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무위(無爲), 겨루지 않고 이루는 작은 혁명 written by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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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시절부터 불면증을 겪었다. 밤이 힘들어 한숨짓던 기억은 열 살무렵부터 시작된다. 좁은 방 하나에 나란히 누워 자는 네 식구, 한 명 한 명의 뒤척임과 숨소리, 냉장고 냉각기 울리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창틀. 거주 환경의 열악함만을 문제 삼긴 어렵다. 나는 예민했고, 예민함을 설명하기엔 너무 어렸다. 옆 사람이 몸을 들썩이기만 해도 깼다. 유리창에 비치는 어슴푸레한 기운조차 지나치게 밝게 느껴져, 눈을 감고 있어도 더 세게 감고 싶었다.


지독한 각성의 밤은 이십 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대학 학부생 시절,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못 이룬다. 아침마다 차가운 음료나 커피를 들이켜야 하루 일과를 겨우 보낼 수 있었는데, 밤을 꼬박 새우거나 몇 만 보를 걸어 다닌 날에도 기절 같은 건 꿈꿀 수 없었다. 꾸준히 요가를 해서 신체 밸런스가 좋았던 때도 마찬가지다. 밤은 길고, 길고, 어김없이 길다. 


약속이나 일이 없는 어느 하루, 오후 한두 시가 넘을 때까지 밀린 잠을 처리하는 루틴 덕에 이 몸이 겨우 유지된 건지도 모르겠다. 못 자는 대신 매일 조금씩 수명이 깎여 단명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오랜 세월 누적된 무력감이 더 무거웠기에 공포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 년 전부터 훨씬 수월하게 밤을 나고 있다. 일을 안 하다시피 하며 전세 대출 이자와 생활비 정도만 겨우 충당하는 신세가 되고 나서야 놀랍도록 편하게 잔다! 하루하루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세계 정세와 시장이 급변하는 와중에 어떻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지 묻는 눈빛들이 그려지지만, 글쎄, 거짓말처럼 잘 잔다. 밤이 깊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잠이 쏟아지는 감각. 통잠을 자고 난 아침의 개운함. 처음 체감하고 반질반질 피부에 광이 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여태 잠을 못 이룬 건 ‘시간이 없어서’인 게 아닐까?


*


시간은 왜 없었을까?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형제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원하는 만큼의 학업 성과를 내기 위해, 또래 친구의 인정과 기대를 사기 위해, 학교 어른들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대학에 가서도, 사회에 나가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학점을 얻기 위해, 벌이를 위해, 가족의 균열을 중재하고 해결하기 위해, 프리랜서로 자리 잡기 위해,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위해, 위해, 위해⋯ 


‘위하는 나’로 사느라 ‘존재하는 나’를 돌보지 않았던 나날들. 명분과 이해관계가 엮인 일에 온 신경을 쏟았다.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불행해지는 일보다는 이행하지 않았을 때 골치 아픈 정도의 일부터 먼저 처리했다. 생활의 불편이 줄어들수록 삶의 불만은 차오른다. 나는 많은 걸 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분에 휩싸여 괴로워하느라 잠을 못 잔다. 

 

틈틈이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따로 뺀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는 유일한 위로였다. 그러나 시를 쓸 시간도 늘 모자랐다. 버스 안에서, 잠들기 직전, 일하다 잠깐 화장실에 간 틈에 메모장을 켰다. 아픈 식구를 보살피다 지쳐 정신이 벼랑 끝으로 밀려 떨어질 것만 같은 날도 ‘일단 한 문장만 써보자’ 하는 식으로, 눈물방울 모아 차를 끓이듯 메모장에 한 문장씩 써나갔다. 그렇게 모은 문장들을 시로 다듬어 문학 공모전에 해마다 투고했지만, 어떤 곳에서도 좋은 소식을 들을 순 없었다.


나는 차츰 알게 됐다. ‘무언가를 위하는, 반복적으로 행하는 태도’만으로는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언어를 창의적으로 운용하는 자유롭고 대담한 정신, 세상을 은유하기 전에 선행하는 느리고 깊은 관찰,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그 어느 항목에도 내 상황은 부합하지 않았으니까.   


한병철 교수는 『관조하는 삶』에서 노동과 성과 강제에 맞서는 ‘무위’의 힘을 설파하며,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오늘날 혁명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면,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으면, 깊은 호흡이 없으면, 같음이 지속된다. 자유로운 정신이 절멸한다. ‘생각할 시간과 생각하는 쉼이 없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일탈하는 견해를 품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일탈하는 견해를 증오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삶이 엄청나게 가속하는 가운데 정신과 눈은 반쪽짜리거나 그릇된 보기와 판단하기에 익숙해지고, 누구나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내다보며 땅과 구름을 배우는 여행자를 닮아간다. 독립적이고 신중한 인식 태도는 일종의 미친 짓으로 취급되다시피 하고, 자유로운 정신은 비난의 대상이다.’” 1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성실히 돌리던 쳇바퀴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감행한다. 다른 나라로 훌쩍 떠나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혁명. 단지, 하지 않는 것. 지출을 넘어설 만큼 더 벌지 않는 것. 의무감으로 사람들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 가족의 일을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프리랜스 에디터로 살아남는 것을 유일한 생존 목표로 두지 않는 것. 


