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X 송길영 | EXPL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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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사람들의 마음을 캐는 광부,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올해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었다. 송길영 작가의 <그냥 하지 말라>. 늘 Just do it을 외치던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예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것이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냥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다. 


현재 (주)바이브컴퍼니(구 다음소프트) 부사장인 송길영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기록이 담긴 소셜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캐는 광부, “마인드 마이너”라고 불린다. 그의 책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사이트가 가득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논리적이고 인문적이다. 내가 꾸준히 전하는 브랜딩에 관한 생각과 독립적으로 일하는 이유와도 관통하는 메시지가 많아 그를 인터뷰하게 된 것이 무척 설레고 떨렸다. 


내 마음속에 결심 하나를 더 확고하게 해 준 그날의 대화를 사이더들에게도 공개한다. 인터뷰 초반에는 나와 사이드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내가 도리어 질문을 받았다. 대화 과정에서 재미있게도 준비했던 첫 질문을 하지 않은 채로 그 질문의 답변을 듣는 경험을 했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유니크한 하나의 이름

길영: 사이드를 시작한 시점이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떴을 때예요, 뜨기 전부터였어요?


융: 2017년에 sideproject.co.kr 도메인을 사놨어요. 사이드 프로젝트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뜨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2017년에 생각한 걸 작년에 시작했으니까, 저한테는 3년이 걸린 거예요. 제 시점에선 오래 걸린 거죠.


길영: 도메인을 사신 게 2017년이군요. 그럼 됐습니다. 키워드를 소유하게 되면 내가 키워드의 주인이 되잖아요. 저희는 데이터 분석을 10년 하다가 빅데이터라는 단어가 뜬 거예요. 운이 좋았죠. 10년 걸렸어요. 지금 도메인 구매하시고 3년 걸린 거잖아요. 그건 진짜 빠른 겁니다.


융: 2020년에 주 5일 출근하는 삶에서 독립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회사를 나와서 뉴스레터 0호 구독자부터 모집했어요. 뉴스레터를 보내기도 전부터 구독자 600명이 모여서 놀랐거든요. 2017년에 미리 도메인을 사놨다는 스토리 때문에 더 바이럴이 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사이드 프로젝트로 사업하려는 분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고 들었어요. 


길영: 제가 인터뷰와 무관하게 얘기를 해드릴게요. 


융: 제가 아직 1번 질문도 못 드렸거든요. (웃음)


길영: 저희 인터뷰를 할 때가 아닙니다. 중요한 터닝 포인트예요. 본인의 이름을 지으셔야 해요.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니크한 하나의 이름이요.


융: 마인드 마이너. 이런 직업 이름 말씀하시는 건가요?


길영: 네. 저는 데이터 마이닝하는 사람으로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빅데이터 전문가라고 부른 거예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어요. ‘내가 하는 게 빅데이터인가?’ 빅데이터는 컨설팅회사가 만든 키워드예요. 그들이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잖아요. 전문가라고 불러주는 것이 고맙지만, 다른 이들도 ‘빅데이터 전문가'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저만을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무엇이 될 것인가 생각해보며 ‘마이닝 마인즈’라고 제 키워드를 정했어요. 


지금은 여러 사람들이 저를 마인드 마이너라고 부릅니다. 10년 걸렸어요. 내가 주장해도 사람들이 인식하고 나의 유니크함을 인정해주는데 몇 년이 걸려요. 그러니까 먼저 주장해야 돼요. 어떤 가치를 추구한다고 꾸준히 전해야 5년이 지난 다음 불러줍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녹아 있는 직업 이름을 만드세요.


융: 지금은 제 자신을 ‘독립한 마케터'라고 소개하고 있긴 한데, 제가 하는 일을 전부 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길영: 독립한 마케터는 수식어잖아요. 예전에 어떤 컨퍼런스에서 만난 분이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전세를 얻지 않고 신혼여행 대신 2년간 세계 여행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명해졌고, 그분이 성공한 이후에 많은 분들이 신혼여행으로 세계 여행을 갔어요. 그 다음에 가신 분들은 먼저 성공한 것을 보시고 따라하신 것이죠.


