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현의 동분서주
하는 만큼 기회가 된다고? 그래서 오늘도 움직인다
콘텐츠 만드는 프리랜스 에디터에게 일과 휴식의 경계 같은 건 있으나 마나 하니까…
소속 없이도 업을 이어가기 위해 뭐라도 시도하고, 만들고, 보여주는
어느 에디터의 동분서주 업무 회고 시리즈
_____
때는 2023년 봄. 프리랜서라 쓰고 백수라 읽던 시절. 그때 나는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으로 뛰어드는 결정을 내렸다.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품는다는 유튜브의 세계로. 영상을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내게 익숙한 건 텍스트와 정지 이미지의 조합이었으니까. 나는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이런저런 콘텐츠를 생산해 왔다. ‘라이프스타일’이니 ‘컬처’니 ‘트렌드’니 하는 라벨이 붙은 내용물은 대체로 글과 사진이라는 포맷으로 수렴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내가 전달하는 내용을 담기에 글과 사진이 가장 효율적인 포맷이었다. 동시에 내가 다룰 수 있는 도구가 글과 사진 뿐이었다. 종이 잡지와 디지털 매체, 브랜드 자체 저널과 기업 및 기관의 공식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소셜 미디어 콘텐츠까지 고객과 플랫폼은 다양해도 산출물은 하나같이 이 공식을 따랐다.
영상이라는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데는 적잖은 각오가 필요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알지도 못하는 장르와 플랫폼에 손을 댔는가. 시작이야 그렇다 치고 중간에 (아무도 모르는) 잠정 중단을 선언했음에도 왜 기어이 숏폼이라는 무대까지 진출했는가. 그게 내 첫 업무 회고의 주제다. 햇병아리 프리랜스 에디터는 어쩌다 숏폼 크리에이터가 되었나. 그 배경과 과정과 소회를 담았다.

1. 텍스트에서 영상까지
[Why] 프리랜스 에디터로 살아 남고 싶었다
3년 전 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든 이후로 나는 줄곧 혼란을 겪었다. 에디터로서의 전문성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경하는 선배 에디터와 콘텐츠 기획자들을 볼 때마다 그랬다. 브랜딩, 패션, 디자인, 자동차, 공예, 식품 등등.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전문 분야가 있었다. 그 에디터 하면 떠오르는 그 키워드가. 나한테는 없었다. 대선배들과 나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나만의 영토가 없기에 언제든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걸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다시 말해 너무 어려운 것과 그렇게까지는 어렵지 않은 것을 파악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특정 분야를 독창적인 관점과 집요한 취재로 파고들어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전자였다. 취재도 하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내 이름과 얼굴을 노출하며 이런저런 콘텐츠에 등장해 까불기까지 하는 건 후자였다. 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분야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나대보기로. 글만 쓰는 에디터와 경쟁하는 것보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토크도 진행하고 유튜브에도 나가는 에디터랑 경쟁하는 편이 쉬울 테니까.
[What] 유튜브 세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2023년 4월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명은 현정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수다’라는 태그라인에는 토크 방송과 브이로그와 정보성 콘텐츠를 섞은 채널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다. 거창하게 이름 붙였지만 오만가지를 다루는 잡식 콘텐츠 모음이었다. 단골 카페, 넷플릭스 시리즈, 뉴욕 여행, 애착 안경, 직접 만든 티셔츠, 도서관과 떡꼬치, 인디 뮤지션, 여름이 좋은 이유…
나름 열심히 만들었다. 물리적으로는 백수라 시간이 넘쳤다. 정신적으로는 ‘나도 이제 유튜버’라는 같잖은 부심이 넘쳤다. 책에 썼던 내용 중에 영상으로 옮기면 좋을 소스를 뽑아 콘텐츠 리스트를 만들었고, 걷다가도 씻다가도 먹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장이나 녹음 앱을 켜 기록을 남겼다. 오디오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유튜버들이 많이 쓴다는 마이크용 소니 녹음기를 구매하는 것도, 영상이 업로드될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제발 보러와 달라고 애원글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So] 역량의 한계를 느꼈다
문제는 금방 지쳤다는 것이다. 조회수가 안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나는 단타로 치고 빠질 생각이 없었다. 프리랜스 에디터의 경쟁력 강화라는 장기적 관점으로 유튜브 시장에 접근하지 않았던가. 실망스러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내 역량이었다. 영상이 드럽게 재미없었다. 카메라 앞에 선 현정김씨는 내가 알던 재간둥이 김정현 씨와 다른 사람이었다. 왜 이렇게 경직된 거지?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을 땐 좀 나았다. 혼자 찍을 때가 가관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야 깨달은 거다. 나는 카메라 하나 두고 주절주절 떠드는 데 재능이 없는 사람이란 걸.

