는 무결한 사람이 되는 걸 목표 삼지 않았다. 세상을 곧 깨질 유리라 생각하기라도 했는지 한숨으로도 일상에 흠집을 낼까 봐 두려워했으니까. 


  나는 탁월한 겁쟁이다. 겁쟁이의 주춤거림이 너무나도 치밀하여 누군가의 눈엔 세상을 배려하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가 타고난 불안과 공포심을 극복하려 익살을 택했듯이 나는 최대한 말과 행동을 삼가기로, 즉 침묵과 고립을 택했다.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으나, 건강한 존립까지 계산하진 않은 얕은 수작이었다. 드러나지 않으면 내가 망침의 원인이 될 일은 없으니까. 언제나 진심보다 중요한 게 있고 세상에 빚지지 않으려 존재를 삭이는 걸 양심이라고, 굳게 믿었다.


  개뿔이다. 양심이라니. 보통의 내향인들이 들으면 기가 찰 일.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불안과 자기 억압은 수줍은 사람들 이미지에 묻어갈 문제가 아니란 걸. 내향적인 사람이라서 단출한 인간관계를 선택하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스트레스 때문에 혼자임을 자처하는 것은 별개였으니까. 나는 내향인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일그러진 내면을 갖고 있는 사람, 깨진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 때 내 혼돈 한 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온 감정은 좌절이 아닌 ‘해방감’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단 건, 진작 감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복을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를 의심해 왔으니까. 


  나는 나에게 생긴 기분 좋은 사건이나 자잘한 즐거움을 언제나 꽁으로 얻은 것으로 치부했다. 노력해서 얻은 것이든 타인의 호의로 얻은 것이든, 그저 덤. 얼마나 놀라운 일이든 크게 기뻐할 일이 아니었고, 얼마나 감사한 일이든 대단히 만족할 일이 아닌 연속이었다. 멀리서 보면 ‘담대하고 철든 애’로 보였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하루에 상장 다섯 장을 받은 적 있는데, 그날의 이야기는 지겹도록 반복해서 꺼내는 엄마의 단골 소재다. 장한 딸이기도 하지만 웃기는 딸내미였기 때문에 당신의 뇌리에 박힌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별 기척도 없이 지내다가, 엄마가 청소하며 가방을 건드리는 바람에 상장 더미가 발견되었다. 엄마는 한 장 한 장 눈이 휘둥그레져 살피며 좋아하면서도, 멀뚱거리며 겸연쩍어하는 나를 보고 황당해했다. 그때의 엄마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열두 살 무렵의 일이다. 


  그러나 물릴 수 없는 행운, 이를테면 살면서 받은 여러 혜택과 배려, 선물 같은 타인의 적극적인 공세에 대해서는 돌부처처럼 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기쁘게 웃고, 감사히 받고, 공손하게 취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깊은 불안을 품은 채. 얼마나 기쁜 얼굴과 말투로 화답해야 하는가, 얼마나 감사를 오랫동안 가슴에 지녀야 하는가, 얼마나 받은 것을 되돌려 줘야 하는가. 아무리 겪어도 시들해지지 않는 질문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가족들이 좋아했던 표정 없는 낯, 시큰둥하고 기복 없는 분위기는 매사에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만 살았다간 오히려 무리에서 배척당할 위기에 놓이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렇게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열 차례에 걸친 심리 상담 덕분이었다. 



“해서 씨는 자존감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없는 사람 같아요.”

“그 정도인가요?”

“제가 드린 어떤 긍정의 사인도 다 거절하시잖아요. 가벼운 칭찬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딘 것 대한 인정도, 재능에 대한 부러움도. 방패가 따로 없어요.”

“아, 그건⋯ 정말 그 정도 얘기를 들을 일은 아니라서⋯. 혹시 제가 모든 반응을 계속 튕겨내서 기분이 안 좋으셨을까요?”

“그런 말이 아니에요.”



  혼란스러웠다. 어떤 답을 찾아 드려야 하는지. 내담자인 주제에 상담사의 기분을 살피고 있지만 알 턱이 없다. 알았으면 꼬질꼬질한 인형을 품에 안고 그 자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 있을 리도 없겠지. (오해할까 싶어서 덧붙인다. 이 상담사는 지금껏 만난 심리 전문가들 가운데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왔고, 순식간에 내 전 생애의 이야기를 끌어낸 유능한 분이다. 나는 저 답 없는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진심으로 그를 좋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실감하고 있는 사람이 질투도, 비교도 하는 거예요. 해서 씨는 그런 게 너무 안 보여요. 매사에 ‘감히 나 따위가’, ‘고작 이런 걸로’를 깔고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걸 다 일축해 버리잖아요.” 

“어떻게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걸요.”

“그냥 알아주면 좋겠어요. 해서 씨도 받을 가치가 있는 분이라는 걸.”



  아아. 내 안의 감정과 변화를 알아채고 알아주는 힘은 그로부터 이 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생겨서가 아니다. 상담에서의 기억이 내면에 균열을 냈고, 조금씩 그쪽으로도 마음이 흘러갔을 뿐. ‘받는다’의 의미를 알아가면서부터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해방감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무수히 ‘부담스럽게 여기며’ 흘려보낸 사랑의 언어, 공감의 몸짓이 한꺼번에 어깨 위로 올라탔다. A는 나를 정말 아꼈구나. B는 그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던 거야. 몰랐네. C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 재능을 믿어줬구나. 나는 정말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었고, D 역시 내게 깊은 존중을 표했던 거구나. 우리는 정말로 무언가를 나눈 사이였구나.


   여러 불행을 피하고자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게 인생이라 생각한 시간이 있었다. 외줄은 단지 바닥에서 50cm 떠 있는 높이에 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 밑에는 부드러운 그물망이, 결코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겁먹지 말라며 소리치며 받아줄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나는 힘없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세상을 믿을만한 장소로 여기지 못해 어디에도(자기 자신에게도) 힘을 쓰지 않는 간장 종지만 한 그릇의 인간이었다. 받은 것들을 헤아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부끄러움 속에서 나는 진정 빚쟁이가 되어간다. 


   그러나 자책은 이어가지 않을 것이다. 비로소 내 세계에 ‘흠집’을 내보고 싶어졌으니까. 흠집을 내기 위해 힘을 제대로 써보고 싶어졌으니까. 잘 받고, 받은 것을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고, 어떻게든 감사함을 돌려주고 싶다. ‘모든 세상의 감탄사가 내게로 온다*’는 한 시인의 표현처럼, 나는 내게로 오는 것들을 막지 않고 흠집과 균열로 찢어진 너머를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내향인의 영역도 깊이만이 아니라 넓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박은정, <사루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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