어떤 거냐면, 절실함의 크기가 다른 거예요. 2호는 1호의 성공을 보고 따라간 거잖아요. 맨 앞에 서는 것은 무섭지만, 그 사람의 용맹함에 우리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앞으로 더 커질 거잖아요. 이걸 3년 전에 한 거면 널리 알려야죠. 


융: 제가 준비한 첫 질문이 ‘마인드 마이너라는 직업 이름을 어떻게 만드셨나요?’였는데 신기하네요.


길영: 지금 말씀드렸네요. 자주 모이고, 얘기하고, 즐기는 분들 없으세요?


융: 많아요. 올해 초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기록의 쓸모> 저자/마케터 숭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 대표 하빈)과 일의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는 마케터들의 협동조합 ‘포스트웍스'도 만들었어요. <도쿄 R 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 책을 읽고, 일하는 형태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저까지 총 9명을 모았어요. 


길영: 좋아요. 요즘 많이 보이는 방법입니다. 마케터, 디자이너, 개발자, 심지어 세무사, 회계사도 길드를 만들고 있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착취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상호 존중 때문입니다. 실행자가 가장 밑에 있는 구조에 반기를 드는 거죠. 우리끼리는 평등할 수 있으니 이제는 끼리끼리 모여 다른 형태의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융: 공감합니다. 저는 제가 연결자이자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해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앞에서 만들고 싶어서 회사를 나온 거고요.


길영: 바이브컴퍼니는 매년 트렌드 리포트를 내고 있어요. 트렌드에서 주목받는 것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냐면요. 일종의 임시정부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두고 싶지만 월세는 내고 있고. 싱글몰트 위스키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호구지책은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탈출 구명정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는 거예요. 지금 어디까지 갔냐면요, 모선 옆에 띄워도 본 거예요. 


메시지와 꿈의 크기가 커지면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요. 저의 메시지는 가셔라. 빠르게 할 수 있다. 이건데요. 넘어가는 걸 도와줄 수 있는 분이 필요하잖아요. 그 용기를 주실 수 있는 분 같아서...


융: 저는 그런 작업을 나름대로는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계속 던지는 메시지가 “모두가 아티스트인 시대"거든요. 그 아티스트라는 게 꼭 그림 그리고, 음악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파는 사람이라고 해요. 자기 다운 길을 찾는데 용기와 팁을 주기 위해 사이드도 만든 거고요.


길영: 제가 지난번에 쓴 책에 담긴 메시지네요.


융: 네. <상상하지 말라>도 재밌게 읽었어요. 장인 아니면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쓰셨잖아요. 


길영: 어쩔 수 없어요. 이걸 절실히 느끼는 사람과 왜 자꾸 그런 두려운 이야기를 하냐는 사람으로 나눠져요. 이 시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람들이 모색하고 있는 중이란 말이에요. 어떻게 했는지를 나누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모두가 똑같은 일을 배울 수는 없잖아요. 이미 프로페셔널한 능력이 있는 분이 점프하는 용기가 없을 때 그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을 해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융: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네요. 


길영: 큰 일을 해주세요. 사이드 프로젝트가 저희 트렌드에 잡힌 지가 얼마 안 됐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마라탕이 떴는데 벌써 5년째 하고 있던 집이 있었던 거예요. 그럼 대박이거든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성취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훈장

융: 브랜딩은 알리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란 말에 깊이 공감했거든요. 알맹이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길영: 떴다는 이유로 하면 그건 따라한 거죠. 성취의 과정이 좋은 게 아니라 결과를  탐하는 것이 나왔다는 거죠. 그럼 우리는 그 의도를 의심하잖아요. 아까 얘기했던 그거예요. 신혼여행을 세계여행으로 하는 걸 보고 따라간 분들은 물론 좋았겠죠. 하지만 그 절실함은 1호만큼은 아니에요. 