하지 않음을 감행한 후에야 늘어난 시간. 드디어 소비와 노동이 아닌 ‘경험’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지금의 내 동네는 오 년 넘게 산 동네지만, 사람들이 자주 산책로로 이용하는 천변에 어떤 꽃이 피는지를 오랫동안 몰랐다. 그곳엔 장미나 벚나무 말고도, 수선화, 겹벚꽃, 수레국화, 월계화, 토끼풀 등이 있었다. 골목마다 정말 다양한 가게가 생겼고, 작지만 독특한 요즘 느낌의 상점도 꽤 보인다. 나는 비로소 내가 사는 곳과 긴밀해졌다. 온라인으로 장을 보거나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마트만 이용하던 내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어떤 곳의 과일이 더 싱싱한지 어디 생선이 저렴한지 알게 됐다. 자주 밥을 차려 먹었고, 산책했고, 카페인과 점점 멀어졌고, 밤에 별생각 없이 잠을 잤다. 


짚고 넘어가자면, 이 시간은 일하지 않는 여가 시간이 아니다. 그 어떤 목적도 두지 않은 자유 시간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자유롭게 보낸 이 년간, 나는 어느 때보다 잘 잤고 즐겁게 시를 썼다. 공모전 최종심에 연달아 들기도 했는데,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크게 걸진 않은 상태여서 놀랐다. 비로소 내게 ‘힘’이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자의 『도덕경』 속 문장이 떠오른다. “도는 언제든지 억지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 된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나 제후가 이를 지키면, 온갖 것 저절로 달라집니다. (⋯) 욕심이 없으면 고요가 찾아들고 온누리에 저절로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2


근시안적인 목적과 소비중심적인 생활,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위해’ 움직이는 몸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게 있다고, 억지를 버리고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행동만이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있다고, 나도 점점 믿게 된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가시적인 성과와 소비만이 우리 삶에 건설적이고 파워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나 역시 자주 속는다.) 그러나 『도덕경』에서 말하는 성인과 자유인은 범속한 방식으로 행복을 찾지 않는다. 하지 않기, 멈추기 위해서도 강력한 힘이 필요하고, 그들은 온몸으로 세상의 의도를 뿌리친다. 가속도 붙은 열차를 막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주변의 기대를 잃고, 의무가 느슨해지고, 불필요한 관계와 멀어지고, 에고를 다스려야만 보이는 자기 자신이 있다. 강제와 억압으로 작용하는 인위를 벗어던져 무위에 도달한 사람에게, 시간은 삶을 새로 쓸 새 페이지를 안겨준다. 


*


바쁠 때나 지금이나 내가 시 쓰기에 매달린 이유를 생각해보곤 한다. 시가 ‘나를 멈추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한병철 교수의 표현을 빌려 내 막연한 생각을 보완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생산 강제가 언어를 장악하면, 언어는 노동 모드로 전환된다. 그러면 언어는 정보 운반자로 쪼그라든다. 즉, 한낱 소통 수단이 된다. 정보는 언어의 행위 형태다. 반면에 시 쓰기는 정보로서의 언어를 무력화한다. 시 쓰기에서 언어는 관조 모드로 전환된다. 언어가 무위하게 된다. 시 쓰기는 언어가 소통 기능과 정보 전달 기능을 중단한 순간이다. 혹은 언어가 가만히 쉬면서 자신의 발언 능력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용 가능성들을 여는 순간이다.” 3


나는 무위로써 이미 평생 못 이룬 것을 하나 이뤘다. 잠 잘 자기. 아침까지 깨지 않기. 누구도 다치지 않는, 망가진 몸과 일상을 회복시키는 작은 혁명을 맛봤다. 그 혁명 속에서 나는 흔쾌히 무가치해지고 즐겁게 무력해진다. 힘을 쓰지 않으니 힘을 풀어놓는다. 풀어진 힘은 저절로 자신이 가야 할 데를 찾는다. 그렇게 쓴 몇 편의 시. 


갈 데 없는 시, 심심한 삶이 이끄는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따르고 있다.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하지 않음에 내 시간을 내어주기 위해. 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모든 가능성을 향하여 흘러가려고.




 1 한병철, 『관조하는 삶』, 김영사, p.35 

 2 노자, 『도덕경』제37장, 현암사, p.174

 3 한병철, 『관조하는 삶』, 김영사,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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