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지금 밑미를 창업한 지 이제 4개월 됐잖아요. 또 새로운 챕터를 시작해보니 어때요? 이전 시작과 다른 점이 있어요?
하빈: 밑미를 시작할 때 창업에 대한 엄청난 포부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확실한 건 내가 나를 아는 단계에 왔고 나에 대한 그레이 영역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나를 좀 잘 아니까 두려움이 줄어들었어요. 회사를 나오는 게 두렵지 않은 것도 저에겐 신선한 일이었죠. 이제 점을 찍고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알고 이게 어떤 형태로든 나의 다음과 연결된다는 확신이 있어요.
회사 다니면서 아쉬웠던 건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었거든요. 지금은 제가 창업자로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또 더 큰 환경이잖아요. 그렇게 됐을 때 나는 또 어떤 걸 배우고 느낄 것인가. 이건 조금 더 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찍어야 하는 점이구나. 찍어야지만 다음 챕터를 더 자신 있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해보니까 역시 창업은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점을 찍겠다고 했지만 정말 큰 점이에요.(웃음) 몸도 마음도 훨씬 강하게 단련시켜야 여기서 웃으며 일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걸 많이 배우고 있어요. 그래도 저를 성장시키고, 제가 제 것을 결정하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융: 밑미 자체가 내가 누군지 알게 도와주는 서비스잖아요. 하빈님이 경험해서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하빈: 저는 저를 알기 전까지 시간도 돈도 많이 썼어요. 회사에서 돈을 벌면 쇼핑하는 데 안 쓰고 강연이나 학원을 등록한다든지, 지적 갈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많이 썼어요. 제가 저 자신을 더 들여다보는 데 썼으면 오히려 저를 더 빨리 알았을 것 같은데,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에어비앤비에는 자기 스타일로 사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거든요. 호스트, 게스트, 직원. 이런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면 20대는 다르게 살았을 것 같아요. 제가 무수한 변화를 겪었다 보니 밑미라는 브랜드로서 그걸 빨리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내게 없었던 존재를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좀 더 이 사람을 미리 만났더라면’이란 생각을 가지고 리추얼 메이커도 찾는 것 같아요.
융: 하빈님도 리추얼 메이커로서 리추얼을 진행하고 있는데, 소설 읽기를 하는 이유는 뭐에요?
하빈: 경영서나 자기계발 위주의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좀 벗어나 보고 싶었어요. 어떤 언어를 표현할 때 경영, 비문학을 읽게 되면 직접적 언어를 많이 쓰잖아요. 근데 마케팅, 스토리텔링을 잘하려면 직접적 언어보다 맥락적 언어를 잘 써야 하는데 그건 감성의 영역이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의도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 누군가의 어떤 장면이 소설과 겹쳐지기도 해요. 감정이 많이 올라오니까 밤에 읽으면서 감정 일기도 쓰고요. 지금은 실제로 제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고, 위로를 많이 받는 매개체가 됐죠.
융: 하빈님 얘기 들으면서 좀 신기한 건, 나에게 필요한 환경을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즉흥적으로 실행하는 것 같아요.
하빈: 저도 얘기하면서 느낀 게 좀 구조적이고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편인 것 같네요. 내가 나를 판단했을 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억지로 시작해봐요. 제가 뭔가를 꾸준히 잘 못하니 그 환경을 만들어줘요. 소설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같이 읽고 댓글 남기는 활동에 참여한다거나, 혼자 잘 못 하니 주변의 연대를 많이 활용했어요. 밑미 온라인 리추얼도 저 같은 사람들이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건 알지만 혼자서는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주는 환경. 이게 자기 재미와 힘이 붙은 다음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요.
융: 밑미 시작하고 가족들 반응은 어땠어요? 하빈님에겐 가족도 굉장히 중요해 보여요.
하빈: 확실히 제가 한국 사회 굴레에서 벗어나서 더 자유롭게 사는 걸 엄마와 오빠가 엄청 등 떠미는 사람들이었어요. 사업한다고 했을 때도 둘 다 찬성. 내 것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엄마랑 오빠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런 선택 뒤에 엄청난 지지자가 있었던 거죠. “너는 잘할 거야.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하고 사는 거지” 이런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있으니까요.
융: 하빈님 어머님도 올해 금자씨부엌을 시작하셨잖아요. 가끔 하빈님이 ‘금자씨 매니저’라고 자처하는 게 재밌었거든요. 예약제로 원테이블에 둘러앉아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금자씨 부엌은 어머님이 먼저 하고 싶어 하신 거예요?
하빈: 사실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브랜드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혼자서 정리하다가 생각한 게 세 가지예요. 자기만의 철학. 그것 때문에 있는 이야기. 그리고 아우라. 아우라는 그 사람의 톤앤매너인데,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안에 톤앤매너가 있는 거죠. 그게 진짜 아우라인데 엄마가 생각나는 거예요. 브랜드의 기준을 써보는데 엄마와 연결됐어요. 자기 철학이 있고, 이야기와 아우라도 있고. 엄마가 브랜드구나, 내가 발견만 해주면 되는 상황이구나 알게 되면서 엄마에게 해보자고 말했어요. 엄마는 돌아다니는 브랜드라고요.