융: 책에 쓰셨던 이 문장도 떠올라요. “성취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훈장이다.” 저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았어요


길영: 여러 기업의 HR 부서가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을 어떻게 동일선상에 둘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 각자의 열정을 회사의 비전과 결합할 것인가가 화두예요. 그래서 ‘성장’을 키워드로 스터디하며 도출한 인사이트입니다.


성장 키워드를 살펴봤더니 ‘자라다’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더라고요. 10년 전에는 성장이 국가의 성장, 경제 성장률, 이렇게 스케일이 큰 곳에서 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 아침에 명상했더니 좀 나아지는 것 같아”, “저녁에 필라테스 하는데 자세가 좋아지는 것 같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장이란 키워드의 쓰임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단위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점수를 얻기 위한 진화의 과정으로 결과가 목표였다면, 지금은 매일 하루치씩 내가 자라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성취란 게 일상에서 쌓아가며 얻게 되는 경험, 스스로에 대한 인식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목표보다 과정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데이터를 보고 나온 문장이에요. 


융: 책을 보면서 제가 직감으로 느끼고 있던 것들을 뾰족한 문장으로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깊이 파고들어서 날카로운 통찰이 나오는 것 같아요.


길영: 골똘히 생각하고 꾸준히 고민하고 훌륭한 동료분들과 얘기를 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매주 모여서 ‘성장이 뭘까. 왜 한국 사회에서 성장이 화두일까’를 고민했어요. 어떤 분은 금방 알지만, 저는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서 어느 순간 알게 된 거죠. 중요한 건 한 달의 숙고가 있었다는 거예요. 마이닝 마인즈를 만드는데도 6년이 걸렸습니다.


융: 마이닝 마인즈. 단어 둘 다 핵심적이라 뺄 단어가 없어요.


길영: 오래 생각했으니까요. 몇 개의 키워드를 조합하다가 어느 순간 우리가 캐내는 건 마음이라고 깨달았어요. 


융: 이야기가 책 속에서 좋았던 문장들로 계속 연결되네요. “고민의 총량이 팔린다.” 이 문장도 너무 좋았거든요.


길영: 고민의 총량은 내가 했던 시도의 총합이에요. 내 전문성과 숙고의 결과를 파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애플 제품은 부품 하나하나 계산하면 200불이면 만들 수 있는 걸 왜 그렇게 비싸게 파냐고요. 애플이 그 가격에 판매되는 이유가 뭘까요? 애플은 제품을 닦는 헝겊까지도 신경 씁니다. 박스를 열 때부터 경험이 디테일하게 설계되어 있어요. 우리는 그들이 고민한 과정을 사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의 총량이란 말이 나오게 된 거죠.


융: 그럼 작가님의 요즘 고민은 어떤 거예요?


길영: 변화가 폭주하면 못 따라오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이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융: 와. 엄청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계시네요.


길영: 저도 힘들거든요. 이걸 어떻게 하지 하는 것들을 어떤 분들은 쉽게 쓱쓱 하시더라고요. 

책 [그냥 하지 말라]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융: 저는 두 가지 면이 공존하는 것 같은 게, 디지털 세계의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날로그한 걸 좋아해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앞장서고 싶으면서도 느리게 쉬고 싶은,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욕망이 충돌하기도 하고요. 이럴 땐 어떤 걸 보고 방향을 잡으면 좋을까요?


길영: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가치보다 안 가진 것에 대한 욕망이 커지잖아요. 그걸 추구하는 건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지만, 대신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죠. 


어떤 행동이 내가 이루는 꿈을 위한 목표인 경우에는 당연히 밟아야 하는 과정인데, 그게 아니라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다른 사람과 달라지고 싶다는 이유라면 그건 안 끝나요. 나중에는 허무해집니다. 끝도 없이 바빠지고, 내게 돈이 쌓여도 쓸 곳도 없고. 내 존재의 증명을 지위로 하면, 나중에는 허망해지는 거죠.


