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순: 안녕하세요, 의미를 찾고 의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장순이라고 합니다.
융: 제가 오늘 대표님 명함을 받았는데, 직함이 '브랜드 필로소퍼(Brand Philosopher)'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브랜드 필로소퍼, 어떤 의미인가요?
장순: 보통 브랜드나 크리에이티브 마케팅 씬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톡 튀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시는데, 저는 그렇진 않아요. 대신 직관적인 아이디어나 남들이 따라가는 행위 이면에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그래서 이 직함도 누가 별명으로 붙여주신 거예요.
융: 사회 초년생 땐 '실력이 없으면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고요. 그럼에도 16년째 이 일을 하고 계신 이유가 있나요?
장순: 다른 거 할 게 없더라고요. (웃음) 예전 선배들은 아무래도 기존의 관습이나 말랑말랑한 말장난스러운 위트에 익숙한 분들이다보니까 저랑 스타일이 달랐어요. 저는 충분히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니, 넌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어. 그래서 문제야.” 이런 피드백을 받기도 했죠. 그래서 그냥 내 스타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프레임은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저는 언어학을 공부했고, 좋아해요. 언어학을 통해 기호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제 나름의 세계관이 정립됐어요. 그렇게 배운 여러 학술 용어들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어요. '이런 걸 알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텐데', '관계망이 다르게 디자인 될 텐데' 하고요. 근데 학술 용어는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어렵잖아요. 그래서 언어학 전공자를 뽑는 회사에 들어갔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제 길을 찾았어요.
융: 현업에서 일하기 전부터 언어학과 기호학을 공부하면서 내면에 쌓아온 것들이 엄청 많았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언어학을 전공하고 싶었나요?
장순: 아뇨. 지금은 종교가 없지만, 예전에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요. 그래도 믿음이라는 게 생기지 않았어요. 영어 성경을 읽으면 좀 나으려나 싶어서 비교해보다가, 이럴 게 아니라 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엔 서울대 종교학과를 찾다가 그와 비슷한 느낌의 언어학과를 선택한 거예요. 그리고 학부 3학년 때 운이 좋게도 고대어 강좌들도 막 생겼어요. 수메르어나 라틴어 같은. 이 공부가 현업에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도움을 주진 않지만, 덕분에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받았어요.
융: 엘레멘트 (LMNT), 회사 이름에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장순: 저희 회사 이름은 '요소'라는 뜻의 ELEMENT에서 모음을 뺀 건데요. 엘레멘트는 '심플 이노베이션(Simple Innovation)'을 지향해요. 고객사를 만나 예산을 따내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이런 저런 요구 사항을 많이 주시잖아요. 그런데 막상 브랜드를 평가하고 자산을 진단해보면, 어떤 문제는 로고 하나만 바꾸면 되고, 어떤 문제는 슬로건만 바꿔도 되고, 매장 내 테이블 배치만 달리 해도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요소들을 측정해서 간편한 혁신을 이뤄보자는 생각이에요.
제가 한창 돈이 없을 때, 어머니와 함께 살 때의 일인데요. 한번은 저희 집 화장실 수도꼭지가 고장나서 돌아가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펜치를 항상 가까이에 두고 수도꼭지를 돌려가며 샤워를 하곤 했어요. 어느 날엔 그 꼭지가 아예 빠져서 구멍이 났는데, 거기다가 피스 못을 박아 조이스틱처럼 만들어 두셨죠. 저는 이런 게 심플 이노베이션 같아요.
융: 서브컬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문화 플랫폼 Kasina (카시나)에 엘레멘트가 자회사로 편입됐다는 소식 들었어요. 에이전시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떻게 카시나와 손을 잡게 됐어요?
장순: 카시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카시나는 국내 스트릿 서브 컬처의 원조, 오리지널 브랜드이자 플랫폼이에요. 카시나 이은혁 대표님은 스물 세 살에 대한민국 보드 씬에서 탑을 찍은 분이고, 서브 컬처 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맏형 역할을 해오셨는데, 저는 그게 더 알려지지 않아 아쉬웠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재밌는 것을 만들어보자고 제안드렸죠.