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마녀의 섬. 시키호르의 날들 written by 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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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바다에 들어간 날]

아아 점점 다리가 저려오고 몸이 차가워지며 숨이 찬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바다 저 멀리까지 갔다.


아무리 열심히 다이빙 롱핀을 차며 겨우 따라잡아도
따라잡은 곳에서 숨 참고 바닷속 깊이까지 다이빙하는 것이 잘 안된다.


마녀의 섬이라고 불리는 시키호르에
프리다이빙을 하기 위해 온 여행.
친한 친구들, 낯설지만 친구의 친구인 동생들, 프리다이빙 선생님과 함께 이곳에 왔다.


우리 모두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지는 1년이 채 안 됐다.
프리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과 다르게 산소통 탱크 같은
외부 호흡장치 없이 단 한 번 자신의 숨만으로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 물속을 유영하거나 잠수하는 스포츠다.
그렇기에 수면에 올라올 때까지 본인이 참을 수 있는 숨을 알고,
자신의 몸에 신체적, 정신적 집중이 필요하다.
무리해서 다이빙하는 순간 수압에 못 이겨 고막이 나가버리거나, 숨이 모자라게 되니깐.


이렇게 말하면 무섭게도 들리지만, 사실 참 안전한 스포츠다.
반드시 2인 1조의 “버디” 짝꿍과 함께 다녀야 하며,
오히려 본인의 몸 상태에 집중하며 나를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조절하면 안전하게 바다와 교감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지금 눈앞에 이쁜 바다가 있고,
저 밑 바다 깊은 곳에 내가 자세히 보지 못한 물고기들이 있을 것 같은데
시간과 돈을 들여 먼 곳까지 와있는 당장, 몸이 잘 안 따라주는 상황이 괜히 한스럽다.

아아 조급하면 오히려 안돼.

나의 호흡을 찾자.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내 몸의 신호를 알자.
현재에 집중하자.


왼쪽 종아리가 계속 쥐가 나네
오늘 첫 바다라서 긴장했나.


발목에 힘이 덜 들어가고 있네
혹시 다른 친구들 속도를 따라가려다 무리한 건가.


괜스레 몸이 차가워지며
배도 아파오고 난리다.
옆의 내 짝꿍. 버디가 괜찮냐고 물어본다.


아아 인정하긴 싫지만 안되겠다.
더 욕심을 내면 안된다.


오늘의 바다는 무리다.


[두 번째 바다에 들어간 날]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준비 운동을 열심히 해 발목과 종아리를 열심히 워밍업 해주고,
혹시나 배 아프지 않도록 점심도 조심히 먹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안전.


다른 친구들이 저 멀리 가든,
깊이 잠수를 하던 상관하지 말고

나의 숨,
나의 몸.
현재 내가 있는 바다에만 집중하자.


모든 욕심과 걱정들을 버리며
숨 참고 깊은 바다로 다이빙.


더 깊이, 더 편안하게
왜인지 한국에서 연습했을 때보다 잘 들어가졌다.

수영장 타일만 보이던 잠수장과 다르게

색색의 물고기와 돌, 해초가 보인다.


아, 재밌다!


하지만 이날의 파도가 세서 그런지
멀미하는 친구들이 있어
위험을 감지하고 선생님이 철수를 알렸다.

아쉽지만 이 거대한 자연을
우리가 조절할 수는 없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세 번째 바다에 들어간 날]

날씨도 좋다.
바다의 시야도 깨끗하다.
매일 다 함께 숙소에서 수영하고, 밥 먹고 이야기 나눴더니
친해져서 마음이 편안하다. 동료들과 다 함께 있는 기분.


저 멀리 빨리 가는 친구,
깊이 다이빙하는 친구들이 보일 때
이젠 나도 빨리 가야 한다는 조급함보다는

‘그쪽 바다엔 뭐가 보였는지 이따 물어봐야지’
‘깊이 잘 내려가네! 다행이다’ 와 같은 생각이 든다.


마음과 몸의 긴장이 풀렸던 탓일까.

각자의 다이빙에 대한 응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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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내 숨에 집중하고,
그저 내 눈앞에 보이는 바다 풍경에 집중한다.

어느새
내 버디 외엔 없는 고요해진 바다.

귀에는 바닷물 소리와
내 숨소리. 고요함만이 가득하고

평화로이 유영하는 물고기들과
바닷속을 비추는 햇빛만이 일렁인다.


다이빙 들어가기 전 숨을 참는 과정인 준비 호흡.
눈을 감으며 세상 제일 편안했던 때를 떠올리며 숨을 고르고
깊이 숨을 참는다.