만드는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결과물은 불만족스러웠다. 영상을 완성할 때마다 힘이 빠질 수밖에. 짜임새 있게 내용을 기획하는 것부터 촬영에 편집에 섬네일 제작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는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녹음기까지 잃어버렸네? 그렇게 현정김 채널은 돌연 잠정 중단을 선언한다. 물론 관심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 롱폼에서 숏폼으로
[Why] 짧고 가볍게, 다시 시작해보자 싶었다
놀면 뭐 하나. 그사이 김정현 에디터의 업무 수주량은 드라마틱하게 늘지 않았다. 여전히 시간은 많았다. 뭐라도 해야 할 때였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할 때였다. 조금이라도 덜 지칠 무언가를. 시간과 체력을 아끼면서 소소한 재미라도 줄만 한 결과물을 만들 순 없을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윽고 나는 숏폼 콘텐츠의 세계로 들어섰다. 분량이 짧아지면 몸도 마음도 편해질 거란 믿음으로…

숏폼의 소재는 ‘장소’로 시작했다. 서울의 로컬 숍을 비롯한 다양한 상업 공간을 소개해 온 내게 가장 익숙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다만 글에서 영상으로, 롱폼에서 숏폼으로, 유튜브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그 형식과 플랫폼이 달라졌으므로 이에 맞는 고민이 필요했다. 그렇게 정해진 초기 설정은 다음과 같다.
1. 영상 한 편에 하나의 공간만 소개한다.
2. 1분 안에 그 공간의 분위기가 잘 파악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3. 화려한 영상미 대신 음성과 자막을 활용한 내용으로 승부한다.
[What] 숏폼 제갈량을 자처하며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더 나아가 나는 차별화 전략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유사한 카테고리의 타 채널과 나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 ‘장소’ 키워드로만 한정해도 소위 카페투어나 여행 정보 모음 채널과 경쟁해도 도태되지 않을, 김정현 계정을 봐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렇게 수립한 차별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기획과 제작의 노력이 엿보이는 에디터의 콘텐츠
2. 만드는 사람이 각인되는 캐릭터 강조

그냥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사람이 취미로 만든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에디터가 내용을 기획하고 관련자를 만나 취재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만든 알찬 콘텐츠라고. 고작 1분이지만 다 보고 나면 얻어가는 게 하나라도 있었으면 했다. 소수의 팔로워가 재밌다고 말해준 ‘사뿐사뿐’ 입장 신이나 가게 사장 혹은 브랜드 디렉터가 등장하는 장면 등 일관된 내용 구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시리즈라는 인식이 잡히도록 의도한 부분이다.
더불어 내 얼굴과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노출했다. 시티털보라는 별명까지 붙여 가면서. 영상에서 다루는 장소나 물건뿐만 아니라 그걸 경험하고 소개하는 인물이 기억에 남아야 타 채널과 소재가 겹쳐도 묻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느끼한 목소리와 부정확한 발음으로 꾸역꾸역 내레이션을 녹음한 것도 그래서다. 숏폼 콘텐츠라는 형식과 어긋나지 않게 유쾌한 기조를 유지하려 장난스러운 스텝을 밟거나 과장된 오디오 효과를 넣기도 했다.