융: 너무 공감 가요. 저는 <그냥 하지 말라> 책에서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고 좋았어요.


길영: 삶의 진정성은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책에 썼던 건 업의 진정성까지예요. 직업은 적어도 상호 간에 계약이니까요.


융: 일도 그렇지만 공간도, 브랜드도, 사람들이 진정성이 없으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진짜랑 가짜를 구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차이가 뭘까를 고민해본 적이 많아요. 어떤 브랜드와 공간에게서는 영혼이 느껴지는데, 어떤 곳은 요새 유행하니까 카피한 것 같은 느낌이 나요.


길영: 우리는 구별할 수 있죠. 근데 더 나아가서 고민하면 또 다음 단계가 있어요. 중국에 교토를 카피한 마을이 있대요. 미니어처가 아니라 아예 실물 사이즈로요. 그럼 이게 진짜냐 가짜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와 시간성까지 봐야 되는 거잖아요. 헛갈리죠. 무엇이 진짜인지에 대한 것의 기준이 존재하는 걸까. 


앤드루 포터의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에서는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말합니다. 진정성은 상대적인 거라 몰입의 총량이 큰 사람이 이긴다는 거예요. 어떤 가치를 끝까지 추구하고 하드코어한 쪽이 이기는 거예요.


융: 생각해볼수록 어렵네요. 이게 역사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길영: 그럼요. 파리는 지금도 이전 모습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자체를 훼손하지 않아요. 뭘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예요. 훼손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행동이 멋지고 트렌디할 수 있지만, 여기 인문과 예술에 대한 부분, 인류에 대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진정성에 대한 가치는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고민해야지만 넣을 수 있겠죠. 마케터가 가치를 형성하는 일을 한다면, 전달이 아니라 그만큼 역사와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어야 가능하겠죠.


융: 지금 너무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계신 것 같아요. 이게 <그냥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도 또 연결되네요. 방향 설정을 잘하고 꾸준히 공부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길영: 트렌드로 보면 방향 설정이고, 밀도로 본다면 숙고입니다. 양식, 문화적 백그라운드, 공부했던 사람들의 흔적 등을 알아야 뭘 하나 하더라도 신중해질 수 있죠. 안 그러면 유행한다고 잘된다고 막 카피하니까요.


융: 맞아요. 그래서인지 어떤 동네의 문화를 이해하고 지키면서 만들어진 공간은 다르다고 느껴져요.


길영: 그렇지 않은 공간은 맥락이 빠진 거예요. 맥락 없이 인스타그래머블한 걸 만든 공간과 맥락까지 깊이 고민하고 만들어진 공간은 다르죠.


융: 작가님은 알을 깨고 나왔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길영: 없었어요. 노력은 했고, 어떤 시점에 저의 어떤 부분이 잉태가 되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제가 알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에 대한 구분은 아마 제가 끝난 다음에 사람들이 판단하지 않을까요?


융: 저는 좀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는 걸 두려워하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번 알을 깨고 나왔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거든요.


길영: 마트료시카 아니세요?(웃음) 내가 내 삶에서 나의 의지와 가치, 역할에 대한 것을 어떻게 정리하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직장인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옆에 있는 직장인과 달라지면 나는 커진 거죠. 그런데 예술가가 꿈이었다면 직장인을 여러 번 업그레이드시켜도 그 꿈보다 작을 수 있잖아요. 


하고 있는 일이 많아도 여러 가지가 분산되면 예술가가 되긴 어려워요. 에너지가 밀집도 있게 안 모이고 분산되어지니까요. 지금 뭐라도 하라는 게 사회의 분위기라서 많은 걸 한다고 좋은 게 아닐 수가 있어요.


