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목적 없이 헤엄치는 아침이 올 때까지 Written by 재성

조회수 422

905268f9371ea.png


봄이 오면서 아침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는 25m 레일이 있다. 초급반은 바닥에 발을 딛어도 물이 허리춤에 걸린다.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자유형으로도 한 번을 환영하는 게 쉽지 않다. 반사적으로 생각이 흐른다. — 얼른 체력도 실력도 늘었으면 좋겠다.

삶의 대부분을 성과나 성취, 목표 주변에 맴돌았다. 원하는 것을 위해 애쓰고 울고 무너지고, 그렇게 성취해 기쁨도 누렸다. 그 너머에는 별게 없다는 감정도 느끼고 무기력과 우울에 허우적거린 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등바등 두려움과 성취감에 목을 매며 다음 계단을 바삐 올랐다.

— 12월부터는 쉬고 싶어. 연말은 나와 내 주변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나 정말 쉬고 싶어



작년 가을 단풍이 들면서, 마음속으로도 입 밖으로도 가까운 사람을 넘어 낯선 사람에게까지도 습관처럼 생각을 뱉었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말하는 대로 되는 편이라 정말 12월부터 1월까지 일이 줄었다. 그러고 조금 낯선 여유와 간만의 여행, 약간의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건 이전의 무기력이나 우울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 이렇게 프로젝트를 받고, 디자인을 하고, 결과물을 내면서 계속 그렇게 사는 건가? 계속 이건가



도쿄와 우붓을 연달아 여행하며 머릿속에는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를 채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캐리어를 끌며 이리저리 걷는 단정한 도쿄의 거리. 바이크 뒤에 몸을 싣고 바람을 받으며 구경하는 우붓의 시내. 건축부터 실내 공간, 사소한 디테일까지 눈을 즐겁게 하는 도쿄의 많은 편집숍. 눈을 뜨면 물로 뛰어드는 발리의 쨍한 아침. ‘그래, 다 좋지 뭐.’



2월 초 발리에서 돌아와 나는 움직였다. 가능하면 천천히.

아침에 물 안에 있는 감각이 좋아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북적이는 게 좋아서 동료들이 모이는 사무실로 자주 발길을 옮겼다. 친구들과 같이 중랑천을 뛰고, 서로의 집에 모여 책을 읽었다. 목적지들을 잡고 차나 택시를 타던 시간들을 줄이고 자주 걸었다. 아주 최근 들어서는, 요리는 아니지만 배달 음식을 줄이고 밀키트를 사서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 곤이와 명란의 생물을 만져봤다. 내가 먹던 곤이는 원래 이런 모습이었구나?

— 어떤 감각을 잃어버렸던 걸까. 내가 성공과 성장을 쫓는 동안, 나는 무엇을 지나쳐온 걸까.



첨——벙. 앞사람과의 간격을 가늠하다 물결을 따라 들어간다. 물에 떠 있는 기분, 몸을 가라앉히는 중력, 물살이 내 손과 몸을 스쳐 뒤로 흘러가는 감각. 숨이 빠지면서 보글거리는 촉감과 소리. 배영을 하면서 예기치 못하게 입으로 들어오는 물의 질감. 평영을 하면서도 제자리에 멈춰있는 당혹감과 처음 느껴보는 허벅지 안쪽 근육의 자극까지.

20대 초반 어느 시점에 멈춰버린. 성장하는 감각 외에 삶을 풍요롭고 즐겁게 살아가게 해주는 수많은 감각들이 이제야 다시 흐른다. 해야 하는 건 더 많아졌는데, 이상하게 쏜살같이 흐르던 시간이 천천히, 그리고 풍요롭게 흐른다.



삑—삑—삐——익. 샤워까지 끝내고 수영장에서 나왔다. 이제는 수영이 끝나면 날이 꽤 밝다.





5 0

사이드 대표자.정혜윤 | 0507-1478-1023 | sideinseoul@gmail.com | 서울 용산구 소월로20길 56-4 | BUSINESS NO. 644-13-01361 [ 2021-서울광진-1854 CHECKING ]

© SID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