이 모든 걸 단순히 ‘다르기 위해 다르게’ 구상한 내용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차별화 전략의 기반은 ‘이 콘텐츠를 지속함으로써 내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이어졌다. 시티털보 시리즈는 결국 김정현 에디터의 작업물이다. 내가 듣고 싶은 반응은 이런 거였다. ‘얘 좀 흥미롭네? 글만 쓰는 줄 알았는데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직접 등장해서 입 털고 까불 줄도 아네?’ 그에 대한 김정현 에디터의 대답이야 언제나 준비돼 있었다.
“유튜브 콘텐츠 출연 시켜주시면 잘할 수 있지요. 토크 프로그램도 맡겨 주시구요. 숏폼 콘텐츠 제작 대행도 쌉가능이랍니다.”
요컨대 나는 숏폼 콘텐츠 제작의 목적과 기대효과를 정리해 보며 진행 원칙과 기준을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So] 느리고 소소하게,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2024년 2월 3일. 첫 번째 숏폼 콘텐츠 업로드 날짜다. 세어 보니 2025년 11월 19일을 기준으로 그간 총 53개의 영상을 만들었다. 최다 조회수는 42.5만 회, 최저 조회수는 6,684회를 기록 중이다(인스타그램 릴스 조회수 한정이며, 동일한 영상이 유튜브와 틱톡에도 업로드된다).
그래서 나는 뭘 얻었는가. 기본적으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크게 늘었다. 이게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체감할 수 있었다. 기똥찬 알고리즘의 행보는 나와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이나 동종 업계 종사자를 꾸준히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거기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잠재 고객이었다. 광고 제안이 들어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덕분에 내가 여태 광고비를 받고 만든 브랜디드 콘텐츠는 총 7건이다. 적은 돈 받고는 안 하고 싶어 분수에 맞지 않게 까불었더니 생각보다 많이 하지 못해 아쉽다.
숏폼 콘텐츠를 만들어달라는 제작 대행 의뢰나 토크 행사의 모더레이터 제안은 대단히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애타게 바랐으면서도 정말 이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라이브커머스까지 출연하는 기회를 잡게 되다니, 과연 시티털보의 고민과 발품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는 숏폼이 쏘아 올린 공의 위력을 실감했다. 텍스트 콘텐츠 기반의 에디터에서 비디오 콘텐츠 제작도 가능한 에디터로, 한 발 더 나아가 청중과 카메라 앞의 스피커로 설 수 있는 에디터로. 그렇게 제 커리어는 천천히 확장되어 왔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너무 호들갑일까?
___
언젠가 구호처럼 외친 말이 있다. ‘이나시나!’ 이왕 나댈 거 시원하게 나대자는 뜻이다(내가 만들었다). 방구석에 누워 엉덩이 긁으며 스크롤을 올리던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숏폼 크리에이터로 활약(?)하게 될 줄은 몰랐지.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냐는 외침은 뭐라도 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의 기세에 밀려 흩어져 버렸다. 이왕 하는 거 시원하게 까불어보자는 마음으로 전략도 세우고 피드백도 수용하고 나름의 활용과 변주도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고작 숏폼 하나 만든 게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다. 나는 몰라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역시 좌충우돌 프리 워커 라이프가 깨우쳐 준 가르침이다.
Writer. 김정현 (@kimjeonghyeon_)
프리랜스 에디터. 다양한 매체/브랜드와 일하며 주로 도시의 흥미로운 장소와 사람과 콘텐츠를 소개한다.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다. 취재와 원고 작성부터 사진 촬영, 토크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라이브커머스 패널까지 분야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시티털보’라는 이름으로 개인 숏폼 콘텐츠도 만들고 있다.