융: 저도 그렇지만, 사이더들 중에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길영: 몰입할 수 있는 일이면 돼요. 저 같은 경우에도 글도 쓰고, 필요할 때는 강연도 하고, 학술 대회도 하고, 회사 일도 보잖아요. 오늘 아침 7시에도 고객을 만나고 왔어요. 이 여러 가지 일이 사실은 다 하나예요. 마이닝 마인즈예요. 그러면 이게 뭉쳐져요. 


융: 어떤 얘기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다 다른 일이여도 사실은 같은 일이라고 느껴요.


길영: 그럼 돼요. 그래서 키워드가 필요합니다. 


융: 마케팅을 하든, 강연을 하든, 책을 쓰든, 제가 던지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와 일을 하는 이유는 일맥상통하거든요. 직업 이름도 계속 고민해보겠습니다. 저는 제가 방황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어요. 10년 동안 회사 6군데를 다녔거든요. 초반에는 퇴사가 유행하던 때가 아니라 왜 그러냐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제가 사람들 퇴사 상담을 해주게 됐어요. 제가 내린 결정들이 저만의 서사를 만들어줬어요.


길영: 그냥 그만두었느냐 의도하고 그만뒀느냐의 차이 같아요. 내가 먼저 퇴사를 던진 건 그만큼의 큰 꿈을 실행력과 함께 붙여서 나의 서사를 만드는데 이용한 거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죠. 의지가 어느 쪽에 있느냐의 문제예요. 사람들이 공명하는 트렌드가 상당히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주체적이냐의 문제거든요. 사람들이 공명하는 건 행위자가 가지고 있는 인텔리전스와 꿈의 크기에 정확히 비례해요.


융: 인텔리전스와 꿈의 크기에 비례한다. 이 문장은 어디 적어두고 싶네요.


길영: 저희는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니까요. 지금 Z-세대들은 아예 조직에 안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융: 저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길영: 이유가 밀레니얼 세대가 존엄을 깎이는 걸 보면서예요. 데이터를 보면 Z세대는 ‘나는 겪지 말아야지’라는 의지가 보여요. 


융: 하하. 웃픈 이야기인데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안 그래도 많은데 더 많아지고 있기도 하고요. 혹시 작가님도 방황해본 경험이 있으세요?


길영: 지금도 하고 있는데요? 매일요. 저희는 아무도 안 해본 일을 하고 있잖아요. 벌써 20년 됐어요. 그래서 매일이 방황이에요. 이게 맞는 걸까. 여길 파볼까. 여기는 뭐가 없네. 이렇게 계속,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책 [그냥 하지 말라]

나를 발견하고 정의한다는 것

융: 사랑받는 브랜드, 브랜드가 되는 사람들에겐 자기다움이란 키워드가 중요하잖아요.


길영: 자기다움은 있으면 좋은 게 아니라 필수죠. 결여되어 있으면 차별화가 없어서 인지가 안 돼요.


융: 그래서 내가 나를 아는 게 먼저 같아요. 내가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길영: 발견할 수는 있죠. 내가 이런 걸 좋아하고 잘하는구나. 저만 해도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쓰는 건 해볼 이유도 없었고, 기회도 적었을 거 아니에요. 심지어 이공계인데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것도 내가 해볼 수 있겠네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삐뚤빼뚤하다가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데 이걸 발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처음부터 가능성을 없애버리면 영원히 안 되는 거고요. 시도해보다가 발견하면 운이 좋은 거고요. 


융: 삐뚤빼뚤해도 해보는 게 역시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걸 발견하는 게 중요하고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주 던지시잖아요. 그 이유가 있나요?


길영: 일에 있어서 일정 부분의 어려움을 겪고도 끝까지 가려면 몰입해야 해요.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중간에 포기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 이야기예요.


융: 맞아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는 저는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는 못할 것 같아요.


길영: 어렵습니다. 일에 있어서 꼭 겪어야 되는 과정이 있는데 즐기지 않으면 어떤 지점까지는 안 가는 것 같아요.