예약된 한 팀만을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를 준비하는 금자씨부엌
융: 금자씨부엌의 시작에도 하빈님이 있었네요. 어머님은 바로 오케이 했나 봐요.
하빈: 네 엄마도 바로 시작하는 스타일이에요. 이왕 할 거면 큰 데서 좋은데서 해야하는 거 아냐?라고 했는데 저는 무조건 작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크기로 시작하자고 했어요. 해도 안 해도 되는 정도로 해야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아빠가 이걸 해야지만 스토리가 완성된다고 해서 아빠에게 목공을 시켰죠.
융: 아 이것 때문에 목공 하신 거구나. 저는 지금까지 ‘어떻게 마침 아버지가 목공을 하고 있었네’ 생각했는데, 하빈님의 큰 그림이었군요.
하빈: 네, 아빠 목공도 제가 시작하게 만든 거예요. 제가 아빠에게 돈을 지급한 거로 더 좋은 가구를 살 수 있었는데, 그럼 아빠에게 동기부여가 없잖아요. 처음에는 목공 가루가 날려서 아빠가 싫어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아빠 성격에 목공이 맞을 것 같았어요. 바둑 좋아하고 몰입형이어서. 아빠에게 맡겨서 제 집에 있는 가구들이 아빠의 첫 작품이에요. 지금은 금자씨부엌하면서 아빠도 재미도 붙고 자신감도 붙었죠. 일거리가 있으면 더 재밌잖아요. 이전에는 엄마, 오빠랑 셋이서는 대화가 잘 되는데 아빠는 억지로 끼우려고 해도 엮이는 게 없었어요. 근데 목공을 하고 떳떳한 역할이 생긴거죠.
목공수가 된 하빈님의 아버지
융: 하빈님이 정체성 하나를 찾아 준 거네요.
하빈: 엄마는 있는 걸 제가 찾아줬으면 아빠는 만들었죠. 아빠 생일 선물로 목공 도구들 사주고, 학원도 보내주고. 딸에게 미안해서라도 하시더라고요. 아빠의 노년 생활이 조금 더 즐거워지도록 하나의 아이템을 준 것 같아요.
융: 너무 좋네요. 하빈님이 지금 하는 일이랑도 연결되는 것 같아 신기해요.
하빈: 제가 왜 혜윤에게 <모든 것이 되는 법>을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했냐면요, 그 책 덕분에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정리됐어요. 내가 왜 아빠에게 목공을 시키고 있고, 엄마의 브랜딩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했어요. 그냥 한 거였거든요. 가족을 위해서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책에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다 다른 걸 하는 것 같지만, 하나로 연결되는 뭔가가 있다. 그 메시지가 저에게 유레카처럼 와서 하루만에 책을 다 읽고 흰 종이에 지금까지의 일을 쭉 정리해봤어요. 공통점이 뭐지 하고 봤더니, ‘나는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걸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구나. 나도 그걸 하고 싶구나’ 알게 된 거죠. 처음에 한 얘기랑도 연결되는데요. 저는 이 사람이 좋다고 말했을 때 보면, 자기 스타일이 있고 자기다운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작년 말부터 혜윤과 자잘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잖아요. 이전에도 이 책은 알고 있었는데, 혜윤이 추천해서 더 읽어본 것도 있거든요. 이 시점에 이 사람이 저에게 추천해준 것도 저에겐 신기한 일이에요.
융: 정말 다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제가 사이드를 하는 이유도 너는 너대로 살면 돼.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은 건데 하빈님이랑 실현하는 모습은 다른 것도 재밌어요. 하빈님의 시작을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요. 2~3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네요. 가까운 미래에 하빈님이 잊고 싶지 않은 현재의 마음이 있어요?
하빈: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요. 저는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창업하고 사업하다 보면 어쨋든 지속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이윤 창출을 해야 하잖아요. 이윤 창출 사이에서 갈등이 왔을 때, 적어도 이 마음은 항상 중심에 있으면 좋겠어요. 만약 이걸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창업을 했지만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고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거의 매일 하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 창업한 게 아니니까요. 그 마음이 지켜지지 않는 날에는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융: 그 마음이 너무 멋있어요. 마지막으로 사이더 구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하빈: 저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 하면서 ‘나는 열심히 사니까 됐어’라고 만족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나를 회피하는 것일 수 있거든요. 무조건 열심히 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성은 있으면 좋아요. 내가 원하는 걸 잘 모른다는 걸 빠르게 인정하고, 자신을 너무 채근하진 않았으면 해요. 이것저것 하는 약간의 변덕성은 나를 찾을 때 당연히 필요한 거거든요. 변덕을 즐겨봐야 내가 어느 분야에서 신이 나는 사람인지, 해봐야 아는 게 다능인 특징인 것 같아요. 많이 경험해보면서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걸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