✴︎ 김정현의 동분서주
하는 만큼 기회가 된다고? 그래서 오늘도 움직인다
콘텐츠 만드는 프리랜스 에디터에게 일과 휴식의 경계 같은 건 있으나 마나 하니까…
소속 없이도 업을 이어가기 위해 뭐라도 시도하고, 만들고, 보여주는
어느 에디터의 동분서주 업무 회고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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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3년 봄. 프리랜서라 쓰고 백수라 읽던 시절. 그때 나는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으로 뛰어드는 결정을 내렸다.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품는다는 유튜브의 세계로. 영상을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내게 익숙한 건 텍스트와 정지 이미지의 조합이었으니까. 나는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이런저런 콘텐츠를 생산해 왔다. ‘라이프스타일’이니 ‘컬처’니 ‘트렌드’니 하는 라벨이 붙은 내용물은 대체로 글과 사진이라는 포맷으로 수렴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내가 전달하는 내용을 담기에 글과 사진이 가장 효율적인 포맷이었다. 동시에 내가 다룰 수 있는 도구가 글과 사진 뿐이었다. 종이 잡지와 디지털 매체, 브랜드 자체 저널과 기업 및 기관의 공식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소셜 미디어 콘텐츠까지 고객과 플랫폼은 다양해도 산출물은 하나같이 이 공식을 따랐다.
영상이라는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데는 적잖은 각오가 필요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알지도 못하는 장르와 플랫폼에 손을 댔는가. 시작이야 그렇다 치고 중간에 (아무도 모르는) 잠정 중단을 선언했음에도 왜 기어이 숏폼이라는 무대까지 진출했는가. 그게 내 첫 업무 회고의 주제다. 햇병아리 프리랜스 에디터는 어쩌다 숏폼 크리에이터가 되었나. 그 배경과 과정과 소회를 담았다.
1. 텍스트에서 영상까지
[Why] 프리랜스 에디터로 살아 남고 싶었다
3년 전 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든 이후로 나는 줄곧 혼란을 겪었다. 에디터로서의 전문성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경하는 선배 에디터와 콘텐츠 기획자들을 볼 때마다 그랬다. 브랜딩, 패션, 디자인, 자동차, 공예, 식품 등등.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전문 분야가 있었다. 그 에디터 하면 떠오르는 그 키워드가. 나한테는 없었다. 대선배들과 나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나만의 영토가 없기에 언제든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걸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다시 말해 너무 어려운 것과 그렇게까지는 어렵지 않은 것을 파악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특정 분야를 독창적인 관점과 집요한 취재로 파고들어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전자였다. 취재도 하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내 이름과 얼굴을 노출하며 이런저런 콘텐츠에 등장해 까불기까지 하는 건 후자였다. 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분야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나대보기로. 글만 쓰는 에디터와 경쟁하는 것보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토크도 진행하고 유튜브에도 나가는 에디터랑 경쟁하는 편이 쉬울 테니까.