머리를 숙이며 수직 하강을 할 땐
내 귀가 아프진 않는지 집중하며
다시 이퀄라이징으로 귀의 압력을 조정하고
내려갈 수 있는 깊은 곳까지 가본다.


무리 없이 잘 내려간 체감 10m의 바다 아래.
평화롭다.


그저 바다와 나.
눈앞의 보이는 풍경과 내 숨 상태만 존재한다.


해초들 사이를 지나
바다를 유영하다 숨이 다 찰 때쯤 올라온 해수면.

날 안전하게 지켜보고 있던 버디와
서로 기쁜 눈을 맞춘다.
즐겁다.


[네 번째 바다에 들어간 날]

어느덧 익숙해진 바다.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된 듯
자유로이 수면과 바닷속을 오가며
다이빙을 이어간다.


기대하던 거북이도 보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제각각 흥미로운 물고기와 해저 스폿을 찾아가며
깊은 잠수 기록을 경신하거나 본인만의 시간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왜인지 나와 내 버디는
깊이 잠수하는 것보다
바닷속을 가득 채우는 햇빛 아래 머무는 데 관심이 갔다.


보통 바닷속의 풍경을 봐야 하니 몸도, 시선도 바다의 깊은 곳을 향했는데
몸과 눈을 빙글 뒤집어 하늘을 향해 누우면
아름답고 눈부시게 일렁이는 수면과 햇빛이랑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린
바다의 깊은 곳을 보기 위해 다이빙하기보단,
깊이 내려가서 햇빛을 보기 위해 다이빙하기 시작했다.

즐거운 우리만의 놀이
아 추억이 생겼다.


이제는 해변으로 돌아가는 길.
혹시 오늘 우리만의 방식으로 노느라
특이한 물고기들을 너무 안 찾았던 걸까? 괜찮나 생각하려던 찰나,
내 버디가 물속에서 내게 손짓하더니
지휘하듯 웨이브 하는 손동작을 보인다.

그제야 버디와 내 주변을 감싸던 해초들이 보이고
해초들이 해류에 일렁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눈을 둘러보면 늘 쉽게 보이던 해초라, 어느 순간 그저 지나쳤는데
새롭게 귀엽게 느껴졌다.

눈앞의 귀여움을 놓치지 않게 도와준 버디가 고맙다.



[다섯 번째 바다에 들어간 날]

시키호르 섬을 떠나는 마지막 날 밤.
매일 다이빙이 끝나고 숙소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았지만, 오늘은 더욱 끝이 없는 것처럼 놀았다.
잠수 시합, 물속에서 게임하기, 수영 시합, 선생님과 장난치기 등.


점점 깊어지는 밤.
선생님이 손수 사 오신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야자수 나무 아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에 오길 서울에서 얼마나 고대했던가.
오래 기대했던 만큼 이곳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벌써 끝이 다가오는 게 참 아쉬웠다.


나의 속도와 나를 알게 되고
새로이 친해진 친구들, 바다, 놀이 등 즐거운 것뿐이었다.


각자의 로망들은 다 이뤘던 때,
한 친구의 로망은 아직 안 이뤄졌었다. 그건 바로 ‘밤바다 들어가 보기’

벤치에 남아있겠다는 몇 친구 외에
낭만에 눈이 반짝이는 친구들과 함께
숙소 코앞에 있는 바다로 향했다.


칠흑 같은 어둠,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불분명해진 경계선.
그리고 식어버려 차가워진 바닷물의 온도.
얕은 바다지만 그럼에도 한 발자국씩 더 걸어나가게 된 건
숙소의 불빛이 옅어질수록 이 검은 바다가 더 고요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배영을 하고,
한 친구는 일어서고
나는 아빠 다리로 앉고
저마다의 편한 자세로 자리 잡은 뒤 고개를 든다.


시야에는 빛나는 별들의 은하수만이 가득하다.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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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검은 풍경의 일부던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잠시 바다에서 나와 챙겨왔던 우쿨렐레를 야자수 아래에서 연주했다.
어느새 모두가 한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검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던 친구들도 함께
바닷가 해변으로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8명이서 노래를 부른다.

칠흑 같은 검은 바다와 은하수 별빛 아래
별똥별이 내리길 바라며
내 엉성한 우쿨렐레 반주에 맞춰 부르는 “별빛이 내린다” 노래


사실 별똥별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이곳에 존재하는 우리가 즐거웠다.
즐겁게 노래를 마치며 연주도 마친 순간.


거짓말처럼 별똥별이 떨어졌다.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시키호르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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