융: 저는 좀 덕후 기질이 있는데요. 좋아하면 덕질하게 되고, 덕질하면 파고들게 되잖아요. 파고들면서 자연스러운 깊이가 생기고요. 어느순간 ‘내가 덕질을 했던 게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와닿네요. 


이건 사이더 한 분의 질문이었는데요, 빅데이터에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일상에서도 데이터를 가까이하면서 시대의 정신을 읽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길영: 꾸준히 많은 걸 읽으면 됩니다. 흐름을 알고 싶으면 매질을 하나로 정해놓고 읽으면 돼요. 그럼 흔적을 다 남깁니다. 매질 하나를 오래 보면 시그널과 그 안에서 사용하는 언어, 표현의 강도를 알아들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서점에 놓인 책의 표지만 몇 년간 꾸준히 봐도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보입니다. 신문만 매일 읽어도 보이고요.


융: 책에서 또 좋았던 부분이 약간 도덕책 같은 이야기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잖아요.


길영: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인데요. 그 얘기도 직업에 한정한 겁니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있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업에 대해서라면 진지하고 선량해야 한다는 부분을 알려드린 거죠.


융: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요?


길영: 업을 충실히 한다는 건 출발점에서 내 업을 내가 정의하는 거예요. 내가 내 일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정의하고, 충실함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세워야 해요.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내 직업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융: 좋은 얘기 많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이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길영: 제도와 시스템이 안정화되려면 참여자가 늘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일을 외주로 줘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 프리워커로서의 직업이 성립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어떤 회사는 훌륭한 분을 고용하기는 어렵고, 고용에는 여러 내부적인 리스크도 있으니 프리랜서와 일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분의 라이프가 있으니 양양에 있든 치앙마이에 있든 우리가 함께 일하는 데에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얘기하는 회사가 있다면 개인의 독립성과 직업의 안전성도 확보가 되잖아요. 이제 이런 사회문화적인 형태의 흐름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옛날 같았으면 지나가는 배가 없으니 중간에 급유도 어려웠는데 이제 아닐 것 같다는 거예요. 이제는 내가 먼저 가볼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구명정이라면 적어도 노는 저을 줄 알아야 하고, 바람의 방향도 봐야 하고, 유사시에는 수영도 가능해야 합니다. 나가서 구명정을 어떻게 운용할 건지는 계획하고 나가자. 저는 이쪽입니다.


융: 그냥 하지 말라. 이 이야기네요. 


길영: 다행인 건 비교적 많은 종류의 배가 왔다는 거죠. 그리고 슬프고 어려운 얘기지만 남아 있는 것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융: 오늘 이야기들은 저두 두고 두고 곱씹어보고 싶어요. 좋은 얘기 많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오면서 나는 어딘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이 날의 대화는 내 마음속에 있는 불꽃을 또 한 번 지폈고, ‘앞으로의 나'를 숙고해보게 만들었다. 실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일부 이야기는 나의 행동이 따라올 때까지 아껴두려고 한다. 모든 것이 메시지인 시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일을 하는 이유이자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하고 내딛은 한걸음 한걸음이 나의 현재를 만들었고, 지금부터 내딛는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앞으로의 서사를 만들 것이다. 나를 믿고 꿈을 더 크게, 더 과감하게 꾸기로 했다. 마지막은 <그냥 하지 말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단을 나누고 싶다.


“새로운 시대의 전문가는 학력이나 이력, 경력을 내세우는 전문가가 아니며, 단순히 덕후도 아닙니다. 근본이 있고 애호와 전문성을 갖추며, 그런 자신을 브랜딩할 수 있는 개인들이 살아남을 겁니다. 깊게 하는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오래하게 되고, 자연스레 역사가 생깁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을 믿고 지지해줄 팬덤이 생기죠. 그게 곧 브랜딩 아닌가요?”


- <그냥 하지 말라>,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책 더 보기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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