[What] 유튜브 세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2023년 4월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명은 현정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수다’라는 태그라인에는 토크 방송과 브이로그와 정보성 콘텐츠를 섞은 채널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다. 거창하게 이름 붙였지만 오만가지를 다루는 잡식 콘텐츠 모음이었다. 단골 카페, 넷플릭스 시리즈, 뉴욕 여행, 애착 안경, 직접 만든 티셔츠, 도서관과 떡꼬치, 인디 뮤지션, 여름이 좋은 이유…
나름 열심히 만들었다. 물리적으로는 백수라 시간이 넘쳤다. 정신적으로는 ‘나도 이제 유튜버’라는 같잖은 부심이 넘쳤다. 책에 썼던 내용 중에 영상으로 옮기면 좋을 소스를 뽑아 콘텐츠 리스트를 만들었고, 걷다가도 씻다가도 먹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장이나 녹음 앱을 켜 기록을 남겼다. 오디오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유튜버들이 많이 쓴다는 마이크용 소니 녹음기를 구매하는 것도, 영상이 업로드될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제발 보러와 달라고 애원글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So] 역량의 한계를 느꼈다
문제는 금방 지쳤다는 것이다. 조회수가 안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나는 단타로 치고 빠질 생각이 없었다. 프리랜스 에디터의 경쟁력 강화라는 장기적 관점으로 유튜브 시장에 접근하지 않았던가. 실망스러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내 역량이었다. 영상이 드럽게 재미없었다. 카메라 앞에 선 현정김씨는 내가 알던 재간둥이 김정현 씨와 다른 사람이었다. 왜 이렇게 경직된 거지?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을 땐 좀 나았다. 혼자 찍을 때가 가관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야 깨달은 거다. 나는 카메라 하나 두고 주절주절 떠드는 데 재능이 없는 사람이란 걸.
만드는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결과물은 불만족스러웠다. 영상을 완성할 때마다 힘이 빠질 수밖에. 짜임새 있게 내용을 기획하는 것부터 촬영에 편집에 섬네일 제작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는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녹음기까지 잃어버렸네? 그렇게 현정김 채널은 돌연 잠정 중단을 선언한다. 물론 관심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 롱폼에서 숏폼으로
[Why] 짧고 가볍게, 다시 시작해보자 싶었다
놀면 뭐 하나. 그사이 김정현 에디터의 업무 수주량은 드라마틱하게 늘지 않았다. 여전히 시간은 많았다. 뭐라도 해야 할 때였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할 때였다. 조금이라도 덜 지칠 무언가를. 시간과 체력을 아끼면서 소소한 재미라도 줄만 한 결과물을 만들 순 없을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윽고 나는 숏폼 콘텐츠의 세계로 들어섰다. 분량이 짧아지면 몸도 마음도 편해질 거란 믿음으로…
숏폼의 소재는 ‘장소’로 시작했다. 서울의 로컬 숍을 비롯한 다양한 상업 공간을 소개해 온 내게 가장 익숙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다만 글에서 영상으로, 롱폼에서 숏폼으로, 유튜브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그 형식과 플랫폼이 달라졌으므로 이에 맞는 고민이 필요했다. 그렇게 정해진 초기 설정은 다음과 같다.
1. 영상 한 편에 하나의 공간만 소개한다.
2. 1분 안에 그 공간의 분위기가 잘 파악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3. 화려한 영상미 대신 음성과 자막을 활용한 내용으로 승부한다.
[What] 숏폼 제갈량을 자처하며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더 나아가 나는 차별화 전략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유사한 카테고리의 타 채널과 나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 ‘장소’ 키워드로만 한정해도 소위 카페투어나 여행 정보 모음 채널과 경쟁해도 도태되지 않을, 김정현 계정을 봐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렇게 수립한 차별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기획과 제작의 노력이 엿보이는 에디터의 콘텐츠
2. 만드는 사람이 각인되는 캐릭터 강조
그냥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사람이 취미로 만든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에디터가 내용을 기획하고 관련자를 만나 취재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만든 알찬 콘텐츠라고. 고작 1분이지만 다 보고 나면 얻어가는 게 하나라도 있었으면 했다. 소수의 팔로워가 재밌다고 말해준 ‘사뿐사뿐’ 입장 신이나 가게 사장 혹은 브랜드 디렉터가 등장하는 장면 등 일관된 내용 구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시리즈라는 인식이 잡히도록 의도한 부분이다.
더불어 내 얼굴과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노출했다. 시티털보라는 별명까지 붙여 가면서. 영상에서 다루는 장소나 물건뿐만 아니라 그걸 경험하고 소개하는 인물이 기억에 남아야 타 채널과 소재가 겹쳐도 묻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느끼한 목소리와 부정확한 발음으로 꾸역꾸역 내레이션을 녹음한 것도 그래서다. 숏폼 콘텐츠라는 형식과 어긋나지 않게 유쾌한 기조를 유지하려 장난스러운 스텝을 밟거나 과장된 오디오 효과를 넣기도 했다.
이 모든 걸 단순히 ‘다르기 위해 다르게’ 구상한 내용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차별화 전략의 기반은 ‘이 콘텐츠를 지속함으로써 내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이어졌다. 시티털보 시리즈는 결국 김정현 에디터의 작업물이다. 내가 듣고 싶은 반응은 이런 거였다. ‘얘 좀 흥미롭네? 글만 쓰는 줄 알았는데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직접 등장해서 입 털고 까불 줄도 아네?’ 그에 대한 김정현 에디터의 대답이야 언제나 준비돼 있었다.
“유튜브 콘텐츠 출연 시켜주시면 잘할 수 있지요. 토크 프로그램도 맡겨 주시구요. 숏폼 콘텐츠 제작 대행도 쌉가능이랍니다.”
요컨대 나는 숏폼 콘텐츠 제작의 목적과 기대효과를 정리해 보며 진행 원칙과 기준을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So] 느리고 소소하게,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2024년 2월 3일. 첫 번째 숏폼 콘텐츠 업로드 날짜다. 세어 보니 2025년 11월 19일을 기준으로 그간 총 53개의 영상을 만들었다. 최다 조회수는 42.5만 회, 최저 조회수는 6,684회를 기록 중이다(인스타그램 릴스 조회수 한정이며, 동일한 영상이 유튜브와 틱톡에도 업로드된다).
그래서 나는 뭘 얻었는가. 기본적으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크게 늘었다. 이게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체감할 수 있었다. 기똥찬 알고리즘의 행보는 나와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이나 동종 업계 종사자를 꾸준히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거기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잠재 고객이었다. 광고 제안이 들어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덕분에 내가 여태 광고비를 받고 만든 브랜디드 콘텐츠는 총 7건이다. 적은 돈 받고는 안 하고 싶어 분수에 맞지 않게 까불었더니 생각보다 많이 하지 못해 아쉽다.
숏폼 콘텐츠를 만들어달라는 제작 대행 의뢰나 토크 행사의 모더레이터 제안은 대단히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애타게 바랐으면서도 정말 이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라이브커머스까지 출연하는 기회를 잡게 되다니, 과연 시티털보의 고민과 발품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는 숏폼이 쏘아 올린 공의 위력을 실감했다. 텍스트 콘텐츠 기반의 에디터에서 비디오 콘텐츠 제작도 가능한 에디터로, 한 발 더 나아가 청중과 카메라 앞의 스피커로 설 수 있는 에디터로. 그렇게 제 커리어는 천천히 확장되어 왔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너무 호들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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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구호처럼 외친 말이 있다. ‘이나시나!’ 이왕 나댈 거 시원하게 나대자는 뜻이다(내가 만들었다). 방구석에 누워 엉덩이 긁으며 스크롤을 올리던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숏폼 크리에이터로 활약(?)하게 될 줄은 몰랐지.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냐는 외침은 뭐라도 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의 기세에 밀려 흩어져 버렸다. 이왕 하는 거 시원하게 까불어보자는 마음으로 전략도 세우고 피드백도 수용하고 나름의 활용과 변주도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고작 숏폼 하나 만든 게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다. 나는 몰라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역시 좌충우돌 프리 워커 라이프가 깨우쳐 준 가르침이다.
Writer. 김정현 (@kimjeonghyeon_)
프리랜스 에디터. 다양한 매체/브랜드와 일하며 주로 도시의 흥미로운 장소와 사람과 콘텐츠를 소개한다.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다. 취재와 원고 작성부터 사진 촬영, 토크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라이브커머스 패널까지 분야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시티털보’라는 이름으로 개인 숏폼 콘텐츠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